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77화 (77/201)

〈 77화 〉 반드시 지킨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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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반드시 지킨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공작의 입에서 한 말이자 왕실의 뜻을 반박하기에 앞서

내 앞과 옆에 앉은 이들을 한 번씩 바라봤다.

왕실의 사람이 아닌 왕이 옆에 앉아있다.

테슬린 가문의 누군가도 아니고 귀족파의 누군가도 아닌

테슬린 공작이 내 앞에 앉아있다.

이것만으로도 라이거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라이거 가문의

한심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문의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돈과 힘, 권력인 것 같아 쓴웃음이 나왔다.

"왕실의 뜻을 공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자가 말한다..

힘없는 귀족이었다면 내용을 듣지도 않고

무조건 잘못했다 하며 용서를 구했을 테지만

힘과 권력 앞에서 겁먹고 거짓을 구분 못 할 제가 아닙니다.

먼저 이것부터 따져보죠.

허가되지 않은 영지전을 일으킨 죄를 묻는다 하셨습니까?

허가되지 않는 영지전은 진실이지만 먼저 일으킨 것은

라이거 가문이 아니라 페페 가문입니다.

아버지와 라이거 기사단 전원,

조약 때문에 고작 5백밖에 양성하지 못했던

병사들은 모두 몬스터 토벌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좋다. 그 부분은 정정하지.

하지만 핵심은 누가 영지전을 일으켰냐가 아니라!

라이거 가문이 왕실과 나눈 조약을 어겼다는 것이다!"

"또 말장난을 하시는군요."

공작과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왕실과 나눈 조약이 아니라!

페페와 마노 가문과 나눈 조약에

왕실이 보증했을 뿐입니다!

즉! 조약의 주체는 왕실이 아니라!

믿었던 가신 가문에게 배신당한 라이거 가문과!

주군을 배신한 두 가문이란 말입니다!

하.. 됐습니다..

좋습니다. 중요한 것이 조약이라고 했으니 이것을 보시죠."

나는 품에서 몇백 년 전 세 가문이 작성한 조약 서류와

라이거 가문과 페페 가문이 작성한 조약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조약을 우리가 먼저 어겼다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어긴 적 없으며!

어긴 것은 페페 가문입니다!

먼저 조약 당시 엉망이 되어버린

라이거 영지의 재건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

고작 굶주린 영지민들에게 일주일 치 식량을 지급한 것과

반파된 영주성을 보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것도 지원이라면 지원이니 넘어가죠.

제가 조약을 어겼다고 한 것은 두 가문 사이의 조약입니다.

페페 가문은 조약에 따라 몬스터 토벌에 참여했어야 함에도

이를 어기고 몬스터를 막고 죽여야 할 병사들을 이끌고

영지의 경계를 넘었습니다."

공작이 내 말에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죠.

세 가문이 작성한 조약을 다시 따져보면

페페 가문은 라이거 영지의 재건을 위해

융통한다고 했습니다.

네! 물론 끊임없이 융통했죠!

말도 안 되는 이자와 엄청난 간섭과 함께!

라이거 영지의 경제를 살리겠다고

페페 가문의 상단과 자금이 들어오더니

기존 상단은 물론, 상업 길드 지부까지 쫓아내고

독점을 하더군요. 설마.. 공작이신 분께서

독점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시겠죠.

영지민들의 삶이 나아졌으면 이런 말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나아지기는커녕 고작 호리페가 놀라서 울었다는 이유로

천민 천여 명에게 살 곳을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꼬셔 학살했습니다.

네! 좋습니다!

상권의 독점과 천민 학살!

공작님께서는 상관없는 영지의 일이고

고작 천민 천 명이 죽은 일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죠.

네! 그게 귀족이니까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다시 품속으로 손을 넣어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무엇인가?"

"오러블랙입니다."

"뭐?!"

병의 정체를 듣고 놀란 것은 공작이 아닌 제라드 왕이었다.

"페페 자작이 아버지의 친우이자

가문의 집사장이었던 케인에게 전달하고

수년에 걸쳐 아버지께서 드셨던 독이지요."

"오러블랙은 모든 국가에서 금지하는 독이다!"

"전하께서는 이 독이 과연

페페 가문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공작이 끼어들 것이란 예상이 적중했다.

순간 모든 것을 밝혀버릴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작은 병 하나가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왕실과 테슬린 가문 사이에 불신의 씨앗을 하나 더

던져 줄 것 같아 입을 닫았다.

"아! 그렇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죠.

다시 돌아와 페페 자작은 라이거 가문의 가주이자

`네 기둥` 가문의 가주인 아버지에게 독을 먹인 겁니다.

이는 조약을 지키고 어기고의 문제를 넘어..

아니 우리가 수백 수천..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페페 가문을 벌해도

왕실은 물론! 어느 귀족도 할 말이 없는 일입니다."

제라드 왕은 반박의 말을 잃은 듯 눈을 감았지만,

공작은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든 것이 너의 말일 뿐이다!

이 병에 든 것이 오러블랙이라는 증거도 없고!

페페 자작이 사주해 먹였다는 증거도 없다!

또한, 그대의 말장난으로 논점에서 벗어났으나!

이유야 어찌 되었든!

라이거 가문이 병사 5천을 양성했다는 것은

왕실의 보증한 조약을 어겼다는 것이다!

나와 전하께서는 그딴 말장난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라!

조약! 조약을 어긴 것을 벌하려 한 것이다!"

역시나 공작은 증거 운운하며 말꼬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던진 미끼일 뿐이었다.

원인과 이유, 과정이 어떻든 조약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공작의 치졸함에 터져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조약! 그 조약을 끝까지 하하하"

나는 웃음을 멈추고 표정을 바로 했다.

"그럼 조약을 어겼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뭐..?"

"우리가 5천 명의 병사를 양성했다는

증거가 있냐는 말입니다."

"5천의 병사가 페페 영지의 경계에 주둔한 것을 확인했다!"

"그 병사들이 양성된 병사들인지 아니면..

쳐들어오는 페페 군을 막기 위해 가문에서 모집하고

스스로 병사가 된 모집병인지 어떻게 아십니까?"

"병사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3만의 병사를 상대하러 가는데 맨몸으로 갑니까?

아니, 그전에..

3만의 병사가 쳐들어오는 데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그럼 몬스터 토벌을 위해

영지민을 징집한 지 몇백 년이 흘렀는데..

그때는 조약이니 뭐니 하며 왜 문제 삼지 않았습니까?

한번 배신했던 가문이 다시 3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네 기둥` 가문을 향해 오는데 같은 `네 기둥` 가문인

왕실과 테실린 공작 가문은 뭘 했습니까?

두 분의 예상대로 라이거 영지가

페페 가문에게 넘어가야 했습니까?

그것이 싫어 병사를 모집했습니다.

징집이 아니라 모집을요!

스스로 참여한 병사 하나가 그러더군요.

페페 가문이 라이거 영지에서 사라지니

이제야 사람 사라는 곳 같다고!

다시 페페 가문이 들어오는 것을 넘어 페페 영지가 되면

자신도 가족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보여

그것을 막고자 지원했다고요.

양성된 병사가 아닌! 스스로 살고자 지원한 병사입니다.

그 하찮은 조약! 어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조약을 거였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란 말입니다!"

이미 5천의 병사들은 이런 일을 대비해

잠시 일상으로 돌려보낸 상태였다.

마법 계약서까지 작성한 상태라 말을 하지 않겠지만

마법 계약서 없이도 병사가 되어

자신과 가족의 삶이 윤택해졌고,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깊어져 말하지 않을 이들이었다.

이제 공작이 따지고 넘어갈 것은

오러블랙을 발견 즉시 보고하지 않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오러블랙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일이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공작은

완전히 입을 닫았다.

대신 입을 연 것은 제라드 왕이었다.

"후.. 이거 우리가 당했군 공작."

"흠.."

"좋아.. 좋아..

라이거 가문에서 페페 영지를 차지한 것을 허락하지.

축하하네. 암. 그렇지.

`네 기둥` 가문이 영지를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진작에 다시 찾았을 영지야.. 그렇고 말고..

그런데 말이지..

허가되지 않은 영지전이라는 것은 자네도 인정하지?"

"허가되지 않은 영지전입니다."

"그래. 이렇게 바로 인정하니 좋군.

그럼 당연히 귀족이 귀족을 벌할 수 있는 경우도

똑똑한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다음에 나올 말이 예상이 가

속으로 거만하게 말하는 제라드 왕을 향해 웃어주었다.

"하급 귀족의 상급 귀족에 대한 모독,

공식 영지전 둘 뿐이죠.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왕국법의 심판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공작.

이렇게 똑똑하니 우리가 당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자네가 왜 그랬을까?

페페 자작을 죽이고 페페의 핏줄을 죽이다니.. 쯧쯧..

이건 자네를 법무부에 넘겨야 할 문제란 말이지.."

"너무 큰 것만 보시고 달콤한 생각에 빠져

작은 것을 놓친 건 아니십니까?"

"허허 그럴 리가"

"그것이 아니라면 왕실 정보부가 일하지 않은 것이군요.

페페 자작은 제가 죽인 것이 아니라

호리페 라이거가 죽인 겁니다."

"뭐라?!"

"뭐 제가 워낙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니 제가 죽였고..

페페의 핏줄까지 죽였을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당연하죠."

왕과 공작에게 페페 자작이 죽기 전 나에게 한 말과

어떻게 호리페의 손에 죽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정보부 사람 한 명만 보내보시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광경을 3만이나 되는 사람이 보았으니까요.

법무부에 넘길 사람이 제가 아니라 호리페 군요.

흠.. 데려가는건 왕국법이니 어쩔 수 없는데..

지금 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뭐 그건 제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군요.

그리고 페페의 성을 가진 자들..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품에서 꺼낸 서류가 아닌

아공간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제라드 왕에게 건넸다.

아모스가 페페 영지를 라이거 가문에 넘기고

자신은 남부를 떠나 서부로 간다는 내용에

페페 가문의 인장까지 찍힌 종이었다.

"아모스가 라이거 영지를 떠나 서부로 향했다는 것도

이번에는 동선이 조금 있으니

정보원 몇 명만 보내 확인하면 될 겁니다.

아! 아모스가 부인과 딸을 두고 떠났네요.

그 둘은 우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이자벨 부인이 남군요.

이자벨 부인은 라이거 영주성에서

예전처럼 화려한 방은 아니지만 나름 깔끔한 방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있습니다.

집사와 시녀까지 그녀를 돌보고 있죠.

아! 페페의 성을 가지게 된 자가 또 있었군요.

라이거 가문의 셋째였던 아이젝이

자작이 죽기 전 페페의 성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음.. 죽은 자작 말고는 다 살아 있네요."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제 이름, 제 가문, `네 기둥` 가문의 명예까지

주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됩니까?"

"끄응.."

`네 기둥`의 명예까지 나오자 진실이라 믿었던

제라드 왕과 달리, 그의 아들 제이슨은

신관을 데려와 확실하게 증명해야 한다며 소리쳤다.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공작의 말에

힘은 얻은 제이슨이 직접 신관을 데리고 왔다.

"맹세하고 거짓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럼 오늘 일을 왕국에 소문낼까요?

라이거 가문의 모욕과 금지된 독까지

왕국을 넘어 대륙에 전해 질 텐데 괜찮겠습니까?"

조금씩 넘어오던 주도권이 완전히 나에게 넘어와 있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것을 인정.

이것 하나면 됩니다."

"좋다.."

주신 포르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맹세에 큰 힘을 가지지만, 나는 이에 더해

뫼비우스 고리를 회전시켜 마력을 뿜었다.

"나 카온 라이거가 주신 포르테님의 이름과

주신의 힘 앞에서 맹세한다."

조약부터 시작해 페페 가문의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까지 거짓이 없다는 맹세가 끝났다.

"전하.. 카온 라이거님의 말씀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하.."

신관은 조금의 거짓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성된 병사 5천을 페페 영지 경계에 주둔시켰다.` 가 아닌

`병사 5천을 페페 영지 경계에 주둔시켰다.`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맹세 직전에 `민심`이 생각에 박힌 제라드 왕과

`금지된 독`이 생각에 박힌 공작은 맹세 속에 중요한 단어가

빠져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신관을 데려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이슨은

이것을 눈치채고 따질만한 똑똑한 인물이 아니었다.

"잠깐! 네 옷에 박힌 가문의 문장이.."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라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검과 방패를 물고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던 머리는

날카로운 부리를 벌리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날개를 접었던 몸은 네 개의 기둥 위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칠흑 기사단의 문양에서 네 기둥만 추가된

라이거 가문의 새로운 문장을

인제야 공작이 발견한 것이었다.

"천 년 동안 날개를 접고 있으니

우리를 닭이라 생각하는 벌레들이 있어서요..

그 벌레들을 그냥 둔다면 전하의 말씀처럼

`네 기둥` 가문이 아니죠. 천 년 동안 굶주렸으니

이제 그 벌레를 잡아먹고 배를 채워보려고 합니다."

제라드 왕뿐만 아니라 테슬린 공작도 벌떡 일어났다.

"큰 것을 먼저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으니

작은 것부터 먹으려고 하는데..

일어서신 김에 두 분의 의견을 여쭙고 싶네요."

"너의 그말.. 두렵지 않은 것이냐?"

벌컥!

공작의 질문에 답을 주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자작!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이요!"

"죄..죄송합니다! 한시가 급한일이라.."

"하.. 말해 보시오."

"지금 동부와 북부에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뭐라? 죽어 나가?"

"네. 보고에 따르면 몸에 열이 오르고

이틀이 지나면 온몸에 붉은 점이 생긴다고 합니다.

열과 가려움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고 이틀이 지나면

붉은 점이 생긴 곳부터 살이 썩어나가고..

이틀 만에.. 죽는다고.."

"역병이란 말이냐? 왜 이제 보고가 들어왔단 말이냐!?"

"그..그것이.. 처음 병을 앓고 죽은 자들이 천민이라..

영주들이 신경 쓰지 않다가

평민들에게까지 번지고 나서야 심각하고 여기고.."

내무부 소속 사람이 듯한 남자의 보고에

왕과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작님. 두렵지 않냐고 물어보셨죠.

흔히 가진 것이 많은 것만큼

잃을까 하는 두려움도 크진다고하죠.

백작의 후계자라는 자리, 넓어진 영지, 많이진 영지민..

이제는 가진 것이 많은 저입니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지켜야 하는 것도 많다는 겁니다.

갑자기 지킬 것이 많아져서 그런지 두렵다는 생각보다

반드시 지킨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역병.. 저도 제가 지켜야 하는 영지민들이 걱정되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나가려는 나를 막는 이는 없었다.

역병이 발생했다는 지역 중 동부는

테슬린 가문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고,

북부는 백작이상의 대 귀족은 없지만 대부분

국왕파 귀족들이 다스리는 영지들이 있는 곳이었다.

나의 발길을 막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막을 정신이 없지 않았나 싶었다.

왕성 관문을 향해 걸으며 아버지께 통신을 넣었다.

- 카온이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왕과 공작을 마주했을 때에도 나지 않던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하하 네. 어머니."

- 괜찮은 거니?

"괜찮습니다. 더이상 페페 가문의 일은 거론되지 않을 겁니다.

- 페페고 뭐고 뭐고 너만 괜찮으면 됐다.. 됐어.. 다행이야..

- 부인. 부인께서 카온을 믿으라 했으면서..

- 그것과 이건 달라요!

- 크흠..

통신구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러웠던 기분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 동부와 북부에 역병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 뭐? 역병?

"아샤나 페트로에게 연락 온건 없습니까?"

- 없었다. 이럴 시간이 없구나.

당장 알아봐야겠으니 끊겠다.

툭 하고 끊겨버린 통신구.

"하여간 영지민 생각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다시 통신구에 마력을 주입해 페트로에게 연락했다.

- 네! 주군.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릴 참이었습니다.

"역병?"

- 네! 금방 들어온 정보입니다.

주군께서도 소식을 들으신 것 같네요.

"응. 꽤 급했던지 제라드 전하가 있는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 보고 하더라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남부는 어때?"

- 역병이 남부와 북부의 경계에서 시작된 듯합니다.

지금은 남부와 북부의 중앙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아직 남부까지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페트로 지금 당장 몬스터 숲으로 향할.."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샤에게 통신해서 영지민들 청결에 신경 쓰라고 해.

나머지는 다시 통신할게."

- 주군? 아! 네!"

눈치가 빠른 페트로가 먼저 통신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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