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16화 (116/201)

〈 116화 〉 참 좋은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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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참 좋은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무릎을 꿇기는커녕 어떤 예도 올리지 않는 나를 보고

카이젠 제국 황제와 황후보다

더 놀라는 것은 제라드 일라인 왕이었다.

"카온 라이거! 어서 예를 올리지 않고 뭐하는 짓인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어서 예를 올리라며 눈치를 주는

제라드 왕을 무시하고 황제를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흠.. 다들 일어나시오."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 제국의 귀족들부터 시작해

초대받은 이들도 일어났다.

초대받은 이들은 황제를 바라보고 있어서

그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양옆의 제국 귀족들은

나를 향해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폐하. 라이거 왕국을 대표해

카온 라이거의 잘못을 대신 사죄드립니다."

제라드 왕이 한발 앞으로 나와

뜻을 전하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죄.. 사죄라.. 짐은 사죄보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짐이 용서를 할지..

왕국을 벌할지 정할 수 있을 테니."

"아직 작위를 완전히 가지지 못한 후계자일 뿐입니다.

한동안 움츠려있던 라이거 가문이 성장한 것은

왕국에 큰 복이 오나 아직 가문의 내.."

"일라인 국왕께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황제가 제라드 왕의 말을 자르고 나를 바라봤다.

자신의 말이 잘렸음에도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제라드 왕을 보니

그가 나섰던 이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님은 확실했다.

"일라인 왕국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카이젠 제국에서

먼저 예의를 다하지 않았기에

그것이 제국의 법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국의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초대받은 이들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뭐라?!"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명백한 제국에 대한 무시.

내가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리지 않았을 때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황제가 소리쳤다.

"폐하의 초청장을 받고 세 개의 국가와

신성국의 성자까지 제국을 찾았습니다.

왕국이든 신성국이든, 제국이든

각국의 사정에 맞게 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국의 법에 `예`라는 것이 지워지지 않았다면

황제께서 또는 황태자나 그에 준하는 왕자가

나와서 직접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으며

이후에는 각국의 건국 순서는 따지지 않더라도

도착한 순서대로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황제를 바라보던 시선을 양쪽에서

나를 노려보던 제국 귀족들 쪽으로 돌렸다.

"감히 왕족들을 품평하듯 바라보던 귀족들과의 인사는

저녁 만찬 이후에 폐하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개별로 했어야 했습니다."

다시 황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라인 왕국, 포이든 왕국, 피오네 왕국..

물론 신성국까지.. 이 모든 국가가

제국령의 왕국이나 속국, 공국이 아니며

심지어는 동맹국도 아닙니다.

그런데 양쪽에 제국의 귀족들이

거만하게 각국의 왕들을 내려다보고,

폐하께서 먼저와 계시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들어온 것도 아닌 꽤 늦게 들어오셨지요.

마치. 속국 왕들의 알연을 받는 정복 황제처럼요."

제라드 왕은 물론 다른 두 왕의 표정이 볼만했다.

제국은 처음부터 모든 국가를 무시하고 있었던 거였다.

진정한 초청이었고 생각이 올바른 황제였다면

황제가 직접 나오지 못하면

적어도 맞이하는 인물로 황태자를,

아직 황태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가장 황태자 자리에 가까운 황자를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백작을 보냈다는 것은 다른 왕국의 왕을

고작 백작 이상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았다.

그런 점을 잊고 내가 무시당했다는 것만으로 좋아하고,

피오네 왕이 기다린다는 말에 쪼르르 달려간

제라드 왕을 보고 한심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나만 노려보는 일라인 왕과 달리

두 왕은 헛기침하는 것을 보니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럽기는 한 것 같았다.

"먼저 제국이 제국다운 예를 갖추지 않았고,

제국이라 할지라도 카이젠 가문과 일라인 가문,

라이거 가문의 역사가 비슷한데

그에 따른 예의도 없었으며,

온갖 잡다한 핏줄이 섞이고

라이거 가문이 성인이 되었었을 때

고작 핏덩이에 불과했던 가문들이

주제도 모르고 쳐다보고 있는데

제가 무슨 예를 갖추겠습니까?"

제국 귀족들 사이에서 `감히 왕국의 귀족 따위가`

`감히 왕국의 어린놈이` 라는 말이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제라드 국왕.

라어거 가문의 후계자가 한 말이

일라인 왕국의 말이라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언제 소리쳤느냐 듯

이제는 재밌다는 표정의 황제가 물었다.

"아닙니다! 시대와 대륙을 읽지 못한

한 명의 어리석은 발언일 뿐입니다.

일라인 왕국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허나.. 짐은 제국을 능멸하고

제국을 이끌어가는 귀족들을 무시한 이를

용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실의 기사들이 나에게 다가오려 했으나

황제가 손을 들어 이를 말렸다.

"또한.. 후계자의 말이니

그 가문 또한 책임을 져야 하겠죠."

일라인의 두 왕비와 테슬린 공작,

그리고 두 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라드 왕과 달리 적어도 이 세 명은

라이거 가문과 영지에 대한

제국의 관섭을 바라지 않았다.

일그러진 그들의 표정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황제.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두 왕비의 파티와 포이든 왕국 왕세자의 생일 연회와

같은 날짜가 찍힌 초청장.

이것이 황제가 계획한 `유흥`의 시작이었다.

황제는 초대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반발해 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백작을 보내 맞이하게 한 것,

일행 중 누군가를 무시하게 한 것,

한 왕국의 왕으로서의 대우가 아닌

속국처럼 대우했던 것.

지금 누군가가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있을 연회나 어떤 형식으로든 가졌을 회의에서

분명 한 명만 걸려야 하는 식으로

초대받은 이들의 속을 긁었을 것이다.

황제가 자신들의 속을 먼저 긁었음에도

그가 기분 상해하면 목적이 있고,

제국과 척을 지고 싶지 않은 이들은

황제의 화를 풀어 주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황제는 자신의 계획에

놀아나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고,

자신이 던진 낚싯줄에 일라인 왕이나 왕족이 걸린다면

이를 핑계로 일라인 왕국 땅따먹기에 참여할 수 있다.

진짜 참여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 라는 의지만 보여도

다른 이들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래성을 허물고

다시 쌓아야 하는 상황이니

그것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던진 낚싯줄에 황제는 상관없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내가 걸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낚싯줄에 걸려

파닥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황제의 이 지랄 같은 유흥은 물론

다른 이들이 쌓은 모래성까지

한꺼번에 허물어버릴 계획이다.

"여전히 황제께서는 라이거 가문을 무시하시는군요."

자기가 그리던 그림에 누군가 간섭하면 싫은 법.

황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제국을 능멸하고 제국 귀족을 무시한다 하셨습니까?

그럼 제가 그러기 이전에 제국은

라이거 가문을 능멸하고

가문의 후계자를 무시한 것이겠군요.

일라인 왕국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라이거 가문을,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를 지닌

라이거 가문의 후계자를 말입니다."

황제가 고개를 푹 숙였고 이내 어깨가 들썩였다.

"크크크크 푸하하하 하하하"

잠시 뒤 대전에 황제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뚝.

황제의 웃음이 끊김과 동시에 찾아온 적막.

"아.. 이러면 재미없는데..

이러면 펜이 아니라.. 검을 들고 싶어지는데..

대공."

"예. 폐하."

"저 무궁한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거 영지가 어디 구석에 있지?"

"일라인 왕국 남부 몬스터 숲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가야 하지?"

"가는 길에 일라인 왕국 북부와 중앙 있습니다.

일라인 왕국 북부와 중앙을 관리하는 일라인 왕실이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폐하께서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찾으러 가는 길이 달라지겠지요."

당연하게도 제국과 황제는

일라인 왕국의 분열을 알고 있었다.

"일라인 왕실의 선택에 따라?

그건 좀 마음에 안 드는데?"

"같은 왕국의 영지라고 폐하의 길을 막는 선택,

폐하의 장난감에 눈독 들이지 않고

폐하께서 쉽게 가질 수 있게 길을 내어 주는 선택,

어쩌면 그들이 장난감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고요.

선택은 일라인 왕실이 하는 거지만

그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하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그렇군. 대공 덕분에 다시 재밌어지기 시작했어."

"모든 것이 폐하의 뜻대로."

다시 주도권을 가져가는 황제를 보니

제국이라는 것을 떠나서 이 자리에 있는 지배자 중

가장 지배자의 피가 짙게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주도권을 빼앗긴 채 끝내는 것에 만족할 수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마음에 드는 눈빛을 보이는

두 사람이 보였다.

피오네 왕

그는 함께 온 일행 누군가에게

탐욕으로 물든 눈빛과 함께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 귀족 중 누군가.

초대받은 자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좋지 않았지만

분쟁의 분위기가 형성된 이후

황제를 바라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귀족이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 짧은 순간이

나에게 주도권이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제국 귀족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한쪽 눈썹이 올라간 황제의 시선이

피오네 왕 쪽으로 돌아가는 내 시선을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피오네 왕은 대 놓고 적의를 내비쳤지만

피오네 왕의 눈빛을 보지 못한 황제는 드

러난 적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도 피오네 왕도 마음껏 오해 하라고

눈이 마주친 피오네 왕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런 내 모습을 황제만 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황제를 향해 살짝 웃어주니 그는 내가 아닌

제국의 귀족과 피오네 왕을 한 번씩 노려봤고,

고개를 돌려 제라드 왕을 보며 씩 웃어주니

그 또한 내가 아닌, 피오네 왕에게

답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테슬린 공작이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깊어졌지만

함께 있던 포이든 왕의 시선은

내가 아닌 피오네 왕에게 가 있었다.

표정에 완전히 금이 간 황제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황후,

초대받은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온갖 눈빛들과

이를 보며 웅성거리는 제국 귀족들.

황제의 연회가 시작도 하기 전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아아아.. 대공."

황제의 입이 열리는 순간 다시 대전이 조용해졌다.

"네. 폐하."

"이 소설.. 재미없다."

"새로운 종이와 펜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아!

대공. 내가 지금부터 아플 예정이야."

"손님들 배웅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황후. 갑시다. 황후의 그늘이 필요합니다."

"네? 네.. 폐하.."

오만하고 예의 없는 황제가 앞장서고

황후가 뒤따라 나가자 제국 귀족들도

하나둘 대전을 떠나기 시작했다.

오만하고 예의 없는 것은 제국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전에 남은 것은 이제 와서 황실과 제국의 횡포에

어이없어하는 초대 받은 이들.

당연하게도 이 모든 원망의 화살은 나에게 향했다.

"각자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것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저를 노려보시면

제가 겁이라도 먹을 것 같습니까?"

황제의 유흥은 제대로 시작도 되기 전에 끝이 났고,

세 왕국의 왕들 사이에는 불신과 오해가 생겼다.

황제는 `아플 예정`이라는 핑계로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한 `소설`의 펜대를 놓았으며,

세 명의 왕들은 오해와 새로운 계획,

욕심을 숨기기 위해 나를 목표로 삼았다.

들어가 버린 황제는 어쩔 수 없지만 세 발 화살,

아니 테슬린 공작의 화살까지 총 네 발의 화살은

그대로 돌려줄 필요가 있었다.

"피오네 국왕께서는 참 좋은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기..회?"

"이미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것 빼고 다 아는 사이인데

그렇게까지 숨기실 필요가 있습니까?

사고는 제가 쳤지만, 저희 제라드 전하께서는

같은 `네 기둥` 가문인 라이거 가문과 영지가

제국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겠지요.

그럼 제국과 일라인 왕국이 큰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제국을 꿈꾸는 피오네 왕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실 것 압니다.

제국과 일라인 왕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전쟁통보다

일라인 왕국으로 병력이 집중된 제국의 영토를

노리는 것이 훨씬 쉬울 테니까요."

"내 왕국을 생각하기 전에

그대의 목숨을 걱정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긍정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모르는 것 빼고 다 안다는 것에서

제라드왕의 오해가,

제국이 되기 위해 카이젠 제국의 영토를 노린다는 것에서

포이든 왕국의 견제가 생겼을 것이다.

나는 제라드 왕에게 더 큰 오해를 심어주고

그를 더 벼랑으로 몰기 위해

이번에는 포이든 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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