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어둠이 신성국에 단 하루를 더 주었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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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어둠이 신성국에 단 하루를 더 주었군.
교황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성자가 돌아온 모양이군. 쳇!"
백 년 만에 나타난
성자급 신성력을 가진 소년이 신성국에 나타났다.
전 교황을 8번째 아들로 태어난 지금의 교황은
다른 왕국 같았으면 왕권과 먼 위치였지만
가장 신성력을 지닌 자가
다음 교황이 된다는 신성국의 법에 따라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교황에 올랐다.
총 14명의 형제, 자매 중 지금의 교황이
신성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신성력이 남달랐던 11번째 아들은
두 번째 생일이 오기도 전에 온몸이 검게 변하며 죽었다.
어려도 너무 어린아이가 죽자
교황을 핏줄을 타고나 신성력만 지녔을 뿐
힘도 세력도 없던 다른 자식들은 모두
교황권을 포기하고 각 지방 또는 다른 왕국으로 떠났다.
남은 것은 11번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한 번도 자신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았을 둘째 아들과,
11번째 아들의 죽음을 둘째 아들이 소행이라
생각하고 있던 세력과 떠난 아들, 딸들의 세력을 규합해
둘째 아들보다 신성력은 부족하지만,
세력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던 지금의 교황,
마지막으로 교황이든 권력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신성국을 넘어 대륙을 돌아다니며
구제 활동과 선교 활동을 하던 첫째 딸만 남았다.
당시 교황은 자신의 딸이 대륙을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통해 신성국의 영향력과
주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 자신과 신성국을
존경하게 한 것에 만족했지만,
두 아들은 아니었다.
이미 손에 피를 묻히고 권력 싸움을 하는 자신들과 달리,
점점 민심을 얻어가는 그녀와 공식 발표가 없어
함부로 `성녀`라 부르지 못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속에 황제 다음의 권력인 성녀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륙을 돌아다니며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보고
더 많은 백성을,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신성력을 지닌 이들이 필요하고,
그들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 느껴 교황권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는
어느 날 한 상단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었다.
당시의 교황도, 남은 두 아들도,
교주와 교황청을 이끌어가는 신관들도,
심지어는 신성국의 백성들도 그녀의 죽음에
누가 관련되어있는지 짐작했다.
각자 다른 어머니를 둔 자식들을 자신의 치세와
신성국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교황은
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죽는 순간 이용 가치가 떨어진 도구.
딱 거기까지였다.
교주와 신관들도 의심이 갈 뿐 물증이 없었다.
그리고 두 아들 중 하나가 다음 교황이 될 것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입을 닫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니었다.
많은 교황의 자식 중 유일하게 자신들을 보듬어주던
그녀의 죽음을 숨죽여 통곡했다.
마음속으로만 부르던 성녀의 죽음.
신성국의 민심이 교황청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전 교황이 세상을 떠나자
교황청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먼저 일어선 것 사람은 8번째 아들인
지금의 교황이었다.
뒤늦게 둘째 아들도 검을 들고 신성력을 뿜었지만
이미 자신의 세력으로 교황청을 장악한 동생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성기사들과 성기사들을 전투,
그리고 살아남은 성기사들과 둘째 아들의 전투.
마지막으로 신성력 고갈로
무릎을 꿇은 형의 목에 검을 꽂아 넣은 동생.
수많은 이들이 죽고 피가 가득한 교황청 안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의 피만 묻은 8번째 아들이
교황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런 권력과 피에 물든 교황이
성자급의 신성력을 가진 존재가 반가울 리 없었다.
성자급 신성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상황.
교황은 그 소년을 타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교황청으로 초대해 소년을 성자라 부르며
자신을 철저하게 낮췄다.
성자만의 신전을 지어주고 돈과 보석, 술을 넣어주었다.
성자의 신성력을 품은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는 말로
귀족급 신관들의 딸을 현혹해 성자에게 접근하게 했다.
신성력이 곧 힘이요 권력인 신성국인 만큼
성자의 신전에는 자신의 딸을
소개하기 위해 찾아온 신관들과
온갖 향수로 치장된 여인들이 넘쳐났다.
써도 써도 줄지 않은 금화와
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빛난 보석,
신성력이 발현하기 전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과 술,
아름다운 여인들과 그녀들의 향기로움에
성자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신전에서
몇 년간 교육과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사치와 탐욕을 즐기던 성자에게 교황은 제안했다.
성자 노릇을 조금만 해주면
지금까지 누리던 것을 더 늘려 주겠다.
사치와 탐욕은 성자의 권리요,
권력과 교황의 자리는
골치 아픈 책임이 따르는 것으로 인식이 박힌 성자는
교황의 제안에 응하고 그의 손을 잡았다.
자신이 성자 노릇을 시켜 놓고
백성들 사이에서 성자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싫었던 교황은
성자의 신전에서 느껴지는 성자의 기운에 혀를 찼다.
- 교황님! 큰일 났습니다!
문밖에서 들리는 외침에 교황의 미간이 좁아졌다.
성자가 돌아오고 누군가가 큰일이 났음을
보고가 아닌 외침으로 알렸다.
"아.. 그 새끼 먹이고 입히는 것보다
사고 처리하는 비용이 더 드네.."
"교황님 저는 나가 있을까요?"
"괜찮다. 술이 생각나게 하는 보고일 테니
누군가는 술을 따라줘야 하지 않겠나.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성자 밑에 있던 성기사였다.
"뭔가? 이번에는 또 얼마나
버러지들에게 보상해야 하지?"
성자는 몰랐지만,
그가 사고를 치거나 누군가를 강제를 품을 때마다
지금의 성기사가 교황에서 보고했고,
교황은 피해자들이 입도 뻥긋 못할 정도의 보상을 해
입을 막았었다.
"보상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성기사는 제국에서 성자와 리아의 만남부터
성자는 물론 카온과 리아가
신성국을 찾아온 일까지 순서대로 알렸다.
"푸하하하 성자와 제국 교주의 그곳을 날렸어? 하하하
이제 그놈 아랫도리 때문에
내 돈이 나갈 일은 없겠네. 하하하.
라이거 가문은 알지 알아!
일라인 왕국의 날지 못하는 독수리 아닌가? 하하"
시야가 좁아진 교황.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교황.
대륙의 상황보다는 돈과 여자, 술에 관심이 많았던 교황.
구제와 선교 활동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권리를 누리는 것을 좋아했던 교황은
라이거 가문의 독수리가
날개를 펼쳤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카온이라.. 그 놈이 라이거 가문의 아들인가 보군.
성자가 욕심냈던 여자가 카온의 부인이라도 돼?
아님.. 약혼자? 그것도 아니면
그냥 뜨거운 관계인가? 하하하"
그리고 카온으로 인해 라이거 가문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모르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녀는 카온의 기사이며
카온이 운영하는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합니다."
"푸하하하하. 기사? 단장? 하하하 여자가?
꼴에 자신의 기사를 건드렸으니 사과를 해라?"
"성자님의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성기사들은 다 방에서 쫓겨나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는지는 모릅니다.
제가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달려온 이유는..
카온의 기사라는 년의 경지는
아직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이트 이상이라는 것과
카온은 성자와 주교를 무력으로 제압할 만큼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리아의 손에 죽은 성기사들의 시체를
처리하러 온 성기사였기에,
성자의 신전에서 누구도 카온의 앞을 막지 못했던 기운이
당연히 카온 것으로 생각했기에
성기사는 이런 보고를 할 수 있었다.
이제야 표정을 굳힌 교황이었다.
성자와 주교의 그곳을 터졌다는 것에만
즐거워하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교의 신성력은 오러 사용자로 따지면 익스퍼트급.
성자의 신성력은 타고난 것만으로도
익스퍼트급 이상이었다.
아무리 기습을 한다고 해도 쉽게 당할 이들이 아니며,
기습에 당했어도 신성력으로 재생시키면 그만일뿐더러
기습한 이들을 죽이고도 남을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둘이 당했다.
이것이 전부 사실이라면 카온의 경지가
그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이들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의 목에 검을 찔러넣고
교황의 자리에 오른 경험이 있었다.
어르고 달래도 안되면 최후에는
검을 서로 나누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일라인 왕실은 라이거 가문을 싫어한다.
라이거 가문은 힘이 없다.
힘이 없는 라이거 가문에서 실력자가 나왔다.
고작 한 명.
일라인 왕실이 싫어하는
라이거 가문의 실력자를 제거하면
라이거 가문의 반발은 왕실이 처리할 것이고
댓가까지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은 성기사에게 물었다.
"카온이 몇 명이나 데리고 게이트를 넘었지?"
"카온과 여기사 한 명. 둘 뿐입니다."
고작 한 명이 고작 한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교황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그 한 명을 지키는 기사가 실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고작 한 명이고 심지어 여자다.
그냥 여자가 아니다. 무려 성자가 탐을 냈던 여자다.
병신같은 성자는 싸구려 술도
고급술이라 말하면 온갖 찬양을 하며 마시지만
여자만큼은 이것저것 다 따지는 놈이었다.
미소가 짙어진 교황은
종을 울려 집사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붉은 기사단과 푸른 기사단의 단장을 불러."
잠시 뒤 도착한 두 기사 단장.
교황청에 존재하는 세 개의 성기사단.
오로지 교황만 호위하는 흰 기사단.
적을 상대하는 붉은 기사단.
신성국을 수호하는 푸른 기사단.
교황은 붉은 망토와 푸른 망토를 두른
두 성기사단의 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성자의 신전에 신을 모욕하고
신의 아들인 성자의 몸에 해를 가한
무지하고 어리석은 신의 종이 있다.
당연히 그 댓가는 목숨이어야 할 것이다.
내일 해가 밝는 대로 어리석은 신의 종의 목을 가져오고
그를 따르는 기사는 산채로 끌로 와라."
""신의 손에 입맞춤을!""
*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한 신성국 성도의 모습을
성자의 신전, 성자의 방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편한 복장이 아닌 칠흑 기사단의 검은 갑옷과
단장의 상징인 붉은 망토를 한 리아가 들어왔다.
"헉!"
엄청난 존재감에 숨을 들이켠 라마즐라 신관.
"주군. 전원 도착해 신전 수색을 명했습니다."
"고생했다."
리아가 오기 전 라이거 영지로 가는 것으로
합의를 본 알레나가 붉어진 얼굴로
멍하게 리아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알레나?"
넋을 놓은 알레나는 부름에 반응이 없었다.
"알레나?"
조금 소리 높이 부르자 멍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네!"
"하하하 리아를 왜 그렇게 봐?"
"너무.. 멋있어서요.."
"누구는 기겁하고 덜덜 떨고 있는데
너는 리아를 멋있다며 바라보는구나.
지금 나의 기사들이 이곳을 수색하고 있다.
어쩌면 너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을 찾을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떠난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보면
겁을 먹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단다."
"제가! 제가 할게요!"
"용감하고 정의롭구나. 그래 주겠니?"
"네!"
"그럼. 리아와 함께 다녀오렴."
다시 몽롱하게 리아를 바라보던 알레나가
리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리아가 알레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리아와 함께 나가는 알레나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리아가 나갔음에도 덜덜 떨고 있는 라마즐라를 무시하고
화려한 불빛들이 점점 어둠을 밝혀주는 교황청이 아닌,
어둠 속으로 같이 들어가는 성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신성국에 단 하루를 더 주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