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그대가 모시는 신도 인간 교황이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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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대가 모시는 신도 인간 교황이군.
리아가 성기사단을 향해 달려갔다.
리아의 단독 행동에 순간 당황했던 성기사 한 명이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내렸다.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
자신을 붉은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소개한
성기사 옆에 있던 푸른 망토를 걸친 기사가 외치자
붉은 망토, 푸른 망토 할 것 없이
모두 검에 신성력을 씌웠다.
그가 선택한 것은 `죽여라`가 아니라 `생포하라`였다.
기사들 간 생사가 걸린 싸움에서 죽이는 것보다
승리하고 사로잡는 것이 훨씬 어렵다.
신성국 뿐만 아니라 제국은 물론
모든 왕국에서 무시하거나
고작 호위 기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여기사.
그런 여기사가 검에 오러도 씌우지 않고 달려들고 있다.
아직 미숙한 기사들이나
서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기사들은
혼자인 여기사가 신성력을 씌운 검을 들고 있는
백여 명을 향해 달려오는 상황이라면 가소로운 마음에
후배나 병사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단장 정도의 직함을 가진 자라면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적어도 리아가 누군가와 검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저딴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리아가 몇 발 앞서 검을 들고
전투 준비하던 두 성기사를 그대로 지나쳤다.
붉은 기사단의 단장과
명령을 내렸던 푸른 망토의 성기사는
자신들을 지나 단원들을 향해 뛰어가는
리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경악했다.
찰나의 순간에 새하얀 오러가 씌워진 리아의 검.
세상의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 같은 기운.
리아가 검을 한번 휘두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새하얀 오러의 검이 기사의 목을 베었다.
당연히 솟구치고 품어져 나와야 피 대신
머리가 잘려나간 목 부위가 순식간에 얼어 버렸다.
세상을 더럽히는 것을 벌하겠다는 듯
새하얀 오러가 다른 기사의 목을 베었고,
기사가 품었던 피가 독이라도 되는 마냥
잔인하고 시린 기운이 얼려버렸다.
처음 보는 괴기한 현상에
넋을 놓고 있던 붉은 기사단의 단장이
리아에 의해 성기사 7명이 죽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죽여! 죽여버려!"
마찬가지로 동료의 목이 발치에 굴러다녀도
정신을 놓고 있던 성기사들이
단장의 외침에 동시에 리아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쿵! 쿵! 쿵!
검은 갑옷에 검은 망토를 입은 칠흑 기사단의
발 구름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온갖 색의 오러가 씌워진 검을 세로로 들고
칠흑 기사단 특유의 거친 기세를 뿜으며
발을 구르는 칠흑 기사단과
상관의 명령보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해
한발 한발 뒤로 물러나는 성기사단.
그리고 자신의 부하가 검을 들고 발을 구르든 말든,
그런 모습에 성기사들이 겁에 질려
점점 뒷걸음질 치든 말든,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 리아.
뒷걸음질 치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화를 내며
집적 나서려고 하는 붉은 기사단의 단장과
푸른 망토의 성기사를 보고 나도 입을 열었다.
"카시오스. 아담.
리아가 저 둘을 상대하는 동안 다 처리해."
""충!""
두 성기사와 리아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내 앞에 있던 모든 칠흑 기사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호기롭게 덤벼들었던 두 성기사도,
뒷걸음질 치다 못해 도망치려 했던 성기사들도
리아와 칠흑 기사단 앞에
무릎을 꿇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무릎 꿇고 있는 두 기사를 향해 걸어갔다.
"붉은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존경을 담은, 그것이 아니더라도
귀족을 대하는 공손을 담은 행동과 말이 아닌
겁에 질려 나오는 공손 따위 웃길 뿐이다.
"그대는 신을 모시는 자인가?"
단장의 눈에 이채가 돌더니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렇소! 나는 신을 모시는 자이며!
신을 모시는 자들을 키지는 기사요!"
"불쌍한 아이들을 돈으로 사고파는..
그조차도 용서 못 할 짓이지만
대륙 전체가 망하게는 지금..
어떤 의미에는 그래..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가능하다고 하지..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은.. 여자들은..
행복하게 해 줬어야지.. 버림받은,
혹은 부모를 잃은 이들이 그 상처를 벗어던지고
어른의 품에서 웃게 했어야지..
그대가 모시는 신은 어린 시절을 고아라 천대받다가
입양이라는 꿈을 꾸었으나 그것도 잠시.
차라리 고아로 살았던 것이 더 행복했다고
여길 삶을 내려다보시는 것을 즐길 것 같은가?
이를 주도하는 이들이 도적도 산적도 아닌
입만 열면 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면
행복해 하실 것 같은가?
교황이, 성자가, 교주가, 신관이!
강제로 여자를 품는 것을 보고
그대가 모시는 신께서 즐거워하실 것 같은가?
그런 새끼들의 말과 행동이 과연..
신의 말과 신의 뜻인가?"
입을 열려는 단장보다 내가 말을 잇는 것이 더 빨랐다.
"왜? 몰랐다고 변명할 것인가?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대가 모시는 신은 주신 포르테님이 아닌
교황과 저기 있는 성자겠군.
주신께서 고작 너에게
신의 말씀을 내려주지 않았을 테니.
교황이라는, 성자라는 잘못된 인간을
신을 모시는 그대는 주신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지킬 자격이 없다."
슥! 슥!
"으악!!"
리아가 그의 양 손목을 잘라버렸다.
시린 기운을 뿜지 않아
단장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아아.. 그대의 손보다 더 큰 잘못은 한 게 있었군.
교황이나 성자 따위를 신을 모시게 한
그대의 생각 없는 머리와 머리가 시키는 말을
그대로 내뱉은 그의 혀가 더 큰 잘 못이다."
슥!
툭.
단발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단장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공포로 덜덜 떨고 있는 푸른 망토의 성기사를 바라봤다.
"다른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니
그대도 단장 정도 되겠군.
리아를 생포하라고 명령했던가..?"
"교..교교황이 여기사를 잡아.. 오라고.."
"아. 그래? 그대가 모시는 신도 인간 교황이군."
슥!
툭.
성기사단 정리를 끝내고 다가오던 카시오스와 아담.
카시오스가 나의 눈빛을 받고
그대로 푸른 망토의 기사를 베었다.
"아담. 성자와 저 교주를 나무에 묽어 마차 위에 세워라."
"충!"
"카시오스. 지금부터 교황청으로 간다.
너는 성자와 교주를 보고 몰려들 이곳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말해 줘라."
"충!"
성자와 교주가 묶인 마차가
천천히 교황청으로 이동하는 동안,
카시오스가 오러를 실어 둘의 죄는 물론,
아직 잡아들이지 못한 이들의 죄까지
백성들에게 외칠 계획이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백성들 무리에서
한 남자가 뛰어와 무릎을 꿇었다.
"헉..헉.. 저는.. 카샴이라고 합니다!
그..그.. 일라인 왕국.. 카카.."
"됐다."
"미천한 제가
목숨으로 요청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목숨을 건 부탁이라.."
"감시 카온 라이거님의 앞길을 막고,
무례하게 먼저 부탁이라는 말을 꺼냈다는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다 보았습니다!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가두었던 무언가가
우리를 해치려 하는 것이 아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압니다!"
점점 모여드는 백성들을 한번 둘러 보고
계속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카샴이라는 자는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몇 번이고 들고 일어나
망해가는 조국을 바로 잡고 싶었는지,
하지만 교황과 성자의 불만을 말하는 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지,
자신들이 죽는 것은 괜찮으나 남은 가족들이 걱정돼
얼마나 참고 견뎠는지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검 한 자루만 빌려주시면!
아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저와 동지들을 모아..!"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는 검이 없지만 이 단도라도 괜찮다면.."
하나둘 자신도 교황청과
싸우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는 백성들을.
그들의 외침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왜 그 마음만 품고 진작에 교황청을 향해
검을 꺼내지 않았느냐고 말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과 가문의 안위를 바라며 꼬리를 흔들다가
위기가 오면 꼬리를 말고
가장 먼저 도망치는 귀족도 아니며,
돈이 많고 왕국 간의 이동에
일부의 자유가 있는 상인도 아니다.
오러가 있어 검을 들거나,
마나가 있어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이도 아니다.
신성국에는 라이거 가문처럼
권력자에게 당당하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세력이 없다.
유일하고 새로운 희망이었던 성자에게도 배신당했다.
이런 힘 없는 백성들은 자신의 목숨은 괜찮지만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었기에
차마 입으로는 반란을 말하지 못하고
손으로는 낡은 식칼 하나 들지 못했을 것이다.
성자와 교주보다 강한 이가 나타났다.
성기사단의 전부는 아니지만
혼자 백여 명을 상대하는 기사가 나타났다.
그 여기사처럼 찬란하면서 아름답게 잔인하지 않지만
그와 못지않은 거칠면서 투박하고
사나운 기세의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평민이고 배운 게 없다지만
전쟁은 성도를 빼앗기고
왕이 잡히거나 죽으면 끝이 난다는 것을 안다.
희망이 생겼다.
나와 우리들이라면 승리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남
은 가족들에게 슬픔을 줄지언정
더 나은 미래를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카샴에게 물었다.
"여기는 신성국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나라다.
7백 년 전 치료의 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나라다.
그대들에게 나는 침입자이면 그대들의 국가인 신성국을
세상에서 지우려는 적이다.
그런데 어찌 나와 맞서지 않고
그대들의 조국을 향해 검을 들려고 하는 것이냐?"
신성국은 나로 인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교황청에는 신성국의 깃발 대신
라이거 가문의 깃발과
칠흑 기사단의 깃발이 꽂힐 것이다.
망국의 백성이 될 것이고 새로운 주인이 될
나와 라이거 가문의 처우에 따라
그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신성국의 죄 없는 백성들을 억압한다든지 차별하고,
전보다 못한 삶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밝히기 전에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신성국이라는 이름답게
백성들이 주신 포르테님을 모시는 마음은
다른 왕국이나 제국보다 더 깊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하지만 주신님을 믿고 기도를 올리는 것은
신성국만의 은혜는 아닙니다."
제국이든 왕국이든 권력을 위해
신전을 탄압하거나, 신전의 힘을 줄인다.
하지만 카샴의 말처럼
주신 포르테님은 대륙의 유일한 신으로
대륙 사람들에게는 뿌리 깊은 신앙이었다.
"주신 포르테님을 향한 믿음과 마음은
국가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각자의 마음에 자리하는 것입니다."
신성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음속 성녀님께서 주신의 품으로 돌아가신 이후..
신성국이 아닌 신의 이름을 이용한
국가일 뿐이었습니다.
카온 라이거님과 라이거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는 알지만,
지금의 라이거 가문은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기사의 모욕을
자신의 모욕이라 말씀하시는 카온 라이거님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지만 적의 중심에서
당당히 말씀하시는 카온 라이거님..
타국의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해 노여워하시고
벌하시려는 카온 라이거님이 만드는 세상이라면
나라의 이름이 신성국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뛰어오는 아이들과
이제 어미의 뱃속에서 나와 눈을 뜬 아기들..
그리고 언젠가 이 땅에 두 발로 서게 될 후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며,
지금보다 더 많은 웃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냥 신성국의 백성이 아니군."
아무리 증오했던 이들이지만
그 시체 속을 지나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려워했던 힘들을 제압한
더 큰 힘을 지닌 리아와 칠흑 기사들과
그들의 주인인 내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똑바로 말하고 있다.
꽉 쥔 주먹은 물론
어깨까지 잘게 떨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나의 길을 막은 것도 모자라 앞장서겠다 외쳤다.
한 줌의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는 카샴이
더 성자처럼 느껴졌다.
"반 교황 단체를 이끄는 카샴이 다시 인사 올립니다."
카샴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놀랐지만, 주변에 모여 있던
신성국 백성들이 나보다 더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