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그것이 너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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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그것이 너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반 교황 단체`
페트로의 정보 조직 `소리 샘`, 성도의 정보 조직 `킬`,
나의 기사단인 `칠흑 기사단`,
가문의 이름을 딴 `라이거 기사단` 처럼
이름을 가진 조직이 아닌 특정한 이름 없이
`반 교황 단체`로 불리는 이들.
이들은 하나의 단체에 속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낡은 검과 부러진 창을 들고 신
전으로 쳐들어 가는 자들도 있있고,
교황의 죄를 적은 종이를 수천, 수만 장 제작해
신성국에 뿌리는 자들도 있었으며,
신성국에 살면서도 신성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상 진료를 제공하고
신성 아카데미에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을
신성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는 이들도 있었다.
`단체다.` 가 아닌, `단체였다.`가 더 정확했다.
반 교황 단체를 과거의 존재로 만든 것은
당연히 현 교황이었다.
신전을 향해 무기를 든 이들은 신과 신성국에 대한
반역자로 지정해 대대적인 숙청을 했으며,
교황의 죄를 밝힌 용감한 행동을 한 자들은
신의 첫 번째 종을 모욕했다는 죄로 처형당했다.
또한, 무상으로 진료한 이들은
신의 힘을 허가 없이 사용했다는 죄로 처형,
교육을 한 자들은 배신자이자
이도교로 지정해 제거했다.
이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일이 있고 난 뒤
신성국은 물론 대륙 전체에
반 교황 단체를 입에 담는 자가 사라졌고,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갔다.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의 일.
나도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라인 왕실과 피오네의 연합,
테슬린 가문과 포이든의 연합,
그리고 카이젠 제국으로부터의 초대.
이런 관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중재를 담당했던 신성국이 궁금해
성도의 정보 조직 `킬`을 통해
신성국의 정보는 받는 과정에서
그들을 문서로 알게 되었다.
문서 속, 역사 속 존재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나
다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부탁을 하고 있다.
"카샴. 너와 너의 뜻과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수 백 년 신분을 속여가며
염원을 이어간 쇼페라 가문이 있기에
교황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30년을 숨어 산 이들이 있었,
나와 칠흑 기사단을 통해 지금이 기회라고 여겨
카샴 같은 이가 앞으로 나왔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무력과 무력의 충돌이다.
물론 과거 그들의 행동에도 목숨이 걸려 있었지만
지금은 이들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너희들의 목숨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무력과 무력의 충돌.
칠흑 기사단과 교황청에 있을 무력 집단과의 충돌.
이것 뿐이라면 우리 쪽에는 부상자는 나올지언정
사상자는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성력 한 줌 없는,
그렇다고 오러나 마나가 있는 것도 아닌 이들,
있다고 했도 성기사들보다
한참을 못 미치는 이들이 합류하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이들이 될 것이다.
낡은 검과 부러진 창으로
싸운 경험이 있는 자들도 어딘가에서
카샴이 가져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나이는 이미 30년을 더 먹을 뿐이고,
당시의 투쟁도 무력의 충돌이라 보기에 힘들었다.
정의와 열망, 머리고 싸운 이들인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검을 들고 목숨을 거는 대신!
목숨을 걸고 발로 뛰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목청을 높여
그대들이 뜻을 이곳뿐만 아닌 신성국 전체에 알려라.
그것이 너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카샴은 다행히 정의감과 복수심에만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리아가 당한 치욕과 모욕을 보상받으러 왔다.
성자와 교주, 교황의 죄를 알라고 벌하러 왔다.
그 보상과 벌이 신성국의 몰락이다.
하지만 이 건 나의 생각일 뿐,
신성국 입장에서는 억지스러운 침략이다.
침략이 아닌 벌.
신에 대한 반역이 아닌 신의 이름을 더럽힌
이들에 대한 처벌자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
바로 지금의 반 교황 단체가 할 일이다.
눈빛이 변한 카샴.
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그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카온 라이거님의 깊은 뜻을 받습니다!"
카샴이 어디론가 떠나고 뒤를 보자
교황청으로 향할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응?"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존재가
리아와 함께 다가왔다.
"주군. 주군이 타실 말이 없어
라이거 영지로 가 데리고 왔습니다."
푸르릉!
한동안 같이 달려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오늘 같은 중요한 날에 함께하지 않아서인지
잔뜩 심술이 난 애마 카오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삐쳤냐?"
푸릉!
"얼씨구.. 하.. 그래, 미안하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풍!
토라진 카오스가 고개를 돌렸다.
리아의 냉기와 카오스가 사람 말을 알아는 것.
아직 내가 풀지 못한 것들이었다.
대륙에 리아를 제외한 소드 마스터가 총 2명에서
이제는 나를 포함한 총 3명으로 늘었다.
리아의 냉기가 익스퍼트의 상징인 오러의 색처럼
각자의 특징이지 않았을까 하고 조사해 봤지만,
기존 존재했던 두 명의 마스터들에게는
없는 현상이었고, 혹시 라이거 가문의 오러홀이나
뫼비우스 고리의 영향인가 싶었던 것도
내가 마스터에 오르고 실험해 봤지만
리아와 같은 이능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만나는 말들마다 사람들 몰래 말을 걸어보고
카오스에게 했던 명령을 내려 봤지만
나에게 겁을 먹고 도망칠 뿐
카오스 같은 말은 없었다.
이후 더이상 알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주신 포르테님이 내려주신 선물이라 여기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야! 미안하다고!
선두에 서게 해 줄 테니까 기분 풀어라!"
슬 고개를 돌린 카오스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와
코를 내 가슴에 비비기 시작했다.
"으이구.. 리아. 가자."
"네. 주군."
가장 선두에는 나와 리아.
바로 뒤에는 마차 위에 서서 성자와
교주의 죄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카시오스있었다.
그 뒤로는 각각의 마차 위에
나무에 묶여있는 성자와 교주가 있었고,
죄인의 뒤로 아담을 선두로 한 60여 명의
칠흑 기사들의 검은 망토가 휘날리고 있었다.
내가 카오스의 등에 오르자
리아가 뒤에 있는 아담을 한번 바라보자
신성국에 울리는 뿔 나팔 소리.
뿌뿌뿌뿌우~
엄청난 뿔 나팔 소리와 함께
교황청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
반 교황 단체를 대표하는 카샴은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때가 왔다!"
카샴은 달리고 달려 도착해 만난 식당 주인에게
때가 왔다는 첫마디와 함께 딱 한 마디 말만 더했다.
"신의 이름을 더럽힌 벌!"
이 두 마디 말이면 충분했다.
카샴의 말을 전해 들은 식당 주인은
어디론가 급히 들려갔고
카샴도 그와 반대 방향으로 다시 달렸다.
카샴이 만났던 식당 주인,
그리고 카샴과 식당 주인이 만나야 할 사람들.
모두 반 교황 단체에 속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살아남아 때를 맞이하기 위해
신성국 곳곳에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식당을 운영하고,
누군가는 술집을 운영하며,
또 누군가는 상단의 일꾼이 되어
반 교황 단체라는 속이고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정보들과
소문을 모으며 지냈다.
카샴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인쇄소.
"때가 왔다! 벽 뜯어!"
직원들을 모두 쫓아낸 인쇄소 주인은
망설임 없이 망치고 벽을 내리쳤다.
한쪽 벽이 무너지고 나타난 엄청난 양의 종이 뭉치들.
30년의 세월 동안 모은 신성국과 현 교황과 교주들,
그리고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성자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나가는 인쇄소 주인을 본 카샴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기에
가장 늦게 카온의 진군을 보게 된 카샴.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런 쳐 죽일 놈들!"
눈을 감고 손을 모아 카온과
그의 기사들에게 승리를 달라고 기도하던 카샴은
익숙한 종이를 손을 쥐고 땅이 침을 뱉으며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에 기도를 마쳤다.
"사람이 어찌..
신의 아들과 신의 첫 번째 종을 벌한단 말인가.."
"여기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놈이 있네..
이보슈! 성자도 교황도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야!
좋아! 신의 아들이고!
신과 가장 가까운 종이라 칩시다!
그럼 더 신의 아들과 종처럼 살았어야!
내가 왕이네! 내가 귀족이네! 하며
온갖 패악질 하는 놈들보다 더해!
그래도 그들은 신의 이름 앞에는 진실을 말하고
명예를 건다고 하더라!
그런데 뭐?
신의 아들이 뒤로 여자를 범하고!
교주라는 작자가 인신매매해?
이런 쳐죽일 것들!"
"교황은 어떻고요!
검소와 절약한다면서 거리의 마나등을 줄여 놓고
그 마나등으로 교황청 정원을 꾸몄다니!
밤에 유난히 교황청이 밝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랍니다!"
"성자와 교주의 거기가 터졌다지?
교황도 터뜨려버렸으면 좋겠네!"
"성자와 교주의 거기가 터졌다고요?!"
남자들의 대화에 끼어든 누군가가 물어보자
질문을 받은 남자가 혀를 찼다.
"쯧쯧. 지금 저 목청 큰 기사가 계속 떠들고 있지 않고.
이 종이에는 안 적혀 있는 내용인데.."
다른 왕국의 어느 가문의 후계자가
자신의 여기사를 희롱한 성자와
입양해 준다는 핑계로 인신매매를 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그 여자를 탐하여 한 교주의 그곳을
터뜨려 버렸다고 카시오스의 말을
남자가 요약해 말해 줬다.
"이런 개새끼들! 아니! 개보다 못한..
아니.. 아무튼 미친 새끼들!"
"그나저나.. 저 인원으로.."
"저들은 이길 겁니다."
카샴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길 거라니.. 그 무슨.."
"가장 앞에 있는 여기사 보이시죠?
저 기사가 성자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기사입니다.
그리고 붉은 기사단과 푸른 기사단 단장의
무릎을 꿇린 기사죠."
"헉!"
"마차 위에 있는 기사와
제일 뒤에서 검은 갑옷의 기사들을 이끄는 기사..
그리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저 칠흑 같은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백여 명의 성기사들을 죽이는 데
고작 3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카샴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알았다.
이제 교황청이 카온과
검은 갑옷의 기사들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것을.
신성국은 대륙의 중재로 존재했다.
제국은 물론 어떤 왕국도
신의 이름 앞에 세워진 신성국을 침략하지 않았다.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신성국에
검을 겨누는 것은 신에 대한 반역.
이는 대륙의 공동된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교황은 더욱 거만해졌고
대륙 전체에 큰 소리 낼 수 있는 교황의 자리를 탐냈다.
오러와 마나를 천대하지 않았으나
신성력을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고
성기단이란 이름으로 신성력을 가진 기사들만 키웠다.
오로지 신성력만 있는 기사들을 양성했기에
신성국과 교황청을 지키는 기사들의 수는
다른 왕국에 비해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흰, 붉은, 푸른 기사단 모두 합쳐 약 5백여 명.
그 중 2백 명의 성기사가
각기 다른 망토를 두르고 교황청을 지켰으며
나머지는 신성국 각지와
타국의 신전에 파견 나가 있었다.
물론 병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성국의 치안을 담당하고
성기사들의 시중을 드는 존재일 뿐,
신성력뿐만 아니라 오러나 마나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수 또한 현 교황이 제정을 아낀다는 이유로
고작 천여 명만 존재했다.
그러나 현 교황은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다.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신성국이라는 것,
교황은 신의 첫 번째 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
백 년 만에 교황청이 인정한 성자가 나타났다는 것,
이런 이유로 타국이 군사적 위협을 할 수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교황을 더욱 오만하고 탐욕스러우며
수많은 죄를 짓게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무시하는 이가 나타났다.
그래서 궁금했다.
신의 아들과 신의 첫 번째 종이라
칭하는 이들을 처단된 뒤의 자신들의 미래가.
그리고 누군가가 그 궁금증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라 없는 백성은.."
중얼거린 그 한 명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카온의 행렬이 점점 교황청에 가까워지자
신성국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희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