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라이거 가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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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라이거 가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습니다.
"어떠한 말도 없이,
어떠한 준비도 없이, 영지전 신청도 없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쳐들어오는 것은 침.략이죠.
그래서 소드 마스터를 눈앞에 두신 아버지께서.."
펠리스 라이거 백작이 소드 마스터 직전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던 정보였다.
"소드 익스퍼트 경지의 50의 기사들과.."
라이거 가문이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하고,
영지의 문을 닫았기에 오르기도 힘들다는
익스퍼트의 경지의 기사가 50명이나 있을 거라는
정보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2백의 소드 나이트 기사들과.."
지금까지 말한 병력만 해도 한 가문이,
한 영지가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갑옷을 착용한 10만의 병사들에게.."
10만의 병사도 놀라운데
갑옷을 착용한 병사라는 말에 제이슨 왕자는
자신이 두른 마나만으로 공포를 이기기에 부족했다.
"고작 6만의 병사들을 처단하고.."
급조된 6만의 군과
준비된 10만의 군의 충돌 결과는 뻔했다.
"감히 가.만.히. 있는 남부를 넘 본.."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협박은 하지 말아야 했다.
"서부를 정벌하라고 명했습니다."
"네 이놈!"
벌떡 일어난 제이슨 왕자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왕실 기시단을 불렀다.
"여봐라! 당장 왕실을 능멸하고
왕국의 영토에 피를 뿌리려는 자를 포박하라!"
문을 열고 들어온 열 병의 왕실 기사들.
"왕자. 나를 포박한다고 하였나?
고작 나이트 급의 기사 열 명으로?
그럼 저들이.. 아니 밖에 더 있을지도 모르니
왕실의 기사들이 나를 포박할지..
아니면 왕비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갈 예정이었던 신성국으로
무사히 갈지 내기할까?
왕자가 이기면 그대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물론,
라이거 가문이 그대를 위해 꼬리를 흔들어주지.
하하하"
자리에서 일어나며 뫼비우스 고리를 회전시켰다.
털썩.
"윽!"
"헉!"
"뭐야! 왜 혼자 쓰러지고 난리야!"
왕실 기사들을 향해서만 뿜어져 나간 기운에
검집으로 향하던 손이 가슴으로 향하며
왕실 기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 그대들의 주인은
그대들이 왜 쓰러진 지도 모르고 벌할 테니
이유를 알려줘야겠군."
왕비가 앉아있는 곳만 제외한 모든 공간으로
뫼비우스의 마력이 퍼져나갔다.
"컥!"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왕자와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왕자에게 가려는 왕비.
"왕비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뚝.
왕비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을 본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 판단 했습니다. 두 발만 더 움직였으면..
오러나 마나가 없는 왕비님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전 저를 기다리고 있는
왕실 기사들을 보러 가야 하니..
다음에 뵙게 되는 때는 귀족 회의겠군요.
그럼. 그때 뵙죠."
카온이 유유히 집무실을 나가고 나서야
왕자와 왕실 기사들은 숨을 쉴 수 있었다.
*
일주일 뒤.
펠리스 라이거 백작은 6만 서부 군이
영지의 경계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비는 카온이 왕성을 걸어 나간 보고 받은 후
바로 베로니카 후작에게 연락했다.
라이거 가문이 서부를 노린다.
왕국 군과 중앙 귀족 군을 보내 줄 테니 막아라.
하지만 다음 날 왕비가 아닌
테슬린 공작에게 연락이 왔다.
당장 침범의 의사가 없었고,
연합 훈련의 일종이라고 변명하라!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서부 영지 일부를 떼어주는 한이 있어도
라이거 군과 충돌을 피하라!
하루 만에 바뀐 명령.
이는 테슬린 공작과 왕비가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테슬린 공작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왕비를 만나기 전 자신에게 우호적인
왕실에서 일하는 귀족을 마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카온의 방문과 왕실 기사단 전원 부상.
테슬린 공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난 척 하다가 무너진 왕비와 왕자.
카온이 채찍으로 그들에게 공포를 주었다면
반대로 사탕을 주면 끝이라 생각했다.
"헤이라스.."
테슬린 공작은 동생이 왕비가 되고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을 불렀다.
단지 이름이 한번 불렸을 뿐인데
왕비는 예전 공작에게 이용당하던 시절로
천천히 돌아서고 있었다.
"무능한 제 아비를 만나 동생이 이토록 고생하구나..
미련하게도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가족의.. 핏줄의 소중함을 알았다...
헛된 꿈을 좇을 시간에 너를.. 가족을 돌봐야 했거늘.."
카온이 휩쓸고 간 뒤 황망함 속에 허우적거리던 왕비는
공작의 말과 표정이 연기인지 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사막에서 갈증에 시달리는 자신에게
건네진 누군가의 물병.
죄인이든, 원수든, 살인마든, 첩자든,
심지어는 물병 속에 독이 담겨 있든,
물병을 건네준 이는 은인이었다.
목마름을 해결해 줄 은인이든,
더 이상 목마름의 고통에서 벗어날
죽음을 선물한 은인이든.
"제이슨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돕겠다."
"공작.."
"오라버니라 부르거라.
일단 왕성 수습부터 해야겠구나."
왕비의 손등을 두드려 주고 나가려는 공작을
왕비가 잡았다.
"실은.. 지금.."
서부 군의 움직인 이유과 카온이 다녀간 뒤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 솔직히 말했다.
"그랬구나.. 너의 마음이 어지럽겠어..
괜찮다. 내가 해결하겠다."
"오라버니.."
왕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빠인 공작의 품에 안겨 울었다.
하지만 안았기에 왕비가 보지 못했던 공작의 입가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이렇게 하루 만에
베로니카 후작에게 내려진 명령이 달라진 것이었다.
베로니카 후작은 분노하고 고민했다.
지원군이 있고, 없고의 고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회군하고
아직 영지의 경계를 넘은 것이 아니기에
어떤 핑계를 말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그리고 왕비에게 이용당했음을,
아무리 작위가 높은 공작이라지만
마치 가신 가문 대하듯,
서부의 영지 따위에 아무렇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명령하는 공작에게 분노했다.
왕비에게 들은 대로라면
라이거 군의 병력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다.
하지만 훈련이란 핑계로 도망치듯 회군하는 것이
더 치욕적이라 생각했다.
소문은 빠르고, 과장된다.
자신의 군대만 있다면 통제할 수 있겠지만
6만의 군대는 연합군이다.
서부의 대표 가문인 베로니카 후작이
남부의 라이거 백작 군에 겁을 먹고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가문의 위신이 땅에 처박히는 소리였다.
잠시 행군을 멈춘 후작은 연합군에 참여한 가문에게는
더욱 병사들을 차출하라 명했고,
참여하지 않은 가문에게도
라이거 가문이 서부를 노린다는 소식을 전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남부의 페페 가문과 파실리온 가문이
어떻게 되었는지 서부 귀족들도 알고 있었다.
누가 먼저 침략했고,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서
패한 가문의 핏줄들은 죽고
가문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안다.
그래서 후작은 당연히 자신의 영토와
가문의 보존을 위해 지원군을 보내리라 생각하고
라이거 영지의 경계를 넘었다.
이길 수 있으면 이긴다.
항복하더라도 싸워는 보고 항복한다.
이것이 베로니카 후작의 결론이었다.
이제 막 영지의 경계를 넘는 서부 군을
작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며
펠리스 라이거 백작은 입을 열었다.
"아키 단장."
"네. 주군."
"저런 진형은 본 적이 있는가?"
"단장님 적의 진형을 조금만 상세하게 설명 부탁합니다."
나폴레이는 카온이 라이거 군의 병력을
왕비에게 밝혔음에도 회군하지 않고
계속 진군하는 서부 군, 그리고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진형을 형성했는지 궁금했다.
"저도 저런 모습은 처음 보지만..
베로니카 군이기에 이해가 되는 모습입니다.
책사님. 지금 서부 군이 진형의 형태를 바꿨습니다.
가장 선두에는 병사들이 있고 그 병사들의 좌우로
가문의 깃발인 것으로 보아
서부 귀족 군이 포진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의 뒤로도
베로니카 후작 가문의 깃발이 아닌 것이 보이는군요."
"후작의 깃발은요?"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후미에 있습니다."
"거리를 두고.. 후미라..
거기까지는 후작의 안위를
제일 우선한 진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상하다는 점과 베로니카 군이기에
이해가 된다는 것은 어떤 점입니까?"
나폴레이의 물음에 대한 답은 펠리스에게서 나왔다.
"책사.
전략과 전술이야 때에 달라지는 것이니
진형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점은.. 병사들의 좌우와 뒤에 있는
귀족 군의 모습이네.
카온이야 선두에서 다른 기사들보다 먼저 싸우지
보통은 핵심 인물을 중앙이나 뒤에 배치해
보호하고, 도망칠 수 있게 하지."
수백, 수천의 병사들의 목보다
사령관의 목 하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
이상한 진형, 백작의 말, 베로니카 후작이라 이해됨.
나폴레이는 서부 군이 어떤 형태인지 알아차렸다.
"눈치챘나 보군.
각 가문의 병력들에게 보호 받는 듯한 여기사들은
후작의 기사들이겠지."
"이번 일의 주체가 후작인데..
총사령관으로서 모범은 보이지 못할망정..
남녀 할 것 없이 죽기 살기로 싸워도
저들에게는 희망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서부 군 전체가 아닌
좌우와 뒤에 포진된 서부 가문의 군만 본다면
선두에는 역시나 일반 병사들이 있었고,
그들의 뒤로 기사들이, 그 뒤로 지휘권자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신분을 중시하고
귀족이 우선인 전쟁을 모르는 이의 진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기사들의 보호를 받는 듯한 일부 여기사들과
지휘권자보다 뒤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여기사들이었다.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라이거 영지의 경계를 넘은 서부 군이 아닌
후작의 서신을 받은 귀족들 사이에서.
- 미친!
- 라이거 가문이라니!
- 당장 군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아니! 뜬금없는 출병이라니 후작께서 정신이.. 큼..
카온과 라이거 가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서부 귀족 자브레 남작은
통신구 너머에서 들리는 다른 귀족들의 말을 들으며
씨익 웃었다.
"베로니카 후작령에 폭동의 조짐이 보인다고 합니다."
- 남작! 폭동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 불순한 자들이 후작령에서 설친다고 하더니!
"불순하다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귀족을 향해 막말을 내뱉고 죽은 자가 수십이오!
심지어는 후작의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던 자들도 있소.
"넥스 자작님.
죽은 자들이 뭐라고 말했기에 죽었습니까?
창고에서 물건을 들고나오다가
여직원과 어깨가 부딪혔는데,
그 여직원이 모욕당하고
성적 수치심을 당했다고 고발했습니다.
잡혀간 남자는 억울하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죽었죠.
여자를 꼭 몇 명 채용해야 한다는
후작령만의 법 때문에
쫓겨난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후작은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죠."
- 큼.. 저는 이런 소문도 들었습니다..
후작령의 농부 하나가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7살 딸이 그를 잡고 펑펑 울더랍니다.
딸이 걱정된 아비가 물어보니..
글쎄.. 하.. 아이가 나중에 죄를 지을 거라며..
엄마를 때리고 이모들을 아프게 할 거라며
그러지 말라고 매달렸다고 하더군요.."
- 소문일 뿐이지 않습니까?
"한두 가지 일이라면 소문일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사람만 다르고 소문의 내용이 같다면
진실인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 그러고 보니!
잠시 베로니카 후작을 옹호하려 했던
넥스 자작이 뭔가 떠오른 듯 말을 꺼내고,
다른 귀족들도 다른 영지의 일 또는
자기 영지에 일어난 일이라도 잘 포장된 일이
진행되는 중에 일어난 작은 사고라고 여기고
넘겼던 것들이 큰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 하?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하는 세상은 무슨!
겉만 그럴싸한 독이었습니다!
"네. 그 독을 해독하기 위해
후작령을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려 하고 있죠.
그럼 우리는 독의 원천을 도와야 할까요?
아니면 백성들의 독을 해독해 줘야 할까요?"
- 서부도 문제입니다.!
자브레 남작도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
파악하기 힘든 누군가가 외쳤다.
"차라리 서부가
라이거 가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습니다."
- 남작!
"라이거 가문을 좀 먹던 페페 가문만 사라졌습니다.
라이거 영지를 욕심내던 파실리온 가문만 사라졌습니다.
대신! 헐벗고! 굶주렸으며!
소·돼지 취급당하던 천민들은 평민이 되었으며!
평민들은 귀족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서부가 뒤처져야 합니까?
언제까지 서부가 족장 사회여야 하냐 말입니다!
라이거 가문이 서부로 들어오면!
저는 제일 먼저 가문의 문을 열고
자브레의 깃발을 넘길 겁니다!"
깃발을 넘기는 행위.
서부 전통의 충성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