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작위를 받을 준비를 하거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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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작위를 받을 준비를 하거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했다.
자신을 따르던 귀족 군은 거의 전멸했고,
자신은 진형이 무너지는 순간 후퇴했기에
살아남았다.
서부 군이 영지 경계선을 넘은 것이 아닌,
이제는 라이거 군이 경계선을 넘었기에
서부 방위를 위한 지원이라 닦달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냉담했다.
기사 단장의 품위도 잊은 채
보고하는 단장의 말로는 어린 두 명의 마법사에게
영주성이 초토화 되었다고 한다.
마법.
어린 시절부터 마법과 마법사들의 존재를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오러도 없지만
마나도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당시 마탑은 꾸역꾸역 명맥만 이어갈 뿐
아무런 힘이 없었던 것이 관심을 접은 두 번째 이유였다.
또한 일라인 왕국 마법의 중심인 테슬린 공작 가문은
일라인 영토의 반대편에 있었고,
테슬린 가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대로 남부의 망해가는 `네 기둥` 가문인
라이거 가문만 신경 쓰고 있었기에
마법이란 베로니카 가문에
도움도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였다.
검과 마법의 재능 대신 베로니카 가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라고 칭송받던 머리와,
타고난 정치적 감각으로
핏줄들을 누르고 백작위에 올랐다.
어느 날 휴대구의 등장과 함께
마탑의 소식이 들려왔다.
검의 가문인 라이거 가문이 일어서나 싶더니
검 대신 돈을 좇고 있었다.
망해가는 와중에도 연구에만 시간을 허비하던 마탑이
돈을 좇고 있었다.
백작은 그것을 무시했다.
마탑의 남부 이동도 더 큰 돈을 좇아간 것이라며
그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마탑에게 당했다.
실제로는 카온을 따르는
두 명의 마법사에게 당한 것이지만,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후작은
마탑과 라이거 가문이 금전적 동맹 이상의 관계를
맺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젠장!"
남은 것은 항복밖에 없었다.
바짝 엎드려 영지만이라도 지켜야 한다.
베로니카 후작은 펠리스 라이거 백작에게 전할
항복의 뜻을 종이에 적어 건넸다.
"백기를 든 전령을 보내라.."
"주군.."
"하.."
후작의 한숨이 깊어졌다.
*
어머니와 폴리아리스 자작이 선별한 인재들을
신성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라이거 영지로 이동 한 순간
반가운 인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 도련님!
본인은 모르지만, 동생 프레시아의 주도로
가족들 사이에서 라이거 가문의 양녀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바이올렛이었다.
마린다와 수련을 떠나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던 와중의 연락이 더 반가웠다.
그리고 그녀가 전한 소식과 그 와중에 찾은 증거들.
마린다와 함께했다지만
고작 2명으로 그런 위험한 일을 했다는 것에
걱정을 가득 담아 혼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이올렛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짧은 잔소리 뒤에
긴 칭찬으로 마무리했다.
바이올렛과 마린다의 상태도 확인하고
증거도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내가 보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선별 인원들을 신성국에 데려다주고
베로니카 후작령에서 마린다와 바이올렛을 만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 중에 최고는
텔레포트 같았요."
"내가 제일 유용하게 쓰는 마법이
텔레포트 같긴 하네.. 하하"
마린다의 질투 어린 투정에
반박할 거리가 없어 끄덕이고 말았다.
이왕 온 김에 이번 전쟁의 첫 승전보를
축하하기 위해 라이거 군 지영을 찾았다가
지금 눈앞에 남자를 만났다.
"신성국으로 간 것이 아니었나?"
"라이거 직할령을 운영할 가신단을
데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이거 직할령이라.."
"라이거 군 진영에 제가 떠나기 전
아버지께 인사 올리러 온 것보다
공작님께서 계시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는군요."
"그동안의 관계도 있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테슬린 공작의 고개가 아버지 쪽으로 돌아갔다.
"백작. 이 전쟁을 멈추는 것이 어떻겠소?"
라이거 가문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공작이
자신이 서부 군을 돕겠다는 협박 대신
전쟁을 멈출 것을 권하고 있었다.
라이거 영지가 커지는 것이
공작에게 좋은 것이 아니기에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서부로 향하는 동안
영지의 동쪽을 노리는 것이 아닌,
호위 몇 명만 데리고 와 종전을 권하는 이유까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전쟁을 멈추라 했습니까?
이번 전쟁은 저희가 먼저 일으킨 것이 아닌
서부가 먼저 침략한 것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서부 군을 몰아냈으니 된 것 아닌가.
불필요한 살상은 그대가 바라는 일이 아닐 테고."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저자세였다.
다른 가문이 저런 모습을 보였다면
커져버린 라이거 가문의 눈치를 보고
먼저 숙이고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려 테슬린 가문이기에
분명한 수작이 있을 것에 확신했다.
"테슬린 가문이 마치 신성국처럼
중재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군요.
전쟁은 분명 일어났고 우리가 서부를 점령하든,
서부 군이 항복하든
아직 어느 것도 끝난 것이 없습니다. 공작."
공작의 중재로 전쟁이 끝나면
서부는 수많은 기사와 일부 병사를 잃고
패전이라는 불명예만 안게 되고,
라이거 가문은 군의 손실은 없다시피 했지만
군을 운영하기 위해 쓴 자금의 손실만 남게 된다.
대신, 테슬린 가문은 왕국의 평화를 지켜냈다는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들을 알기에 아버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끝맺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가문의 후계자께서도 같은 생각이 신가?"
"다른 가문의 후계자도 아닌
라이거 가문의 후계자로서
가문을 이끄시는 아버지의 뜻이 곧 제 뜻입니다."
"하.. 그렇군.. 나는 말일세.."
위화감 가득한 공작의 독백과도 같은 말이 이어졌다.
포이든 왕국의 배신 이후 회의감으로부터 비롯된
가족에 대한 후회와
왕국의 공작으로서 다 하지 못한 책임,
과거에 얽매여 같은 `네 기둥` 가문인
라이거 가문에 대한 적의 등,
테슬린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말들이 이어졌다.
"동생의 잘못은 오라비인 내가
안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내 이렇게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하겠네."
"고개는 드십시오.
잠깐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갔다.
"저도 잠깐 실례하지요.
아버지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니 돌아오시면
답을 주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지."
공작은 나와 따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어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는 당연히 회의를 소집했고, 나도 누구보다
나폴레이의 머리가 필요했기에 참여했다.
공작의 말을 전해 들은 아키 단장은 당연하다는 듯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은 아버지도, 나도,
나폴레이도 동의했지만
문제는 공작이 직접 나서는 이유였다.
"두 분께서는 종전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공작의 회개와도 같은 그 말들을 믿으십니까?"
"아니."
"아닐세."
아버지와 답이 겹쳤다.
"차라리 제이슨 왕자가 성군이 되기 위해 반성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면
한 번쯤 믿고 넘어갔을 거야."
제이슨 왕자가 그럴 일도 없지만
테슬린 공작은 더 그럴 일이 없는 인물이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공작은 동생의 잘못..
왕비의 잘못을 자신이 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지."
"즉, 공작은 이 전쟁의 원인이
왕비라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왕비는 왕을 가두고 제이슨 왕자를
왕위에 앉히려 하고 있죠.
남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회유가 아닌
무력을 동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음.. 제국 연회를 다녀왔으니..
각이 있는 자라면 더 그렇겠지."
왕비도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있었을 테니
포이든과 피오네 왕국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두 왕국이 손을 잡는다면 일라인 왕국보다
카이젠 제국이 더 탐스럽다.
"제국을 차지한 두 왕국이
일라인 왕국까지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하나의 왕국으로 만들어
두 왕국과 함께 제국을 침략하고
왕국의 보존을 약속받아야 한다.
이것이 왕비의 생각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왕비와 제이슨 왕자가
얼마나 자주권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그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고
그들로서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왕비에게는 개라고 불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충실한 세력도,
칠흑 기사단이나 라이거 기사단 같은,
그리고 영지와 영지민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병사도 없습니다.
미력하게나마 전술이나 작전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저나,
후방 지원에 특화되어있으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완벽한 아샤님 같은 존재도 없죠.
오로지 전통성 하나만 있는
외로운 처절한 싸움일 겁니다."
"그렇다고 왕비도 뭐 하나 잘난 것 없지."
내 말에 다들 피식 웃었다.
"아키 단장님. 제이슨이 왕이 되면
왕국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금도 위태위태한데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주변 상황은 같습니다.
왕비와 왕자를 우리보다 더 잘 아는 테슬린 공작이
과연 모를까요?"
"아! 둘이 손을 잡았구나!"
내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하자
나폴레이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더 정확히는 충성하는 세력도,
마법 기사단이라는 무력도,
지금까지 포이든 왕국과 손을 잡고
뒤에서 수작질하던 머리도 있는 공작이
포이든 왕국에게 배신당했다는 동정을 등에 업고
왕비를 이용하려는 것이지요."
나폴레이이의 말대로라면
테슬린 공작이 바라는 결과는 뻔했다.
동생인 왕비를 위해 주는 척 제이슨을 왕으로 만든다.
왕비 같은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왕비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하는 그이에게
두 왕국 사이에서 일라인 왕국을 지켜낸다.
하지만 성군의 자질보다는
망군의 자질이 뛰어난 제이슨 왕자는
왕국을 더 망치게 될 것이고 이때 왕국을 위하는 척
왕비가 왕을 폐위시키듯 제이슨을 폐위시킨다.
일라인의 핏줄이 몰락하면
왕위의 이을 수 있는 가문은 `네 기둥` 가문인
테슬린 가문과 라이거 가문밖에 남지 않는다.
이 시점이 오면
어느 가문에게 민심이 향하는지가 중요해진다.
"공작이 이번 전쟁을 중재한다면
훗날 남부는 몰라도 서부의 민심은
상당히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잠깐."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가
나폴레이의 말을 잠시 끊었다.
"무엇이 되었든 제이슨 왕자가 왕이 되려면
남부의 지지가 필요해."
"백작님께서 서부의 항복을 받겠다는 뜻을
조금만 보이면 공작은 이미 정리한 조건과
거래를 밝힐 겁니다."
"음.. 카온. 나도 그렇지만
너도 제이슨이 왕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
하지만 이제 작위를 내려놓으려는 나보다
작위를 이을 네 의견이 더 중요할 것 같구나."
제이슨이 왕으로서의 자질이 없기에 반대한 것이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노력할 만한 인물이 아니기에
절대 그를 왕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를 당분간 왕으로 앉혀 놓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제가 주도해도 되겠습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작위를 받을 준비를 하거라."
"아키 단장. 그대의 주군이 물러 나겠다고 하는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하하하
저도 주군이 작위를 내려놓으시면 같이
몬스터 숲에서 사냥이나 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대가 사냥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군."
"네?"
"혼잣말이야.
그럼 아버지 제가 공작과 대화하겠습니다."
공작이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막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