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아샤에게 쇼페라의 성을 내리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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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아샤에게 쇼페라의 성을 내리며..
제이슨 왕자의 즉위식은
귀족 회의가 있고 난 뒤 3일 만에 진행되었다.
귀족의 작위식도 가문의 위치와 영향력에 따라
준비 기간만 몇 달이 걸리는데,
귀족들의 정점이자 왕국의 정점인
왕의 즉위식치고는 상당히 빠른 행보였다.
< 왕실의 잘못으로 백성들이 굶주리고
호시탐탐 적이 왕국을 노리는 지금,
과한 즉위식은 왕국의 주인이자
백성들의 아버지로서 용납할 수 없다.
대신, 국고를 열어 자랑스러운
일라인 왕국의 백성들과 선왕의 양위를 존중하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축하하고자 한다. >
제이슨 왕의 선언에
나폴레이는 이런 추측을 했었다.
"3일 만에 즉위식을 치를 수 있었던 이유는
제이슨 전하를 제외한 실권자들의 의견이
맞아떨어졌을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왕위를 자기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헤이라스 왕비의 준비,
제이슨이 왕이 되고
왕국을 잘 이끄는 모습을 보여줘야 신성국의 영토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제퍼트 왕자와 그 일파,
포이든과 피오네 왕국이 움직이기 전
그들과 동맹을 맺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하는 테슬린 공작.
이런 생각들이 맞물려 제이슨 왕을 압박했고,
아직 권력을 틀어쥐지 못한 제이슨은
자신이 그렸던 화려한 즉위식 대신
귀족들의 생일 파티보다 못한 즉위식을
받아 들였다는 것이 나폴레이의 추측이었다.
왕의 즉위식과 함께 4개의 가문이 승작하고
한 명이 작위를 얻었다.
왕실의 개 중 하나인 하인즈 후작은 공작으로,
다른 하나인 아비게일 백작은 후작으로 승작했다.
유일한 공작 가문을 벗어던진 테슬린 공작의 결단에
조금 놀랐던 부분이기도 했다.
"이유야 뻔하지."
"네. 이제는 앞에서 흔드는 것이 아닌
뒤에서 흔들고자 하니까요."
유일한 공작 가문이라는 것을 내려놓은 이유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과 동시에
권력의 비틀어진 욕망을 잘 아는 공작은
충실한 개 두 마리의 목줄을 풀어 주고
서로 물어 뜯기도 하고, 자신의 대항마로써
제이슨의 눈과 귀를 대신 막아 주기를
원할 것이라 게 나와 나폴레이의 의견이었다.
이런 의도가 아닌 약조에 따른 승작도 있었다.
신성국의 영토를 바라는 제퍼드 왕자의 외가인
페이트 후작도 공작이 되었다.
심지어 페이트 후작은 제퍼트 왕자가
신성국의 영토에 뿌리는 내리는 순간
동부의 영지를 모두 왕실에 반납하는 대신,
신성국과 인접한 북부의
작은 영지를 받는 것을 허락받았다.
계속되는 권력의 분산에
심기기 불편하던 제이슨 왕이 유일하게
웃으며 찬성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라이거 가문이 `과거`,
`왕실의 잘못`, `보상` 등의 이유와 함께
대공작의 작위에 올랐고,
마지막으로 제퍼드 왕자가 공작의 작위를
수여 받는 것으로 즉위식이 끝이 났다.
"그럼 이제 진짜 회의를 시작하지."
회의실 상석이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공작의 즉위식 회의를 위해
라이거 가문의 가신들이 모였다.
회의에 앞서 성도에서의 일을 보고하고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신경 쓸 것 없음'으로 결론이 나자
아버지께서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 시켰다.
상석이 아닌 나의 오른편에서
가문의 가신들과 함께 앉아 있는 아버지,
그리고 왼편에는 리아를 포함한
나에게 충성하던 가신들을 두고 상석에 앉은 나.
라이거 가문의 바뀐 모습 중 하나였다.
"대공 각하."
"어머니. 제발.."
백작의 작위를 얻은 순간부터
아들이 아닌 한 가문의 가주이자 영주로 대하는
어머니에게 몇 번을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대공이 된 이후 깍듯함이 더 심해진 듯했다.
"각하께서 이 어미의 청을 들어주신다면
각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무엇입니까? 어머니."
"각하께서는 백작의 작위식도 인장을 받고
가신들의 충성을 받는 것을 끝내셨습니다.
그때야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넘겼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왕실과 다른 귀족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바쁘고 정신없겠지만 남부와 서부와 통합되었고,
서부도 각하의 뜻을 이해한 뒤 희망을 찾았다며
각하와 라이거 가문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어..어머니.."
부끄러워서 어머니 말을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공작의 작위입니다.
정치적 이유가 아니었다면
공국의 왕이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를 포함한 가신단은
어머니에게 힘이라도 되어주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뒤에 이어질 말이 예상되었다.
"대공작의 즉위식을 어.미.인 저에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께서 준비를 맡으신
즉위식이 상상이 되자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반협박에 가까운 부탁과
가주로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
어머니의 의견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가신들 때문에 거절하기 힘들었다.
"하.. 부탁드립니다.
대신.. 제발 각하가 아닌 아들로 대해주십시오."
"호호호 그렇게 하겠습니다. 각.하."
이런 어머니가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첫 번째 안건인 교역.."
"나폴레이 잠깐만."
첫 번째 안건을 꺼내는 나폴레이의 말을 막으며
왼쪽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아샤를 바라봤다.
테이블 아래, 치마를 꽉 쥔 그녀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쇼페라 가문을 아십니까?"
"당연하지. 부족했던 나지만,
`네 기둥` 가문의 가주였던 내가
쇼페라 가문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대들도 쇼페라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기억이 아닌 지식은
쇼페라 가문은 흑마법의 가문이며,
이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리아."
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공간에서 아샤의 자료를 필사한 서류를
가신들 앞에 내려놓았다.
"읽으면서 듣도록."
서류만 보아도 쇼페라 가문에 관해,
그리고 라이거 가문과의 관계와
다른 `네 기둥` 가문과의 관계에 관해
알 수 있겠지만 한 번 더 말로 설명했다.
역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아버지셨다.
"카..온.. 이것이 진실이더냐?"
"네. 아버지.
우리는 쇼페라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고.."
당시 가문에 힘이 없어 쇼페라 가문이
흑마법의 오명으로 사라져 갈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록 당시 가주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꿈을 향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쇼페라 공작의 지원이 있었고,
기울어져 가는 가문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아버지. 저는 지금이라도
쇼페라 가문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고,
그 은혜를 보답하려고 합니다."
"설..마.. 아샤 총관이?"
"네. 아샤는 쇼페라의 핏줄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쇼페라의 의지를 이은 자들의
핏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제이슨 왕, 제퍼드 공작,
테슬린 공작의 아들 아폴론,
파실리온 백작의 아들 서스,
그리고 라이거의 피를 물려받은
호리페와 아이젝.
이런 이들의 몸속에 흐르는 핏줄의 상징보다
아샤의 마음속에 간직한 의지가 더 크고 고귀했다.
충격에서 제일 먼저 벗어난 사람은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양쪽 치마 끝을 살짝 올리며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라이거 가문의 샤를 라이거가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인 아샤 쇼페라님께
인사 올립니다."
"샤를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울먹임과 동시에
아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주인 내가 아닌 어머니께서 예를 올리는 것은
가주에 대한 예의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예와 함께 전한 마음이
가문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전하는 뜻임을
모두가 알고 느꼈을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아샤님의 염원을 이루고
쇼페라 가문의 명예를 찾을 것을..
`네 기둥` 가문의 한 사람인
저 펠리스 라이거가 맹세합니다."
고개를 숙인 상태로 말을 잇는 아버지에게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분노하고 있었다.
가문의 무능력했음에,
자신의 무능력했음에,
왕실과 테슬린 가문의 행실에,
쇼페라 가문의 안타까움에 분노하고 있었다.
결국 아샤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와 에르제가 아샤를 달래기 위해
회의실을 벗어나 있는 동안
나를 포함한 모두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돌아온 진정된 아샤와 그녀만큼 눈이 부은
어머니와 에르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대공작의 권한으로
아샤에게 쇼페라의 성을 내리며.."
아샤가 쇼페라 가문의 의지를 이었다고
우리끼리 그녀를 `쇼페라` 라고 부르는 것과
공식적으로 성을 내리고 하나의 가문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후작의 작위와."
대공작, 공국의 왕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나는 공작 이하의 작위를
왕실의 허락 없이 내릴 수 있었다.
"전 베로니카 가문의 영지와
주인을 잃은 서부의 영지를 내린다."
이제 다시 세상에 나온 쇼페라 후작과 함께
라이거 기사단의 단장인 아키 에이즐은
영지가 없는 단승 작위인 후작에 올랐다.
"라이거 영지 전체를 수호하는 기사단의 단장에게
영지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닌 그 영지의 영지민들을
더 아껴줄 이가 필요합니다.
또한, 저에게는 가문을 이을 자식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키 단장은
영지도 계승 작위도 받지 않았다.
전 마노 영지, 현 아드린 영지를 다스리는
이카인 아드린도 후작의 작위를 받으며
예전 남부 귀족 연합의 영지 일부가
그에게 편입되었다.
이렇게 세 명의 후작이 정해지고
세 명의 백작이 이어서 정해졌다.
전 파실리온 백작령을 다스리던
폴리아리스 자작이 백작으로 승작되고,
아드린 후작에게 편입된 영지를 제외한
남부 귀족 연합의 영지가 완전히
`라리스` 영지로 편입되었다.
아샤가 총관으로 있던 `샤라아` 영지는
부총관 도미니크 교수가
백작위를 받으며 다스리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서부 귀족 중
가장 먼저 충성 맹세한 가문이자,
라이거 가문이 힘든 시기에도 우호적이었던
자브레 가문이 백작 가문이 되었다.
자작 이하로는 검,창,방패의 마을을 총괄하는
메튜가 자작이 되어 그곳을 여전히 관리하고
세 마을의 대표가 남작의 작위를 받고
메튜를 지원하게 하였다.
그리고 원래 폴리아리스 영지를 관리하는
폴리아리스 후작의 첫째 딸의 남편에게
왕국의 자작위가 아닌 대공령의 자작위를
`퀘시오`라는 새로운 성과 함께 내렸다.
메이는 라이거 대공 가문의 시녀장에 오르며
나의 이름과 라이거 가문, 나폴레이의 이름을 딴
`카라레이` 라는 성과 함께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곧 결혼 예정인 나폴레이의 배려였으며,
그는 결혼 이후 아내의 성을 따
나폴레이 카라레이가 될 예정이었다.
별채 시절부터 함께한 릴리와 데이지에게도
준남작의 작위가 내려지는 것을 끝으로
승작이 끝이 났다.
"그럼. 순서가 바뀌었지만
첫 번째 안건이었던 교역에 관해 회의하겠습니다."
*
라이거 영주성에서 승작의 기쁨을 안고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 때,
홀로 앉아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이가 있었다.
"호호호 자기들끼리 다 처먹는 구나.."
"왕녀님.."
"왜? 왕녀의 입에 담기 힘든 말이라고?"
"왕녀님.."
"됐어! 왕녀는 무슨! 내가 왕녀이기는 하니?"
라이거 가문의 보호를 받는
3왕자 라이 일라인과, 2왕녀 릴리 일라인의
존재를 모르는 1왕녀 로즈 일라인은
동복의 동생인 제이슨이 왕이 되고도
유일하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무시당한 왕실의 핏줄이었다.
왕국 최초의 여왕을 꿈꾸던 그녀는
격하게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여왕의 꿈이 날아가 버렸다.
어머니인 헤이라스 왕비는 아들인
제이슨만 눈과 마음에 담았고,
무슨 영문인지 외가라고 할 수 있는
테슬린 공작 가문이 동생의 편에 섰다.
제이슨을 잡아먹을 틈을 노리던 제퍼드는
제이슨이게 꼬리를 말고
신성국을 입에 담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충실한 개인 두 가문이
제이슨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제국 연회 이후 너무 빠르게 흘러버린 시간 앞에
로즈 왕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인 제이슨이 자비처럼 인정해준
왕녀라는 신분 밖에 그녀에게 남은 것이 없었다.
이제 그녀는 여왕이 아닌
누군가의 부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왕녀의 신분에 걸맞은 상대는
대공이 된 카온 라이거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