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40화 (140/201)

〈 140화 〉 라이거 가문의 깃발을 꽂고 싶어지니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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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라이거 가문의 깃발을 꽂고 싶어지니까..

제이슨 왕은 자신이 왕이 된 날보다

오늘이 더 기분 좋았다.

제국 연회 이후 어머니인

헤이라스 태황후가 아버지를 감금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음흉한 테슬린 공작이 숙이고 들어오면서

왕위에 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왕위였지만 제이슨은 불만이 많았다.

언젠가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동생 제퍼드에게 공작의 작위와

아직 왕실의 소유가 되지는 않았지만

신성국의 영토를 내줘야 한다.

단순히 예전 남부 같은 곳이었다면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곳에서 평생 살라고 생각하며 내어줄 수 있지만,

옛 신성국의 영토는 신성국이 그동안

중재자로 활용했을 뿐이지만

대륙 전체로 봤을 때 각 국가 간의 교통의 중심이고,

군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다.

게다가 제퍼트가 그 땅을 받으면

공국이 될 예정이기도 했다.

이 나라의 주인임에도 아직 만져보지도 못한 땅을

동생에게 내어준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제퍼드 보다 더 화가 나고 불만스러웠던 것은

라이거 가문이었다.

일라인 왕국의 역사에는 없지만,

대공작의 작위는 보통

왕실의 핏줄 중 왕위에 뜻이 없으면서,

상당한 업적을 이뤘거나 그에 걸맞은

임무를 맡는 자에게 내려지는 작위였다.

그런 작위를 일라인의 핏줄도 아닌

라이거 가문이 가져갔다.

제이슨은 `네 기둥` 가문이라는 자체를 싫어했다.

카온이 왕성을 찾아와

`네 기둥` 가문을 운운하는 순간부터는

그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천 년 전, 네 명의 시조들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관계가 어땠었고, 어떻게 왕국을 건국했는지는

제이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이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 되었든 왕국이 건국되었고

초대 왕이 일라인 핏줄이라는 것과

남은 가문은 일라인 가문에 충성하는

신하라는 것이었다.

고작 신하 가문,

그것도 겨우 고위 작위 끝에 있는 백작 가문,

게다가 가주도 아닌 후계자 따위가

왕국의 주인이 될 자신에게 하대하고

훈계하듯 입을 놀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가문이,

그런 카온 라이거가 대공작의 작위에 올랐다.

남부와 서부가 그 가증스러운 카온의 손에 들어갔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왕위에 오르는 대신,

자신의 것이 되어야 했던 신성국의 영토는

잠시 스치고 갈 뿐, 제퍼드의 것이었고,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남부와 서부는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결정은 제이슨 자신이 내린 것도 아니었다.

결정의 주체인 테슬린 공작과 어머니께

불만을 표현했지만, 돌아온 말은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하라.`라는 말과,

`언젠가 너의 것이 될 것이다.`라는 말 뿐이었다.

겨우 겨우 `지금 당장` 모든 결정을 번복하고

모든 것을 손에 쥐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같은 어머니를 둔

누이 로즈 왕녀가 방문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떨지 모르지만,

자신은 누이가 왕위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자인 주제에 왕위에 욕심내는 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적이나 다름없었던

제퍼드가 공작이 되는 과정에서도

동복누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왕녀라는 신분만 남은 정치적 도구의 여자.

제이슨이 생각하는 로즈 왕녀의 전부였다.

`축하해.`

`왕실의 예법은 접어두고라도..

적어도 `축하해`가 아닌 `축하드립니다.`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나는 너에게 거슬리는 존재일 뿐이잖니?`

주제도 모르고

아직 도도한 누이에게 한 소리 하려는 순간

이어지는 로즈 왕녀의 말에 입을 닫은 것은 물론,

머릿속이 환해졌다.

`나에게 국정의 일부를 맡길 것 같지도 않고,

나에 대한 견제를 넘어 라이 왕자나 릴리 왕녀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도 싫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라이거 가문의 비어있는 대공자비의 자리

나에게 줘.`

로즈 왕녀를 치워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왕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라이거 가문을 감시하기에 딱 좋았다.

라이거 가문이 대공작에 오르며

공국과 맞먹는 권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지만

결국 일라인 왕국의 신하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은 `부탁`이 아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왕이다.

그래서 여유롭게 앉아있는 카온을 향해

자신 있게 명을 내렸다.

"왕실와 대공가를 위해 내 누이인 로즈 일라인과

카온 라이거 대공의 결혼은 명한다."

"싫습니다."

감히 조금의 생각과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감히 왕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내린 왕명을 거절했다.

"거절이라 하였느냐? 감히..!"

"대공자비..

특히 라이거 가문의 안주인으로는 부족하군요."

대공자비로서의 자질을 운운하고 있다.

왕국 최고의 미녀로 소문난 여자이자

자신이 견제할 만큼 똑똑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조건 중 최고인

왕녀라는 신분까지 가지고 있는 로즈 왕녀를 상대로

자질을 운운하고 있었다.

"하? 가소롭군. 왕국 최고의 미녀이자!"

카온의 찻잔에 가려진 미소를 보지 못한

제이슨이 말을 이었다.

"왕녀로서 왕국 최고의 소양과 예절!

품위를 가졌거늘! 감히 왕인 내 앞에서

나의 핏줄과 왕실을 평가한단 말인가!?"

"왕국 최고의 미녀라고 했습니까?

글쎄요.. 제가 리아 단장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제 눈이 높아졌을 수도 있고..

여자의 미모에 관해 관심이 없는 저라

그 말에 혹하지는 않는군요."

리아가 로즈 왕녀 이상이 미녀라는 것은

제이슨도 인정했다.

그래서 눈이 높아졌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미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미녀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는 것이

미녀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품고 보는

제이슨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왕녀의 비교 대상이 귀족도 아니고 평민이다.

평민인 것도 어이없는데 하필이면 여기사다.

제이슨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남자에게 고분고분하고, 사교와 예법,

자수와 꽃꽂이, 드레스와 보석을 가까이하며,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땀 흘리며 수련하고,

검을 들고 전장을 누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귀족도 아닌 평민에 여자 같지도 않은 여자가

고귀한 핏줄인 왕녀의 비교 대상이 된 것이 불쾌해

입을 열려는 순간,

카온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것이 빨랐다.

"네.. 그러시겠죠.

왕녀이니 왕녀로서 어느 귀족 영애보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겠죠."

당연했다.

왕실의 예법은 왕국 최고의 예법이었고,

왕녀는 최고의 스승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받았다.

"전하께서 로즈 왕녀를 시집보내고 싶으면

그런 것들이 필요한 곳으로 시집보내면 됩니다.

또한, 로즈 왕녀도 시집이 가고 싶으면

그런 것들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 시집가면 됩니다.

어차피 전하나 로즈 왕녀도

`마음`이 결혼의 기준이 아니시니 하는 말입니다."

아주 잠깐의 침묵을 먼저 깬 것도 카온이었다.

"높은 신분, 사교계에서나 환영받을

그런 것들`만` 있는 여인은

라이거 가문에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제외한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하는 제이슨이었다.

"왕녀께서는 적이 침입하면 앞장서서

영지와 영지민을 지킬 수 있습니까?"

"가문의 안주인은! 검을 들고 싸우는 이가 아니다!"

"좋습니다. 그럼 왕녀께서는 영지민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말을 직접 듣고,

발로 뛰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제이슨은 카온의 말을

로즈 왕비를 맞이하기 싫어 내뱉는 개소리라 생각했다.

밖의 일은 남자의 일이며, 안의 일은 여자의 일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는 것은 남자들이고

전쟁 기간 동안 가문을 돌보는 것이 여자였다.

가문의 안주인은 영지민들의 위에서는 존재이지

그들과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미천한 평민들의 말은

아랫것들이 듣고 전하는 말이었으며

문제의 해결 또한 서류면 충분했다.

우아한 귀부인을 버리고 앞장서서

영지와 영지민을 지키는 안주인은 없다.

고귀한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미천하고 무지한 평민들과 어울리는

안주인은 없다.

이것이 제이슨이 여기는 당연함이었다.

"하! 왕녀를 맞이하기 싫다는 뜻을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돌려 하는가?

그런 귀족은 귀족이 아니며,

훌륭한 안주인으로서 가치도 없다!"

"네. 그러니 싫다는 겁니다.

라이거 가문에는 전하께서 생각하는 귀족과

전하께서 생각하는 훌륭한 안주인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몇백 년 만에 찾아온 남부의 평화를

검과 마법을 앞세운 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리아같은 대공자비가 필요하고,

평민을 이해 못 하는 자들이 올린 서류에 서명하며

영지민들의 삶이 따위는 상관없이

오로지 가문을 위하여 쓸데없는 사교계에서

드레스와 보석을 자랑하고,

가문의 권위를 등에 업고 설치는 대공자비가 아닌!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고

가문과 영지, 영지민을 위해서라면 평민,

아니! 천민에게도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에르제 폴리아리스 같은 대공자비가 필요합니다."

제이슨은 자신의 가치관과

정반대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그 둘을 대공자비로 맞이하겠단 말인가?!"

"맞이하겠다는 것이 아닌 이미 맞이했습니다.

한 달 뒤 저의 즉위식과 함께

그 두 여인과 결혼합니다.

초청장이 오지 않더라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왕실은 물론 동부, 북부, 중앙의 귀족들과는

초대장을 보낼 만큼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대공작의 결혼식에 왕실을 초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왕실은 물론 왕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인정할 수 없다!"

"라이거 가문은 그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습니다."

"라이거 가문은 일라인 왕국의 신하다!"

카온이 느긋하게 자리에게 일어났다.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카온의 시선에

예전의 공포가 되살아 나는 듯했지만

꿋꿋하게 제이슨은 카온을 마주했다.

"제이슨 일라인 국왕.

그토록 하고 싶었던 왕 노릇은

그대가 기르는 개들과 하게.

아.. 그대 또한 한 마리의 개일 뿐인가?

테슬린 공작의 개."

"감히!"

"그리고. 같잖은 명령하지 말게.

지금 당장 이 왕성에

라이거 가문의 깃발을 꽂고 싶어지니까.."

접견실을 나가는 카온의 뒷모습에 제이슨은 분노했다.

여유롭게 등을 보이는 카온에게 장식이나 다름없는

`왕의 검`이지만 찔러 놓고 싶었다.

당장 카온의 무릎을 꿇리고

사지를 찢으라고 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랬듯

제이슨은 카온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카온이 떠나고 두 시간 뒤.

테슬린 공작이 제이슨 왕을 찾았다.

"전하. 카온 대공에게

로즈 왕녀와의 결혼을 명하셨다 들었습니다."

카온과 대화를 나눈 접견실에는 분명

카온과 제이슨 둘만 있었음에도

대화의 내용을 아는 테슬린 공작을

의심했어야 했지만, 카온에 대한 분노로

생각의 길의 막혀버린 제이슨이었다.

"리아라는 평민 기사년과

남부 남작 계집인 에르제 폴리아리스를

대공비를 맞이한다고 하더군."

"전하. 지금은 라이거 가문 따위를

신경 쓰실 때가 아닙니다."

가장 거슬리는 라이거 가문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제이슨이 공작을 노려보았다.

"왕녀님의 짝으로

카온을 생각하셨던 것은 하책입니다.

`네 기둥` 가문이라는 명예에 일라인의 핏줄까지

더해지는 결과를 낳을 뿐인 겁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제이슨은 입을 닫았다.

"이것을 보시지요."

테슬린 공작은 포이든 왕과 맺은

조약이 적힌 문서를 제이슨에게 건넸다.

"이것이 진실이오?!"

"네. 라이거 가문은 건드리지 않으면 됩니다.

지금은 제국이 사라지고 난 뒤 전하께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참전은 왕국의 이름으로

테슬린 가문이 책임지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전쟁의 불안으로 힘들어할 백성들을

굽어살피시어 승전국의 명예와 함께

백성들의 민심을 얻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라이거 가문은

신성국의 영토를 전하께 바칠 것이고

제퍼트 공작에게 영지를 하사하며 충성을,

로즈 왕녀를 두 왕국 중 하나에게 시집 보내

더 단단한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이거 영지도

제가 전하의 품에 안겨드리겠습니다."

카온에 의해 죽어가던 눈빛이

되살아 나기 시작하는 제이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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