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누군가의 손에 놀아 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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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누군가의 손에
놀아 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질 좋은 철광석과 미스릴, 식량,
자금, 기술을 제가 제공하죠."
불쌍하고 힘없는 제국의 백성들을 떠나서
제국이 진정한 피해자라면 칠흑 기사단과
정예 병사들을 파견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국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자처하는 나라일 뿐이라
그들을 위해 우리 기사들과 병사들이
피 흘리게 하기 싫었다.
"저를.. 어떻게 믿으시고.."
"당연히 후작을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제가 드린 지원으로 그동안 억압받던
제국의 동부를 독립시키든,
그 지원으로 제국의 황제 자리를 차지하든,
그대로 황제에게 가져다 바치든,
이번 전쟁에 쓰든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고 하셨습니까?"
"네. 이런 혼란 속에서
제국은 동부의 독립을 막을 수 없겠죠.
하지만 제국의 동부 또한 두 왕국,
아니 세 왕국의 목표일 뿐입니다.
즉. 독립하든 하지 않든,
황실과 동부는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후작이 이끄는 동부군이
제국군에 속해 싸우는 것보다
동맹국으로 싸우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입니다."
제국은 크게 서부의 `세력`,
황실이 있는 중부는 `정치`,
후작이 있는 동부의 `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힘의 원리가 적용되는 전쟁에서 독립된 동부는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가질 것이고
세력 싸움만 하던 서부 귀족들이나,
황족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황실이
전쟁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전쟁이 터지기 전 동부의 강한 무력으로
먼저 황실을 차지하는 것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황제에게 바쳐도 상관없습니다.
황제라는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으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쯤은 황제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뭐.. 당연히 제국이 똘똘 뭉친 상태에서
제가 드리는 지원이 힘이 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아.."
내가 생각하는 후작의 선택은 독립이지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제국이 이번 전쟁에서 이겨주기만 하면 된다.
"저를 이기적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영지와 영지민들이니까요."
"아닙니다.
대공의 지원이 수많은 제국민들을 살릴 겁니다."
후작에게 칠흑 기사단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건넸다.
"제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옛 신성국의 관리상으로 가셔서 서류를 보여주시면
지원금과 품목들을 내어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서류를 품에 넣은 후작이 접견실을 떠났다.
우리 사이에 무의미한 전쟁 후의 논의는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후작이 찾아오고
3개월이 흘렀다.
영지민들의 축하를 받으며 즉위식을 마쳤으며
리아와 에르제는 대공비에 올랐다.
일주일의 축제 뒤에 가문과 영지는
빠르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 갔지만
몇 가지 변화도 있었다.
가문 내부적으로는
부모님께서 별채로 들어가셨다는 것과
대공비인 리아가 칠흑 기사단과 라이거 기사단은 물론,
모든 병력을 통솔하게 되었으며,
대공비인 에르제는 아카데미와 휴대구 사업을 제외한
모든 가문의 권한을 받았다는 것이다.
외적인 부분에서는 교역을 완전히 개방했고,
몬스터 숲의 모든 몬스터를 토벌되면서
`라이거 숲`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개발되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 변화를 가져가는 라이거 영지와 달리
영지 경계선 너머로는 시끄러웠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은 제국 동부의 반란이었다.
바렌 수아르 후작의 첫 번째 선택은
황제에게 자금과 보급의 사실을 알리고
함께 힘을 모으자고 회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제국의 힘을 너무 믿었던 황제는
후작이 가져온 지원을 모두 강탈하려 하였고,
이에 화가 난 후작이 반란을 일으켰다.
원래부터 제국 최강이라는 전사들에
뛰어난 무기와 풍부한 보급이 더해진
동부 연합군은 제국의 황실을 향해 진군했다.
이틈을 이용하고자 두 왕국의 왕이 모여
회담을 열었지만, 막상 때가 되니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 싶었던 두 왕 때문에 회담은 길어졌고,
제국 동부 연합군은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제국을 장악한
동부 연합군의 사령관인 바렌 수아르 후작은
새로운 제국을 알리기도 전에 중요 병력을
피오네 왕국의 국경과
포이든 왕국의 침략 예상지인 해안에 배치했다.
혼자 잘난 황실이 이끄는 제국이 아닌
전사의 제국의 된 카이젠 제국을
당장 상대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한 두 왕국은
군사 동맹을 선포하며 언제든 제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을 내보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주인이 바뀌면서 더 강해진 제국과
아직도 제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두 왕국 사이에서
일라인 왕국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
라이거 대공성의 대회의실.
"각하. 테슬린 공작이
카이젠 제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제 당분간 대륙이 조용하겠군"
의욕과 말만 앞서던 두 왕국의 왕이
제국 전사의 이름 앞에 먼저 겁먹고 움츠려버렸다.
그런데도 제국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숨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제국의 병력은 여전히 두 왕국보다 부족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도 월등했고,
질적인 부분을 따라가지 못하면
양적인 부분에서 찍어 눌러야 했다.
그 병력의 양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이미 단 한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
자국에서 가능한 병력을 모두 차출했다.
내부가 힘들면 외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고,
두 왕국 입장에서 그 외부는 일라인 왕국밖에 없었다.
제국보다 먼저 두 왕국의 검이 향할 것을 예상한
테슬린 공작과 왕실의 선택지는
라이거 대공령과 카이젠 제국 둘 뿐이었다.
역시 그들의 선택은 라이거 대공령이 아닌
카이젠 제국이었다.
"제국 황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고..
두 왕국이 그렇게 겁쟁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아키 단장의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와 저도 반란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토록 빨리 제국군이
무너질 거 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이의 말처럼 나도,
미리 나와 이견을 조율했던 나폴레이도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 못했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지.
잘된 일이야.
우리에게는 큰 자금과 자원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겠지.
제국을 무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왕실과 테슬린 공작이 제국과 손을 잡으면
두 왕국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거야."
새롭게 황제가 된 바렌 수아르 후작은
테슬린 공작이 방문을 알림과 동시에
라이거 가문으로 연락을 했다.
`테슬린 공작이 동맹을 원하는 듯합니다.`
`받으세요. 단..
힘을 합쳐 어디를 공격하자거나,
어느 영토를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태 달라거나 하면
거부하시고, 오로지 방어와 경제,
백성들을 위한 동맹만 하십시오.
자금은 우리가 지급하겠습니다.`
`그럼 왕실과 테슬린 가문의 배만 불러 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제국에서 감시관을 파견해야겠지요.
일라인 왕실은 제국에 줄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받기만 할 뿐이죠.
감시관은 저희 쪽 사람을 심으시죠.`
`아!`
제국과 라이거 가문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었고
곧 제국과 일라인 왕국은 동맹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라이거 가문의 자금으로 왕실과 테슬린 공작,
다른 귀족들의 인력을 이용해
일라인 왕국을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제국 황제의 입에서 일라인 왕국 제이슨에게
전달될 우리의 첫 번째 의견은
피오네 왕국이 심어 놓은 역사 왜곡과
문화와 경제를 움직였던 자금을 몰아내는 것이다."
피오네 왕국은 오랫동안 일라인 왕국 역사의 일부를
자신의 것이라 왜곡했으며,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일라인 왕국 전통문화를
교묘하게 피오네 왕국의 문화로 변질시킨 것도 모자라
그 근본이 피오네 왕국에서 온 것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예술과 공연, 책등을 통해
피오네 왕국의 사상을 퍼뜨렸으며
돈을 이용한 회유와 강제를 통해
왕성은 물론 일부 가문에 피오네 왕국의
사상이 못 박힌 이들을 심어 놓기도 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일라인 왕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상도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는다.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면
맑을지는 모르나 발전은 없다.
마탑이 지식을 열지 않았다면,
정보의 전달에 말과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고집했더라면 휴대구는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정치, 경제, 문화, 사상도
기존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시대의 맞는 정치, 시대와 사람에 맞는 경제,
옛것을 존중하고 옛것과 새로운 것을 융합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문화,
너와 내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상.
과거와 현재, 미래의 효율적인 융합이 `발전`을 이룬다.
하지만 일라인 왕국은 발전이라 할 수 없었다.
고여서 썩기 시작한 일라인 왕국에
`피오네 왕국은 최고`라는 사상이 유입되고
그 사상과 자금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가 멍들어 갔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빼앗기고 무시당했음에도
피오네 왕국의 사상에 물든 세력들이
한번 짖으면 꼬리를 말고 굽신거렸던 것이
일라인 왕국의 귀족들이었다.
역사와 문화, 백성의 사상을 판
대가로 받은 보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배를 불렸던 것이 일라인 왕국의 귀족이었다.
피오네 왕국의 사상에 물든 왕실과 귀족들,
포이든 왕국에 꼬리를 흔들던
테슬린 공작 가문과 동부 귀족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중앙 정계를 운영하고 있으니
일라인 왕국은 망국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든, 피오네든, 포이든이든
각국의 문화와 사상은 존중받아야 하며
왕국의 발전과 백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작태는 일라인 왕국의 사상과 문화,
경제를 말살 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의 일라인 왕국을 만드는 것은 왕실과
왕실을 좌지우지했던 테슬린 공작 가문이다.
나는 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찬양하고 떠받들었던 것들을
몰아내게 하고자 한다."
"각하의 명을 받습니다!"
*
곧 수아르 제국의 황제가 될
카이젠 제국의 새로운 황제
바렌 수아르 전 후작을 만나고 나온 테슬린 공작은
자기 손에 들린 서류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젠장!"
`동맹이라.. 동맹..
제국을 향해 검의 끝을 겨누려고 했던
일라인 왕국과의 동맹이라.. 공작.
그대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오?`
`본 제국과 일라인 왕국이 동맹을 맺어
대륙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대의 왕국이 괘씸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하지..`
`하오면..`
`단`이란 전재가 붙었고 테슬린 공작으로서는
모든 조건에 왕실의 인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이 또 지랄하겠군.."
포이든 왕국에 꼬리를 흔들다가 배신당했고
이번에는 자신이 배신하는 입장인 공작으로서는
크게 피해를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피오네 왕국을 대국으로 여기는
선왕 만큼은 아니지만, 제이슨 왕도
피오네 왕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인물임은 분명했다.
피오네 왕국이 자신이 왕으로 있는 왕국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오네 왕국의 자금으로 만든
상단에서 나오는 돈으로 사치를 하고,
왕국의 역사서에 나오는 지식보다
피오네 왕국에서 발간된 일라인 왕국의 역사를
더 믿는 자가 제이슨 왕이었다.
그런 왕에게 왕국 내에서 피오네의 모든 것을
지우라는 제국의 뜻을 전해야 했다.
피오네를 지우지 못하면 제국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제국의 도움 없이는
두 왕국 사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하.. 동부의 반란이라.. 허허"
제국의 동부가 반란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예상 못 했다.
게다가 그 무식한 전사들이 질 좋은 병장기로 무장하고
척박한 땅에서 그 정도로 훌륭한 보급품을
비축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멍청한 황제 새끼! 잘난 척은 그렇게 하더니!"
세상을 가진 척, 세상의 중심인 척,
만인의 위에서 군림한다고 믿었던
제국 연회에서 보았던 오만한 황제의 목은 아직도
황궁의 관문에 매달려 있었다.
"후.. 어쨌든 시간은 벌었느니 힘을 길러야 해.."
제국이 일라인 왕국의 편에 서면서
당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두 왕국의 일차 목표가 이제는 제국이 아닌
일라인 왕국이 되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제국과의 동맹이 느슨해지기 전에 자신을 중심으로
통합된 일라인 왕국을 만들어야 했다.
"어쩌면 이 일이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군."
피오네의 후광이 사라진 왕실은
더욱 힘을 잃을 것이다.
힘을 잃는 것이 두려운 제이슨은
더욱 발악할 것이고,
발악하면 할수록 더 망가질 것이다
"일라인을 끌어 내리기 전에
라이거와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겠군.."
테슬린 공작은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하는 동안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는 와중에
문득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체스터."
"네. 주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아?"
"이상한 기분 말씀이십니까?"
"그래.. 누군가의 손에
놀아 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새 황제의 조건이 주군께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그럴 겁니다."
"그것부터 이상해.. 왜 굳이..
그리고 마치 준비된 것 같지 않았어?"
"황제 곁에 뛰어난 책사가 있고 미리 준비한 것이라면
피오네의 것을 지우면서
제국의 것을 심어 놓으려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떤 조건에도 제국의 것을
받아들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주군께서 포이든과 등을 돌렸듯
왕실도 피오네와 등을 돌리라는 것과 같습니다."
"음.. 혹시 라이거 가문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아시지 않습니까.
라이거 가문은 건드리지만 않으면
일라인 왕국의 일에도 관심 없습니다."
"그렇지.. 내가 생각이 과한 모양이군.
돌아가서 테슬린 왕국에 대해 논의를 해보세."
"네. 주군."
포기를 모르는 공작은 자기만의 희망을 안고
공작령으로 텔레포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