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45화 (145/201)

〈 145화 〉 일라인 공국이 되고 말 거니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145. 일라인 공국이 되고 말 거니까.

고작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누구는 왕국의 근본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어서

썩은 것을 도려내려고 하는데

왕국의 다스린다는 왕이,

왕국을 운영한다는 귀족들이

고작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기가 차고 화가 나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기가 찰수록, 화가 날수록

나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두 귀족이 떠든 말들이

테슬린 공작의 머리에서 나왔다면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실망이었을 것이다.

왕국의 상황도, 대륙의 상황도,

왕국도, 제국도, 피오네와 포이든 두 왕국도,

자금도, 마탑도, 그들이 이용하려고 하는

나와 나의 가문도, 무엇보다 영지민이나

백성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로지 왕이라는 신분의 위신과

테슬린 가문과 라이거 가문의 위에 서고 싶은

왕의 욕심과,

무엇이 어떻게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 채

자신의 부와 명예만 생각하고,

자신이 손에 쥔 것은 놓지 않으면서

다른 가문을 통해, 다른 이들을 통해,

다른 이의 가진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북부 귀족들만 있었다.

"대공님! 전하 앞에서 무슨 무례이십니까!?"

*

뚝.

뚝 하고 카온 대공의 웃음이 멈췄다.

북부 귀족이라는 이유로

처음으로 왕성 대회실 앞자리에 앉은

아셔 카르엘 남작은 웃음기가 사라진

카온 대공의 눈빛에 바지가 자신도 모르게

축축해지지 않았나 만져보아야 했다.

카르엘 가문.

왕국의 `네 기둥` 가문 만큼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귀족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남작 가문이었다.

카르엘 가문은 시조가

일라인 왕국 역사의 보존하라는

왕의 명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역사의 보존이라는 임무에는 명예만 있을 뿐,

부와 성공은 없었다.

하지만 카르엘 가문은 과거에는 충직한 신하로서,

지금은 과거의 명을 어길 수 없는

잊혀진 신하로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는 영광과 상처, 행복과 눈물이란 이름으로

점점 잊어가고,

행복한 현재라면 더 행복한 미래를,

불행한 현재라면 이제는 행복해질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

이렇듯, 천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일라인 왕국도

과거의 역사는 점점 잊혀지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꿈꿨다.

시대와 시간과 사람의 흐름에 따라 기록되고,

기록되어가던 역사가 음모와 욕심, 정치가 개입해

비틀려져 버렸다.

역사라는 나무에 병균이 침입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질 잎이나

쉽게 잘라 낼 수 있는 가지가 아니라

뿌리로 바로 침입했다.

나무 기둥의 색이 변하고 줄기의 색이 변했으며

잎과 꽃의 모양이 변해갔다.

그리고 점점 원래의 모습을 잊어갔다.

아셔 카르엘은 그것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이것을 안타까워하며 돌아가셨다.

일과 중 하나인 낡은 역사서를 읽고 있던 남작은

1년에 한 번 울릴까 말까 한 통신구의 신호에 놀랐고,

이어지는 새로운 왕의 공표에 더욱 놀랐다.

만나면 제국을 욕하던 다른 북부 귀족들과 달리

카르엘 가문은 영지민들에게 부족하나마

곡식을 풀었고, 가족들끼리 작은 파티도 열었다.

뿌리까지 병든 나무가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는 희망.

완전히 원래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병균을 `잡는 행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남작은

`희망`이란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제국이 왜 그런 조건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건 하나하나가 기가 막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고 가까이하는 것이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쉴 수 있는 집이다.

집이야 환경적으로 조금씩 다를 뿐

대륙의 양식이 비슷해 다른 왕국의

나무나 돌을 쓴다고 해도 표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입는 것과 먹는 것은 달랐다.

어느새 일라인 왕국의 전통 의복에

피오네 왕국의 양식이 스며들었고

이제는 젊은이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려 하고 있었다.

음식 또한 서로 분명 다른 것임에도

비슷하다는 이유로 파생된 음식처럼 변했고,

중심이 되는 음식은 늘 피오네 왕국의 음식이었다.

왕국의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가문이라 자부하는 남작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작이기에, 잊혀진 가문이기에,

힘도, 자금도, 인력도, 아무것도 없었기에

자기 아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리고,

자기 영지와 영지만 만이라도 바른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게 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작이 키우려 했던 희망이 같은 왕국의 귀족들에 의해

꺼지기 직전까지 왔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귀족들은

자신의 부와 안위만 위한 의견을 제시했고

누구보다 왕국의 역사를 바로 알고 지켜야 하는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의 불을 완전히 끄는 왕의 선언이 나오려는 순간

잠자코 있던 카온 대공이

허리와 고개를 숙여가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감히 대공의 웃음을 막는 외침이 나오자

웃은 것은 모두 지금을 위함이라고 말하듯

대공의 웃음이 끊겼다.

"제이슨 전하. 포이든 왕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마법 병기의 개발과 생산에 드는 비용은 있으십니까?"

"당연히!"

"그럼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예산은 얼마이며,

개발에서 생산, 배치까지 걸리는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그리고 어디 어디에 배치하실 겁니까?"

남작은 카온 대공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왕이 바뀌고 새롭게 북부 귀족이 된 그의 말처럼

마법 병기가 개발되고 해안선에 배치되면

포이든 왕국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개발이 되어야 하고, 생산되어야 한다.

개발과 생산을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이 근본적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었다.

또한, 개발되는 과정에 침략해 온다면?

마탑의 실력 있는 마법사들의 노력으로

개발이 빨리 되더라도

생산하는 과정에서 침략해 온다면?

주신 포르테임의 은혜로 무사히 생산까지 마쳤지만

배치하는 과정에 침략해 오고,

그 배치가 잘 못 되었다면?

마지막으로 포이든 왕국과 긴밀한 관계였던

테슬린 공작이나 동부 귀족들이 이 사실을 알린다면?

카온 대공은 이 부분을 꼬집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왕을 향하던 카온 대공의 시선이

의견을 제시했던 두 귀족과

남작이 있는 북부 귀족들의 자리로 향했다.

"전하를 웃게 한 의견 어디에도 북부 귀족 가문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더군."

"저희는 피해자입니다!

제국의 말도 안 되는 조건 때문에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부유한 남부의 주인은 모르실 겁니다!"

"피해자라.. 그대들이 왜 피해자지?

아니. 그대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일세."

"대공!"

"제국의 양식을 따른 옷을 입든,

피오네 왕국의 음식을 먹든,

포이든 왕국의 옷을 입고 음식을 먹든

일라인 왕국에서는 만드는 자의 자유고,

입고 먹는 자의 자유지."

"당연합니다!

그 당연한 것을 제국은 금지하는 겁니다!"

첫 번째 의견을 냈던 귀족이 벌떡 일어나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피오네 왕국의 의복과 음식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겠군."

"당연한 말씀입니다!

의복도 음심도 나름의 경쟁입니다!

과하지 않은 그것들의 경쟁은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이는 경제를 활성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천년의 역사를 가진 왕국의 북부 전통 의상이

6백 년의 역사를 가진 피오네 왕국에서 왔다는

그들의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이해가 잘되지 않는가?

그럼 다르게 물어보지.

피오네 왕국의 귀족이란 자가 왕국의 중심인 왕성,

그것도 왕국의 중요한 문제를 회의하는 대회의실에

피오네의 양식과 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을 그대는

일라인 왕국의 귀족인가

아니면 피오네 왕국의 사신인가?"

"그..야.. 당연.."

남작이 말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카온 대공이

고개를 또 다른 귀족에게 돌려 말을 이었다.

"왜 간단한 문제를 바로 답하지 못하는 건지..

그대에게 물어보겠네.

일라인, 테슬린, 라이거, 쇼페라.

이 네 가문은 일라인 왕국의 `네 기둥` 가문인가?

아니면 대륙 중부의 `네 가문` 인가?"

"..."

"왜 북부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대답일 텐데?

북부에서는 일라인 왕국을 건국한

`네 기둥` 가문의 시조님들이 피오네 왕국의

정통 복장의 양식을 더한 옷과 갑옷을 입고

평화를 위해 출정하기 전

피오네 왕가의 상징인 머리카락 색을 한 남자에게

예를 올리는 공연이 유행하지 않나?"

"아.."

대공의 입에서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남작의 탄식의 새어 나왔다.

자신의 탄식을 급히 손으로 막아 보았지만

이미 대공과 눈이 마주친 뒤였다.

예의 없는 자기 행동에 카온 대공은 질책 대신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향하던 그 미소도 잠시,

끼어든 북부 귀족의 말에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건.. 재미와 극적인.."

"재미라.. 그렇군..

피오네 왕국은 재미를 위해

일라인 왕국의 역사를 자신의 것이라 말하고,

아니라고, 다르다고, 근본은 우리의 것이라고

앞장서야 할 귀족들은 그 재미에 숨어

자신의 이권과 배만 불렸던 것이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말이 지나치다?

그럼 제국의 조건을 받아들여도 되는 것 아닌가?

제국이 피오네의 성격이 들어간

모든 것을 금지한다고 했나?

피오네와의 무역도 피오네 산 물건들의 판매도

금지하지 않았어.

피오네 왕국이 전통 문양을 근거로

자기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왕국의 전통을

자신들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헛소리를 하기에

그 전통 문양이 찍힌 것들만 금지한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본 문서와 내가 들은 전하의 공표가 틀렸는가?"

남작은 왕의 공표가 떠올라 무릎은 탁 쳤다.

근본적인 문제가 자유와 경제라는 원리에 감춰진 채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거였다.

"제국의 조건. 나만 환영하는 것인가?

역사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역사를 무시하고, 정확히 알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배를 불려주면 웃어주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면 거짓도 진실로 믿는

이 왕국의 귀족들 사이에 낀 잊혀지고 있는

카르엘 가문 하나만으로 힘들지."

아셔 카르엘 남작은 몸이 무너져 내렸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몇십 년 동안 쌓인 것들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단.. 왕실과 귀족들, 백성들이

하나로 똘똘 뭉친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라이거 대공령과 동부를 제외한..

아.. 동부는 포이든인가? 거..참..

아무튼 일라인 왕국은 피오네의 병균이

너무 많이 잠식되어있어.

왕실과 귀족은 썩어가는 달콤함에 고개를 돌렸고,

덕분에 백성들은 거짓을 진실로 믿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야.

강한 힘과 통제를 통해 강제로 도려내는 것.

그렇지 않다면.. 일라인 왕국은 피오네 왕국의 속국..

일라인 공국이 되고 말 거니까."

"카온 라이거!"

카온 대공의 말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던 왕이 벌떡 일어섰다.

옳은 말을 하는 대공과,

귀족이기에 충성을 바친 지금의 왕.

두 `네 기둥` 가문 후손의 비교됨에

남작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왕국의 일이다! 그대가 무슨 말을 하든!

결정은 왕인 내가 한다!

나 제이슨 일라인이 명한다!

테슬린 가문과 아비게일 가문은 마탑과 의논하여

마법 병기를 생산, 배치하라!

라이거 가문은 피오네 왕국의 침략에 대비해

병사를 보충하고 침략 방어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명한다!

양국과의 전쟁 시 총사령관은 왕인 내가 직접 맡겠다!"

무엇을 위한 명인지 모를,

아니, 왕실과 북부 귀족들만을 위한 명이

왕의 입에서 떨어졌다.

"전하의 명을 받습니다!"

문제의 핵심이자 가해자이면서

자신만 정당하고, 피해자인 척하는

북부 귀족들이 허리를 숙였다.

"전하의.. 명을 받습니다.."

"테슬린 가문은 명을 받지 않겠습니다."

왕실 개는 꼬리가 내려갔지만,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잠시 숨겨 두었던 반목의 이빨이 다시 드러났다.

"공작!"

"전하! 마탑은..!"

"라이거 가문에 소속되어있지요.

라이거 가문에 소속된 마탑의

실 결정권자인 카온 라이거는

왕실의 결정을 자치권을 이유로 거절하며."

"네 이놈! 너는 일라인 왕국의..!"

"라이거 대공가는 왕국에 위기가 닥치면

왕의 명을 받는다는 조건이 있지만,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있음에도

인적, 물적, 금전적 자원의 낭비와

이에 따른 더 큰 위기를 자초하기에

조건에 어긋나지 않는바.

이 또한, 명을 거부합니다."

말을 마친 카온 대공은 노려보는 왕을 향해

시원한 미소를 남기고 회의실을 떠났다.

왕국의 역사를 지키려는 자와

역사와 전통, 문화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안위와 명예를 중요시 하는 자 중

누구의 손을 잡고, 누구를 따라야 하며,

자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 남작은

이미 떠나버린 카온 대공의 뒤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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