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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52화 (152/201)

〈 152화 〉 함부로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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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함부로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리아가 성도 라이거 저택에 나타나자

마침 청소 시간이었는지

놀란 집사와 시녀들이 청소 도구를 떨어뜨렸다.

"라이거에 영광을.

리아 라이거 대공비 각하를 뵙습니다."

전대 가주 부부와 함께

라이거 성을 지키고 있는 에르제에게 연락받았는지

저택의 집사 휴거가 급히 달려와 리아를 반겼다.

"휴거 집사님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제가 갑자기 나타나

여러분들을 놀라게 해 미안해요."

"대공비 각하. 제발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집사가 울상이 되자 평소에 잘 웃지 않는 리아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집사, 시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얼굴이 터져나갈 것처럼 붉어졌다.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노력해 보겠네."

신분이 상승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이 리아였다.

리아라는 이름 뒤에

점점 망하게는 라이거가 아니라

무려 대공작의 라이거가 붙었다.

리아는 결혼식 다음 날부터 자신을 향해

`대공비 각하`하는 호칭과 함께

예를 올리는 대공령 사람들을 보자

오우거를 상대 할 때도 없던 두려움이 생겼다.

귀족의 예법을 전혀 모르는 리아였다.

귀족 영애들이 예법을 익히고,

자수와 예술, 사교와 춤을 배우는 동안,

리아는 목검으로 시작해 진검까지 들었다.

귀족 영애들이 어릴 때부터 배운 것들을 무기로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리아는 기사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부로 가려 했으며, 가는 도중 카온을 만나

기사가 되고 몬스터 숲과 전장에서 활동했다.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집사나 시녀들을 향한 하대가 익숙한

귀족 자제들과 달리,

리아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칠흑 기사 단원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하대가 불편했다.

대공비 두 사람 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대공비의 옷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수한 드레스지만,

이조차도 리아는 불편했다.

이런 자신의 고민을 먼저 알아봐 준 것은

역시나 카온 이었다.

`부인. 고민이 있소?`

카온의 정중한 말조차 어색했던 리아는

솔직히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부인. 누가 부인에게 귀족다움을 말하였소?`

전담 시녀를 비롯한 사용인들에게

말을 낮춰 줄 것을 부탁받는 것 말고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었다.

심지어 `네 기둥` 가문의 피가 흐르는 시아버지와

비록 평민의 피가 흐르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고 귀족다운 시어머니도

자신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는, 에르제도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에게 귀족다움은 무엇인지..

가문의 안주인은 무엇인지..

대공비의 역할은 무엇인지..

남편을 모시는 부인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제 갓 눈을 뜬 아이가 이런 기분일까요..

이제 갓 무언가가 들리기 시작한 아이가

이런 기분일까요..`

자꾸만 바닥으로 향하는 고개를

바로 잡아 준 것도 카온이었다.

`부인. 귀족답다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남자는 정치, 경제, 사업의 눈이 밝아야 하고..

여자는 문화와 예술,

사교 같은 것이 뛰어나야 하는 것?

공통적으로 돌려 말하는 것에 능통하고,

자신의 감정과 표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한?

물론, 이런 것들이 귀족들이 말하는..

귀족다움이기는 하죠.

하지만 부인. 이는 다르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를 잘하는 이가 귀족이었을 뿐입니다.

왕국 경제를 발전시킨 이가 귀족이었을 뿐입니다.`

카온의 말이 이어질수록 리아의 눈이 점점 커졌다.

`사업에 능통한 이가 귀족이었을 뿐이고

문화와 예술을 이끌어가고

후원하는 이가 귀족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오가는 곳이 사교계일 뿐이며

그 사교를 이끄는 것이 귀족일 뿐입니다.

그런 귀족들의 정점에 지금 부인이 있습니다.

이는, 부인의 말과 행동이 귀족다움이 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부인께서 지금 당장 귀족들 앞에서

길가의 돌멩이를 찬다면,

그 행동이 귀족다움이 되는 겁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귀족다움을 말하는

남편이자 주군의 말속에 담긴 속뜻은,

오만방자하게 굴어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닌,

당당하고 떳떳해지라는 것이었다.

리아의 고개가 완전히 올려졌다.

`가문의 안주인이 무엇이고,

대공비의 역할이 무엇인지 물었습니까?

부인께서 하고자 하는 것이

안주인이자 대공비의 일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모시는 부인이 무엇인지 물었습니까?

부부는 여자가 남자를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보다 한발 앞서 상대를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순종하고 명령하는 관계는 더욱더 아닙니다.

부부는 함께 서는 자이며, 함께 걷는 자이고,

함께 존중하고 위하는 것입니다."

이날 이후, 연무장에서만 펴지던 리아의 어깨와 허리는

그녀가 내딛는 곳 어디에서든 굽혀지지 않았다.

그런 리아가 내일 제이슨과 테슬린 공작을

만나기 위해 왕성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다음 날,

리아는 그동안 입었던 수수한 드레스가 아닌

에르제가 디자인하고,

라이거 영지의 장인이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성도 라이거 저택을 나서는 마차에 올랐다.

*

"전하. 라이거 대공비께서 알현을 요청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전담 시녀의 모습에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던

제이슨이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계획이

카온에 의해 물거품이 된 이후,

왕성의 시녀와 집사들이 대거 바뀌었다.

그들의 잘못도, 정치적 이유도 아니었다.

제이슨의 화풀이 대상이 된 이들에게

신체적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누구?"

"라이거 대공비께서 알현을.."

"아아! 됐고! 라이거 대공이라 아니라 대공비?"

"네. 전하."

제이슨이 들었던 잔을 내려놓고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대공비가 둘이잖아. 누구?"

"리아 라이거 대공비이십니다."

제이슨은 카온이 호위처럼 데리고 다니던

여기사가 떠올랐다.

한때 빼앗고 싶었던 여자,

한때 품고 싶었던 여자.

하지만 오로지 카온에게만 충성심을 향했던 여자,

그래서 더욱 가지고 싶었던 여자.

한미한 가문의 수수한 영애인 에르제가

대공비가 되었다는 말에는 웃고 넘겼지만,

리아가 대공비가 되었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쳇. 그림으로 삼기 딱 좋았는데.."

아쉬워하는 말과는 달리 제이슨의 미소가 깊어졌다.

"뭔 배짱으로 혼자 왔는지는 모르지만..

카온 놈에게 받을 걸 돌려줄 수는 있겠군."

테슬린 공작처럼 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카온처럼 거대한 산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소드 익스퍼트 경지라는 것도,

제이슨 본인이 4서클을 바라보는 마법사였기에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자였다.

몇십 년 사교에게서 활동하던 귀족 부인도 아닌,

운이 좋아 카온의 눈에 들어 기사로 인정받고,

운이 좋고, 미모가 뛰어나 카온의 눈에 들어

대공비가 된 여자일 뿐이었다.

"제3 접견실에서 기다리라고 해."

"네. 전하."

왕족은 접견실이 아닌 왕의 집무실에서 만난다.

백작 이상의 가주나 그 권한을 대신하는 이들 또는,

타 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것이 제1 접견실이고,

그 이하 귀족들은 제2 접견실에서

만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제이슨이 말한 제3 접견실은 귀족이 아닌

왕실와 거래하는 상인에게나 허락된 공간이었다.

자신을 안내해주는 시녀의 사과에

리아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찮습니다."

"대공비..각하.."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고,

리아에게는 왕의 집무실이든,

제3 접견실이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귀족이 피가 흐르는 시녀가

평민 출신인 자신에게

자신의 죄도 아니면서 용서를 구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리아가

아공간에서 포션 몇 병 꺼내 안내 시녀에게 건넸다.

"이..이건.."

"어서 넣으세요.

피 냄새가 나는 집사들과 시녀들이 몇 있더군요..

이유는 그대가 곤란할 것이니 묻지 않겠습니다..

상처가 심할수록 짙은 색의 포션 바르면 됩니다."

겉으로 상처를 내보인 집사와 시녀들은 아니었다.

마스터의 감각이 그들에게서 퍼지는

원망 섞인 피 냄새를 맡았을 뿐이었다.

"각하.. 감사합니다.."

시녀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들어가 기다리길 얼마.

이 왕국의 주인 제이슨 일라인이 들어왔다.

"다 나가."

"하오나.. 전하.."

"다. 나. 가."

시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해한 리아가

그녀를 향해 살짝 끄덕여 주었다.

제이슨은 시녀가 나가자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대공비. 천한 평민의 피가 흘러서

이 나라의 주인을 본 귀족들의 예법을 몰라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인가?

하여간 계집들이란.. 남편 집안이 귀족이면

자신도 귀족인 줄 알지.. 쯧쯧.

대공비의 신분으로 평민들의 예를 올려도 용서해 주지."

왕이나 상위 귀족들에게 올리는 여성 귀족의 인사법은

치마의 양쪽 끝을 살짝 올리고 무릎을 조금 굽힌 뒤,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리아에게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는

평민 이하의 신분이 하는 예를 요구한 것이었다.

제이슨은 눈 앞의 상대가 카온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라이거라는

성을 달고 있는 이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흐르는 피부터 평민인 그녀가

두 무릎을 꿇은 순간 손뼉이라도 쳐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왕의 권위로 찍어 누르고,

가지지 못한 아쉬움을 가득 담아

희롱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아의 입에서 들리는 말은

자신의 계획을 백지로 만들었다.

"테슬린 공작까지 오면

알현을 청한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뭐? 테슬린 공작?

나는 네년이 알현을 청한 이유를 묻지 않았어.

나는 네년에게 예를 올리라 하였다."

"라이거 가문은. 라이거 가문의 안주인 자리는.

라이거 가문을 대표해 온 저는.

아무리 전하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네 이년!"

제이슨의 몸에서 거칠고 진득한 마나가 퍼져 나왔다.

테슬린 공작은 제3 접견실까지 뛰다시피 걸었다.

"제이슨보다 먼저 도착해야 해.."

제국과 라이거 가문이 관계가 없음을

성도 제일의 정보 조직인 '킬'이 밝혀냈지만,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테슬린이었다.

만약 진짜 관계가 있다면

'그냥 두면 되는 라이거 가문'이 아니라,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하는 라이거 가문'이었다

카온이 회의에 참석에 제이슨의 계획을 망친 이후

제이슨이 업무에 손을 놓는 바람에

처리할 일은 많아졌지만,

제이슨이 폭력으로 쳐낸 시녀들과 집사들의 가문을

자신이 끌어안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 카온 대공이 아닌,

그렇다고 원래부터 귀족이었던 대공비가 아닌,

검을 든 여기사이자 평민이던 대공비가

알현을 요청하면서

자신도 함께 자리해 줄 것을 원했다.

대공비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든

이는 카온 대공의 뜻일 것이며,

그의 뜻이 담긴 말이 제이슨에게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에 가벼운 마음으로

엉덩이를 들려는 순간, 멍청한 제이슨이

그녀를 제3 접견실로 불렀다는 것을 들었다.

뛰듯이 걷던 발이 결국, 달려서 접견실 앞에 도착했다.

"젠장!"

문을 열려는 순간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4서클을 앞둔 제이슨 왕의 마나.

대공비 역시 소드 익스퍼트라

그녀 자신에게는 큰 피해가 되지 않겠지만

마나와 오러가 맞부딪히는 순간

큰 폭발이 일어날 것이었다.

일단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벌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지던 모습과

전혀 다른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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