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일라인 가문과 테슬린 가문입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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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일라인 가문과 테슬린 가문입니다.
페트로의 간단한 보고를 끝으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페이트 공작의 결정에 판도가 바뀌겠군요."
라이거 대공령이 된 옛 신성국의 땅에서
공국을 세울 계획을 준비 중인
제퍼드 왕자와 페이트 공작 가문.
이번 동부 반란은 그들에게
두 번 다시 없을 기회기도 했다.
제퍼드를 앞세워 제이슨에게 합류하면
승리의 추는 제이슨에게 기울어진다.
제이슨이 승리를 가져와도
제퍼드가 왕위에 오르기는 힘들겠지만,
페이트 가문이 동부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아폴론 군에 합류해도
제퍼드와 페이트 가문에는 이익이었다.
아폴론은 새로운 왕국의 주인이 될 것이고,
그를 따르는 동부 귀족들은
중앙 귀족이 되어 동부를 떠날 것이다.
제퍼드를 안고 가면서 얻는 이익인 민심과,
페이트 가문의 힘인 공국을 준비하면서 생긴
군사력을 생각하면
아폴론은 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이는 마찬가지로 동부가
페이트 가문의 손에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행보도
그들에게는 꽤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일 것이다.
제이슨이 이끄는 중앙군과
아폴론이 이끄는 동부군의 전력은 비슷하다.
리아같은 승패를 좌우할 절대자 적 존재도 없고,
전쟁을 지휘하는 나폴레이 같은 이도 없다.
소모전.
양측이 지쳐갈 때,
제퍼드가 일라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휘관보다 기사들이 먼저 지치고,
기사보다 병사가 먼저 지친다.
그리고 이들보다 많이 죽고,
먼저 지치는 것은 백성들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일어났노라고 외치며
지친 양 군을 몰아내고 성도로 입성하면
제라드 왕이 그토록 얻고 싶었던,
제이슨 왕이 등을 돌렸던 민심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사라진 테슬린 공작의 움직임도 중요할 겁니다."
테슬린 공작을 마지막으로 본 리아에 말에 따르면
접견실을 나서려는 그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아들을 찢어버릴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중앙으로 진군하고 있는 아
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란에 참여하지 않은 가문으로
몸을 의탁한 것도, 아들에 대한 배신감에
제이슨의 편에 선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사라졌다.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거나,
살기 위해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왕을 꿈꿔온 자였다.
분명 어딘가에서 순간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이곳에 있는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두 왕국도 분명 움직일 겁니다.
독자적 침략이냐.. 동맹이냐가 문제겠군요."
폴리아리스 후작의 말대로
두 왕국은 분명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두 왕국은 손을 잡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을 잡든, 독자적으로 침략하든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접근할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나폴레이에게 모였다.
"라이거 가문은 건드리지만 않으면
움직이지 않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동안
대륙 전체에 퍼졌습니다."
"즉. 라이거 영지는 관심 없으니 움직이지 말아달라?"
"적의 적은 같은 편이니 이번만큼은 손을 잡자?"
아키 단장과 알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폴레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네. 그들이 접근해오는 내용 중에는
그런 뜻도 있을 겁니다."
대외적으로는 일라인 왕국이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
라이거 가문이라 나폴레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대외적으로 그렇게 보이기 위해
꾸며진 것일 뿐, 나는 두 왕국의 병사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것을 허락할 생각이 없다.
1차 회의가 끝나고 넓은 회의장에는
나와 리아, 에르제, 그리고
프레시아와 나폴레이가 남았다.
툭툭.
"오라버니.."
프레시아의 부름에 의자 손잡이만
두드리고 있던 나는 고개를 바로 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항상 똑같은 고민을 해..
중앙군이든.. 반란군이든.. 포이든이든.. 피오네든..
모두가 라이거 가문의 적이야."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적일까?
그래.. 우리에게 검과 창을 겨누니 적이지..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의지보다 명령에 따른 거잖아?
그래.. 명령에 따르는 것도 본인의 의지이긴 하지.."
"주군.."
"전장이 될 중부와 동부 경계선에 있는 백성들은..?
그들에게는 무슨 죄가 있으며..
그들의 생사를 대의라는 이름 앞에
무시해도 되는 걸까..
나는.. 라이거 가문은.. 그들을 살릴 수 있고..
지금 당장에라도 중앙군이든,
반란군이든 몰아낼 힘이 있는데..
더 큰 피해와 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그들의 죽음에 눈을 감아도 되는 것을까.."
이런 생각조차 가진 자의 만용이라는 것은 안다.
수많은 이의 목숨을 빼앗았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진정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될지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무의미한 죽음에 눈앞이 흐려졌다.
*
리아는 조용히 회의실에서 빠져나와 페트로를 불렀다.
"대공비 각하를 뵙습니다."
"테슬린 공작의 행방에 대해 들어온 소식은 없는가?"
"조금 전 들어온 소식이있지만..
아직 정확도가 떨어지는 정보입니다."
"말하게."
"테슬린령에서 3시간 거리에
아르베니아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그곳에 테슬린 공작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이를
봤다는 정보원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마법에 능통한 공작이라
한 명의 정보원으로 힘들 것 같아서
주변 영지의 정보원들까지
그곳으로 보내 놓은 상태입니다."
"아르베니아 호수..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대공비 각하."
페트로가 나가고 리아도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애마에 올라탄 채 사라졌다.
텔레포트 아티펙트 장치가 있는
테슬린 공작령으로 텔레포트한 리아는
어지럽고 혼란 가득한 영지의 풍경을 뒤로하고
호수를 향해 달렸다.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삶고 있는 마을에 도착한 리아는
마나의 기운을 쫓기 시작했다.
테슬린 공작이 6서클의 경지였다면
소드 마스터인 리아도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5서클이 흘리고 간 흔적을 찾는 것은
리아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마나의 흔적을 따라 호숫가를 걷던 리아는
로브를 둘러쓰고 낚시를 하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리아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사랑이자 배필이며, 주군인 카온은
무모한 이들의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라인 왕가의 잘못된 통치로 왕국이 썩어들어갔고,
테슬린 가문의 박쥐 같은 줄타기와 욕심 때문에
시작된 반란이고 전쟁이었다.
그 원인 중 하나이자 핵심인 테슬린 공작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누군가와 다르게
낚시나 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가거라."
위협하듯 마나의 기운까지 퍼뜨린 공작의 모습에
리아는 어이가 없었다.
가라니, 진정 이곳을 떠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공작이었다.
"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공작입니다."
툭.
공작이 들고 있던 낚싯대를 떨어뜨렸다.
"대공비..?"
"추하군요."
"추하다라.. 그렇지.. 그래..
추하지.. 왕이 되고 싶어
다른 왕국과 손을 잡았다가 배신당하고..
왕이 되고 싶어 멍청한 왕에게 고개를 숙였고..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던 아들에게
또다시 배신당한 나는 추하지.."
팡!
공작의 마나가 분출되며 폭발음이 났다.
"그래서! 내가 한심하고 멍청하게 보이는가?!
리아 라이거! 그대도 대공비가 되었으니
느끼는 게 있지 않은가!
어정쩡한 권력은 밑에서 견제 받고, 위에서 억압받지!
그 견제가 사라지는 것이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그들이 발악해도 이기지 못하는
권력을 손을 넣었을 때야!
위에서의 억압이 사라지는 것이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위라는 존재가 사라졌을 때지!"
공작의 마나가 더욱 짙어졌다.
"왜! `네 기둥` 가문 중!
가장 공을 적게 세운 가문이 왕국을 이끌어야 하지?
왜 건국 전쟁 당시 가장 많은 적을 죽인
내 가문이 왕이 되지 않았던 거지?
그 결과가 고작 왕국이야! 제국이 아닌 왕국이라고!
포용밖에 모르던 일라인 가문이!
아군과 백성의 안전밖에 모르던 라이거 가문이!
돈밖에 모르던 쇼페라 가문이 아닌!
테슬린 가문이 왕이 되었어야 했어!
테슬린을 중심으로
어지러운 잊혀진 제국을 영토를 차지하고!
그 선봉장에 라이거 가문이!
나라 잃은 백성들의 마음은 일라인 가문이!
황폐해진 제국의 영토는
쇼페라의 자금으로 되살렸어야 했어!
그랬어야! 주제도 모르는 망국의 백성들이 모여 만든
피오네 왕국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강한 국력으로 넓은 영토를 차지한 왕국이 무서워
포이든 왕국이 침략하지 않았겠지!
나는! 이를 바로잡고!
선조들이 하지 못했던!
선조들이 꿈만 꾸었던 일을 하려 했을 뿐이야!"
공작의 마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물거품이 되었지..
수십 년 쌓아온 동맹은 한순간에 배신으로 다가왔고,
눈엣가시 같았던 라이거 가문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성장했어.
가신 가문들은 등 돌렸고,
믿었던 아들은 그 가문들을 등에 업었지.."
흔들리던 공작의 마나가 불안전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나의 불안전이 가져올 결과는
마나 폭주밖에 없었다.
리아는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공작을 고작 마나 폭주로 죽게 할 수 없었다.
마스터의 오러가 방출되었다.
미쳐 날뛰는 마나는 성질이 다른 오러에
잠시 반항하는듯하더니 이내 굴복했다.
왕성 접견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손을 휘둘러
공작의 마나를 잠재운 리아의 모습에
테슬린 공작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마스터! 마스터였어!
마스터라니! 하하하
처음부터 카온의 손바닥 위였던 거야! 하하하"
털썩.
웃음을 뚝 하고 멈춘 공작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처음.. 처음부터.. 하.하.하.. 그래.."
"네. 모든 것이 카온님의 계획안에 있었습니다.
페페 가문의 멸망이 그 시작이었죠."
"파실리온도.. 제국 연회도..
다 그때부터였단 말인가.."
파실리온 가문의 멸문이 남부 통합의 시작이었고,
제국 연회는 대륙의 정세가 엉망이 된 시작이었다.
"아닙니다."
"아니..다? 금방 카온의 계획이었다고.."
"라이거 가문과 영지, 영지민에게 위협이 되는
페페 가문을 멸하는 것에는 먼저 움직였을 뿐,
다른 것들은 라이거 가문을
먼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파실리온 가문이 라이거 영지를 탐냈기에
남부가 라이거 가문에 의해 통일되었으며,
서부가 먼저 라이거 가문을 향해 검을 들었기에
서부가 라이거 가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왕실과 피오네, 테슬린과 포이든의 탐욕이
하필이면 제국 연회에서 드러났기에
카온님께서는 이에 올바른 말을 했을 뿐,
서로 배신하고 적과 손을 잡은 것은
라이거 가문이 아닙니다.
일라인 왕국의 왕을 바꾼 것도
라이거 가문이 아니며, 반란을 일으킨 것도
라이거 가문이 아닙니다."
리아의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윽!"
"카온님께서는
왕국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카온님께서는 왕실에도 테슬린 가문에도
다른 귀족들에게도 충분히 기회를 주셨습니다.
카온님께서는 대륙의 평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왕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컥! 기..기운을.."
"그런 카온님께서 지금 탐욕의 반란으로 인해
죽어갈 백성들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십니다."
"막..막으면.. 마스터라면..충.충분히..!"
"막으라고 하셨습니까?
왕실의 멍청함과 테슬린의 탐욕을
라이거 가문이 막으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막아야 하는 것도 탐욕의 시작인 그대이고!"
"제..발... 기운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그대이며!"
"컥!"
공작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새로운 왕국을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일라인 가문과 테슬린 가문입니다."
새로운 왕국이란 단어에
눈을 부릅뜬 공작의 멱살을 잡은 리아가
라이거 대공령으로 텔레포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