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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56화 (156/201)

〈 156화 〉 때가 되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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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때가 되었다.

무릎을 꿇은 테슬린 공작을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공작의 무릎을 꿇리고 싶었냐고 물어본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였다.

테슬린 공작을 굴복 시키는 것은 제일 마지막이었다.

왕국와 대륙의 정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계획 속에도 테슬린 공작은

언제나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테슬린 가문과 가문을 이끄는 공작은

왕실보다 큰 존재였다.

이렇게 꿇어앉아 있는 모습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공작의 마지막은

나의 검과 그의 마법이 맞부딪히고,

서로의 심장을 노리는 혈투 끝에

비록 패배로 인해 무릎을 꿇을지언정

눈빛만큼은 이글거리는 거였다.

그래서 공작이 사라지고도 그는 분명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미 준비해 놓은 것을

움직이기 위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상황에서 도망친 것도 모자라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오히려 탐욕에 영혼까지 물들어버리고,

같이 죽자고 외치던 서스가 더 나아 보였다.

"왕좌가 바로 코앞에 있었지."

민심은 이미 왕가를 떠났고,

서스를 공개적으로 처형한다고 해도

회복될 수준이 아니었다.

아폴론이 죄를 범하지 않았고,

그가 반역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1, 2년 이내 왕실의 주인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 네가 만든 판에 올라간 말인 줄도 모르고..

내가.. 스스로 왕관 바로 앞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민심을 잃어가는 제이슨을 보고..

권력에 욕심 없는 그대와

라이거 가문을 보고 비웃기도 많이 비웃었지.

오히려 내가 놀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지..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포이든 왕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왕좌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는 없었나?"

"가진 것.. 대공. 나는 대공이 아니야."

"후회는 없어 보이는 군."

사람마다 만족의 가치는 다르다.

누군가는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더라도

창고가 쌓여가는 것에 만족을 하기도하고,

누군가는 어떤 이와 비교하며 그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지는 것에 만족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손에 쥐는 것을 만족이라 생각하기도,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베푸는 것을

만족이라 여기기도 한다.

내가 베푼다고 다른 이에게 베풂을 강요할 필요 없고,

내가 아낀다고 다른 이의 사치를 비난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만족과 후회는 본인 몫이기에.

"후회? 내가 후회한들 바뀌는 게 있는가?"

"그대의 목숨과 테슬린 가문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대는 무엇을 선택하겠나?"

"웃기지도 않는군.

천년의 테슬린이 없는 내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내가 죽어도 가문을 이을 자가

아폴론밖에 없는데 가문이 남아 남겠는가?"

"키엘. 키엘 테슬린."

눈을 부릅뜨며 놀랐던 공작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

그 반푼이 핏줄이 있었지!"

동부와 남부의 영지 경계에 있는 작은 마을에

테슬린 가문의 피가 흐르는

키엘이란 남자가 살고 있었다.

테슬린 가문의 핏줄을 타고 태어난 이들은

대대로 마나를 품고 태어났지만

딱 한 번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이에게서는

한 줌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은 일이 있었다.

당시 테슬린 가문의 가주는

부인의 외도를 의심함과 동시에

아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이내 둘째 부인을 맞이해 그녀에게서

마나의 기운을 품은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부인은

어린 아들과 함께 마차 사고로 위장해

테슬린 공작령을 떠나 남부로 이동했다.

그 사내아이의 후손이 바로 키엘이었다.

어쩌면 영원히 아무도 몰랐던 몇백 년 전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부인과 아이의 도주를 도왔던,

테슬린 가문의 분노로

부인의 가문이 세상에서 사려졌기에

돌아갈 곳이 없던 시녀의 후손이 우

연히 쇼페라를 이어가던 아샤의 선조와 만나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흘러가는 말, 어쩌면 푸념일지 모를 말,

그리고 사실이 아닐지도 모를 일을 아샤의 선조는

만에 하나를 위해 기록해 놓았다.

나는 희생을 자처한 시조님들을 위해서라도

그분들의 핏줄을 세상에 남겨 놓아야 했다.

라이거는 나.

쇼페라는 핏줄은 아니지만, 의지를 이은 아샤.

일라인은 라이 왕자와 릴리 왕녀.

마지막 퍼즐의 인물이 지금의 테슬린 공작과

아폴론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기록을 페트로에게 넘기며 조사를 명했다.

그리고 찾았다.

테슬린 공작과 똑같은 마나의 기운을 개화하지 못하고

품고만 있던 키엘을 찾았다.

"반푼이라..

이제 막 마나에 눈을 뜬 이가 그대의 아들보다

짙은 마나를 품고 있는데도 반푼이라..

그럼.. 아폴론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

"뭐..?!"

벌떡 일어나려던 공작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다시 물어보지. 그대의 목숨과 가문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이지?"

공작이 자신의 목숨을 선택해도 살려 줄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그가 가문을 택하기 길 바랐다.

테슬린 가문이 지었던 죄를 모두

공작이 안고 가기를 바랐다.

키엘이 이끌어갈 새로운 테슬린 가문을 위해

그가 모든 것을 끌어안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것도 내 바람일 뿐이었다.

눈빛이 살아난 공작은 당당히 입을 열었다.

"내 목숨" 이라고.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지 갈 것 같아서일까,

내가 알던 공작의 모습으로 돌아왔음에도

기분은 더 더러워졌다.

"그렇군. 그대는 그 선택을 했어.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대..가?"

"그대의 목숨값이 그토록 가벼웠던가?"

다른 이도 아닌 테슬린 공작이라

카시오스와 아담에게 그의 감시를 맡기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문을 나섰다.

"라이거에 영광을. 대공님을 뵙습니다."

"라이거에 영광을. 대공님을 뵙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라이 왕자와 릴리 왕녀가 예를 올렸다.

"때가 되었다."

둘은 고개를 숙이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더이상 왕자와 왕녀가 아닐 것이다.

아직 둘 다 어리기에 주어질 영지 관리 또한

너희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라이거 가문의 가신 중 하나가 관리하게 될 것이야."

"네. 각하."

"하지만 너희의 의견을 무시하고

꼭두각시로 만들 생각은 없다.

라이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고작 몇 년.

네가 심장이 되어 뼈와 살을 만들고,

머리를 만들고, 몸통과 팔다리를 만들 거라."

"이곳에서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라이의 대답에 그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릴리. 너는 프레시아가 탐낼 만큼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안다."

"과찬이에요.."

"아니. 프레시아에 인정받았다는 것은

자랑할 만 한 일이다.

그동안 왕국은 물론 대륙이 원하는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며,

사교계에 꽃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여성이 되라고 말할 거라고 예상했을까.

릴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런 릴리의 어깨를 바로 해주며 말을 이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계속 변할 것이다.

타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거라."

볼에 피어난 홍조에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아 안심되었다.

"둘 다.. 왕자, 왕녀였다는 신분이

너희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있지도 않은 옛 영광을 찾겠다며

접근하려는 자들이 있겠지요."

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실수에도 왕자, 왕녀하며

무시하는 이도 있을 거예요."

릴리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둥` 가문의 피가, 고작, 더, 라는 말이

계속 따라올 겁니다."

라이를 한쪽 팔로 안았다.

"하지만 라이거의 독수리가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려던 거죠?"

릴리를 다른 팔로 끌어안았다.

"맞다. 너희를 공격하는 자들을 집어 갈 발톱이 있고,

언제든 품을 내어줄 날개 있다."

안았던 팔을 풀고 한 번씩 눈을 맞췄다.

"일라인의 새로운 튼튼한 뿌리가 되어줘서 고맙구나."

라이거 영지로 온 라이와 릴리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기울어져 가는 왕국을 바로 세우고,

훌륭한 왕과 왕녀가 되겠다는 뜻은 없었다.

라이와 릴리는 살고 싶어 했다.

목숨이 안전하다고 느낀 순간부터

라이거 가문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 동경은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부와 대모라 부르며 따랐고

프레시아가 놀라워할 정도로 만남 요청을 넣었다.

왠지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 대화를 나눈 뒤부터

둘의 본격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자금을 달라, 보석을 달라, 드레스를 달라가 아니었다.

검술을 가르쳐 달라, 영지 경영에 필요한 서적을 달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나폴레이에게 교육을 받게 해 달라 등.

지식과 발전에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둘을 위해 모든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이제 둘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썩은 일라인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씨앗에 뿌리가 내렸다.

그 뿌리에서 시작된 열매가 맺을 때까지

라이거의 독수리가 또다시 좀먹으려 하는

벌레들을 잡아 줄 생각이다.

라이와 릴리의 방에서 나온 나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여전히 고민에 빠진 이들을 향해 뜻을 전했다.

`주군의 뜻이라면!`

`대공님의 뜻을 따릅니다.`

`모든 것이 대공의 뜻대로.`

누구 하나 반대하는 이 없었다.

다음 날.

라이와 릴리를 데리고 테슬린 공작을 만났다.

"라..이..왕자.. 릴리 왕녀..! 살아있.. 하.. 그렇군.."

하루 동안 또다시 헛된 계획을 세웠을 공작도

두 사람의 등장에 놀랐으나

이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 왕자와 릴리 왕녀는 왕가의 의무를,

테슬린 공작은 목숨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어제 회의에서 밝혔던 뜻.

이 세 사람을 이용해 반란을 막는 것은 물론,

왕국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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