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심장이 뛰어서 희망을 품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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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심장이 뛰어서 희망을 품습니다.
아폴론 테슬린은
호기롭게 진군을 외쳤던 당시와 달리
지지부진한 지금의 상황에 술잔을 집어 던졌다.
아폴론은 이번 전쟁에 명분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군대가
반란군이라 불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애초에 왕실의 부정을 탓하며
군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을 따르며 기다리는 동안
타고난 핏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던 카온이 대공작이 되었고,
자신보다 한참이나 모자란 제이슨이 왕이 되었다.
막상 기다리라고 하는 장본인인 아버지는
왕실의 새로운 개가 되어버렸다.
한 번씩 아버지가 모든 것이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는 듯 계획을 알려주었지만,
아폴론이 보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가는
길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영지를 비운 사이 세력을 모았고,
서스를 이용해 자금을 마련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와중에 서스가 사라졌다.
서스가 1억 금화를 들고 도망갔다는 생각보다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먼저 느꼈다.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유일의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군을 일으켰다.
라이거 가문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다들 이들이 말하는 반란군의 선봉장이 되어야 했다.
왕관의 주인.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왕실의 개가 된 주제에 돌아와
가문의 주인 노릇을 할 것을 대비해
그의 죽음까지 계획해 놓았다.
하지만 5서클의 마법사이자, 전장의 열쇠이며,
참여하지 않은 동부 가문들을 끌어낼 아버지의 행방은
왕성을 나섰다는 소식이 끝이었다.
애초에 페이트 공작의 참전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 덕분에 왕실 군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
서로 비슷한 수의 피해라는 결과를 냈다.
두 군의 전력이 비슷하다면
작전으로 승패가 갈라져야 했다.
자신의 상대가 누구였던가.
왕이지만 멍청한 제이슨이었다.
그래서 아폴론은 첫 전투의 결과에 화가 났다.
시간이 많이 허락된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의 시간이 길어지면 왕국 전체가 흔들리고,
왕국이 흔들리면 포이든과 피오네가 움직인다.
두 왕국이 움직인다는 것은
라이거 가문이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그러진 계획의 결과는
중부와 동부의 경계에 발이 묶인 자신이었다.
"젠장!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젠장! 페이트 공작만 움직여 줬어도! 젠장!"
아폴론에게 있어 지금을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닌,
아버지 탓이며, 페이트 공작 탓이고,
자심과 함께하지 않은 동부 귀족 탓이었다.
"젠장! 젠장! 카온! 카온 라이거! 젠장!"
그리고 무엇보다 카온과 라이거 가문의 탓이었다.
"공자님!"
감히 총사령관의 막사로
허락도 없이 들어와 외치는 이를 향해
아폴론이 노려보며 입을 열려는 것보다
그의 말이 더 빨랐다.
"큰일 났습니다! 라이거 군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소식은 제이슨에게도 똑같이 전해졌다.
"아.. 이런.
라이거 가문과 공을 나누고 싶지 않을데.."
제이슨은 가볍게 혀를 차며 술을 털어 넣었다.
제이슨이 처음부터 이렇게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테슬린 공작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이번 반란은 테슬린 가문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아폴론 테슬린이 일으킨 것이 되었다.
테슬린 공작이 이끌고 그의 책사 체스터가 보좌했다면
첫 번째 전투가 끝나자마자 퇴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아폴론은 돌아가는 법을 모르는 이였다.
강을 이용해 전략을 짜거나,
폭이 좁은 상류로 이동해 진군하는 것이 아닌,
다리를 만들어 직진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폴론은 너무나도 정직하게
예상 지점으로 군을 이동했다.
솔직히 군의 수는 비슷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떨어지는 왕실 군이
첫 전투에서 무승부라는 성과를 낸 것은
오로지 무능한 적 사령관 덕분이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던 테슬린 공작이
적 진영에 없는 것도 확인했다.
제이슨이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 이때였다.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인
테슬린 가문이 반란을 일으켰다.
다른 하나인 라이거 가문은 일라인 왕국의 귀족임에도
대공령 밖의 일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
반란으로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테슬린과
말로만 백성들을 위하는 라이거.
왕실로부터 등을 돌렸던 민심과
라이거 가문으로 향했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남은
`네 기둥` 가문인 쇼페라 가문은
예전과 달리 라이거 가문에 속한 가신 가문이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시간을 끌수록 민심은 흉흉해지고,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반란군을 진압한다면 무지한 백성은
왕실을 존경의 눈으로 보게 된다.
이것이 양쪽 진영 합쳐 수천,
수만의 병사들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제이슨의 계획이었다.
제이슨은 라이거 가문의 참전 소식이 달갑지 않았다.
어차피 테슬린 공작의 노력으로
제국에 의해 두 왕국은 움직이지 못한다.
라이거 가문이 참전하면 반란은 빠르게 진압되겠지만
그 공을 나눠야 했다.
"라이거 가문에서 사람이 오거든
도움은 필요 없으니 라이거는 라이거답게
대공령이나 지키라고 전해라."
"네? 네! 전하."
"쯧. 전하가 아니라
여기서는 총사령관이라고 몇몇을 말했거늘!"
"죄..죄송합니다!"
"됐다. 첫 전투의 결과가 만족스러워
그대에게 자비를 베풀지."
"감사합니다! 총사령관님!"
"하하 그래. 듣기 좋군."
손을 휘저어 기사를 내보낸 제이슨은
반란 진압 이후 달라질 왕실의 위상을 상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
"각각 약 2만의 사상자를 내고
첫 전투가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2만!? 2만이 확실한가!?"
아담의 보고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내가 아닌 테슬린 공작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테슬린 공작도
놀랄 만큼의 수이기는 했다.
아폴론이 이끄는 반란군은
그에게 합류한 테슬린 가문의 일부를 중심으로
15개의 가문이 합류한 형태지만,
대부분의 중심 병력들은 테슬린 가문 일부와
파비친코, 엘리자베 가문의 병사들이었다.
총 16개의 가문에
동부의 대표 가문인 테슬린 가문이 속해있어도,
반란군의 병력이 10만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유는
아폴론이 모든 테슬린 가문의 가신들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과, 파비친코와 엘리자베 가문이
영지를 가진 귀족이라는 개념보다
테슬린 가문에 인재를 보급해주는 성격의
귀족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테슬린 공작이 자신의 가문 이외에
군사력이 강한 주변 가문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한 압박도
10만이 채 되지 않는 병력의 원인이기도 했다.
10만 중에 2만이 첫 전투에서 희생되었다.
양쪽을 합하면 4만의 목숨이 주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테슬린 공작의 말 속에서는
총 4만의 희생에 놀란 것이 아닌,
그만한 병사가 목숨을 잃었음에도
아직 전투를 치르지 않은 것처럼
양쪽이 대치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듯했다.
손을 들어 공작의 질문을 무시한 채
이어가려는 아담을 보고를 잠시 막았다.
"라이. 첫 전투에서 아군 10만 중 2만이 희생되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무승부지만
반란군 입장에서는 패배일 것이고,
왕실 군으로서는 승리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반란군은
시간을 길게 끌지 못합니다.
첫 전투임에도 무려 2만의 군을
선봉에 내세운 것만 봐도 아폴론은 첫 전투에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을 겁니다."
라이는 횃불이 켜지기 시작한 양쪽 진영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체스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륙과 왕국의 상황과 원인을 떠나서
양쪽 다 군을 운영하는 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는 그렇다는 메튜. 그대는 어떠한가?"
몬스터 숲이 완전히 정복되면서
차기 라이거 기사단장으로 내정된
메튜 몬스에게 물었다.
"라이님과 같은 생각일지는 모르나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먼저 반란군은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이곳으로 와서는 안 되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당시 왕실 군이
얼마나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지 몰랐을텐데..
이곳은 수적 우세가 확실할 때
힘으로 밀어붙이기에 적합하지 여러 가지 작전을
세우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2만의 병력을 쏟아부어
힘으로 누르려 했다는 것은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봅니다."
정답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준 뒤
이어서 답을 하라며 라이를 바라봤다.
"메튜님의 의견에 이어 말해보자면,
왕실 군 또한 출정부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진압군의 병력이
반란군 병력의 두 배 이상이 되어야 함에도
형..아니 제이슨은 무슨 생각과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비슷한 병력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 또한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이며
두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이
4만의 희생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란 의미를 담아 갑옷과 투구를 쓴 라이여서
머리를 쓰다듬는 대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메튜와 라이의 결론은 하나로 통한다.
지휘관을 잘못.
장차 3백의 기사단을 이끌어야 할 자로서,
한 영지의 영주가 될 자로서
하나의 배움이 되었을 것이다.
반란이든, 전쟁이든,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어났다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그쳤어야 했다.
목적이 무엇이든 지휘관은
그들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허나.. 제이슨과 아폴론은
자신의 목적과 계획만 있을 뿐,
기사들과 병사들을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 목적이, 목적을 이루는 방식과 계획이라도 좋았다면
그만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테슬린 공작 각하."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리아의 오른쪽, 아담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던 아담.
칠흑 기사단의 부단장이라는 지위에도
단원들과 허울 없이 지냈던 아담.
주군인 나에게도 거리감 없이 장난치고,
대공비가 된 에르제에게 자신이 지켜주겠다며
큰소리치며 웃던 아담.
그런 아담의 입에서 맹수의 으르렁거림이 새어 나왔다.
"각하께서는 주군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사람으로 살고 있는 시간보다 도구로 살았던
노예 출신인 제가 한 마디 올리겠습니다."
아담의 적의가 향하는 곳이
다른 이도 아닌 아직은 공작 신분인 사람이라
말리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잘난 귀족들은 귀족이 아닌 사람들을 도구로 봅니다."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도구,
쓰레기를 치워주는 도구,
기분 전환의 도구, 성욕 해소의 도구 등.
"그리고 도구를 급으로 나누기까지 합니다."
가신, 평민, 천민, 노예, 남녀노소, 장애 등.
"그리고.. 도구가 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살아야 했으니까.
"도구인 주제에 심장이 뛰어서 희망을 품습니다."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시대가 바뀌지 않을까, 시대가 바뀌지 않아도
영주가 바뀌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바뀐 영주는 우리의 말을 들어 주지 않을까 등.
"그런 희망을 준 것도 귀족들이고..
품었던 희망의 불씨를 지우는 것도 귀족이더군요."
대부분 귀족은 영주로 취임하면 영지민들 앞에서
훌륭한 영주가 되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영주가 되고 난 뒤 영지민들을 위하는 대신,
상위 귀족들에게 꼬리를 흔들고.
영지민들에게 베푸는 대신
그들에게서 나오는 세금으로
자신의 배에 술과 기름을 채운다.
"그러면서도 민심이라는 단어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더군요."
그런 주제에 영지를 위해,
영지민들을 위해라고 외친다.
"오늘 죽은 4만의 병사도
자신이 검과 창을 든 도구이며,
이곳이 자신이 잠들 곳임을 알았을 겁니다.
무능한 지휘관과..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이들을 원망하면서 말이죠..
죽어간 이들..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 모두..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에게 맞는 도구가 되기를 바랐을 겁니다..
도구에서 벗어나 사람이 된 자의 생각이라
이조차도 그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만.."
말을 마친 아담은 칠흑 기사단 속으로 사라졌다.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이 붉어진 라이와,
멍하게 아담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테슬린 공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떳떳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