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왕실군 진영에 빛이 밝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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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왕실군 진영에 빛이 밝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왕실군 진영으로
카온과 칠흑 기사단이 이동할 때,
반란군 진영 쪽으로 이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테슬린 공작은 몇 걸음 앞에서
말을 타고 있는 리아 라이거를 바라봤다.
왕실에 여자가 없었다면
왕국에게 가장 고귀한 신분의 대공비인 그녀가
화려한 드레스가 아닌 갑옷을 입고,
그 갑옷과 마치 하나의 모습인 듯한
흑마를 타고 있었다.
고작 20대 중반에 소드 마스터에 오른 그녀였다.
기사가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배우듯
공작도 수없이 기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배웠기에
소드 마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테슬린 공작이 리아에게 눈을 떼지 못한 것은
그녀가 마스터여서 아니었다.
불가 몇 시간 밖에 보지 못했지만
라이거 가문의 모든 기사들이 보여주는
충성심과 행동들은 자신이 공자이던 시절에도,
후계자이던 시절에도, 공작이 되고 나서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테슬린 가문에서 보지 못했을 뿐일까,
어느 귀족 가문에도 심지어는
왕실도 이런 기사들이 없었다.
대공비의 명령에 수백 명이 한 명처럼 답을 한다.
그 답 속에 되묻거나 거절도 없었다.
자신을 오로지 충성심만 담은 눈으로
바라본 자가 있었던가.
없었다.
자신 또한 가문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올곧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짧은 한숨을 쉰 공작이 몇 걸음 뒤에 있는
한 명의 기사와 두 명의 마법사를 힐끗 쳐다 봤다..
한 명의 기사.
파비친코의 성을 스스로 버리고
이제는 몬스라는 성을 스스로 지은 메튜였다.
라이거 영지민들을 몬스터로부터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는 의미의 성이라 했던가.
파비친코 가문이 자신의 가신 가문이었기에
당연히 메튜라는 인물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아카데미를 자퇴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알고 있던 메튜가 맞았다.
물론, 오러 증폭제 사건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나,
나뭇가지 하나 꺾였다고 해서
신경 쓸 자신은 아니었다.
메튜가 사라지고 파비친코 백작의 징징거림도 적어져
오히려 좋았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라이거 가문의 기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마스터를 바라보는 익스퍼드이자,
조만간 라이거 기사단의 단장이 되어
대공인 카온과 군권을 가진 리아 대공비를 제외하고
군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자가 되었다.
테슬린 공작은 지금에 와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바꾼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영지민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던가.
무엇이 메튜를 바꾼 것인지는 몰라도,
다른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영지민을 위해 무언가를 한 적이 없었다.
순간 몰려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바로 하려다
두 명의 마법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어린 마법사를 교육하는 탑주와
소속 마법사들과 연구에 매진하는 부탑주 대신
마탑의 모든 실권을 가진 마린다.
한때 테슬린 가문의 전략 병기로 키워지던 소녀가
자신과 같은 경지인 5서클의 마법사가 되었다.
과연 마린다가 테슬린 가문에 있었다면
지금의 그녀가 있었을까.
테슬린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전략 병기 취급하면서도
그녀의 마법적 성취를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공작은 바이올렛의 모습을 스치듯 눈에 담으며
곧 도착할 반란군 진영이 있는
정면으로 시선을 바로 했다.
바이올렛.
라이거 가문이 다시 영지를 개방하고 나서야
정보가 들어왔던 인물이었다.
귀족도, 평민도 아닌 노예 출신 하녀.
하지만 지금은 자신과 마린다와 같은
5서클의 마법사였다.
그것도 마나의 양과 질만큼은
차원이 다른 마법사였다.
전장에 나와 있는 라이 일라인 대공비,
메튜 몬스, 마린다와 바이올렛.
칠흑 기사단과 라이거 기사단.
라이거 가문 소속의 마법단.
대공령을 지키고 있을 전 백작 부부와
대공작 가문의 군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가진
에르제 일라인 대공비.
서부의 중심이 된
쇼페라 가문을 비롯한 서부 가문들과
폴리아리스 가문을 중심으로 한 남부 가문들.
귀족을 공포가 아닌
존경의 눈으로 바라는 보는 영지민들까지.
이 모든 이들의, 그들이 이끄는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카온 라이거가 있었다.
"후.."
카온 라이거.
그가 고작 몇 년 만에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동안
자신은 무엇을 했는지가 떠오르자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왕관을 원했다.
테슬린 왕국을 원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대륙 최고의 마나 연공법을 익혔음에도
5서클에 오르는 순간 자만했다.
다른 귀족들처럼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정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정략결혼의 대상, 가문을 이을 후계자.
딱 거기 까지였다.
책사 체스터를 제외한 모든 가신들은 믿지 않았다.
가문의 기사는
마법단을 지키는 이들이라 생각하며 무시했고,
주요 전력인 마법단 또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방치나 다름없었다.
영지민 중 평민은 세금을 내는 가축이었고,
천민과 노예는 벌레와 도구일 뿐이었다.
그런 주제에 왕이 되고자 했다.
내 가족, 내 가신, 내 영지, 내 영지민 대신,
대륙의 정세와 일라인 왕국만 신경 썼다.
눈에 보이는 것은 멀쩡할지 모르나
속은 이미 썩어 있던 것이었다.
썩어버리는 것이 밖으로 나오고서야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 방계가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로 행운이군.."
"곧 반란군 진영에 도착합니다."
리아의 무덤덤한 말에 공작은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부터는 공작께서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대공께서 바라시는 것은
반란군의 회군과 핵심 인물들의 목숨입니다."
"대공비께서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제가 반란군에 합류하면 마스터인 대공비님은 몰라도
죽기를 각오한다면 다른 이들 목숨 한둘은
같이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와 아들과 가신들, 기사들과 병사들을 위해
반란군 진영으로 합류해도 상관없습니다.
공작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저희는 대공의 명령에 따라 핵심 인물들의 목을 베고,
군을 동부로 돌려보내면 됩니다."
반란군 진영의 코앞까지 도착한 리아가 손을 들자
뒤따르던 이들이 시간이 정지한 듯
한 동작으로 멈췄다.
"아그린 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자들 이어!
너희들의 주인이 왔다!
공작의 몸에서 마나가 분출되었다.
지금은 남부와 서부가 통합되어
하나의 라이거 대공령을 이루고 있지만
한때 라이거 영지민을 다신 하는 말인
`메턴강의 은혜을 입은 자`처럼,
동부에 뿌리를 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바로
`아그린 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자`였다.
하지만 메턴강의 주인이
영지민인 라이거 영지와 달리
아그린 산맥의 주인은 오래전부터
테슬린 가문의 가주를 뜻하기도 했다.
사라졌던 테슬린 가문의 가주가 나타났다.
동부의 주인이 나타났다.
"각하.."
"어찌..지금.."
"라이거 기사단과 함께라니.. 무슨..!"
"왕국의 백성들을 대상으로
목숨으로만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죄를 지은 죄인이!
왕국의 시작을 함께한 가문을
그 피가 흐르는 본인이 어지럽히는 것도 모자라!
천년의 왕국을 향해 반란이란 불명예의 검을 들었다!
나!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인 테슬린 가문의 가주
노도우 테슬린이 명한다!
아폴론 테슬린에게서 테슬린이란 성을 거둬들인다!`
짝짝짝.
모두의 시선이 박수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폴론 테슬린이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 아니 공작 각하.
어디까지 망가질 생각이십니까?"
아폴론이 공작을 향해 한발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왕실에 꼬리를 흔들더니..
숨어든 곳이 이제는 라이거 가문입니까?
그래도 용케 대공령 말고는 관심 없는
라이거를 움직이셨습니다?"
공작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아폴론은 공작이 아닌
뒤에 있던 리아와 라이거 기사단을 훑었다.
"카온이 아니라.. 대공비..
칠흑 기사단이 아니라 떨거지들을 보냈다라..
하! 왠지 자존심 상하는군요. 쯧."
시선을 다시 공작에게 돌린
아폴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공작 각하. 대공비를 데려오면서
라이거 가문이 뒤에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까?
메튜와 마린다도 서스처럼 복수를 노리고 있었기에
데리고 온 것입니까?"
아폴론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리아의 경지를 익스퍼트라고 믿고 있었고
자신이 알고 있던 메튜와 마린다의 경지가
몇 년 사이 엄청나게 올랐을 거란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폴론의 자신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공작 각하. 그리고..
여기는 테슬린 공작령이 아닙니다.
부인보다! 자기 아들보다!
더 믿었던 체스터도 이곳에 없습니다.
각하께서 짖으라면 짖는 이들 또한! 이곳에 없습니다.
이곳에는! 나! 아폴론의 사람들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공작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아닌,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들만 있다는 것.
이것이 아폴론의 자신감이었다.
"하하하 그리고 뭐?
반란의 불명예에 검을 들었다고 했습니까?
네! 반란이든 나발이든!
`네 기둥` 가문의 핏줄이
주인행세 한번 해보려고 검을 들었습니다!
그러는 각하는 뭐가 다릅니까?
저는 검을 들었지만,
각하는 입을 놀리지 않았습니까?!
포이든에 붙어서 왕이 되고 싶어 했고!
왕실에 붙어서 개를 자처하며
뒤에서는 왕관을 노리고!
이제는 라이거 가문에 붙어서.. 하!
각하의 혀에 놀아나는 라이거도 역시 허상이었군요!"
아폴론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또 뭐?
아그린 산맥의 주인이라 하셨습니까?
제가 다 부끄럽군요!"
"..."
공작은 아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타닥. 타닥.
고개 숙인 테슬린 공작과
그 모습에 미소가 짙어진 아폴론의 곁으로
리아가 말을 탄 채 다가왔다.
"왕실군 진영에 빛이 밝았습니다."
"뭔 개소리야?
하.. 천한 평민의 피가 흐르는 주제에
대공비가 되었다고 귀족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공비라고 소문만 무성한 익스퍼트가
마스터가 되는 것이 아니니
인질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배경답게 행동해!
아폴론은 자신의 군과 라이거 군의 부딪히면
무조건 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자신의 명령이면
죽음으로 뛰어들 수만의 병력이 있고,
리아라는 인질에 카온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영지민`이라는 협박을 추가하면
전쟁을 하든, 협상을 하든 유리한 것은 자신이라,
말 위에서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리아를 향해
큰소리칠 수 있었다.
"공작. 칠흑 기사단이 오러를 분출했습니다."
"하! 이년이 진짜!"
아폴론과 달리 테슬린 공작은
리아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빛이 밝았다는 것은
카온이 왕실군 진영에 도착했다는 것이고,
오로지 마스터인 리아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지만
칠흑 기사단의 오러는 카온과 칠흑 기사단이
왕실군을 장악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마린다가 라이트 마법을 펼치지도 않았고,
바이올렛과 라이거 기사단의 기운이
진영 전체를 덮지도 못했다.
노도우 테슬린 공작으로서 주어진 마지막 역할.
자기 손으로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리아에게 넘어갔다.
리아의 몸에서
오러가 폭발하듯 분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 마법사의 마나와 메튜,
그리고 라이거 기사단의 오러의 기운이
반란군 진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