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61화 (161/201)

〈 161화 〉 무엇으로 기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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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무엇으로 기록될까요?

단 한 명의 그릇된 판단이 불러온

반역이라는 전쟁이 끝이 났다.

대공령에 있던 키엘이 노도우 테슬린 공작에게

가주의 인장을 받는 것과 동시에

왕실군 진영에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제이슨이 사용하던 막사에 모두가 모인 순간.

왕실로부터 제라드 선왕과 헤이라스 대왕후의

서거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솔직히 그들의 죽음에 화가나

협상부터 마무리 짓고 움직이려 했다.

그런 나를 말려준 것이 리아였다.

결국 리아의 뜻에 따라 그녀에게

왕실군과 반란군의 해체 및 복귀를 맡기고

제이슨과 라이, 노도우 테슬린과

키엘 테슬린을 데리고 왕실로 텔레포트했다.

슈리아 왕비와 릴리 일라인에게도

소식을 전해 참석 여부를 물었지만,

거부의 뜻을 밝힌 그녀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한때 왕국의 중심이었던 남자와,

잠시나마 왕국 최고의 권력자였던 여자의 시신이

안치되어있는 곳의 문을 열자,

"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당장 나가!"

짧은 한숨에 이어 뾰족한 외침이 날아왔다.

"전하께서! 헤이라스 대왕후께서! 왜 돌아가셨는데!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어!"

로자이 일라인과,

"아니지요. 어머니.

저들은 당연히 와야 합니다.

저들이 아버지와 대왕후님을 되살려야 합니다!

되살리지 못하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네! 누구 때문에! 누구들 때문에!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녀의 아들이자 제 2 왕자였던

제퍼드 일라인 공작이 우리를 맞이했다.

슈리아 왕비와 릴리를 제외해도

한 명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돌리니

두 개의 관 앞에 주저앉아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는 로즈 일라인이 보였다.

어쩌면 유일하게 두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대공께서도 두 분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제퍼드 입에서 나온 부름에

로즈 일라인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뒀다.

돌려진 시선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탐욕으로 찌는 제퍼드의 눈이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제이슨과

노도우 테슬린의 눈빛이었다.

로자이 왕비와 제퍼드의 외침이 나에게는

개 짖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대공!"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옆에 있음에도 제퍼드가 소리를 질렀다.

에르제가 지금 내 얼굴을 본다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노려보겠지만,

미간을 좁힌 채로 제퍼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죽였나?"

"뭐..?"

"내가 죽으라고 했던가?

선왕과 대왕후의 죽임이 왜 내 책임이지?

책임? 무슨 책임을 말하는 거지?

조금 더 명확하게 내 죄를 말해 주겠나? 공.작?"

제퍼드의 입꼬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올라갔다.

"하.. 직접 죽이지 않았고..

직접 죽으라고 말하지 않아서 책임이 없다?

좋아! 대공에게 왜 책임이 있는지 알려주지!

대공.. 아니! 카온 네가 세상에 나오면서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했어!

인상을 와락 구기며 끼어들려고 하는 라이를 말렸다.

"옛 영광을 되찾고 싶었다면

두 영지를 차지하는 것을 끝으로

가문의 시조가 그랬듯!

남부에 처박혀 몬스터나 상대하고 있어야 했어!"

제퍼드가 생각하는 내가 세상에 나온 시점은

파실리온 영지를 차지한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거기까지였다면 이해해 주고

넘어갔을 거라는 거만한 말에

나의 미간은 더욱 깊어졌다.

"너와 라이거 가문의 성장이!

아버지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했으며!

제국에서의 만행으로 인해

대륙 전체가 혼란에 빠졌어!

신성국을 무력으로 수복시켰으며!

멍청한 제이슨이 왕이 되는 것에 찬성했지!

너의 만행 하나에 대륙 모든 국가의 국경선은

불안으로 가득하고!

네 손으로 만든 왕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아버지 등에 칼을 꽂은 자가 반란을 일으켰지!

이후 제퍼드는 라이거 대공령의 영지민들이

잘 살게 된 것까지 두 사람이 죽은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리아가 마스터로 성장한 이유에는

그녀의 타고난 능력도 있지만

나라는 경쟁자가 있기 때문이고,

카시오스와 아담의 성장에는 리아라는 목표 속에서

둘이 선의의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렛과 마린다도 마찬가지고,

칠흑 기사단과 라이거 기사단도 마찬가지다.

경쟁.

심하면 독이 되지만 잘 이용하면 득이 되는 것.

누군가와 경쟁할 기회도 없던 지난 삶과 달리,

한 번의 죽음 이후 돌아온 나에게

경쟁 상대는 누가 있었을까.

가장 가까이 호리페와 아이젝, 페페 가문이 있었고,

멀리로는 나의 목을 베었던 서스와

라이거 영지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파실리온 가문,

깊게는 라이거 가문을 억압한 주역인

왕실과 테슬린 가문이 있었다.

물론, 지난 삶과 똑같은 나였다면

돌아온 뒤에도 나는

저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경쟁 상대라는 이들의 모습은

무능하고 멍청하며 간사하고 탐욕적일 뿐이다.

문득 에르제가 읽던 소설의 책장을 덮으며

불만을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카온님. 이 소설은 재밌기는 한데..

악역들이 너무 멍청해서 심심해요.

물론 주인공이 구르는 건 싫지만..`

당시에는 에르제가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는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마치 내 얘기 같았다.

악역이 멍청해서 심심하다.

하지만 그런 멍청한 악역 때문에 구르는 건 싫다.

여기까지 생각이 마치자 피식 웃음이 났다.

하필이면 제퍼드의 긴 개소리가 끝난 순간이라

나의 피식거림을 모두가 들었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제퍼드가 입을 다시 여는 것보다 내가 빨랐다.

"책임. 내가 지지. 그 책임의 첫 번째로

제이슨이 가진 왕위를 라이에게 주겠어."

"대공! 무슨 소리입니까?!

대공에게 그럴 권한도 없을뿐더러!

왕국의 주인은 라이 왕자가 아니라

제퍼드 공작이 되어야 합니다!"

로자이 왕비는 이제 본심을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로자이 일라인.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제퍼드의 말처럼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이고

그 책임의 하나로 일라인와 테슬린 모두를

벌하려고 하는 것인데?"

"벌..?"

제라드 일라인과 헤이라스 대왕후의 죄.

사치와 향락에 빠져 왕국을 돌보지 않은 죄,

타국의 문화, 역사, 사상에 동화되어

천년의 역사를 배신한 죄,

자신의 욕심으로 왕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아들을 왕으로 만들어 왕국에 혼란을 준 죄,

그랬음에도 여전히 왕국과 백성을 보듬지 않은 죄,

그런 주제에 백성과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죄,

그렇기에 그들의 죄를

자신의 핏줄에게 짊어지게 한 죄.

마지막 두 가지가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화가 난 이유였다.

제이슨 일라인의 죄.

제 1 왕자 시절, 그 권한을

왕국과 백성들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명예에만 사용한 죄,

왕이 된 이후, 간신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열어두고,

그들이 올린 서류에만 눈을 뜨고 있었던 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은 잘한 일이나

피난을 거부하고 그들을 일꾼으로 썼으며,

수만 병사의 목숨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 한 죄,

선왕의 폐위에 앞장선 죄,

그 과정에서 비록 잘못된 판단이고 행동이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걸었던 어머니를

즉위 이후 무시한 죄,

그런 주제에 왕이라는 죄.

제퍼드와 로자이 왕비의 죄.

왕비와 왕자 시절, 헤라이스와 제이슨보다

더욱 문란하고 사치가 심했던 죄,

제라드의 폐위 이후 페이트 영지로 떠난 후

단 한 번도 그를 찾지 않은 죄,

옛 신성국과 북부 일부 영지가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란 희망에

가문이 생기기 전부터 함께했던 영지민들에게

더욱 세금을 거두는 등,

영지민들을 절망에 빠지게 한 죄,

반란에 가담한 것은 잘했으나,

진압에도 참여하지 않은 죄,

그런 주제에 왕위 계승권을 이유로

왕이 되려고 하는 죄.

그리고 이들의 공통된 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탓하는 죄,

남을 탓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기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죄,

이들의 머릿속에 백성이 없다는 죄.

"이런 죄들이 있음에도 제퍼드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왕이 된다면 일라인이란 성을 달고 있는 이들의

모든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나는.."

"없겠지. 모든 죄를 감당하는 방법은

왕위를 내려놓는 것밖에 없으니."

나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있는 로즈 일라인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

두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가 있는가?"

키엘이야 원래부터 왕실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가장 어리고 착한 라이도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왕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일라인과 테슬린이야."

혹시 제이슨과 노도우 테슬린이

다른 마음을 먹을까 봐 둘의 감시로 데리고 온

카시오스와 아담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카시오스가 움직였다.

"뭐야? 오지 마! 감히 미천한 놈이 누구에.. 컥!"

제퍼드가 저항하려 하자 카시오스가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아들!"

카시오스가 허물어지는 제퍼드를 둘러업으며

로자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기절한 겁니다. 미천한 놈의 어깨가 싫으실 테니

두 발로 따라오시지요."

"카온! 내 죽어서도 너를 저주할 것이야!"

"나에게 저주를 퍼부어 주는 사람이 많아서

나는 주신의 품에 안기지 못하겠군."

"이..이.."

"적당한 방에 가두고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직접 감사하라."

"충!"

시끄러운 두 사람이 나가자 조용해진 공간에

왕국의 미래를 결정 지을 수 있는 이들만 남았다.

아담에게 두 명의 호위와 두 명의 감사를 맡긴 뒤

홀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듯

여전히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로즈에게 다가갔다.

"로즈 일라인."

그녀라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왕가의 핏줄로서 자질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왕국 최고의 미녀라 불리면 겉만 향기로 뿐,

속은 독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하룻밤 상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그녀로 인해 파탄이 난 가정도 수 십이다.

그런 주제에 왕국 최초의 여왕을 꿈꾼 것도

죄라면 죄였다.

제이슨이나 제퍼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의 정을 받지 못했고,

그녀를 따르는 세력이 없었음에도 유일하게

나름의 정당한 왕위 계승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신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 저였어요.."

시선은 여전히 천장을 향해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죠..

두 분도 나와 같은 것을 보았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을까요?

두 분의 선택은 로자이 왕비와 제퍼드가 말했듯

용기 있는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대공께서 말씀하셨듯..

무책임한 선택이었을까요.."

"제퍼드가 왕이 되면 용기 있는 선택,

왕이 되지 못하면 무책임한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되겠지."

"그렇군요.. 그러면..

두 분을 따라가지 못한 저는 무엇으로 기록될까요?"

"슬픈가?"

물음에 물음으로 답했다.

"네?"

"슬프냐고 물었다."

"슬픔.. 네.. 지금 제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가장 가까운 감정이 슬픔이네요.."

나는 지금까지 서스를 제외하고

내 나름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모두에게 한 번씩의 기회는 주었다고 생각한다.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기회,

반성할 수 있는 기회,

악행을 멈출 수 있는 기회,

심지어는 살 수 있는 기회까지.

로즈의 입에서 나오는 슬픔의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면 그녀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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