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65화 (165/201)

〈 165화 〉 이 땅의 주인으로 명한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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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이 땅의 주인으로 명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분노에 몸을 떠는

라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피오네 왕국 사상이

일라인 왕국을 좀먹게 했던 것이 일라인 왕실이고

그들의 작위를 박탈하고 추방을 명한 것도

일라인의 핏줄인 라이다.

라이는 일라인 핏줄로서의 마지막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라이와 이 연극 같은 짓을 한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왕실에게는 수없이 기회를 주었고,

북부도 제국의 조건을 이용해 반성할 기회를,

그리고 재건과 부흥을 기회를 주었다.

같은 이유로 중부와 동부에도 기회를 주는 것.

단지 이것뿐이었다.

역시나 지금까지 모두가 그래왔듯

주어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연극이 끝났음을 깨달은 라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고 대회의장의 상석.

왕의 자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그자리는..!"

내가 그 자리에 앉자 페이트 공작의 두 눈이 커졌다.

"멍청하기는.."

"대공..?"

"그대들은 적어도 영지와 작위를

유지할 기회가 있었다."

"기.. 회라니.. 무슨.."

"북부 귀족들이 끌려 나가는 순간이

너희들의 단 하나뿐인 기회였다."

권한 대항의 명을 받아 라이거 가문이 움직였다.

다른 무엇도 아닌 라이거 가문의 가주가

직접 명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했어야 했다.

왕 앞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네 기둥` 가문의 가주가

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했어야 했다.

라이거 가문에 라이가 협박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라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이미 왕국의 중심이 라이거 가문과

나에게 있다고 눈치챘어야 했다.

그 라이거 가문이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이고,

`네 기둥` 가문은 왕의 자격이 있음을

떠 올렸어야 했다.

하지만 주목하지도, 의심하지도,

눈치채지도, 떠 올리지도 못했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에게 내려진 동아줄을 보고

바짝 엎드려 거짓으로라도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용서를 구했더라면,

귀족이 어떻니, 자격이 어떻니,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지 떠들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중앙 정계에 발을 내밀지 못하고

자기 영지에서 쥐 죽은 듯 살아야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작위와 영지는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릿속에 온통 `누가 왕이 되어야 내가 이익이다` 만

가득 차 있으니, 눈앞에 내려졌던 동아줄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라이거 가문의 가주 카온 라이거가

`네 기둥` 가문의 이름으로

이 땅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

"네.. 기둥.. 가문..아!"

이제야 `기회`의 의미와

잠깐 보였던 그것이 동아줄이었음을

페이트 공작을 비롯한 동부와 중부 귀족들이

깨달은 듯했지만 이미 늦었다.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인 쇼페라 가문의 가주

아샤 쇼페라가 뜻에 따릅니다."

회의 내내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알았던

아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인 테슬린 가문의 가주

키엘 테슬린이 뜻에 따릅니다."

키엘이 테슬린 가문의 가주가 된 뒤 처음으로 한 일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충성을 맹세하는 거였다.

"`네 기둥` 가문 중 하나인 일라인 가문의.."

모두의 눈이 라이에게 향했다.

"후손, 라이 일라인 뜻에 따릅니다."

"라이 왕자님!

어찌 일라인의 천년을 버리려 하십니까!?"

페이트 공작을 시작으로

중부, 동부 귀족 할 것 없이 라이를

비난 하기도 하며, 조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달래기까지 했다.

왕세자를 선정하는 권하는 왕이 가진다.

그리고 왕의 서거 후

선정된 왕세자가 왕이 되는 것에는

귀족 회의나 귀족의 의견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귀족들이 왕을 바꾸는 경우도 존재했다.

제라드의 경우처럼 살아 있는 왕을

귀족 회의를 통해 참여 귀족 전원이 찬성하면

폐위시킬 수 있고, 현 왕의 폐위가 결정되면

제이슨처럼 귀족 회의의 찬성을 통해

왕세자나 왕자를 왕을 앉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같은

일라인이란 성을 달고 있는 이에 한해서였다.

내가 이 땅의 주인이 되면 왕국의 이름 자체가 바뀐다.

다른 왕국이나 주인이 바뀐 제국처럼

한 가문이 왕가가 되고

그들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반역으로 또는, 멸망에 의한 것뿐이었다.

일라인 왕국의 땅이 이 반역이나 침략이 아닌 이유로

주인이 바뀔 수 있는 것은

건국 과정에서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일라인 왕국은 `네 기둥` 가문으로 불리는

네 개의 가문이 힘을 합쳐 세운 왕국이다.

다른 가문의 시조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유진 일라인 초대 왕은 국호를 자신의 성인

`일라인`이 아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후손들의 과한 욕심이 걱정된

세 가문의 시조들이 이를 반대했고,

긍지와 정의라 불리는 일라인인 만큼

나라를 잘 다스려 달라는 뜻으로

왕국의 이름을 `일라인`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세 시조의 의사가 확고해

이를 꺾지 못했던 유진 일라인은 대신,

자기 후손이 왕국을 망치게 될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일라인 왕가가 왕가로서의 자질을 상실했을 경우,

다른 세 가문의 후손이 왕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네 가문 모두의 찬성으로 한다.였다.

내가 라이거 가문이 힘없은 백작 가문 시절에도

제라드 왕은 물론, 전 테슬린 공작, 왕자들에게

큰소리칠 수 있었던 중요한 사항이었고,

라이거 가문이 다 쓰러져 갈지언정

가문의 이름을 유지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왕국의 주인의 바뀌는 것을

귀족들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가장 유약해 보이는 라이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그만!"

입을 여는 것을 넘어

점점 다가오자 라이가 소리쳤다.

"천년의 역사를 버린다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저는 이 땅에 쓰여질

새로운 역사와 함께하려는 겁니다!

저는! 역사 속에 기록될 `일라인`이란 성이

무능하고 멍청해 한 왕국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성으로! 가문으로!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내 아비가 욕심이 많아!

내 형제가 무능하여! 일라인 왕국은 사라지지만!

이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입니다!

잠시 쉬었다 일어서는 일라인은

시조이신 유진 일라인님께서 그러했듯!

이 땅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움직이고

검과 창을 쥐는 일라인이 될 겁니다!"

라이의 말에 모든 귀족들이 숙연해졌다.

왕가라는 위치만 지키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 아닌,

이 땅에 모든 이.

귀족뿐만 아니라 이 땅에 발을 내딛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라이의 의지에 그 누가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숙연함 뒤에 깨달음이 찾아오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은 깨달음의 대가는

기회가 아니라 후회와 책임뿐이다.

"이 땅의 주인으로 명한다."

허망한 눈으로 라이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나에게 향했다.

"이 땅의 주인은 일라인 왕국을 건국한

`네 기둥` 가문의 시조님들의 뜻을 이어가는바.

새로운 왕국의 국호를 `일테라쇼`라 정하며,

라이거 대공령과 옛 신성국의 영토까지 합쳐

일테라쇼 제국으로 한다."

""일테라쇼 제국에 영광을!""

라이, 아샤, 키엘, 그리고 폴리아리스 후작이

동시에 다시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제국의 수도는 현 라이거 대공령이 될 것이며,

동부는 테슬린 가문의 가주 키엘 테슬린이,

서부는 쇼페라 가문의 가주 아샤 쇼페라가,

북부는 왕가에서 귀족 가문이 된

일라인 가문의 가주 라이 일라인이

공작의 작위와 함께 관리하게 될 것이다."

""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대회의장 안에 있는 사람 중

시간이 흐르고 있는 이들은 나를 포함한

`네 기둥` 가문의 새로운 주인들 뿐이었다.

"폴리아리스 후작."

"네. 폐하 하명하시옵서소."

"그대의 작위를 공작으로 승작한다."

"주신 포르테님과 가문의 이름으로

일테라쇼 제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아직도 흐르는 시간에 따라오지 못하는

동부와 중부 귀족들을 쭉 둘러보다가

이제는 공작이된 폴리아리스 후작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국의 귀족들은 모두 `귀족원`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 귀족원의 수장으로 그대를 명하니.

귀족원 수장으로서의 첫 번째 임무로

`네 기둥` 가문의 새로운 가주들과 그대를 제외한

이곳에 있는 모든 귀족의 작위를 몰수하고

주인을 잃은 영지에 새로운 주인이 내정될 때까지

관리를 명한다."

"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폴리아리스 공작 혼자 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이미 안정적인 남부와 서부의 귀족들과

가신들이 도울 것이기에 걱정이 없었다.

"대..아니! 폐하! 어찌..!"

페이트 공작이 주저앉았다가

무릎으로 기어 오다시피 다가왔다.

"지금부터 써 내려갈

새로운 천년에 그대들의 자리는 없다.

북부 귀족들처럼 타국으로의 추방을 명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그대들 창고와 금고에 있는

재산까지는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대들의 목숨과 가족들의 목숨.

영지민들의 피와 눈물로 쌓은 재산관리는

잘해야 할 것이다."

페이트 공작에게 한 말이면서

작위를 잃은 모든 귀족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이 말을 끝으로 대회의실의 문을 열자 대기하고 있던

라이거 기사들이 들어와 귀족들을 에워쌌다.

이제는 더이상 왕성이 아니지만,

그들도 더이상 귀족이 아니기에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라이와 키엘, 아샤와 폴리아리스 공작만

내 뒤를 따를 뿐이었다.

폴리아리스 공작에게 새로운 제국의 첫 회의를 위해

나폴레이를 포함한 가신단을

이곳으로 불러올 것을 명한 뒤,

나는 노도우 테슬린 공작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열자 노도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제 라이거 왕국이 된 것인가?"

"일테라쇼라는 이름의 제국이 되었지."

"제국.. 제국이라.. 그렇군. 일테라쇼..

그래.. 유일하게 `네 기둥` 모두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네뿐이었군."

대공도, 폐하도 아닌 `자네`라는 말에

그의 심정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제2의 나와, 제2의 제라드,

제2의 아폴론이 없지는 않을 걸세."

"없지 않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겠지."

지금까지 역사가 그래왔듯,

일테라쇼 제국에 태평성대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도 자네 같은 인물이 나올 것 같은가?"

"글쎄.. 그때가 온다면

나 같은 사람이 세상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닌..

지금 자기 삶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이 세상을 바로 잡지 않을까 싶군."

"백성들이..?"

"세상은 변할 것이야.

왕은 핏줄이 아닌 백성들의 손으로 뽑히게 될 것이고,

귀족들이 가진 모든 권한이 축소될 것이며,

언젠가는 왕과 귀족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아닌,

민심이 왕국을 움직이는 날이 올 거야."

"민심이 왕국을 움직인다라..

자네 답지 않게 머릿속이 꽃밭이군."

노도우의 빈정거림을 부정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그런 시대가 오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지 말 할 수 있을 정도다.

귀족파와 국왕파가 생겨나듯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집단을 만들 것이고, 이들이 목소리를 낸다면

권한이 축소된 귀족들은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귀족이 아닌 백성들이라고 정의롭고 언제나 옳을까?

아니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권력이 무엇인지 안다.

정의와 인권, 가치를 외치던 집단에 권력이 물들면

정의와 인권, 가치라는 이름을 앞세워

권력을 탐하게 될 것이다.

그런 권력들이 모여 자신을 권력을 위해 움직인다면

제라드나 제이슨보다 더 멍청한 이를 왕으로 앉히고

그의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 년 전의 문제가 지금도,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다.

정체기인 과거의 천 년과

변화할 미래를 잇는 과도기의 지금.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할로써

미래를 위해 과거보다 더 큰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나는 권력을 탐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으로 기록되겠지만..

카온 라이거가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군."

"많은 이들이 행복하다면 성군으로..

몇몇만 행복하다면 폭군으로 기록되는

삶이었으면 좋을 것 같군."

"하하하하 부디 성군은 아니길 빌지."

웃음을 툭 하고 멈춘 노도우가 뒤를 돌았다.

"이제는 정말 혼자 있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나?"

그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가 펴며

아공간에서 술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주신의 품에서는 제라드 전하와 함께

술을 나누시지요. 노도우 테슬린 공작 각하."

"그래.. 하하하 제라드가 기다리고 있겠군.

자네가 선물한 술을 나눠 마시며

어떤 세상을 그리는지 지켜보지. 하하하"

문을 닫고 나와 그가 있는 방과

거리가 멀어졌음에도 들리는 노도우의 웃음소리가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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