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아베르 자페이입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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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아베르 자페이입니다.
제국이 선포되고 일주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일들이
제국과 내 주변에 있었다.
먼저 리아의 아버지와 어머니.
즉, 장인, 장모님께 `리스튼`이란 성을 내렸다.
영지와 작위를 같이 내리려고 했으나,
두 분께서는 귀족 사회에 대해
모르고 살았던 자신들이
황제의 장인, 장모라 하여 귀족이 된다면,
언젠가 가문이 분란의 중심이 될 것이
염려된다며 사양했다.
리아의 동생 또한 검 한 자루로 시작해
황후가 된 리아를 본받아
황실의 힘도, 황후의 힘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쟁취해보겠다며 거부했다.
세 사람의 뜻과 의지를 존중해
앞에서는 작위와 영지를 내리지 않았지만,
폴리아리스 공작에게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으로 두 황후 가문에 대한 존중과
라이거 가문의 의지를 잇기 위해
황실의 새로운 성인 `일테라쇼` 앞에
가문의 성을 넣기로 했다.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황제.
리아 리스튼 일테라쇼 황후.
에르제 폴리아리스 일테라쇼 황후.
이것이 제국의 황제와 황후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나는 이름 뒤에 새로운 성과
황제라는 칭호가 붙은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지만,
두 황후의 삶은 조금 변했다.
먼저 원래부터 일이 많던 에르제는 일이 더 많아졌다.
눈 밑이 거뭇해지는 것을 보고
휴식을 황제의 명으로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그제는 귀족 부인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어제는 폴리아리스 공작과
나폴레이와 함께 식은 차를 마시며 회의하고,
오늘은 보이지 않아 물어봤더니
마린다, 바이올렛과 함께
라이거 자치령으로 시찰을 나갔다고 한다.
아담에게 에르제가 무리하면 목덜미를 쳐
기절 시켜서라도 쉬게 하라고 명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리아는 황후의 신분과 함께
제국의 모든 군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비 때와 다르게
카시오스에게 칠흑 기사단을,
메튜에게 라이거 기사단에서
일테라쇼 기사단이 된 기사단의
권한을 위임하며 일정 부분을 내려놓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에르제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둘이 팔짱을 끼고 정원을 거니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라이거 자치령에 대한 의논도 있었다.
옛 신성국의 영토를 라이가 있는
북부에 맡기자니 그의 부담이 컸다.
그렇다고 동부와 서부에 맡기자니 거리가 멀었고,
새로운 귀족에게 맡기자니
라이거 가문의 성격이 너무 짙었다.
결국, 황실 직할령으로 지정하고
관리를 파견하는 것으로 일단락 맺었다.
이곳은 차후 수아르 제국과의 협정을 통해
두 제국을 사이를 잇는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로
키워볼 예정이기도 했다.
제국 선포와 함께 새로운 귀족 선출이 함께 발표되면서
제국 전체가 들썩였다.
주인을 잃은 60여 개의 영지 중
규모와 성격에 맞게 합칠 것은 합쳐
새로운 영지의 경계선이 정해졌고,
40개의 의자의 주인이 되기 위해
수 백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주일 만에 모든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나폴레이와 페트로, 그리고
페트로의 산하로 들어온 정보조직 `킬`의 힘이 컸다.
모인 사람들은 크게 세 분류였다.
남부와 서부, 북부의 일부 귀족 자제 중
가문의 후계자가 아닌 영식과 영애들.
다른 지역과 달리 기초부터 고등교육까지 받은
남부와 서부의 평민들.
평민이 된 옛 동부와 중부 귀족 자제들.
세 번째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부모에게
귀족의 작위를 박탈했을 뿐,
북부 귀족들처럼 추방해
제국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자신들에게도 죄가 있든, 부모의 잘못이든,
평민이 되었지만, 그들도 제국의 백성들이었고
제국의 백성들이라면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맞았다.
선별과 검증을 통해 38명이 선발되었고
이들은 지금 태상황이 된 아버지와,
태황후가 된 어머니의 지도로
전 제국을 돌아보기 전 교육을 받고 있다.
최종 선발 인원을 보고 조금 놀랐던 부분은
대부분 남부와 서부의 귀족 자제들이
선발되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과 평민들의 수가 비슷하고,
옛 귀족들 자제 중 7명이나 선발되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제국의 발전을 위해
한발 내딛는 일만 일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라인 제국의 마침표를 찍는 일도 있었다.
제이슨 일라인은 자신의 죄와
제라드, 헤이라스 왕후의 죄를 모두 안고
리아의 검에 목이 떨어졌다.
제퍼드는 반역의 죄로 카시오스의 검에 의해 눈을 감았고,
로자이 왕비는 평민의 삶과
국외 추방 중, 평민의 삶을 선택하고
자기 핏줄인 전 페이트 공작에게 돌아갔다.
후에 들은 소식이지만 전 페이트 공작과 로자이 왕비는
수아르 제국으로 망명했다.
아폴론은 라이와 함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북부로 떠난 라이와 달리
아담의 검에 의해 주신의 품으로 떠났다.
바로 잡은 역사.
바로 쇼페라 가문의 멸문이었다.
흑마법에 의한 멸문이 아닌,
당시 일라인 왕실과 테슬린 공작 가문의
계략에 의한 누명이었다는 것을
전 제국민들이 보는 영상구 앞에서 밝혔다.
발표 당시, 울다가 지쳐 쓰러진
아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에르제는 자치령으로 시찰을 하러 가고,
리아는 기사단의 훈련을 보러 가
홀로 차를 마시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쓸쓸해져 피식 웃음이 났다.
똑똑.
- 폐하. 폴리아리스 공작이 뵙기를 청합니다.
"들어와."
기사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폴리아리스 공작이 들어왔다.
"폐하. 포이든 왕국의 사절단이
막 성도 관문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아폴론의 반란이 일어나고 지금까지
포이든과 피오네 두 왕국은 결국 움직이지 못했다.
피오네 왕국 내에서는 군사적 움직임이 포착되었지만
수아르 제국이 군을 남하하자
바로 자체 훈련이라는 변명과 함께 해산시켰다.
포이든 왕국은 피오네처럼
소집령 한번 내리지 못하고 회의만 하다가 끝이 났다.
혼란을 틈타 쳐야 한다.
라이거 대공령이 건재하다.
피오네가 움직이니 바로 수아르 제국이 움직이더라.
라이거와 수아르가 역시 동맹이더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이러는 사이 제국이 선포되자 또 회의가 벌어졌다.
제국으로 대해야 한다,
제국은 무슨 제국이냐 왕국이지. 오만이다.
왕국이 끝났으니 새 황제와 새 동맹을 맺어야 한다.
그 새 황제가 라이거인데 동맹을 맺을 것 같은가.
동맹이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교류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포이든이다. 그럴 필요 없다.
손을 잡아야 한다, 말이야 한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줄 알았더니
다행히 뱃머리는 육지를 향했고,
오늘 그 사절단이 도착했다.
"피오네는 아직 언제 온다던가?"
"적어도 일주일은 더 있어야
피오네의 그림자라도 보일 것 같다고
페트로님께서 보고했습니다."
"뭐.. 자기들끼리도 약속 시간에
한 시간 늦는 게 예의라고 하는 작자들이니."
"폐하께서는 그들이 와도,
오지 않아도 상관없으시지 않습니까?"
"없지는 않아. 포이든이든, 피오네든..
끝내야 할 일이 있거든..
지금쯤 본성에 당도했겠군.
누가 사절단의 대표라고 하던가?"
"아베르 자페이입니다."
"자페이 가문이라..
그것도 제일 먼저 포이든으로 도망간 아베르라..
그가 왔단 말이지? 재밌겠군."
"알현실에 대기 시키겠습니다."
*
아베르 자페이는 일라인 왕국을 떠나며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카온 라이거라는 인물이 일라인 왕국은 물론,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뜨려 버렸다.
포이든과 테슬린 가문의 끈끈한 동맹이
너무나도 싶게 끝이 나버렸다.
덕분에 자금도 힘도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자
아베르는 모든 직책을 던져버리고
포이든 왕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침 뱉고 떠난 그 땅을 다시 밟았다.
`자페이 가문이 그동안
일라인 왕국과 깊게 교류하고 있었으니
그들을 잘 아는 자페이 가문에게 사절단을 맡긴다.`
라는 왕의 명령과,
`라이거 가문은 포이든 왕국을 좋게 보지 않는다.
잘못도 실수도 없는 사절단의 목이 떨어질 수 있다.
나는 자페이 가문의 가주로
가문을 지키고 대를 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대 자페이 가문의 가주는
포이든 전하를 제외한 이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
해서 라이거 가문, 일라인 왕국과 교류가 있고,
자페이의 피를 가진 너에게
사절단을 이끌 자격을 주려고 한다.`
라는 사지로 동생을 내모는 형의 명령때문에.
다시 일라인 왕국, 아니,
일테라쇼 제국의 땅을 밟았다.
이미 한번 본 발전한 라이거 영지였던 성도라
마차의 창문을 내린 채, 왕과 형에게
저주 아닌 저주를 중얼거리는 동안
황성에 도착했다.
포이든 왕국의 문양과 자페이 가문의 문양이
달린 깃발이 버젓이 꽂혀있음에도
어찌나 깐깐하게 검문을 하는지
사절단이고 뭐고 대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자신의 신분이 고작 남작 영애라
황제의 선택을 받지 않을 것을 당연히 여기는지
옆에 앉은 귀족 영애가 고분고분하다는 점과,
그녀의 살결이 참으로 부드럽다는 것이었다.
"너도 황제의 첩보다 나의 첩으로
고향인 포이든 왕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야."
"네? 네.."
"그래. 왕국으로 돌아가면
너와 너의 가문은 내가 따로 챙기도록 하지."
"감.감사합니다.."
"여자는 이렇게 고분고분해야지..
무슨 여자가 군권을 가지고
남자들이 하는 일을 한다는 건지 쯧.
제국은 무슨.
카온 황제가 죽고 나면 곧 망하겠어. 쯧쯧."
본성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베르는 또 한 번 혀를 찼다.
마중 나온 이의 신분이 공작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공작이 폴리아리스 공작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폴리아리스 가문.
남작 가문의 여식이 운이 좋아
대공비가 되면서 후작이되고,
황후가 되면서 공작이 된 가문.
이름만 제국에, 이름만 공작인 이의 마중이
아베르의 성에 차지 않았다.
"사절단의 거처는 어디인가?"
제국임을 인정하지 않고,
제국의 공작을 공작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아베르의 입에서는 하대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폴리아리스 공작이 누구인가.
페페 가문과 파실리온 가문 사이에서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자였다.
공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거처는 폐하께서 알현 후
직접 지정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뭐? 무슨.. 사절단 대우를..!"
"일테라쇼 제국의 황.제.폐.하께서 직.접.
사절단이 머물 곳을 정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먼 길 오느나.."
"폐하께서 사절단 전원을
알현실로 모시라 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폴리아리스 공작이 먼저 등을 돌려
본성 내부로 들어가자,
아베르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페이 공. 일단 들어갑시다.
여기는 제국이고, 제국의 주인이
어떤 성격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후.. 저는 황제 앞에서 입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싫습니다."
"하.. 젠장!
카사이 영애, 모모리 영애는 제 옆에 서시지요."
오로지 하나의 목적으로 제국을 방문한
포이든 왕국의 귀족 영애 중,
가장 신분이 좋은 두 영애를 대하는 태도가
마차를 함께 탔던 영애를 대하는 것과 달랐다.
알현실에 도착해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카온이 나타나지 않자
아베르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40분, 50분이 지나자
이제는 화가 나는 것보다 다리가 아팠다.
한 시간의 기다림.
무시당한 분노와 다리의 아픔에 한 소리 하려던 순간,
"일테라쇼 제국의 태양.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든 일에 원흉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외침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