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68화 (168/201)

〈 168화 〉 기회를 주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168. 기회를 주지.

알현실에 들어와 황좌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아베르 자페이가 아니라 그의 옆과 뒤에 있는

일라인 정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었다.

황좌에 앉자

아베르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알현을 위한 준비가 아직 덜 되어

제가 제대로 사절단의 소임을

수행을 수 있을까 염려됩니다."

아베르는 타국의 사절단이 왔는데 대접은커녕

휴식할 시간도 주지 않았음을 비꼬고 있었다.

계속 말해보라고 어떤 답도 하지 않자

우쭐해진 아베르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시간을 정해 주시면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보통 사신단이 방문해 알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비슷한 국력의 왕국을 방문했을 때.

이때는 서로 적대관계이냐,

우호관계이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데

보통 사절단이 머무를 곳을 안내한 뒤,

저녁에 연회를 연다.

이때, 서로의 목적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다음 날이나 이틀 뒤, 대표와 핵심 인물들끼리 모여

서로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

회의도 하고 이견도 조율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이루면

귀족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다시 사절단은 방문 목적을 밝히고,

이미 합의된 내용을 서로 주고받는다.

마지막으로 서로 얼마나 이익을 가졌냐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지겠지만, 다시 한번 연회가 열리고

서로의 목적에 맞게 교류의 장이 열린다.

두 번째는 사절단이 속한 나라의 국력이

방문국보다 낮을 때다.

이때는 첫 번째처럼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방문국의 대표, 즉, 황제나 왕의 마음대로다.

이는 사절단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든,

방문국의 대표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기 때문이었다.

오라면 가야 하고,

가지 않으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가라면 가야 하고, 그때 가지 않으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다.

목적을 이루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본국의 땅은 밟아도 고향 땅은 밟지 못한다.

이것이 강대국을 방문하는

사절단의 마음가짐이었다.

물론, 나는 예전에 카이젠 제국을 방문했을 때

그러지 않았다.

당시에 먼저 예의를 갖추지 않았던 것은

제국의 황제였고,

덕분에 나도 예의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포이든 왕국에게

제국이 선포되었고 황제가 이 땅 위에 일어섰으니

축하하고 초청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먼저 방문 의사를 밝혔고

오고 싶으면 오라는 말에 온 것뿐이었다.

그런 주제에 제국과 왕국이라는 것을 떠나서

아베르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지.. 알현 준비가 아직 덜 되었지..

그리고 부족한 모습이기도 하고.."

"하하하 새로운 시대가 열려 바쁘시다는 걸 압.."

"아니아니.. 포이든 왕국의 사절단에게 하는 말이야."

"포이든 전하께서는..!"

"쯧."

두 번이나 말을 끊는데 이어 혀까지 차버리자

아베르의 표정이 구겨졌다.

"올 때가 됐는데.."

- 수아르 제국의 황제!

바렌 수아르 황제께서 입장하십니다!

때마침 알현실 밖에서 기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일테라쇼 제국이 있기전 대륙의 유일한 제국이었던

수아르 제국의 황제가

호위 기사의 대동 없이 남녀 10명과 함께 들어왔다.

"제국의 황제께서.. 어찌.."

놀란 나머지 그대로 서있는 아베르와 달리

포이든 왕국의 사절단은 수아르 황제의 앞에

방해가 되지 않게 옆으로 비켜섰다.

바로 코앞에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그대로인

아베르를 잠시 내려다본 수아르 황제는

아베르보다 한 발 앞으로 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테라쇼에 영광을.

수아르 제국의 황제가 일테라쇼 제국의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황제를 뵙습니다."

알현장에 있는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알현장 양옆에 서 있던

일테라쇼 제국의 귀족들의 웅성거림이 아닌,

포이든 왕국 사절단의 웅성거림이었다.

나는 황좌에서 일어나 수아르 황제에게 다가가

그를 직접 일으켜 주었다.

"어찌 이렇게 과한 예를 올리십니까? 수아르 황제."

"황제의 관을 쓰고 있다 하여

폐하와 라이거 가문의 은혜를 저버릴 제가 아닙니다.

당시의 폐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가 황제가 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제국민들의 평화와 안전은 없었을 겁니다."

"은혜라니.. 아닙니다. 제국도 제국이지만

당시 일라인 왕국의 안전과도 관계가 있었는걸요.

서로 도움이 되었을 뿐이니

이제 그만 그건 잊어 주시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하지만.. 수아르 제국 역사의 첫 번째 장에는

분명 기록될 겁니다."

"하하하 수아르와 일테라쇼가 기록할

역사 속 두 제국에는 검과 창이 아닌

평화와 우호만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하하하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먼저 폐하를 알현한 이들이 있군요."

수아르 황제는 뻔히 먼저 온 이들이

누군지 알면서 능청스럽게 물었다.

포이든 왕국의 사절단과

비슷한 시각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사절단을 알현하고 있어도 수아르 황제에게

그냥 들어오라고 한 것이 나였다.

"준비가 덜 되었다고 시간을 달라고 하여

시간을 주는 중이었습니다."

"호.. 그럼.. 포이든의 사절단의 대표가 누구인가?"

사절단 중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아베르가 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포이든 왕국 자페이 가문의 아베르 자페이가

수아르 제국의 황제께 인사 올립니다."

나를 상대 할 때와 전혀 다른 아베르의 모습에

일테라쇼 제국의 귀족들은 전혀 노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미래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는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짐이 일테라쇼 제국의 건국과 황제의 즉위를

직접 축하해 주고 싶어 왔지만..

제국을 오래 비울 수가 없구나. 보아하니.."

수아르 황제가 아베르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직도 준비가 덜 될 것 같은데

짐이 먼저 황제에게 축하를 건네도 되겠는가?"

"네? 네! 당연..!"

"그래. 당연히 그래도 되겠지"

똑같이 말이 끊겼음에도 아베르는 고개를 숙이고

사절단이 있는 옆으로 물러섰다.

수아르 황제의 축하를 시작으로

시시콜콜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원래대로라면 접견실로 자리를 옮겨

더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했지만,

나는, 그리고 일테라쇼 제국은

아군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적인 포이든 왕국의 사절단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회담에서나 나올 법한 주제를 꺼냈다.

"수아르 황제. 수아르 제국과

일테라쇼 제국이 군사적 동맹뿐만 아니라,

교역의 규제를 완화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산업이나

문화를 교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수아르 제국과 일라인 왕국은

이미 군사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왕국은 과거가 되어버려 새로운 동맹이 필요했다.

"이런! 폐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시면 어떡합니까?

하하하"

다르게 표현했지만, 긍정의 답이었다.

수아르 제국이 요청하고 내가 허락하는 것이 아닌,

내가 먼저 요청하고 수아르 제국의 황제가

긍정한 것은 의미가 컸다.

그 의미를 아는 두 제국의 귀족들은

누구는 놀란 듯 눈이 커지고,

누구는 감동한 듯 눈을 반짝였다.

누군가의 피를 보기 위해 마주 잡은 손이 아닌,

평화와 안전, 발전을 위해 잡은 손을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개방하는 것은 발전이 아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서로 동의한

나와 수아르 황제는,

황실 자치령인 옛 신성국의 땅을 자유 도시로 선정하고

그곳에서부터 양국의 교류를 시작해

두 제국의 벽을 천천히 허물기로 했다.

이후 몇 가지 의견에 대해서는

당장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이 자리에서 바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는 차후로 미룬 뒤.

"언제가 서로의 국경선은 존재하지만..

백성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서로의 문화에 서로의 문화의 더해져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며,

정치와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서로 긍정이 되어 같이 발전하는

제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알현장에서의 회담이 끝이 났다.

"아베르 차페이라 하였던가?

좋은 이와 나누는 대화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하더니..

짐이 그대의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군."

"아닙니다.. 폐하."

"아닌 게 아닌 것 같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

수아르 황제가 알현장을 나가기 위해

다시 나에게 인사를 올리려던 순간,

같이 왔던 이들 중 한 명이 수아르 황제를 불렀다.

"폐하.."

"음? 이런! 그대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폐하.."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짐이 일테라쇼 폐하와의 대화가 너무 즐거워..

큼큼.. 미안하네."

아베르를 대하는 것과

너무나도 다른 온도 차에 궁금해 물었다.

"아끼시는 자들인가 봅니다?"

"아끼는 이들이지요!

제국의 미래가 제국의 어린아이들이라면

귀족의 미래는 이들이지요."

젊은 남녀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가

표정을 바꾸고 나를 바라봤다.

"이들을 일테라쇼 제국에서 키워 주시겠습니까?"

"키워달라니는.. 무슨.."

"수아르 제국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지금 제국을 이끄는 대부분은

정치에 능하고 학식이 뛰어난 자들이 아닌,

검과 창, 전술과 전략, 피에 익숙한 자들이죠.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대신..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죠..

지금 당장은 그들의 검이 필요하지만

지금이 영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뛰어난 제국의 검들이 백성들을 지키고,

뛰어난 정치가들이 백성들을 위해

정책을 펼치는 제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한계성을 인정하고

더 나은 제국과 백성들을 위해 인재를 유학 보내겠다는

수아르 황제의 생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혹독할 겁니다."

"하하하 원하던 바입니다.

그럼 폐하. 조만간 자유 도시에서 다시 뵙지요."

`지금부터 배워라` 라는 말을

같이 온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수아르 황제는 알현장을 떠났다.

홀로 당당히 나가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

멍하게 수아르 황제가 나간 문을 바라보는

아베르를 보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아졌다.

"그래. 이제 준비는 되었는가?

충분한 시간을 가졌는가?"

이제야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아베르가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제가 감히 무례를.."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군."

미련 없이 등을 돌리려는데

사절단 중 한 명이 급히 나와 아베르를 밀치고

양쪽 무릎을 꿇었다.

"포이든 왕국 케이마로 가문의 달튼이

일테라쇼 제국의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황제께

예를 올립니다."

"그대와 대화를 나누면 된다는 뜻인가?"

"네! 폐하!"

"포이든 왕국은 사절단의 대표로 다른 이도 아닌!

다른 가문도 아닌! 아베르와 자페이 가문을 보냈다.

아베르가 일라인 왕국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자페이 가문이 일라인 왕국에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대의 왕과 포이든의 귀족들은 모르지 않을 터!

이는 일라인 왕국을 건국한

`네 기둥` 가문의 시조님들의 유지를 이은

나와 제국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사절단과 함께 온 저 여인들의 목적이 명확하고

이는! 나는 물론 제국의 황후들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폐하.. 잠시.."

"그대가 어떤 마음으로

양쪽 무릎을 꿇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가 어떤 마음을 가졌든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절단의 대표가

방문국에 대한 예의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다는 것이

첫 번째 사실이며!

하필이면 그자가 아베르고! 아베르의 성이

자페이라는 것이 두 번째 사실이며!

아베르 자페이가 자국의 여성을 도구!

공물로 사용하려 했다는 것이 세 번째 사실이고!

이로써 그가 제국의 황후를 모욕했다는 것이

네 번째 사실이다!"

"아닙니다! 제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포이든 전하와 가주의 명령에 따른 것뿐입니다!"

억울하다 외치는 아베르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그렇군.

그렇다면 포이든의 왕과 자페이 가문이

나와 제국! 황후를 모욕한 것이군."

고개를 아베르에게서 달튼이란 자에게로 돌렸다.

"사절단의 대표는 왕을 대신하는 자.

그래도 나와 대화를 나누겠는가?"

달튼은 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런 달튼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앉으며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기회를 주지."

나는 고개를 번쩍 든 달튼을 향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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