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제가 드린 질문이 너무 어려웠나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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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제가 드린 질문이 너무 어려웠나요?
카온의 동생 프레시아 라이거 백작은
자신을 찾아온 두 귀족 영식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공녀님!"
프레시아는 `공녀`라는 호칭에
살짝 미간이 좁아졌다.
"일라인 왕국과 달리 일테라쇼 제국은.."
귀족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
영식 중 한 명이 긴 설명을 이었다.
쓸데없는 이유와 설명을 빼고 요약하자면,
일테라쇼 제국은 일라인 왕국 때와 달리
친평민적이고, 성공의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하지만 아직 평민들은 배움의 기회가 적고,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이 노력한다 해도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적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다.
그래서 귀족과 평민의 중간이라 볼 수 있는
작위를 아직 받지 않은 귀족 자제들이
제국과 제국의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겠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기 위해
`신 귀족 청년 단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대들의 생각은.. 훌륭해요."
"감사합니다! 분명 제국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폐하께 건의를 넣거나,
그대들의 가문이 있는 서부와 남부의 영지에서
하지 않고 저를 찾아오셨나요?"
프레시아는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서부와 남부는 이미
평민들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부와 북부, 동부는
훌륭한 영주님께서 이끄시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북부는 힘들겠지요."
첫 대답부터 프레시아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부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북부를 관리하시는 라이 일라인 공작님께서는..
아직 모든 권한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라이거 백작님께서는 다르시지요.
이곳을 제외하더라도
중부 전체, 더 힘을 써 주시면
북부까지 관여하실 수 있습니다."
"하.."
프레시아가 한숨을 쉬자 라이거 가문이
백작 가문이던 시절부터 함께한
시녀 데이지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프레시아의 찻잔을 치우고
다른 찻잔에 다른 차를 채웠다.
마주 앉은 두 영식은 프레시아가 짜증이 났을 때
데이지가 하는 행동임을 알지 못했다.
데이지의 판단과 행동은 정확했다.
프레시아는 짜증을 눌러 담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대들은 제국을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저를 찾아온 것이 아닌..
그대들의 성공을 위해서 나를 찾은 것이군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프레시아에게서
백작 이상의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성공을 위해서라니! 아닙니다!
저희는 제국의 번영을 위해..!"
"아니요. 그대들을 제국의 번영과
백성들을 앞세워 성공을 바라는 겁니다.
진정 제국을 생각하고,
제국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을 위한다면..
첫째. 그대들은 단체의 모든 이들을 이끌고
제가 아닌 북부를 찾아가 갔어야 했습니다."
프레시아가 생각했을 때,
이들은 제국을 위한다는 것을 모르겠지만
적어도 백성들을 위해 움직일 준비는 되지 않았고,
설사 준비가 되었다 해도
마음가짐부터가 잘못되었다.
역병을 대처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다양하다.
그 중, 이들은 자신이 역병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피고름이 가득한 병상에서 환자들을 돌보거나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는 이처럼
맞서는 자도 아니고,
살기 위해 그 지역을 벗어나거나
문을 걸어 잠그고 역병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 이들처럼 도망가는 자도 아니다.
이들은 회피하는 자였다.
겁이 나서 환자를 돌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책임지는 것이 싫어 의견을 내지 못한 채.
그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치료제를 개발해야 합니다.`처럼
이도 저도 아닌 회피하는 자.
역병이 끝난 뒤에는
`내가 이렇게 해서 해결되었다.`
내가 그때 이렇게 말해서 된 것이다.`라고
떠들어대는 자.
프레시아는 그들보다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자가 낫다고 생각했다.
"둘째. 권한이니 힘이니
이 같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들은 생각과 의견에 자신 있으며,
프레시아가 당연히 동의할 것으로 생각했다.
프레시아 라이거 백작.
현재 유일하게 라이거라는 성을 달고 있는 귀족이며,
황제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부모와 오라버니에서 엄청난 믿음과 사랑을 받는
딸이자 동생이었다.
그런 존재의 말 한마디면
황제와 제국이 움직이는 것이다.
단, 프레시아가 프레시아가 아니고,
카온이 카온이 아니었다면.
허울과 사심 가득 찬 의견을
간파하지 못한 프레시아가 아니고,
혹여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카온에게 가져가도
카온이 분명 프레시아가 놓친 것을 알려주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진정 백성들을 생각한다면
서부와 남부의 평민들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모든 백성이 자기 삶에 만족하는 세상은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가정과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래서 상점의 주인들은
상점의 매출과 직원들의 급여나 복지를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래도 그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불만이 나온다.
그런데 아직 작위가 없는 영식 주제에
감히 영지민들이 모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영지 곳곳을 돌아보고
귀족의 시선이 아닌 백성,
영지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절대 그런 말은 못 한다.
자기 울타리에 들어온 평민 몇몇을 보고
모든 평민이 만족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프레시아의 다음 말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기도 했다.
"무엇이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고
무엇이 제국을 위하는 것입니까?
백성들을 위한다고 했습니까?
그럼 물어보죠.
그대들은 백성들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백성들의 한 달 기본 급여가 얼마입니까?
백성들의 집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평균.."
"농가가 풍작일 때,
몇 평에 얼마 정도 수익이 발생하고,
평작일 때, 흉작일 때는 얼마나 수익이 발생합니까?
서부와 남부 농민들의 수익의 차이가 얼마나 납니까?
상단을 이끄는 집안이 사는 집의 크기, 용도와
농업에 종사하는 집안이 사는
집의 크기, 용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레투스 가문의 상단 일꾼의 급여와
안토니오 상인의 급여 차이는 얼마입니까?"
레투스 가문은 서부 귀족 영식의 가문이고,
안토니오는 그 가문 상당에서 일하는
중간급의 종업원이었다.
가문의 이름과 일개 상인의 이름이
프레시아의 입에서 나오자
서부 귀족 영식의 눈이 커졌다.
"설마 제가 드린 질문이 너무 어려웠나요?
백성들을 위한다는 자가,
자신의 가문이 이끄는 상단에서 일하는 이들의
급여를 모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요..
아! 가주가 아니라 모르는 건가요?
그런 더 쉬운 질문을 드리죠.
백성들은 주로 어떤 스프를 먹습니까?"
"그야.. 돼지고기...스프.."
"그들에게 백성이란 중상층 이상이군요."
카온은 라이거 영지의 농업을 발전시킨 뒤
바로 축산업도 발전시켰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 평민들에게 돼지고기란
`기쁜 날`, 또는 `급여 날`에 먹는 고기였고
그들의 스프에는 영식이 말한 돼지고기가 아닌
닭고기가 들어갔다.
"혹시.. 스프도 못먹던 이들이 야채 스프를 먹고..
이제 겨우 고기가 들어간 스프를 먹는다고
삶에 만족한다고 하신 것은 아니시죠?"
"..."
"후.. 다 좋습니다.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백성들과 달랐으니까요.
다 좋아요.. 그럼.."
프레시아의 시선이 남부 귀족 영식에게 향했다.
"제국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난 뒤에라도..
직접 농사를 위해 흙을 만져 본 적 있습니까?
아니면.. 축사에 들어가 본 적은 있나요?
그것도 아니면.."
프레시아의 시선이 서부 귀족 영식에게 돌아갔다.
"상행 준비를 위해 짐을 직접 옮겨 본 적 있나요?"
"..."
"그런 주제에.. 무슨 백성과 제국을 위한다고..
그대들은 권위로 찍어 누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으니
제국의 귀족으로 황실의 일원으로 말하겠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이 고기가
닭인지, 돼지인지, 소인지 구분해.
산을 올라본 사람이 힘듦 속에 찾아온
뛰어난 경치에 환희 할 수 있고,
배 하나에 몸을 맡겨본 자만이
바다의 광대함과 바다가 주는 공포를 알지.
하지만 그대들은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대들의 시선과 그대들의 기준으로 만족을 논했고,
그대들과 함께하는 몇몇 의견이
백성들의 의견인 양 떠들고 있지.
그대들보다 어린 내가
이런 말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만만하게 보지 말게.
진정 백성과 제국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대들이 이용하려 했던 권력을 이용해
황제 폐하께 가문의 후계자뿐만 아니라
원하는 이가 있으면 제국을 돌아보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건의해 보지.
그들이 진정 제국과 백성을 위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때는 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겠네."
고개를 푹 숙인 둘을 보며 프레시아는
적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고 느꼈다.
고개를 든 두 영식은 프레시아에게 예를 올리고
접견실 문을 연 순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다행히 선은 넘지 않았군."
""일테라쇼 제국에 영광을!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라버니!"
*
오랜만에 동생이 보고 싶어 기별도 없이 찾아왔다가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처음에는 귀족 영식을 만나고 있다는 말에
누군지 몰라도 목을 비틀어 버리려고 했으나
두 명이란 말에 업무 때문이라 여기고
말아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귀족 영식이 앞장서
귀족과 평민들의 다리 역할을 하며,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 그들을 위한 정책을 건의한다.
흥미로운 내용이기는 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고
그 궁금증이 동생의 입에서 나왔다.
동생의 목소리는 단순히 물어보는 정도가 아니었다.
어이없음, 짜증, 분노가 잔뜩 묻어있었다.
또 그런 와중에 핵심을
콕콕 집어내는 것이 역시 동생이다 싶었다.
마지막에 와서는 동생이
귀족의 권위와 황실의 일원을 내세웠다.
적어도 완전히 생각이 어긋난 이들은 아니었다.
나오면서 나를 본 표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다행히 선은 넘지 않았군."
나와 프레시아, 제국과 백성들을 기만하는
선을 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