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새벽이었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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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새벽이었습니다.
포이든 왕국에서 돌아온 뒤,
오랜만에 가신단 회의를 열었다.
"생각보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자들이 없군."
내가 포이든 왕국을 떠나고 이틀 뒤부터
포이든 왕국으로 끌려갔던 이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모두가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는 것이
욕심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랬고,
바랬던 것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하루 이틀, 아니 한 달, 일 년 만에
포이든 왕실에서 그들을 찾아내고
일테라쇼 제국 내 고향으로,
수아르 제국으로 돌려보내기 힘들겠지만,
그 행렬이 끝나면 한 줌 재가되어,
유골이 되어, 한 장의 종이 위에 새겨진
이름이 되어 돌아온 이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낼 것이다.
주신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의
넋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일라인 왕국의 부족함과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함과 동시에
정착 자금과 세 가지 선택권을 줬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과 친척,
함께했던 이들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일테라쇼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스칼렛처럼 고향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있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길 바라는 자들에게는,
제국의 성도부터 동서남북의 특징을
자세히 알려주며 원하는 곳의 신분 패를
발급해 주었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자리까지 소개하는 것.
마지막으로 본인이 원하는 제국이나 왕국으로
이민을 허락해 주는 것.
모두가 노예의 삶이 끝나고 고향, 또는
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정보부에서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나의 권유를 거절하고, 에르제를 위해 일하고 있는
스칼렛이 다시 이 땅을 밟았을 때처럼,
일라인 왕국을, 일라인 왕국의 유지를 이은
제국 자체를 거부하고 증오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을 품에 안고,
원망과 증오를 풀어주려는 노력은 하겠지만,
그런데도 제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원하는 곳이 포이든 왕국일지라도 보내주려 한다.
"네. 그들이 포이든으로 끌려갔을 당시에는 이곳이
일테라쇼 제국이 아니라 일라인 왕국이었습니다."
"갓태어나 납치되어
70살에 돌아도 백 년이 되지 않습니다.
왕국이 망하기 전 백 년..
폐하께서도 그 시절의 민심을 잘 아실 겁니다."
일라인 왕국 왕실과 귀족들의 사치가
선을 넘기 시작한 시점이자,
그들의 사치가 심해질 수록
백성들의 삶이 각박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귀족들은 먹고 놀고 즐기며,
누군가에게 뇌물을 주기 위해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강제로 거둬들였고,
백성들은 입을 줄이고자 눈물로, 또는
돈에 눈에 멀어 사람을 돈으로 거래하기 시작한
시점이고 시절이었다.
"당시의 기억을 가진이라면..
남은 인생.. 이 곳에서 보내기 싫을 것이다.
폴리아리스 공작은 그들의 이민에 더욱 신경 쓰도록."
"네. 폐하."
"폐하. 피오네 왕국 내부가 시끄럽습니다."
공작의 대답이 끝나자 메튜가 일어나
피오네 왕국 지도를 펼쳤다.
메튜의 손가락이 먼저 가리킨 곳은
피오네 왕국의 성도였다.
"지금 성도에는 피오네 왕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회의 전 리아 황후가 그러더군."
제국 정보부의 말에 따르면,
내가 포이든 왕국을 다녀온 이후
피오네 왕이 이상한 행동을 자주 보인다는 거였다.
당장 일테라쇼 제국에
사절단을 보내라고 명하기도 하고,
그 명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쟁 준비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훌륭한 후계자를 생산해야 한다며
자신의 막내딸 나이의 어린 귀족 영애를
왕비로 책봉하고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으며,
밤이 지나고 술이 깨면
감히 왕의 침소에 들어와 수작을 부렸다며
하루 만에 왕비와 왕비 가문이 된 가문을
반역으로 몰살시키기도 했다.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겠군."
"네. 폐하.
회의 전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지금도 피오네 왕국 회의실에서는
귀족들이 네 파벌로 나눠 싸우고 있답니다."
왕의 심신이 온전치 않으니
귀족들이 왕을 더 잘 보살피고 국정을 논해야 하는 파.
7명의 왕자 중 가장 뛰어난 왕자를 왕으로 올려
흔들리는 민심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파.
일테라쇼 제국과, 수아르제 제국.
특히 일테라쇼 제국에 사신단을 파견하여
고개를 숙일지라도 평화 협정을 맺고,
그 뒤에 다시 논해야 한다는 파.
나를 가장 어이없게 했던,
왕이 미친 이유가 일테라쇼 제국과
제국의 황제에게 있으니,
군을 일으켜 자신들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파.
더 어이없게도 마지막 파벌이 가장 세력과 힘이 강했다.
"포이든 왕국의 재상과 제1기사 단장이 손을 잡은 이상
한 번쯤은 무력 충돌이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제1기사 단장이 얼마 전 마스터가 되었다고 하더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겠지."
"하지만.."
메튜의 손가락이 제국의 국경과 가까운
왕국의 동부를 가리켰다.
"이곳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살인과 죽음을 경험하게 하고
피 맛을 중독시킬 겁니다."
피오네 왕국은 쇄국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제국과 가까운 도시와 마을 사람들의
눈과 귀까지 막지 못했다.
이미 품고 있던 불만에
쇄국정책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고,
너무나 상반된 제국과 왕국의 모습에
불만의 불씨가 더욱 거세져
왕이 미쳐있는 지금
결국 백성들이 들고일어났다.
내가 본 그들의 외침과 행동은 절규이자 바람이지만,
피오네 왕실과 귀족들에게는 반란이었다.
반란 진압을 위해 군을 이동시키고,
그들에게 피 맛을 보게 한 뒤 제국을 친다.
단순하고 무식한 생각만 하는 것이 피오네다웠다.
"나폴레이."
"네. 폐하. 그들이 단순하다면
저희도 단순하게 상대하면 됩니다.
리아 황후 폐하께는 죄송하지만.."
"괜찮다.
그가 어떤 색의 오러를 가졌는지 보고 싶구나."
나폴레이는 황후를 전장으로 보낸다는 것이
미안했을 것이다.
"황후 폐하께서 일테라쇼 기사단을 이끌고..
그들과 정면 승부하면서,
카시오스 부단장은 칠흑 기사단과 병사들을 데리고
제국 서부 사막을 건너
왕국의 뒤통수를 치면 됩니다."
"일테라쇼 기사단..? 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포이든 왕국에서 보여준 칠흑 기사단의 활약이
바다를 넘어 제국에게까지 소문이 났다.
선의의 경쟁 상대인 일테라쇼 기사단의 호승심이
불탔을 것이다.
"메튜?"
"네. 폐하. 부끄러운 말이지만..
제국에는 칠흑 기사단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와 리아를 제외한
칠흑 기사단과 일테라쇼 기사단이
목숨을 건 적이 되어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길지 장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칠흑 기사단과 달리
그동안 위용을 보여 줄 일이 없었던
일테라쇼 기사단의 몸이 근질거렸던 모양이었다.
"좋다. 피오네 왕국의 상황이 결정되면
리아와 상의해 군을 편성하도록."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이후 군에 관한 상황은 리아와,
제국 내부 정책에 관한 것은
에르제와 상의하라 명하고 집무실에 도착하자
메이가 서신 한 장을 건넸다.
"라이나?"
한때, 로즈 일라인이란 이름으로
한 왕국의 왕녀였던 여인의 서신이었다.
<폐하. 이 서신이 폐하의 손에 닿을 때 즘이면
저는 자유 도시 근처, 제국의 북부에 있겠군요.
제 눈에 비친 일테라쇼 제국은
밤이 지나가고 해가 뜨기 전,
새벽이었습니다.
일라인의 핏줄이 만들어낸 어둠은
너무나도 차가운 어둠이더군요.
하지만 제국이 건국되고
어둠에 붉음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점점 빛과 색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의 활기참을 바라보는 제 눈에는
저도 모를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라인을 중심으로 `네 기둥` 가문이
피워 냈을 새벽이 있던 천 년 전이
그려져서일까요..
아니겠지요.. 그때를 살지 못한 제가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해도
이런 눈물이 흐르지 않겠지요..
새벽을 맞이하는 제국민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기 넘치고 아름다워서일까요..
그것도 아닐거예요..
저는 그럴 자격이 없는 존재니까요..
설마 죄송한 마음은 아니겠지요?
저는 감히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잖아요..
눈에서 시작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저에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할 준비하는 이들이
손을 내밀어 주더군요.
그들에게서 받은 온기가 두려우면서도 고마웠습니다.
그에 보답하고자 미약한 저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을 곳을 찾아다니려 합니다.
폐하와 제국에 안녕이 가득하길 -라이나- >
라이나의 서신을 메이에게 건네며
두 황후에게도 보여주라 한 뒤 휴대구를 꺼냈다.
"라이나는?"
- 무료 배급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라이나의 감시자이자 호위인 칠흑 기사가 답했다.
"어떻지?"
- 감히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지만..
몸과 마음을 스스로 혹사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혹사시킨다라.."
- 왕녀는.. 인연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또한.. 짧은 인연의 끝에는
늘 다음을 기약하는 말이 아닌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그렇군.
지금부터 감시와 호위가 아닌 호위만 한다."
-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질문과 되물음이 없는
칠흑 기사의 대답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메이 답장을 쓸 생각이니 준비해줘.
그리고.. 붉은 장미 잎도."
"네. 폐하."
메이가 가져온 종이 위에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라이나에게.
그대 눈물의 의미는 그대가 말한 모든 것이다.
일라인의 피가 흐르는 그대가
일라인이 중심되는 영광을 그려낸 뒤
흘리는 눈물은 당연하다.
라이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지라도
그대는 일라인이다.
반성하고 죄스러워하는 마음과 동시에
일라인의 긍지는 잊지 말도록.
함께 새벽을 맞이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는가?
그대가 본 새벽이 생기 넘치고 아름답다면
그대 또한 그 새벽을 맞이할 충분한 자격이 되니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마라.
죄송한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되는 존재라 하였는가?
말뿐인 죄송함보다 그대의 눈물이 더욱 진실하다.
그대 또한 라이와 함께 일라인의 죄를 짊어졌다.
그러니 주신께서 정해 주신 수명보다 오래 살며
일라인의 죗값을 다하라.
어쩌면 처음으로 기록될 라이나에게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가. >
어쩌면 로즈 왕녀, 라이나가
나에게 기회를 얻은 인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 자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붉은 장미 잎에 마법을 걸었다.
"힐, 디톡스, 실드"
마법이 걸린 장미 잎과 편지를 넣은 봉투를
메이에게 건넸다.
"바이올렛에게 전해 주고..
폴리아리스 공작에서
꽃의 경계를 해제하고 지원하라고 전해줘."
"네. 폐하. 모든 것이 폐하의 뜻대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답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장미 잎에 마법을 걸었는지
이해하고 답을 하는 메이는 역시 메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