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89화 (189/201)

〈 189화 〉 그대에게 남작의 작위와 동부 올반을 주겠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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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그대에게 남작의 작위와 동부 올반을 주겠다.

파레앙 영지에서 시간을 보낸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내가 파레앙 영지에 있다는 것은

당연히 영주 일가만 아는 비밀이었고,

메튜는 내 명령받아 파레앙 군의 차출을 위해

방문한 것이며, 바이올렛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파레앙의 성벽을 점검하기 위해

메튜와 동행했다고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파레앙 일가가 아닌 다른 이들을 만날 때면

메튜의 견습 기사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것만 뺀다면

최근 들어 가장 재밌는 나날을 보냈다.

메튜가 차출을 가장해 파레앙 기사들을 봐주고,

바이올렛이 파레앙 영지 곳곳에

영지민들을 위한 마법 장치를 설치할 동안,

나는 셋째 아들 빅스,

둘째 딸 예르셔와 시간을 보냈다.

주로 정치, 경제, 군사에 관한 대화를 나눴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빅스의 놀라운 점은 한가지 가설이나 사실을 두고

거미줄식 생각을 하고 계획을 짠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피오네 군이

파레앙으로 쳐들어온다면 이란 가설이 성립될 경우,

파레앙 군만으로 맞서는 경우,

승리와 패배 두 가지 결과를 놓고

승리의 방식으로 1번을 선택했다면,

다시 1번의 성공과 실패를 다시 가정하고,

성공 시에는 어떤 방향, 실패 시에는

어떤 방향으로 다시 계획을 미리 짜 놓는 식이었다.

빅스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지난 많은 일들에서

내가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뱉어내자

빅스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으신 게 아니라,

성공에 가까운 수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성공에 가까운 수, 그 경우가 어떻게 나왔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칠흑 기사단이란 뛰어난 기사단이 있고,

나폴레이 책사님의 두뇌가 있으며,

불구덩이라도 함께 뛰어들

가신단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공에 가까운 수가 아니더라도

성공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주신의 경고가 떠올라

속으로 자만심을 경계하리라 다짐했다.

백작의 딸인 예르셔는 지금은

역사 속에 기록된 인물이 된,

베로니카 후작이 다시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었다.

베로니카 후작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의 비교 대상으로

베로니카 후작이 떠오른 거였다.

여성과 아이들에 관한 범죄자를 증오하고,

그들의 인권이 상향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베로니카 후작과 같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미 여성들의 인권과 임금, 차별 부분 등에서

안정적인 남부나 서부와 달리,

다른 지역은 안정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보내고 있었다.

남부와 서부에서 겪었던 문제들이

이곳 파레앙에서도 당연히 발생했다.

시간에 여유를 두고 정책을 펼친 에르제와 달리,

예르셔는 조금 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같은 임금을 받고 싶으면 같은 일을 해라.

해달라고 징징거릴 시간에

능력을 인정받으려 노력하라.

필요할 때만 남자, 여자 따지지 말라.

그대들이 하는 짓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러한 말과 행동이 선량한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잊지 말라.

무엇보다, 경험하지 않을 일을

경험한 것처럼 피해자 연기를 하지 말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여성들을 상대로

베로니카 후작과 완전 반대의 행동을 한 것이었다.

예르셔의 외침은 이곳 여성들에게

반항심이 아닌 독기를 품게 했다.

야근은 자처하는 여성들이 생겼다.

파레앙 백작은 야간 순찰을 강화했다.

같은 노동을 하고도 차별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파레앙 백작은 차별한 이들 잡아

공개적으로 사과하게 하고,

엄청난 벌금을 부여했다.

기사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갔다.

파레앙 백작은 가문의 기사단의 문을 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베로니카 후작이 예르셔 같은 인물이었다면

서부는 어떻게 변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과연 이 둘이 어떤 이야기로

나를 돌이켜보게 하려나 기대하고 있는데

연무장에서 백작의 첫째 아들을 굴리고 있어야 할

메튜가 들어왔다.

"폐하. 이틀거리까지 접근했다는 보고입니다."

"생각보다 빠른데?"

"군을 통솔하는 제1 기사 단장이

기사들과 병사들을 재촉했답니다."

"굶긴 뒤 먹인다는 건가?"

잊혀진 제국의 멸망이 후,

대륙에 수많은 왕국이 생겨났다

사라지던 시절에 쓰던 병법 중 하나였다.

최소한의 물자만 지급하고

목표지점을 향해 진군시킨다.

말만 최소한의 물자일 뿐,

당연히 행군하는 병사들은

배고픔과 한계를 벗어난 일정에 지쳐간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원흉이

목적지에 있음을,

그곳에 가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음을,

원흉을 처단하고 원흉이 가진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음을 세뇌한다.

악에 받친 기사들과 병사들은

사람의 탈을 벗어 던지고 짐승이 되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 후, 패배하면 개죽음이고,

성공하면 약탈과 살인, 방화가 시작되는 거였다.

"황성에서 들어온 소식은?"

"아직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충돌이 시작되는 때를 집중하라고 해."

"네. 폐하."

메튜가 나가고 심각한 얼굴이 된 빅스에게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솔직히.. 저는 아버님이나 형님, 누님의 기대와 달리..

군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나폴레이보다는 분명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했지만,

영지 하나는 거뜬히 관리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재상으로서의 능력이지,

나폴레이와 같은 책사로서의 능력이 아니었다.

"계속 말해보거라."

"아무리 생각해도 피오네의 군사 행동은 무모합니다.

피오네 군이 향하는 곳이 그 도시가 끝이 아닙니다.

지치고 힘든 상태라도 민간인뿐인

그 도시를 장악하는 것은 쉽겠죠.

하지만.. 그곳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제국을 향해 진군한다 해도..

현재 제국과 왕국의 병력, 기술력,

왕국에는 없는 제국의 마법단까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왜 그런.. 설마..!"

피오네 군이 반란 진압 목적으로 군을 움직였고,

그 군이 제국을 향할 것이라는 정보만 주었을 뿐,

일주일을 함께하는 동안 빅스에게 스펜타 왕자나,

그 뒤에 있는 재상에 대한 정보는 주지 않았다.

"폐하! 저들을 상대하심에 있어

최대한 적들을 많이 살리고 승리하셔야 합니다!

군사적 도발 외에 분명 음모가 있고,

그것을 조종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 도시를 향해 진군하는 모든 이들이

그자에게 있어 버리는 패입니다."

흥분한 빅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조종하는 자.

즉, 재상은 제국을 도발하면서

몇 가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첫째. 무모한 진군을 통해

왕실에 대한 군의 충성심을 깎는다.

둘째. 반란이라 이름 붙였지만

백성들에게는 힘없는 자국민을

왕실군이 진압한 것이 뿐이고

이는 왕실에 대한 민심을 잃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셋째. 제국과의 의미 없는 충돌을 통해

왕실이 다른 나라들의 미움을 받게 한다.

넷째. 진군하는 군이 제국과 맞서

이겨도 좋고, 져도 상관없다.

진다면 조정하는 자가 정권을 잡았을 때

장 위협이 되는 인물을

자기 손으로 피를 보지 않고 처단 할 수 있다.

다섯째. 이 모든 원망과 원인을 피오네 왕실로 돌리며

왕실 자체를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뒤에 있는 자가 왕관을 쓰려고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제국과 폐하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여섯째.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제국의 황제가 반란군을 돕기 위해

국경을 넘으면 피오네의 도발이 아니라

제국의 간섭이다.

일곱째. 국경을 넘지 않고 지켜본다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 앞에서도

논하나 깜짝하지 않은 비정한 군주로

대륙에 퍼질 것이다.

여덟째. 이런 황실과 황제의 평판은 건국 초기인 지금,

좋지 않은 움직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참을 흥분한 채 이유과 근거를 섞어 말하던

빅스의 입이 뚝 하고 닫혔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이내 고개를 떨구는 모습에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폐하.."

"끝인가?"

"폐하께서 여기 계시는 이유,

나폴레이 책사님의 존재를 잠시 망각했습니다."

"하하하하 아니다. 너무 정확한 너의 판단에 놀랐어."

"역시 피오네를 움직이는 자가 있군요!"

"궁금한가?"

"네?"

"그자가 누군지,

나의 진짜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한지 물었다."

"궁..궁금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은근히 자리를 피하던 그를

예르셔가 옷자락을 잡아당겨 다시 앉혔다.

"빅스."

"네.. 폐하."

"제국의 재상이 되어라."

"헉!"

놀람의 목소리는 빅스가 아니라

옆에 앉아 있던 예르셔에게서 나왔다.

"자질도 없지만 아니 됩니다."

"당장 후계자의 자리를 버리고

황도로 가서 재상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제국은 황제부터 시작해

각 지역을 다스리는 공작과 백작이 젊고 어리다.

또한, 제국과 황실을 이끄는 가신단도 젊지.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다."

"저 또한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폴리아리스 재상의 밑에서

경험하라는 말이다."

"아.."

"네가 없는 파레앙이 걱정될 정도로

백작과 형, 누나가 부족한 것이냐?"

파레앙 백작은 훌륭한 영주였고,

아직 몇십년은 이 영지를 이끌어갈 힘이 있었다.

그리고 백작의 첫째 아들은

파레앙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기사로서 자질이 뛰어나고,

백작을 닮아 우직하고 강직했다.

또한, 예르셔도 영주의 자질을 가진 여인이었다.

며칠밖에 경험하지 못한 나도 아는 사실을

빅스가 모를 리 없었다.

예르셔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건강하시고..

오라버니는 후계자가 되어 이 영지를 이끌고..

동생은 황제 폐하께 직접 능력을 인정받아

제국의 재상이 되다니..

이렇게 영광스러운 날이.. 흑.."

울면서도 좁아진 동생의 미간을 펴주고,

볼을 쓰다듬어 주는 예르셔를 불렀다.

"예르셔."

"네! 폐하!"

"그대에게 남작의 작위와 동부 올반을 주겠다."

예르셔가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이 방에 예르셔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그대뿐이니 앉거라."

"하하하 폐하.. 제가 너무 기쁜 나머지

헛것이 들린 것 같습니다."

"내가 두번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기꺼이 다시 말해주지.

예르셔 파레앙에게 남작의 작위에

동부 온천 도시인 올반을 맡긴다."

이번에는 빅스의 얼굴이 밝아지고 예르셔는 멍해졌다.

제국 북부 끝에 있는 영지의 영애에게

동부의 중심에 있는 도시 올반을 내리는 것에

조금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텔레포트 게이트가 해결해 줄 것이고,

그녀에게 올반을 맡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부를 다스리는 아샤 쇼페라는

제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서부를 장악하고 지지기반을 마련했다.

북부를 관리하는 라이 일라인의 옆에는

라이 만큼 똑똑하고

프레시아에게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동생

릴리 일라인과 아들, 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있는

슈리아 일라인도 있다.

또한, 라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파견 나가 있는

일테라쇼 제국의 가신단도 라이의 옆을 지키고 있다.

중부는 천재적인 두뇌로

프레시아가 손에 넣은 지 오래고,

그 과정에 있어 라이거라는 성이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는 것에는 부정할 수 없다.

반면, 동부를 대표하는 키엘 테슬린에게는

지지기반도, 그를 따르는 세력도,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도 없다.

마법적 능력은 이제 조금씩 늘어 갈 뿐,

테슬린이란 성에는 아직 어울리지 않았고,

프레시아처럼 머리가 좋지도 않았다.

성실함과 충직함만이

키엘을 일어서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키엘에게 수많은 귀족이 오가며,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온천 도시 올반은 버거웠다.

기사 가문인 파레앙에서 태어나

강직한 아버지와 검소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법과 신념을 중시하는 오빠를 바라보고

똑똑한 동생을 밀어주던 예르셔라면

키엘 테슬린의 든든한 지지 세력이 되어줌과 동시에,

올반의 훌륭한 영주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경외의 대상이 되어버린

프레시아와 아샤와 달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예르셔가 목표이자 희망이 될 거란

기대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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