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무식한 생각에 무식하게 당했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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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무식한 생각에 무식하게 당했고.
그날 저녁.
파레앙 백작 내외와 함께
이곳에서의 어쩌면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는
저녁을 함께하며 빅스를 황성으로 데려가
재상 교육을 시키고자 함을,
예르셔에게 남작의 작위와
올반의 영지를 내리고자 함을 밝혔다.
내 의지가 확고하고,
이들에게 황제의 명령을 내려 따르게 할 수 있지만,
만약 백작 내외가 반대한다면서
이들의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폐하의 은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백작 내외는
그 어떤 반대 없이 말이 끝나자마자
내 결정에 동의하며 고개를 숙였다.
"비록. 내가 명령에 가깝게 말한 거지만,
부모가 반대하면 명을 철회할 생각이었다."
"폐하의 명은 절대적인 것.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들이 인정받는 것을
싫어하겠습니까?"
있었다.
무능한 아들을 견제한
더 무능한 일라인의 왕이 있었고,
비록 친모는 아니지만, 나의 성장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이자벨 라이거가 있었다.
그리고 역사 속 인물이 되고,
누군가의 기억 속 인물이 된 이 둘 말고도,
분명 존재했거나, 존재하거나 존재할 것이다.
"파케는 반대하는 것인가? 표정이 좋지 않군"
이름이 불린 첫째 아들
파케 파레앙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닙니다! 제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동생의 능력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르셔도 보수적인 북부에서 태어나
인제야 꽃을 피웠습니다.
당연히 기쁘고 행복하지만.."
"말해보거라."
"이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빅스가 후계자가 되었을 때
저는 이기적이게도 기뻤습니다.
기사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기사를 동경했고
검을 휘두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제게
북방을 수호하는 이 파레앙 영지의 후계자 자리는
과분했으니까요.
동생이 이끄는 영지의 검과 방패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진짜 속마음은 후계자가 되는 것을
바랬었나라는 의심이 들어
저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답답함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저는 동생이 후계자로 자리 잡으면
황도로 떠나 일테라쇼 기사단 시험을
치를 생각이었습니다."
파케 파레앙에게 처음으로 꿈이 생긴 거였다.
기사 가문에 태어난 것은 운명이고,
그런 그가 검을 잡고,
검에 흥미를 느낀 것은 어찌 보면
가문의 장남으로서의 숙명이기도 했다.
자작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문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고,
다시 가문이 복귀하는 데
자신이 들었던 검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좌절과 함께 무너지지 않았던 파케는
더욱 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회귀 전 내가
호리폐에게 검을 완전히 빼앗기기 전까지 그랬듯.
장남과 후계자의 무게를 벗어던진 그는
잠시나마 허무했을 것이고,
좌절을 이겨냈던 그 힘이 다시 발휘되어 그에게
일테라쇼 기사단이라는 꿈을 꾸게 한 것이었다.
"그대는 파레앙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네. 폐하.."
"하지만 그대의 아비인 파레앙 백작은
한 20년은 더 영주로 살아도 될 것 같구나."
"네?"
"그래도 죽기 직전까지
영지와 영지민을 걱정할 수는 없으니,
한 10년.. 그대가 일테라쇼 기사단에 입단해
경지를 높이고, 훗날 파레앙을 다스릴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자식들 모두를 떠나보내야 하는
백작 내외의 적적함이 문제겠지만."
"폐하.. 하오나..
번 일테라쇼 기사단에 이름을 올리면,
쫓겨나거나 죽을 때까지
기사단 소속으로 살아야 한다고.."
나는 무슨 소리냐는 듯 메튜를 바라봤다.
"후.. 폐하 죽을 때까지 제국에 충성하고
기사로서 검을 버리지 않게다는 일테라쇼 기사들의
맹세와 의지가 이상한 소문을 내는 모양입니다.."
일테라쇼 기사단의 입단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렵지만,
그만두고 나가는 것은 서류 한 장이면 끝이다.
지금까지 사직서를 제출한 이는 한 명도 없지만.
"파케. 메튜 단장은 백작의 작위를 가지 귀족이고,
남부의 세 도시를 관리하는 영주다.
이는 단장의 특혜가 아니야."
"그럼.."
"그래. 그대가 기사단에 입단한다면,
휴무일 때는 게이트를 이용해
언제든 이곳을 방문할 수 있고,
때가 되면 사직하고 이곳의 영주가 되어도 된다.
이 제국의 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다."
백작 내외도, 빅스, 예르셔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메튜. 아무래도 일테라쇼 기사단에 관한 것을
제국 전역에 다시 공문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네. 폐하. 돌아가면 공문을 내리고..
기사들도 단속하겠습니다."
파레앙 백작은 파케의 결정에도 흔쾌히 찬성했다.
"적적하시겠소. 백작."
"하하하 게이트가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괜찮습니다."
"태상황께서는 노력하고 계시오."
"네?"
"꼬물거리는 작은 존재를 안겨주지 않으니..
본인이 직접 노력하고 계시더군요.."
백작 부인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는 것을 끝으로
페레앙 가문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끝이 났다.
다음 날,
빅스와 파케가 더해진 우리는
피오네 군을 맞이하기 위해 텔레포트했다.
"며칠 전과 달리
성벽을 완전히 걸어 잠갔습니다. 폐하."
게이트와 게이트를 통하는 텔레포트가 아닌,
사람의 마법에 의한 텔레포트를 처음 경험한
형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빅스에게는 제국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파케에게는 꿈꾸던 기사단이
어떤 모습이며 어떤 위용을 지녔는지
보여주기 위해 데리고 온 것이다.
당장 보고서를 작성하고,
당장 그들의 경지까지 올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대들은
다시 파레앙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곳의 업무를 정리하는 동안
각오와 다짐을 새로이 하라."
"네. 폐하."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잠시 뒤, 끈적한 더러운 기분이 바람과 함께 느껴졌다.
"곧 도착하려는 모양이군."
메튜의 오러가 잠시 일렁이다가 사라지고,
바이올렛이 주문을 외우자
텔레포트 아티펙트들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하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여러 마리의 새들이 생겨나
내 어깨와 손 위에 앉았다.
"가거라."
두 마리를 제외하고 멀어져 갔고,
남은 두 마리가 부리를 열 자 형제의 눈앞에
새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빅스는 안타깝게도 오러나 마나를 통해
멀리 내다보고 들을 수 없겠지만..
파케는 경지가 상승하면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폐하의 배려 감사합니다."
"저들의 멍청함과 자만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피오네 군의 선두와 성벽 위에서
창과 활을 겨누고 있는 병사와의 거리가
일반인들의 눈에도 서로를
알아볼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나무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며
뫼비우스 고리를 회전시켰다.
"확실히 달라졌어."
거칠게 돌아가는 고리는 원래부터 아니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삐거덕거리던 마차 바퀴가
수리 후 고장 나기 전보다
더 편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회전이 묵직해진 듯했고,
한 번 회전할 때 마다 뿜어지는
마력의 양이 훨씬 늘었다.
"스톤 월."
짧은 명령어에 피오네 군과 도시 성벽 사이로 거대한
돌벽이 생겨났다.
"이..이것.. 폐하의.."
돌벽을 유지하게 위한 마력이 빠져나가는 속도와 양도
확실히 줄었음을 느끼며,
멍하게 나를 바라보는 형제를 향해 피식 웃었다.
"나를 볼 게 아니라 새들의 눈을 봐야지?"
"아!"
두 마리의 새가 보여주는 모습은 각각 달랐다.
갑자기 나타난 돌벽에 의해
행군이 멈춰버린 피오네 군 진영.
[[ `단장님! 단장님!`
`시끄러워! 나도 눈이 있어!`
`성안에 마법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이게 마법이지 사람 손으로 올린 벽이야?!
멍청한 소리 할 거면 꺼져!` ]]
동시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형제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폐하. 저자의 말과 행동에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피오네에서 태어나고 자라,
왕실 제1 기사 단장까지 올라간 자다.
곧, 피오네인다운 짓을 할 거니 지켜보거라."
형제의 시선이 이번에는
도시의 성벽을 보여주고 있는 새에게로 향했다.
[[ `영주님께서 마법사를 모셔 오셨다!`
`적들이 우리의 희망을 넘지 못하게 하라! ]]
"폐하.."
"대부분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마스터이자 황제인 나도 기쁨을 전하는 소식에
귀 기울일 때가 있다."
"저 도시에 저만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못 하는 걸까요.."
"그럼 저들이 칭송하는 영주는 지금 어떤지 보자."
잠시 뒤, 며칠 전 만났던 영주가
누군가가 대화하는 모습이
영주 방 창문에 자리한 마법 새의 눈을 통해 보였다.
[[ `영주님 저 벽은..`
`이 영지를 안타까워하는 고귀한 마법사님께서
우릴 도와주시는 거겠지.`
`지금 당장 그분을 찾아..`
`아니! 앞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면
이미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허나..`
`집사는 당장 대 마법사가 영주성에서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라.`
`네..주군..`
`걱정할 거 없다.
이 정도의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가 왕실 편이 아니다.
필시 사연이 있는 것이겠지.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드러내지 않으면 더 좋고.
어차피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역사는 우리를 기록할 것이고,
저 두꺼운 벽과 함께 우리의 이야기가
마법사와 함께 세상에 떠돌 것이다.` ]]
"폐하.. 저자는 미쳤습니다.
돌벽을 이용해 병사들과 영지민들을
살릴 생각은 안하고..
더 화려하게 죽을 도구로 이용하려 합니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는 가장 희망적일 때,
그리고 가장 절망적일 때 비로소 나타난다.
나는 저 영주의 마지막 모습이 궁금했다."
[[ `벽이 높다고 한들 돌일 뿐이다! 부셔라!` ]]
피오네 진영을 비추고 있던 새의 부리에서
제1 기사 단장의 외침이 들렸다.
"응? 지금 무슨.."
"피오네는 그런 국가이고 그런 민족이다.
잊혀진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수아르 제국에 버금가는 영토를 가진 왕국이며,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왕국이지.
저들에게 전술과 전략은 `사람` 하나뿐이다.
적에게 천명의 병사가 있다면 그들을 5천을,
적에게 1만의 병사가 있다면
저들은 10만을 동원한다.
마스터인 나에게도 한계가 있다.
내가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지.
그리고 저들이 무언가를 넘어가는 경우는
먼저 죽은 적과 아군의 시체뿐이다.
저들은 단순하고 무식하다."
검 대신 망치를 든 피오네 병사들이
돌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깨질까요..?"
"내가 만든 벽이다."
"죄송합니다..
그럼.. 결국 넘어가는 것을 택할까요?"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그건 아니지만.. 너무.."
"그래. 너무 무식하지.
그리고 일라인 왕국은
저런 무식한 것들의 무식한 생각에
무식하게 당했고."
형제의 미간이 사이좋게 좁아졌다.
피오네의 수작질에 가장 피해를 본 것이 북부였고,
그중에서도 파레앙 가문은 작위까지 잃을 만큼
피해를 본 가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