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눈빛은 그 눈빛이어야 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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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눈빛은 그 눈빛이어야 해.
"일어나! 일어나라고 새끼들아!"
빗소리와 마법의 지직거림만 들리던 공간에
피오네 기사 단장의
짜증 섞인 외침이 울려 퍼졌다.
"뭘 기도까지 하고 있어! 신이 아니란 말이다!
같잖은 마법이 만들어낸 허상이란 말이다!"
단장의 허상이란 말에 기사와 병사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단장이 허상이라고 외치고 그 말을
기사나 병사들이 믿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벽이지만,
돌로 만든 벽 같은 마법은 이미 존재하는 마법이었고,
바이올렛이 `선더 스피어`라고 이름을 정한 저 마법은
이미 죽어버려 소문을 낼 수 없는
옛 베로니카 후작의 영주성을 지키던
이들만 보았던 마법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직거리는 빛의 창만 보았다면
허상이란 말에 정신 차린 후
저렇게 속았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닌,
경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가 내렸다.
이들은 스스로 합리화했다.
어둠은 해가 넘어가기에 찾아온 자연적인 현상이고,
내리는 비는 때마침,
우연히 이곳이 비구름이 지나갔다고.
그리고 간악하게도 그때를 이용해
어쭙잖은 환상 마법을 펼쳐,
자신들을 속이고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고.
만약 똑같은 마법을
포이든의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아마, 강한 힘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그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조아렸을 것이다.
일테라쇼 제국민들은 안 봐도 훤하다.
마탑으로 배움을 청하는 이들과
자신에게 마나의 재능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피오네인은 역시나 피오네인 다웠다.
"폐하! 이 전쟁은 분명
일테라쇼 제국이 먼저 일으킨 겁니다!
우리는 분명 반역을 막고자 출병한 것이고!
이를 분명 폐하께 밝혔으나!
폐하께서 저희를!
이 피오네 영토에서 위협하셨습니다!"
"멍청한 것.
그대의 왕이 포이든과 손을 잡고
일라인 왕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손을 잡은 순간부터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먼저 시작해놓고 불리해지니 남 탓하는 것이
딱 피오네구나."
"이..이.. 죽여!"
척!척! 쿵! 척척 쿵!
창을 앞으로 겨눈 채 두 발 다가오고,
겨누었던 창으로 땅을 내려쳐
위협을 가하는 수만의 피오네 군.
그런 그들의 진군을 바라보며
바이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이. 이제 쉬거라?"
6서클 마법사의 마나 양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마나를 끌어와 경이로운 마법을 유지하는
바이올렛의 체력이 걱정되었다.
"어? 마법이.. 폐하!"
마법과 자신을 연결하는 힘이 끊어져
당황한 바이올렛이 하늘을 쳐다봤다.
"끊겼는데..제가 끊은거 아닌데.."
척!척! 쿵! 척척! 쿵!
메튜만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나는 바이올렛과 눈을 맞췄다.
"아주 소중한 분들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날 이후 아무래도 한계를 넘어선 것 같구나."
왼쪽 손바닥을 바이올렛 앞에 내밀자
손바닥 위에 작은 선더 스피어가 빛을 내고 있었다.
"폐하!"
초롱초롱 빛을 내는 그녀의 눈빛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이번 일이 끝나면 연구하게 해주마."
타인의 마법을 흡수하고 통제권을 가져오는 것.
아마 경지의 문제라
바이올렛이 다루지 못하는 마법일 테지만
아직 어린 그녀이기에 또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마법의 통제권을 가져온 이유는 하나뿐이다.
바이올렛이 펼친 마법은 대량 살상 마법이었다.
그녀가 분노까지 담아 펼친 빛의 창은 수만 개,
단 한마디의 시동어로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녀는 수만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였다.
바이올렛이 누군가를 죽인 경험이 있다 하여
`너는 경험이 있으니 괜찮다`라고 말할 수 없었고,
말해서도 안 되었다.
나로 인해 노예에서 벗어나고, 마법을 배웠으며,
제국 마법단의 단장이 되어 원래의 삶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신분이 상승했지만,
나로 인해 힘든 길을 택했고,
결국 나로 인해 비록 적일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경험을 한 그녀였다.
내가 옆에 있음에도 그녀가 직접
수 만의 사람을 죽이는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폐하."
메튜가 내 마음을 이해라도 한 듯 작게 불렀다.
"그래. 이미 밤은 시작되었겠구나."
굽혔던 허리를 펴고 손안에 있던
바이올렛의 마법을 움켜쥐었다.
기사들 뒤에 숨어
비릿한 미소를 보이는 단장을 바라왔다.
제아무리 마스터라도 어린 여자 마법사 하나와,
호위 기사까지 포함된 고작 3명으로
수만의 군을 상대하지 못한다는
그의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섬멸하라."
허공에 멈춰 진군의 불빛 역할만 하던
빛의 창들이 동시에 번쩍였다.
대낮처럼 밝아진 그 짧은 순간,
군의 움직임은 잠시 주춤했고,
빛의 창이 그들의 심장에 박혔다.
죽는 순간 내지른 생의 마지막 한 단어들,
죽어가며 외치는 고통의 절규만이
빛의 창이 사라지며 찾아온 어둠 속에 남았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라이트 마법이 내 손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 빛이 향하는 곳을 향해 따라 걷자
메튜와 바이올렛이 뒤를 이었다.
주저앉아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바이 눈을 감는 게 좋겠구나."
수만의 피오네 병력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기사 단장의 갑옷 아래로 분
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코는 마나로 막았는데..
보이는건.. 저도 좀 그렇네요..
전 라페앙 형제들과 아티펙트를 회수해 올게요."
바이올렛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라졌다.
"하.하.하. 꿈이야.. 지독한 악몽이야.."
"아쉽게도 현실이다."
"아니야.. 아니야..
일라인 것들이.. 저런 마법을..
버러지 같은 일라인의 것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피오네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일라인이.. 그 일라인이.."
메튜가 단장의 머리를 툭 쳤지만
그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폐하. 미친 것 같습니다."
"미쳐도 피오네스럽게 미쳤군."
"나는 위대한 피오네의 기사 단장
코셔 마드리아다!
지금 우리는 속국 주제에 제국이라 칭하고 있는
일테라쇼를 벌하러 간다!"
오러가 출렁인 메튜를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을 확인하고는 말렸다.
"위대하신 전하의 명을 거부하고
일테라쇼를 찬양하는 이들을 먼저 처단한다!
그들의 죽이고 피를 마셔
몬스터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라!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는
일테라쇼 제국인들을 말하는 것인가?"
"하하하 그럼 누구겠는가!?
자신의 선조가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의 음식을 먹고 자란 것도 잊고!
감히 왕국을 세우고 아버지의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했다!
정신 차린 일라인의 왕이 자식의 예를 올렸으나!
감히 피오네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무례한 것들이 점령했다!
이 어찌 인간을 탈을 쓴 몬스터가 아니란 말인가!
위대한 피오네의 기사인 내가
직접 그들을 벌할 것이다!"
처음 잠깐 유지했던 정신은
완전히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그 시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 도시는?"
"카샤미 말인가? 하하하.
반역도 누군가 들어주고
신경 써야 반역이 되는 것이다.
위대하신 전하 아래 우리 귀족이 있고!
귀족 아래 부유한 평민들이 있으며!
그 이하는 모두 벌레다!
하하하. 벌레도 우리 발에 밟히기 전
살려달라고 나름 외치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벌레의 외침은
너무나 작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하하하. 그러고 보니!
벌레의 외침을 들은 일테라쇼도 벌레구나. 하하하"
아공간에서 검을 꺼냈다.
검붉은 마력이 씌인 검의 끝을
미쳤다는 것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웃고 있는 피오네 왕실 제1 기사 단장,
코셔 마드리아에게 겨눴다.
"나의 검에 죽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고통일 것이다.
너의 목에 새겨진 이 마력의 흔적이 표식이 되어,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너에게 절망만 안겨 줄 것이다.
주신께서 너에게 다음 생을 줄지 의문이지만.."
푹!
"컥!"
뫼비우스의 마력을 각인시키듯
천천히 그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죽기 직전
다행히도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군.
그래. 그 눈빛이어야지.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이며,
벌레를 바라보는 눈빛은 그 눈빛이어야 해."
쑤욱.
"커억!"
검이 뽑히고 단장은 허물어졌다.
"메튜. 피오네의 새 왕에게 줄 선물로
저놈의 목은 필요 없겠지?"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저나 폐하,
바이올렛 단장님의 아공간이 썩을 것 같습니다."
"그럼 버리고 가자."
"네. 폐하."
피오네 군을 처리했으니
이제 오늘에서야 이름을 알게 된 도시,
카샤미 차례였다.
"폐하."
"바이. 둘은 어쩌고 혼자 왔어?"
"아무래도 시체들과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으로 데리고 오늘인 게 좀.."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잘했다."
도착한 카샤미의 성벽.
해가 진 밤이라 켜져 있어야 할
횃불을 보이지 않았고,
창과 활을 겨누던 병사들도 모두 사라진 채
성문은 활짝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