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부터 시작하는 군주 생활-196화 (196/201)

〈 196화 〉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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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피오네 왕국의 왕성 알현장.

붉은색과 황금을 좋아하는 왕국답게

왕좌는 황금에 붉은 무늬가 들어가 있었고,

흰 벽에서는 붉은 장식과

황금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피오네의 귀족들이 자리해야 할

왕좌를 기준으로 양쪽,

오른쪽에는 바이올렛과 그녀의 마법단이,

왼쪽에는 메튜와 일테라쇼 기사단이 자리했다.

그리고 주인의 자리를 나에게 넘긴

스펜타 왕이 가장 앞에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뒤를 피오네 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주한 그들을 훑어보았다.

살짝 숙인 고개에서 묘한 흥분감을

애써 감추고 있는 스펜타 왕.

그의 뒤에서 서서 긴장한 것인지,

목표물을 노리고 있는 것인지

혀로 입술을 핥는 재상.

오러를 다루는 것에 꽤 능숙해 보이는 남자.

에셀의 설명으로 알게 된 아네스 왕자.

재상의 옆에 딱 붙어 알량한 한 줌의 오러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일테라쇼 기사단을 경계하는 제2 기사 단장.

재상의 눈치만 보는 귀족들과,

적대감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귀족들.

"황제 폐하."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자,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가장 안달이 났을 재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재상의 말이 이어졌다.

"무고한 백성들과 영지를 눈감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고한 백성들과.. 영지들이라..

재상. 그대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피오네의 모든 것이 죄인이다."

"폐하. 어찌 그런 섭섭한 말씀을.."

"됐고. 난 돌려서 질질 끄는 것은 싫어하니 본론만 하게.

피오네의 공기를 마시는 것도 역겨우니."

제2 기사 단장의 오러가 꿈틀거리고

일부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메튜. 바이올렛."

""충!""

순식간에 오러를 몸과 검에 두른 메튜가

날아가듯 뛰어가 제2 기사 단장의 목을 베었다.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간

제2 기사 단장의 모습에 심약한 귀족들은

구역질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단장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웅성거림을 만들었던 귀족들도

바이올렛의 마법에 의해 속박당했다.

꿈이 큰 제1 기사 단장 대신 선택한

제2 기사 단장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자신의 지지 세력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재상의 눈빛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폐하!"

"나는 본론을 말하라 하였지,

적대감을 표현하라 하지 않았다."

"타국의 귀족들을

이렇게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나를 침략자로 만든 것은 재상 그대다."

재상의 눈빛이 분노에서 당황으로 변했다.

"무고한 백성들과 영지를 눈감아 줘서 고맙다라..

지금이라도 피오네의 것들을

세상에서 지우고 싶어지는군."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인 척하고,

피해자를 이용해 자신이 피해자임을 정당화하려는

재상과 피오네 귀족들이 가증스러웠다.

"그대가 나를 침략자로 만들었고,

나는 그 침략자가 되어보려 한다.

침략에 성공한 황제가

침략당한 왕국의 왕좌에 앉았으니

그대들이 죽고 사는 것은

내 말에 따라 정해는 법이지. 그렇지 않은가?"

재상의 계획은 주도권을 가지고 싶어 던졌던

자신의 첫마디 말에 의해 이미 깨져버렸던 것이다.

"폐하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이

잘못되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의 분노가 향할 곳이 잘못되었다?"

내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모르는 재상은

첫 단추를 잘못 꿰였을 뿐,

옷만 입으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폐하도 피오네 왕국을 아실 겁니다.

일라인 왕국부터 시작한

일테라쇼 제국의 황제이시기에

더욱 잘 아실 겁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피오네 왕국에서 왕의 말은 곧 법이고 진리입니다."

재상의 고개가 여전히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스펜타에게로 향했다.

"비록 나이가 어릴지라도 말입니다."

다시 고개를 나에게 돌린 재상이

발표라도 하듯 어깨를 폈다.

"전대 전하께서 미쳐버린 후에야

그분을 말릴 수 있던 저희였습니다.

전대 왕을 똑 닮은 첫째 왕자님이 이 왕국의 왕이 되어

왕국을 다스리는 것을 볼 수 없어, 저희는 목숨을 걸고

스펜타 왕자님을 왕위에 앉혔습니다."

재상이 다시 한번 스펜타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어린 왕자의 머릿속에 전대 왕보다

더 사악한 생각이 들어 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스펜타 왕은 왕세자에 오른 뒤,

흔들리는 왕국을 보듬어 살핀 것이 아니라!

욕심많고 이기적인 제1 기사 단장과 손을 잡고

그에게  왕실에 의해 억압받던

백성들의 외침을 잠재우고,

그 기세를 몰아 제국을 도발하라 명했습니다."

다리를 꼬고 왕자에 몸을 기대자,

자기 말에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재상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제국을 건드리면 안 된다!

왕이 바뀐 지금!

일라인 왕국과 일테라쇼 제국을 상대로 벌였던

모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포이든 왕국을 보셔야 한다!

왕실이 한번 고개를 숙이고 지난 과거를 사과하니,

기울어져 가던 왕국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일테라쇼 제국과 수아르 제국 사이에서

왕국의 명맥을 유지하고,

다시 번창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당장 출병 명령을 거두고,

지금이라고 보내지 않았던 사절단을 보내

제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라고!

저희는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거짓을 더 진실처럼 말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하지만! 스펜타 왕은 저희의 충언을 무시하고

즉위식부터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스펜타 왕의 뒤에는

오랫동안 아들이 왕이 되기를 바랐던

쉬린 라미게스 대왕비가 있습니다!"

재상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재상은 흥분에 실수를 저질렀다.

라미게스는 왕비가 되기 전

그녀가 쓰던 가문의 성이었다.

리아나 에르제와 달리 보통의 여인들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연히 쉬린 피오네 대왕비라 칭했어야 했지만,

왕비로, 왕실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던 버릇이

순간 나와버렸던 거였다.

"여기에 와서 듣기로

대왕비의 가문이 대단하지 않다 들었다."

이미 알고 있었고, 권력도, 세력도,

자금도 없는 가문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재상에게는 그 가문이

숨은 권력자가 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네! 저희도 왕실의 은혜로

근근이 살아가는 가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스펜타 왕자님이 왕세자가 된 뒤!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본색을?"

"네! 폐하. 라미게스 가문은

포이든의 상단과 거래하며

뒤로 많은 자금을 축적했고!

그 자금과 권력을 이용해.. 흑.."

"이용해?"

"스펜타 전하께 충언을 올린 이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습니다."

그대가 왜 제일 먼저 제거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들려올 답이 뻔해 묻지 않았다.

"그렇군. 제국에도 제국의 방식이 있고..

왕국들도 각각 나름이 있지.

왕의 말이 곧 법이 되는 피오네라,

저 어린 왕 하나 바로 잡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

"바로 그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진정 벌해야 하는 자들을 벌하지 않고!

왕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기사 단장의 목을 베고,

목숨을 걸고 충언을 올렸던

귀족들을 구속하신 겁니다.."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완전히 잃어버린 재상이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오네 왕의 명령으로 출정했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군."

"폐하! 제1 기사 단장은

가장 먼저 스펜타 왕과 결탁한 자입니다.

감히 제국을 도발하려다가 벌을 받은 자일 뿐입니다."

"그래.. 그렇군."

입꼬리를 올리는 재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는 스펜타를 바라봤다.

"스펜타 피오네."

스펜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바라본 곳은 내가 아니었다.

알현장의 중심이 아닌

왕족이 드나드는 입구에 서 있던 에셀에게

그의 눈이 고정되었고,

그런 그를 향해 에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셀에게서 어떤 용기를 얻은 것일까.

나를 바라보는 스펜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대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일테라쇼 제국의 황제인 내가

친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대의 명령을 받은 왕실 군은

나와 나의 가신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였다.

허나. 그들의 목숨이 명령을 내린

그대의 죄까지 안고 가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피오네의 모든 것들이 죄인이나,

피오네의 왕인 그대에게 있어서는 아닐 터.

그대의 명령 하나로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 죽었고,

잃어 않아도 될 가족들을 백성들을 잃었다.

비록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대가 말로 옮긴 행동은

전쟁을 일으킨 것과 다름없다.

그 전쟁의 승전국의 황제가

패전국의 왕 스펜타 피오네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재상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려는 듯 고개를 깊게 숙였다.

"위대하신 일테라쇼 제국의 황제 폐하.

미련한 제가 왕국의 충신들에게

스스로 등을 돌렸습니다."

재상의 숙였던 고개가 휙 들어 올려졌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상은 또렷한 스펜타의 말에

이상함을 감지한 것이었다.

눈앞에 다가온 손에 잡힐 듯한 욕심.

그 욕심을 안겨다 줄 제국의 황제.

황제가 고개를 끄덕일수록 점점 가까워지는 왕좌.

이것들이 눈을 가려,

모함과 목숨이 왔다가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없던

스펜타가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욕심에 눈이 먼 재상에게 스펜타의 행동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알아서 하겠다.`다는

그날의 약속을 믿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살려줄 거라 믿는

철없는 어린 왕자로 보였을 것이고,

온몸이 속박당해 있는 귀족들 눈에는

겁에 질린 채 고개만 떨구고

아니다, 억울하다, 살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머저리 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들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해서. 지금이라도

충신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하니

마지막을 앞둔 패전국 왕의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황제 폐하! 스펜타 왕은 그럴 가치가..!"

"재상. 그대가 스펜타 피오네 왕을

전하라 부르지 않고,

다른 왕국의 왕을 하대하듯 왕이라 부르고 있지만

그대는 재상이고, 스펜타 피오네는

내가 처벌을 내리기 전까지 왕이다.

아직 왕의 자격으로 나에게 청을 올렸고,

나는 황제로서 그 청에 응했다.

허나. 감히 귀족인 그대가 왕의 가치를 논하고,

청에 응한 나의 판단을 가로막는 것인가?"

"그..그런 뜻이 아니오라.."

"하늘이 가까워졌다고

그대가 하늘이 된 것은 아니다. 재상."

재상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도 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하늘에 가까워지는 순간 추락할 그의 미래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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