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왜 책임을 영지민과 같이 하는 건가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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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왜 책임을 영지민과 같이 하는 건가요?!
10년.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건국 이후 나와 그리고 제국과
든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아르 제국은 황제가 바뀌었다.
바렌 수아르 황제를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아모레 수아르는
즉위식을 마치고 일테라쇼 제국으로 찾아와
다시금 굳건한 동맹을 약속했다.
포이든 왕국은 왕국의 이름 자체가 바뀌었다.
10년 전, 나와 리아 황후 앞에 무릎을 꿇었던
피오든 왕실과 귀족들을
그날 이후 점점 쇠약해져 가는 왕을 대신해
유일한 왕가의 핏줄인 왕세자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머첼리 가문의 반란으로 인해
왕가의 성이 바뀌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반란을 이끌었던 머첼리 가문의 슈웬이
머첼리 왕국의 왕이 되면서
일테라쇼 제국은 머첼리 왕국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했다.
머첼리 왕국 자체는 포이든 시절보다 좋아졌다.
여전히 왕을 신성시하는 것은 변함없었고,
귀족의 권력이 강한 것은 여전했지만,
백성들의 삶과 인권은 포이든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
경계를 강화한 이유는,
머첼리 가문이 몇백년 전,
일라인 왕국 정복을 시작으로 한
포이든 왕국의 대륙 통일 전쟁에 참여했다가
실패로 끝난 뒤, 포이든 왕실로부터
버려졌던 가문이었고, 그것을 이유로
일테라쇼 제국을 적대시했기 때문이었다.
포이든 왕국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면서
백성들의 인권을 향상한 것을 제외하고
포이든을 따라 하는 형태를 보였다.
일테라쇼 제국의 상품이나
재료의 수입을 일부 금지하고,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서도 수출하려는 상단이나,
수입하려는 상단에게 엄청난 세금을 부과했다.
또한, 바로잡혀가던 일라인과 포이든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다시 뒤집어 놓았다.
정보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침략`이고, 그것이 `강제`라면,
당시를 함께했던 머첼리 가문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다시 화가 끝까지 올랐던 나는 칠흑 기사단과
일테라쇼 기사단 모두를 소집했지만,
이런 나를 에르제 황후가 말렸다.
에르제 황후는 일테라쇼 제국,
수아르 제국, 피오네 왕국의 역사학자들을 모아,
`대륙의 역사`라는 책을 발간해
머첼리 왕국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무료로 뿌렸다.
그리고 머첼리와 거래하는 상단에 대해서는
세금을 지원하여 더욱 수출할 것을 명했다.
`고립 속에서 들어오는 신 문물.
목에 겨눠진 검보다 더 힘들 거예요`
이 말이 아직도 종종 떠오를 정도였다.
스펜타 피오네가 성인이 된 작년,
피오네의 모든 권한이 다시
피오네 왕실로 돌아갔다.
스펜타는 왕실 기사 단장이 된
아네스 피오네와 함께 왕실을 완벽히 장악하고
귀족들을 대부분 숙청했다.
스펜타의 뛰어난 머리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지만
그 우물 안에서는 인정받는 아네스의 검,
파견 나간 일테라쇼 기사단의 합작품이었다.
그리고 수아르 제국과
일테라쇼 제국의 방식을 이용해
귀족들을 선별하고 다듬어갔다.
한 번씩 유학 간 귀족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징징거리는 거 빼고는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스펜타 피오네였다.
물론, 일테라쇼 제국도 변화가 있었다.
칠흑 기사단의 카시오스와 아담,
일테라쇼 기사단의 단장 메튜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카시오스와 아담에게
작위와 영지를 내리려고 했으나,
그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리고 마린다와 마탑의 노력으로
아티펙트가 더 이상 귀족이나 부유한 자만의
소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일테라쇼 제국의 국민은 불을 피워 음식을 하는 대신,
아티펙트의 버튼을 눌러 음식을 조리했고,
버튼 한 번이면 따뜻한 물과
찬물을 오가며 씻을 수 있었다.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축사에서 가축들이 커가고,
가뭄이 시작되면 아티펙트가 만들어내는
마법 비로 농작물을 관리했다.
지금에 와서는 말이 없는 마차가 황도를 중심으로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국의 복이자, 황가의 가장 큰 변화인
황자와 황녀를 마주하고 있다.
제 어미를 닮아 화려한 것을 싫어하기에 입은
수수한 드레스는 곳곳이 찢어져 있고,
외출 전에 전속 시녀가
꾸며주었을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는,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억울한지
접견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는
5살의 황녀 에셀리안 리스튼 일테라쇼.
상당히 지친 모습이면서 황녀와 상태와 같은
8살 황자 임라이트 폴리아리스 일테라쇼.
"리안. 오늘은 누굴 잡아 왔니?"
"히익! 어떻게 아셨나요?"
내 입에서는 자연스러운 한숨이 나오고
임라이트 황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 전부터 황성 밖 출입을 허락받은 황녀는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오늘과 비슷한 몰골로 돌아왔다.
이유 또한 다양했다.
거리를 걷는데 강아지를 학대하는 사람과 싸웠다.
정확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아지를
보호하려다가 바닥에 굴렀고 옷이 찢어졌다.
아이들끼리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렸다.
정확히는 싸우는 이유를 듣고 화가나 같이 싸웠다.
더 정확히는 5살 여자아이가
7살 남자아이 둘을 때렸다.
귀족 아이들의 다과회에서
황녀가 백작 귀족 영애에게 달려들어
영애가 가지고 있던 브로치와 목걸이를 뺏었다.
등등.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황녀에게 화내지 못했다.
단지 동물이 싫다는 이유로
주변의 강아지나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이던 자에게는
`뭐? 그냥 싫어? 그럼 나도 네가 싫으니까
잡아갈래!`라고 외치며
호위 기사에게 명해 끌고 왔고,
한 아이는 상대방 아이를 어머니가 없다고 놀렸고,
다른 한 명은 아버지가 없다고
서로 놀려 싸운 두 아이에게는
`혼자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 줄아?
혼나야겠어!`라며 전담 시녀에게
아이들의 부모가 일하는 곳으로 데려가
부모의 일을 돕게 했다.
다과회의 일이 벌어진 날은,
황자이자 첫째인 임라이트가
황위 계승권을 포기한 날이기도 했다.
에르제에게서 태어났지만 생긴 것 빼고는
리아를 빼다 박은 황자는 몸이 먼저 앞서는 황녀의
보호자이자 뒤처리 담당이었다.
동생 바보 황자는 황녀의 다과회 소식에
자신의 일과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다과회장에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눈앞에 보인 것은
언제나 몸이 먼저 움직인 동생의 모습이었다.
브로치와 목걸이를 결국 빼앗아
손에 쥐고는 씩씩거리는 동생에게
황자는 물었다.
`리안. 무슨 일이니?`
`오라버니! 백작이면 대귀족이에요!
대귀족일수록 사치는 멀리해야 해요!`
`리안. 브로치와 목걸이가 사치인 거니?`
`오라버니! 실망이에요!`
5살의 사랑하는 동생에 실망이란 말을 들은 황자는
충격을 받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유모 메이님에게 부탁해서
이번 다과회에 참여하는 가문에 대해 알아봤어요!
저 영애의 가문은 슈페리스 백작 가문.
서부의 가문인데 올해 흉작으로
영지민들이 힘들다고 해요!`
황자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티펙트 관리에서 실수가 있어
마법 비를 만들지 못해
서부 일부 영지 일부가 올해 흉작이었고,
서부를 다스리는 쇼페라 공작이
대대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을
교육 시간에 교수에게 들었다.
`리안. 흉작은 잘 해결되었고,
쇼페라 공작님과 함께
슈페리스 가문도 큰 노력을 했단다.`
`오라버니!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흉작이 왜 일어났나요?
귀족들이 관리를 못 해서 그래요!
그런데 지원했다고 흉작을 해결했다고!
세금을 그대로 받았어요!
저 영애는 가문이 흉작으로 힘들어하는
영지민을 도왔다고 자랑했고!
덕.분.에! 세금을 정상적으로 받았다며
즐거워한 백작이 선물로 준거라며 또 자랑질했어요!
잘못은 오로지 귀족이 했는데
왜 책임을 영지민과 같이 하는 건가요?!`
황자는 그 자리에서 얼었고,
황녀의 전담 시녀가 가져온 영상구를 확인한 나도
할 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황자가 찾아와 황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동생에게 충성 맹세를 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며 청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 밤.
에르제는 아들의 뜻을 존중했으며,
리아는 밤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황녀와 황자에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역시나 찢어진 옷에 산발이 된 머리를
신경 쓰지 않은 황녀는 어깨를 쭉 폈다.
"옷 가게에서 쫓겨나는 언니를 대신해 싸웠어요!"
어찌나 싸웠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번에는 왜 싸운 것이냐?"
"오라버니가 설명해줘요!"
"내가?"
"응! 오라버니가 설명을 더 잘하니까요!"
"후.. 저희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외출을 할 때는
황가의 문양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갑니다."
이는 에르제의 의견이었다.
가문의 문양만으로 차별하는데
황가의 문양이 박힌 것들과 함께하면
황자와 황녀의 외출은 단순히 권력을 자랑하게 위한
발걸음일 뿐이다.라는 이유였다.
"평소와 같이 황도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는데
여자의 비명과 다른 여자의 고함이 들렸습니다."
"리안은 어김없이 달려갔을테고."
"네.. 어김없이 끼어들려는 리안을
겨우 말리고 주변에 물었더니,
평민 여자가 옷 가게에 들어가려 하자
문지기가 막아서고, 가게에서 직원이 나와 밀치며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곳은 귀족분들이 자주 오시는 곳이라
너 같은 건 올 곳이 아니라고요."
"아직도 그런 곳이 남아있었군. 그래서?"
자기 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상한 황녀가
어디서 배웠는지 작은 손으로
멋지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귀엽군."
"네. 귀엽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귀엽지 않았습니다.
리안의 뒤에 두 어머님이
제 눈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르실 것 같아
리안의 시녀에게 받아왔습니다."
황자가 영상구를 작동시켰다.
[[ `황후 폐하의 명으로 제국의 모든 상점에서는
귀족과 평면을 차별해 받지 않아야 합니다!`]]
밀쳐 넘어진 여자를 보호하듯
황녀가 사이로 끼어들어 외쳤다.
[[ `하.. 재수 없으려니까 이런 꼬맹이까지..
얘야.. 어른들 일이 끼어드는 거 아니란다.`
`나는 어른이 아니지만! 저 언니는 어른이에요!`
`쪼그만 게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니?
저 누추한 여자를 손님을 받았다가
가게 평판이라도 떨어지면 저 여자가 책임질 거니?
아니면 네가 책임질 거니?
보아하니 귀족 영애도 아닌 것 같은데 그만 꺼지렴.
지금도 너 때문에 가게가 망하게 생겼으니.`]]
"흠.. 저 여자도 평민 아닌가?"
"맞습니다. 아버지."
"제국이 평화로우니 잡것들이 다시 당당해지는군.
음..? 리안!"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있는
황녀를 향해 외친 것이 아니라,
영상구 속 황녀를 향해 외친 거였다.
[[ `고작 이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
리안이 스스로 머리를 산발로 만들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주어 옷을 찢기 시작했다.
[[ `보아라! 사람을 옷 따위로 판단하는 너의 눈에는
나는 이제 평민도 아닌 천민인가!?`
`이 년이 미쳤나! 치안대는 안 오고 뭐 해!`
`오라버니! 이리 오셔요!`]]
다가온 황자의 옷까지 황녀가 찢어버렸다.
"어디서 저런 힘이.."
"아버지와 리아 어머니의 딸입니다."
"후.. 그렇구나.."
[[ `치안대! 저 미친년을 당장 치워주세요!` ]]
소란에 달려온 치안대.
황자와 황녀의 상태를 보고 기겁한 치안대.
그런 치안대를 향해 황녀는
산발이 된 은색 머리카락을
조금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쓸어 올리며
당당히 외쳤다.
[[ `나 에셀리안 리스튼 일테라쇼 황녀가 명한다!
치안대는 당장 황후 폐하의 명을 어긴
저자를 끌고 가라!` ]]
미친년의 미친 소리라 생각한 직원은 피식 웃었지만
바로 기절했다.
[[ `황녀 저하의 명을 따릅니다!` ]]
그곳에 있던 모든 치안대 병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호위와 시녀는 뭐하고.. 아.."
"네. 어김없이 뛰어들기 전.."
"허락없이 나서지 마! 라고 외치지.."
나와 황자의 한숨 속에서도
씨익 웃는 황녀를 보고는 그냥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