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마지막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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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주신 포르테님의 얼굴이 아니라
에르제 침실의 천장이었다.
리아와 에르제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나
정원으로 향했다.
포르테님이 나에게 천 년 뒤,
제국의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차마 들지 못했던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은
주신의 따스한 온기도 있지만,
시조님들께서 기억을 가진 채 천 번을 환생했듯
나도 천 년을 허무의 공간에서 잠들어있든,
천 번을 환생하든 하겠다는 각오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새벽의 찬바람에 혼란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내가 뫼비우스의 고리를 끊었기에 생겨난
천 년 뒤의 모습이란 생각이 먼저 들자,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제국,
황가의 뒤를 조금 더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일이란 생각이 따라왔다.
주신께서는 뫼비우스 고리를 끊은 나를
탓하기 위해 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닐 것이다.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고, 나의 결정에 미소를 보이셨다.
또한, 천 년 뒤의 모습에서도
자신이 사랑으로 만든 인간의 탐욕에 안타까워하고,
영원히 잠들 수 없음에 잠시 슬픈 눈을 보였을 뿐이다.
또 한 번의 경고일까.
어쩌면 멸망했던 왕국들이나 제국처럼
일테라쇼 제국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자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천 년 뒤를 대비한다고
과연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탐욕적인 존재가 사람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동족을 죽이는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다.
지금의 제국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천 년 뒤 다시 나타날 몬스터도
같이 죽을지언정 자기 동족만큼은 소중히 여긴다.
하나를 먹으면 둘을 먹고 싶은,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은,
배가 부르고 창고가 가득 차도 더 먹고,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나의 유언이나
대비해 놓은 것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옳은 길을 걸으려 할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륙을 창조하시고 지금껏 셀 수 없을 정도의
인간을 품어오신 주신께서도
분명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
짧은 탄식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주신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시공간의 모습과
자신이 만든 공간의 모습을 비교하며
`실패`라는 결과에 도달했고,
인간이 지은 죄마저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며
모든 것을 안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더 복잡해졌다.
모든 것은 감당하시려는 주신께서
천 년 전인 나에게 천 년 뒤의 미래를 보여준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기에
미래를 대비하라는 경고로만
보여 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주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지금,
인간인 나는 인간이 할 수 있을 해야 했다.
정원을 거닐던 나의 발은
바이올렛이 있는 마탑으로 향했다.
*
바이올렛은 조심스럽게 카온의 앞에 서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의 주인이시여.
폐하께서 명하신 것들을 모두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눈만 깜빡이는 카온의 손에
짧게 입을 맞춘 바이올렛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지난날을 회생했다.
뫼비우스 고리를 끊고 이틀 뒤 새벽.
자신을 찾아온 카온의 모습이 회생의 시작이었다.
`바이올렛.. 너에게 부탁이있다.`
"제가 폐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거지요?"
바이올렛은 이유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이후, 둘은 1년간 마탑에서 나오지 않았다.
두 황후에게도 만남이 허락되지 않은 칩거였다.
카온은 토라진 두 황후를 달래준다며
함께 여행을 떠났고, 제국은 마탑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피펙트에 열광했다.
카온과 바이올렛을 제외한 모두는 그 1년의 세월을
제국을 위하는 황제의 마음과 노력이라고만 여겼다.
리아보다 더 나이가 어렸던 에르제 황후가
에르제 태황후가 되어
78세의 나이로 주신의 품으로 돌아가고,
2 년 뒤, 리아 태황후가 뒤를 이었다.
에르제의 죽음 이후 매일 태황후의 묘를 찾아가던
카온과 리아의 모습과,
리아가 주신의 품으로 돌아가던 날,
목 놓아 울던 카온의 모습이
바이올렛에게는 아직도 생생했다.
"참으로 잔인한 명령을 웃은 얼굴로 내리셨어요.."
바이올렛은 카온과 마탑에서 1년 동안 만들었던 것을
제국을 돌아다니며 지정된 장소에 숨겼다.
칠흑 기사단의 시작을 알렸던
옛 몬스터 숲 시작의 요새,
추모의 비석이있는 마을,
동부 온천 도시 올반, 북부 카르엘 가문의 영지와
파레앙 가문의 영지,
옛 신성국이자 지금의 자유 도시 등.
카온이 라이거 가문의 후계자이던 시절부터,
황제가 되어 대륙의 중심이 되기까지
그의 발길이 닿았던 중요한 곳들이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폐하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이 제 사명인걸요."
바이올렛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흐트러진 카온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런데.. 폐하.
폐하의 명령은 수행했지만..
폐하의 부탁은 자신이 없어요.."
`제국을 부탁한다. 바이.`
창가로 다가간 바이올렛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폐하께서 계셨기에 강해질 수 있었어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카온을 향한 바이올렛의 마음은
이성간의 사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바이올렛에있어 카온 `세상`이었다.
그래서 40여 년 전 카온이
`이런 세상이 올 것을 대비해야 한다.`라는 말에
`설마요.`라는 의문도 품지 않고 믿고 따랐다.
"두 태황후 폐하와 프레시아 전 라이거 백작님께
제국의 법과 체계를 다시 정비하게 하시고,
칠흑 기사단과 정보부를 위해
따로 유언을 남기신 것은
살아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저가 폐하와 리아 태황후님을 따라
마나를 거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요?
하지만.. 너무 하셨어요..
전 폐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걸요.."
바이올렛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제가 과연.. 제국을.. 황가를.. 제국민을..
폐하처럼 바라볼 수 있을까요..?"
카온과 눈이 마주친 바이올렛은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건가요..
바이올렛이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대신.. 폐하의 마지막을 지키게 해주세요.."
*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눈에 담았다.
눈을 감기 전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라는 이름으로 보는
마지막 모습일 거란 확신에
그 푸르고 찬란함을 두 눈 가득 담고 싶었다.
다정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에르제보다 먼저 주신의 곁으로 간
동생 프레시아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라이거 영지를 안마당처럼 뛰어다니던 에르제와,
검을 휘두르는 리아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가
황자와 황녀를 각각 안고 있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황녀와
그 뒤를 쫓아오는 황자의 모습도 지나갔다.
몬스터를 무찌르는 칠흑 기사단의 외침과
피오네 왕국 왕성을 향해 진군하는
일테라쇼 기사단의 발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나폴레이, 아샤, 페트로, 라이,릴리 남매,
키엘, 메튜, 폴리아리스 전 공작 등.
함께했던 충성스러운 가신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회귀 전, 후 통틀어 유일한 친구였던
알크와 마린다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푸른 하늘이 보여주지 않았지만
바이올렛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직 주신의 힘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잊혀질 유언일지로도 후손들을 위해 유언을 남겼고,
후손들의 탐욕을 대비해 또 다른 곳에 유언을 남겼다.
탐욕과 탐욕이 손을 잡는 것까지 예상하고
또 다른 곳에 유언을 남겼으며,
그곳의 배신을 염두하고
아직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몸에 남은 마력을 담아 바이올렛에게 전해
제국 전역에 숨겨 두었다.
이제 눈을 감았으니 그날 이후 만나지 못했던
주신 포르테님을 뵙게 될 것이다.
천 번을 미물로 태어나도 좋고,
허무의 공간에 갇혀도 좋으니
기억을 간직한 채,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환생시켜 달라고
무릎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빌어볼 생각이다.
만약 회귀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자
유일한 주신의 은혜였다면, 숨겨 둔 마력을 이용해
뫼비우스 실로 만들어진 봉인을 끊고
세상에 남은 주신의 힘을 모두 거두어
잠이 드시기를 청할 것이다.
제국을 명망의 늪에서 건져 올릴 수 없고,
남겨놓은 마력이 부족하다면
나도 알 수 없는 나의 모든 것을 이용해
주신께서 잠들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주신께서 찾아오시지 않아
인간인 내가 인간의 생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이제 눈을 뜰 힘도 없지만
작은 움직임이 허락된다면, 웃고 싶었다.
*
일테라쇼 제국의 초대 황제
카온 라이거 일테라쇼의 장례는 엄숙하게 치러졌다.
카온의 무덤은 후계자 시절 선언했고,
유언에도 남겼듯, 비석의 마을에 마련되었다.
1년 뒤.
카온 몰래 황태녀에서 황제가 된 딸에게 남긴
리아와 에르제의 유언에 따라
두 사람의 무덤도 카온의 옆에 이장되었다.
카온의 서거 10주년 추모식이 끝나고
황제와 수많은 귀족, 백성들이 자리했다가
모두 떠난 이곳에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여인이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카온의 서거를 알린 뒤,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고
마탑에 들어가 10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바이올렛이었다.
"폐하.. 폐하께서 그리신 그 미래는
제가 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폐하께서 꿈꾸시던 세상에서 태어나시길.."
딱.
바이올렛이 손가락을 튕겼다.
카온과 리아, 에르제의 무덤을 투명한 벽이 감쌌다.
텅!
벽을 두드린 바이올렛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왔던 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누구도 세 분의 무덤을 건드리게 할 수 없지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