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가게에는 특별한 손님이 생겼다. 고작해야 내 또래쯤 됐을 법한 한 무리의 남녀를, 사장은 ‘진짜배기’라고 부르곤 했다.
“쟤들은 진짜배기야.”
“뭐가요?”
“이거 말이야.”
사장은 넌지시 엄지와 검지로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극진히 대접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덧붙였다.
반쯤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나는 그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도 그럴 게 이 가게에 오는 사람들 중에 가짜로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땅값 비싼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비교적 한적한 골목 지하에 자리 잡은 이 바는 사장인 성욱 형의 고상한 안목과 넓은 인맥으로 유지되는 곳이었다. 방문객은 대부분 돈깨나 쓴다는 이들이었고, 애초에 성욱 형부터가 그런 부류였다.
좀 산다는 집의 막내아들이라는 성욱 형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한 시절을 보내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직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말은 심심풀이처럼 했어도 가게에는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다. 돈 냄새 풀풀 나는 인테리어나, 경력이 출중한 바텐더, 구하기 어렵다는 술까지 꽤 보유한 걸 보면 성욱 형이 얼마나 이 사업에 열을 올리는지 알 만했다. 덕분에 이 바는 성욱 형의 부유한 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금방 유명해졌다.
성욱 형이 특별한 손님이라고 부르는 그들도 그런 케이스였다. 안경을 쓴 멀끔한 인상의 남자가 성욱 형의 지인을 따라 가게에 왔던 게 처음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도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후 친구를 데리고 종종 들르곤 했다.
특별한 손님이라고는 해도 성욱 형에게나 그렇지 직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무리였다. 항상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비싼 술만 시키는 것도 아니었고, 침을 튀겨 가며 핏줄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내 또래의 여느 손님처럼 적당히 이야기를 하다 가게를 나서곤 했다.
그런 이들이 내게도 신경 쓰이는 손님이 된 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이름 석 자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윤성은 한국에 왔다는 거야, 안 왔다는 거야?”
새빨간 립스틱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여자가 짜증스럽게 뱉은 말이었다. 예고 없이 들려온 낯익은 이름에 하마터면 내려놓던 잔을 놓칠 뻔했다.
안경을 쓴 남자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내 손을 한번 흘끔 보고 여자에게 대답했다.
“왔다니까.”
“아니, 근데 왜 연락을 한번 안 해?”
여자는 기가 차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바쁜가 봐.”
남자는 다시 짧게 대답했다. 장윤성에 관한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화제는 금방 다른 이야기로 옮겨 갔다. 나만이 속으로 그 이름을 몇 번이고 곱씹었을 뿐이었다.
흔한 이름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려 해도 한번 술렁이기 시작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진짜배기들 말이에요, 얼마나 대단한 집 자식들이래요?”
20대 후반에서 많아야 30대 초반. 이곳을 출입하는 그 나이대 손님은 대부분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돈 많은 집 자식이라고 하니 막내 종민이는 못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그 시답잖은 물음에 나도 귀를 기울였다. 성욱 형은 대답에 조금 뜸을 들였다.
“뭐 재벌 2세라도 된대요?”
“어, 그쯤 돼.”
박종민이 재촉하듯 다시 묻자, 성욱 형은 긍정했다.
내가 아는 장윤성도 그런 부류였다. 내 또래의 장윤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진짜배기가 둘이나 존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결론이 분명함에도 나는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그 특별한 손님들이 오는 날마다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종일 하늘이 찌뿌듯하더니 결국 저녁쯤부터 비가 내렸고, 특별한 손님들은 느지막이 찾아와 넓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귓가를 울리는 음악 사이로 익숙한 그 이름이 들렸던 것도 같았다. 어수선한 날이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기분 탓에 몇 번이나 실수를 했다.
“이하경, 너 오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알면 됐고, 나가서 바닥이나 좀 닦아. 또 흙탕물 천지더라.”
사람 좋은 성욱 형은 잔소리를 덧붙이는 대신 걸레 자루를 내밀었다. 덤벙거리며 테이블 사이를 누비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벌써 여러 번 닦았을 텐데 문 앞부터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비에 젖은 발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아, 이래서 비 오는 날은 정말 싫다니까. 해야 할 일도 많고 생각도 많아지는 날.
나는 머릿속을 비워 나가듯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기껏 계단을 다 닦은 때 타이밍도 좋게 새 손님이 등장했다.
입구에 선 남자는 몇 번인가 우산을 탁탁 털었다. 저 손님의 발자국까지 닦고 들어가야겠다 싶어 나는 자리에 멀거니 섰다.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의 키는 드물게 컸다. 아니, 여전히 컸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인상이 차가워 보이는 얼굴도 여전했다.
나는 홀린 것처럼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 내는 손끝 또한 기억과 같아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던 남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기어이 장윤성과 다시 마주하고 말았음을. 장윤성은 삐딱하게 서서 나를 훑었다.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다시 마주친다면 장윤성은 내게 뭐라고 할까. 반가워하진 않겠지. 그럼 화를 낼까? 아니, 이미 잊었거나,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장윤성은 빤한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나 알아?”
싸가지 없는 말투마저 여전하네. 장윤성이 날 알아보든, 알아보지 못하든 나는 그의 앞에 내놓을 하나의 대답을 몇 번이나 연습했었다.
“…아니요.”
나는 너를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