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에 빗방울이 툭 떨어진 것 같았다. 가을비 같지 않게 뜨뜻미지근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빗방울치고 무겁게 볼을 타고 굴러 내렸지만 그게 내 눈에서 떨어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윤성의 고백이 울 만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었으니까.
“왜 울어.”
장윤성이 그렇게 묻고 나서야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었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봐 봐.”
괜히 따갑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둘러댔더니 장윤성이 내 손을 치우고 후, 하고 불었다. 내 눈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잘 알면서.
“이제 괜찮아?”
나는 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댈까 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고는 내 손을 쥐었다.
“들어가자.”
“그럼 왜 그런 건데?”
내 손을 쥔 장윤성이 앞장서서 걷기에 나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척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물었다.
“뭐가?”
“좋아한다면서 왜 화낸 건데?”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 얼핏 서러움이 묻어 있어 창피했다. 내 손을 쥐고 팔을 흔들며 걷던 장윤성이 자리에 멈춰 섰다. 혼자 고백하고 기분 풀면 다인가. 그는 어제까지 화를 내던 이는 다른 사람이었던 양 웃고 있었다.
“네가 이름 가르쳐 주면, 그때 대답해 줄게. 나도 네가 궁금해할 비밀 하나는 있어야지.”
아마도 평생 가르쳐 주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내 이름을 말해 줄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
나는 괜히 기분이 상한 척 잡힌 손을 비틀어 뺐다. 장윤성이 내게 정말 등을 돌리려고 할 땐 한마디도 못하다가, 그러지 않을 걸 알고나서야 이렇게 섭섭한 티를 내는 게 치사하다는 걸 알면서도.
“섭섭했어?”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고 실컷 화를 낼 땐 언제고, 이제는 퍽 관대해진 척 장윤성은 내 손을 다시 쥐었다. 내 입으로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영 자존심이 상해서 불만스럽게 눈만 굴렸더니 장윤성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
“왜라니, 그야… 네가 화를 내니까… 당연히….”
몰라서 묻나. 당연한 걸 물으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상하네. 널 처음 봤을 때도 나는 화를 냈는데. 그때는 별로 섭섭해 보이지 않았거든.”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그때 너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지금은, 어떤 사람이더라.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장윤성은 재촉하듯 물었다.
“지금은?”
지금은…. 여러 가지 수식어가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자세히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윤성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사람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해 버릴까 하다가 그조차도 맞지 않는 것 같아 결국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이곳을 떠나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사이일 테니까.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른지, 너도 잘 생각해 봐.”
내 답이 꼭 듣고 싶었던지, 장윤성은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하고는 잡은 손을 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왜 날 밀어내지 않는지도.”
장윤성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헛된 기대였다. 왜 키스를 피하지 않았냐고? 밀어내면 네가 싫어할 테니까. 네게 미움을 받으면 곤란한 일이 아주 많이 생길 테니까.
생각해 보면 처음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보다 지금, 이 일에 훨씬 더 많은 것이 걸려있었다. 잃을 게 많을수록 두려움도 커지는 법이니까.
그래, 그저 그뿐일 것이다. 뭐, 나도 인간인지라 정도 조금은 들었겠지. 어차피 입 밖으로 낼 일도 없을 이유를 왜 이렇게 열심히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화해한 게냐?”
장 회장과 나, 그리고 장윤성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거실에 둘러앉았다. 저녁을 먹는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번갈아 보던 장 회장은 손자의 기분이 풀어진 걸 알아 챈 것 같았다. 장 회장에게 과일 접시를 건넨 후 오랜만에 내 접시에 파인애플 탑을 쌓던 장윤성은 잠깐 눈을 굴리더니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우리 싸운 적 없어.”
“맞아요. 전 화낸 적 없어요. 일방적으로 당한 거지.”
내가 깐죽거리듯 덧붙이자 장윤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내 앞에 파인애플 접시를 내려놓았다. 화해했냐고 묻고도 걱정스럽게 날 보던 장 회장은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에라이, 이놈아. 너 지영이한테 그렇게 할 거면, 결혼이고 뭐고 다 그만둬. 나 손자 많다.”
“안 될걸? 쟤가 얼굴을 얼마나 따지는데. 손자는 많아도 나보다 잘생긴 손자는 없잖아.”
얼굴 하나는 자신 있었던지 장윤성은 제 할아버지의 으름장도 능청스럽게 넘겼다. 나를 얼굴만 밝히는 사람으로 모함까지 하면서.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 얼굴을 따져서 뭐한다고.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 얼굴 안 봐요!”
“그래? 그럼 어떤 놈으로 골라 줄까.”
“할아버지랑 제일 닮은 사람이요!”
“그….”
장난기가 발동한 얼굴로 내게 묻던 장 회장은 말문이 막힌 듯 장윤성을 쳐다봤다. 내가 정말 태원그룹 핏줄과 결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윤성을 놀릴 겸, 장 회장 듣기나 좋으라고 한 소리였는데 어쩐 일인지 승리의 미소는 장윤성이 짓고 있었다.
“자, 상.”
장윤성은 기특하다는 듯이 제 접시의 파인애플을 내 입에 넣어 주기까지 했다. 나는 달콤한 파인애플을 씹으며 장 회장에게 설마, 하고 눈짓으로 물었다.
“아니, 지영이 너 취향이, 거….”
당신과 닮은 손자를 찾는 내 취향이 그렇게 무릎까지 쳐 가며 통탄 할 일인가. 장윤성은 제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장 회장이 장명수가 친자인지 아닌지 유전자 검사까지 해 봤을 거라고 내게 설명하고는, 장 회장에게 패배를 인정하라는 듯이 덧붙였다.
“누워서 침 뱉기 그만 하시고 과일이나 드시죠.”
“에휴, 그래, 지영이 네가 좋다면 됐다.”
장 회장은 둘이 편을 먹고도 한 놈을 못 이긴다고 투덜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면 내 취향이 영 싫기만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시끌벅적한 시간은 꽤 길게 이어졌다. 체력이 부쩍 약해진 장 회장도 평소보다 오래 자리를 지키다가 느지막이 자리를 떴다.
“먼저 자. 난 할아버지랑 할 얘기가 있어서.”
장 회장이 방으로 향하자 장윤성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지난밤 잠을 설쳐서 피곤하던 참이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가려 계단을 오르려다 보니 인사를 잊은 게 생각이 났다. 돌아보니 장 회장과 할 이야기가 있다던 장윤성은 아직도 자리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잘 자.”
밸도 없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장윤성의 고백 한 번에 스르르 풀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게 창피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튀어나갔다. 겨우 화를 풀었는데 혹시 오해라도 할까 얼른 무슨 말이라도 덧붙이려 했더니 그보다 먼저 대답이 돌아왔다.
“너도.”
그렇게 말하는 장윤성의 얼굴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급히 계단을 마저 올랐다.
아무리 잘생겨 봤자 같은 사내놈인데, 장윤성이 웃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지.
***
고백을 받았다고 해서 별장에서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우리는 서울에 다녀오기 전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함께 보냈는데, 굳이 변한 점을 따지자면 오히려 각자 일하는 시간이 길어진 편이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윤성이 바쁜 탓이었다.
장윤성이 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를 훑으며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는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풍작이와 놀거나 책을 보거나, 혹은 그러다 졸기도 하면서. 장윤성은 많은 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니까 바쁜 게 당연했다. 그래서 별로 불만을 갖진 않았다.
거슬렸던 건 오히려 아주,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었다. 곁에 있을 때 부쩍 가까워진 거리, 자주 닿는 손, 자꾸만 부딪히는 시선, 그리고 종종 아지랑이처럼 볼을 타고 오르는 열 같은.
처음엔 미묘하게 느껴지던 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내 심기 어딘가를 콕콕 찔러 댔다.
여느 날처럼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장윤성은 장 회장의 방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약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풍작이를 안아들었다. 체온이 오른 것 같아 차가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나설 요량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움츠러드는 어깨에 잠시 망설였지만 온기뿐인 거실을 한번 돌아보고 결국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빨리 간 건지 풍작이가 빨리 자란 건지, 아직 분별없는 강아지라 찻길 근처에서는 안고 걸어야 했는데 남자인 나도 슬슬 힘이 들 정도로 무거웠다. 한참을 걸어 안전해 보이는 곳에 겨우 내려놓고 나는 근처 바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노란 털옷을 입고도 춥긴 추웠던지 풍작이는 몸을 조금 떨다가 곧 땅에 코를 박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풍작아, 멀리 가면 안 돼.”
‘손!’이라는 말을 목이 쉬도록 외친 뒤에야 겨우 앞발을 내미는 녀석이 이렇게 복잡한 말을 알아듣긴 할까 싶었지만 일단 일러두고 호수 건너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세상의 반쪽은 짙은 녹색이었는데, 이제 땅과 나무가 붉은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하루가 저무는 순간처럼.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와서, 이 호수가, 저 멀리 언덕 위에 보이는 집이, 그곳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올까 봐, 나는 그 풍경을 두 눈에 하염없이 담았다. 퍽 길게 그러고 있었던지 어느새 마른 잎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풍작이가 돌아와 내 발치에 바짝 몸을 붙이고 앉았다. 신나게 놀고 온 모양이었다.
“집에 갈까?”
집이란 말은 알아들었는지 녀석은 벌떡 일어나 몸을 털고는 종종거리며 앞장을 섰다.
한가롭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별장은 나서기 전처럼 조용했다. 장 회장이 낮잠을 즐기고, 일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괜히 누군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살금살금 거실로 들어오는데 소파에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멍!
잠깐 떨어졌다 다시 만났을 뿐인데 제 주인이 그렇게 반가웠는지 풍작이가 꼬리로도 모자라 엉덩이까지 흔들며 소파에 두 발을 올리고 섰다.
나는 풍작이에게 쉿, 쉿, 하며 장윤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쩐 일인지 장윤성이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소파 위에서 뒹굴 때 쓰는 담요를 덮고.
볕이 들지 않는 거실 안쪽은 냉기가 돌았다. 아무래도 얇은 담요로는 감기에 걸리기 좋을 것 같아 나는 방에서 두툼한 이불을 꺼내 왔다. 턱밑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덮어 주고 나니 자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장윤성의 자는 얼굴은 처음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소파 앞에 주저앉아 잠든 얼굴과 눈높이를 맞췄다. 일부러 만들려 해도 이렇게는 못 만들 것 같았다. 얼굴을 그리는 선부터 눈썹 한 올까지 뭐 하나 어긋난 게 없었다. 그 모양새가 현실감이 없어 나도 모르게 손을 대려다가 얼른 다시 거뒀다. 그럼에도 시선은 매인 것처럼 여전히 그 얼굴에 묶여 있었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본 적 없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문득 마주했을 때처럼.
하지만 어쩐지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저 예쁘기만 한 것을 볼 때와는 달리 긴장한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고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다 내가 입까지 벌리고 퍽 멍청한 표정으로 그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분명히 잠들었을 놈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더니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말을 뱉었다.
“할 거면 빨리 해. 심장 터질 것 같으니까.”
“무, 무… 뭐…!”
화들짝 놀라 뒤로 주저앉는 바람에 테이블을 등에 찧고 말았다. 아파서 아, 하고 낸 소리에 장윤성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으… 뭐 하려고 한 거 아니거든?”
“그럼 왜 놀라?”
“정말 그냥 보기만 하려고 한 건데 네가 갑자기… 으씨.”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등을 문지르자 장윤성은 일으켜 주려는 듯이 손을 뻗었다.
“정말 보기만 하려고 했어?”
“그렇다니까.”
“왜 보기만 해?”
그럼 뭘 더 하라고? 녀석의 손을 잡고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채 무릎을 펴기도 전에 장윤성이 내 팔을 훅 당겼다. 그 바람에 균형을 잃은 몸이 놈의 손길을 따라 소파 위로 떨어졌다. 뭐라고 하기도 전에 쪽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장윤성이 짧게 입술을 맞댔다 떨어졌다
“섭섭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겨우 깨닫고 보니 장윤성이 누웠던 자리에 이번엔 내가 누워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장윤성이 다시 몸을 기울여 왔다. 어쩐지 느껴지는 위기감에 몸을 바짝 웅크렸으나 소용없었다. 이미 조금이라도 숨을 크게 쉬면 몸이 닿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기, 기다린다며…! 기다린다고 해 놓고 마음대로 막…!”
제멋대로 입술을 부딪쳐 대는 걸 타박하려고 했는데 키스라는 단어를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장윤성과 내가 한 게 키스라는 걸 소리 내어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부쩍 가까워진 얼굴이 그게 뭐 대수냐는 얼굴을 했다.
“싫으면 거절해.”
“거절할 틈을 줘야 거절을 하지.”
매번 갑작스럽기만 했는데 거절할 정신이 어디 있다고. 내가 그렇게 따지자 장윤성이 미처 몰랐던 척 가증을 떨며 말했다.
“그랬어? 그럼 이번엔 물어보고 해야겠네.”
“…이번엔?”
“해도 돼?”
그게 그렇게 당당히 물어볼 일인가. 어이가 없어서 눈을 껌뻑였더니 장윤성이 천연덕스럽게 나를 따라 눈을 깜빡였다.
“다, 당연히… 아… 안… 되는데에….”
안 할 거라고 하는데도 자꾸만 가까워지는 얼굴 때문에 목소리는 점점 기어 들어갔다. 슬쩍 장윤성의 어깨를 밀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깟 키스 좀 한다고 입술이 닳는 것도 아닌데 못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장윤성이 나중에라도 내 정체를 알아서 후회할까 봐 걱정이 좀 됐을 뿐. 그러니 순전히 저를 위해 하는 거절인데도 장윤성은 입술이 스칠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이듯 대답했다.
“응? 잘 안 들려.”
“안 하… 읍….”
이번엔 제대로 대답하려 덜컥 입을 열었을 때였다. 장윤성은 늦었다는 듯이 입술을 겹쳐 왔다. 나쁜 새끼. 처음부터 들어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하지만 장윤성이 나쁜 새끼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입술을 맞대고 혀를 얽는 행위가 당황스러울 만큼 기분이 좋았다. 뜨겁지만 다정했고 가슴 속에서 벅찬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이 왜 타인의 온기를 갈구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거부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나중에 그가 나를 원망할 때 한마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단단히 버티는 몸을 밀어내려 다시 손에 힘을 줬지만 소용없는 반항을 하는 사이, 장윤성은 제 입 안에서 나를 흐물흐물하게 녹이는 데 성공했다. 결국엔 그의 옷을 간신히 쥐고 있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무렵 나는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만 들썩이며 누워 있었다. 아마도 무척이나 긴 키스였던 것 같았다. 장윤성은 그러고도 부족했던지 채 다물어지지도 못한 입술에 몇 번이나 더 쪽쪽거리길 반복했다. 손으로 내 입술의 타액을 훔쳐 주고도 못내 아쉬운 듯 한 번 더.
그러고 나서야 그는 겨우 할 일을 마친 듯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는 멍한 시선으로 아까보다 한결 붉어진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응시했다.
“내일은 영화라도 보러 갈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남자인 걸 알면, 후회하겠지. 이 키스도, 지금까지의 시간도. 어쩌면 내일의 일도 포함해서 날 몇 배로 원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별장에서 가장 가깝다는 영화관도 차를 타고 꽤 나가야 했다. 밤사이 기온이 더 떨어졌는지 무척 추운 날이었다. 남이 운전해 주는 따듯한 차 안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몇 곡을 속으로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시내였다.
영화관 간판이 커다랗게 붙은 건물 지하에 차를 두고 우리는 매표소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라 한산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로비는 생각보다 북적이고 있었다.
“티켓 찾아와. 나 저기서 기다릴게.”
예매한 티켓을 찾아야 한다기에 나는 사람이 없는 구석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지를 입고 나오긴 했지만 치렁치렁한 가발을 그대로 쓰고 나온 터라 가급적이면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들떠서 남들이 머리 긴 남자로 보든 키 큰 여자로 보든 그냥 수상한 놈으로 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또 막상 나오니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기둥 뒤에 숨고도 옷에 달린 모자까지 푹 뒤집어썼다. 그나마 실내가 어둑한 걸 위안 삼으면서.
마주한 벽에는 영화 포스터가 여럿 걸려 있었다. 낯익은 제목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서 별장에서 지낸 시간을 체감했다.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다보면 요즘은 어떤 영화가 재미있다더라, 곧 뭐가 개봉한다더라 하는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었으니까.
기둥에 등을 바짝 붙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덥석 내 팔을 잡았다. 우악스런 손길이라 인상을 찡그리며 돌아봤더니 장윤성이 묘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놀랐잖아. 뭐 잘못됐어?”
날짜를 잘못 예매했나? 내가 의아하게 물어도 장윤성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래?”
한 번 더 묻고 나서야 장윤성은 내 팔을 놓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보여서, 없어진 줄 알았어.”
내가 기둥 뒤에 있는 걸 모르고 찾아 헤맸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바보야? 전화하면 되잖아. 화장실이라도 갔으면 사람 찾는다고 방송까지 했겠네.”
“전화? …그러네.”
미처 생각도 못해 본 양 장윤성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표는 찾았어?”
그 정도는 제대로 했다는 듯이 장윤성이 티켓을 내보였다.
“그럼 들어가자.”
얼른 조금이라도 더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우리는 팝콘과 콜라는 사 들고 상영관으로 향했다. 상영 시간까지 그렇게 많이 남은 것도 아닌데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긴 사람 되게 없다.”
그래도 혹시 누가 있을까 봐 주변을 둘러보며 속삭이듯 한 말에, 장윤성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평일 낮이잖아.”
“맞다, 그렇지.”
어느새 요일 감각도 희박해졌다. 내가 눈을 굴리며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떠올리는 동안 장윤성은 내 입에 팝콘을 하나 물려 주며 말을 이었다.
“볼 사람은 벌써 다 봤을 영화고.”
그러고 보니 영화를 고르면서 ‘이게 아직 상영 중이네.’ 하는 소릴 한 것도 같았다. 소파에서 키스를 한 뒤로 어쩐지 정신이 없어 듣는 둥 마는 둥 넘겼지만, 나는 팝콘을 씹으며 잘 기억하고 있는 척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로비의 많은 사람은 다 다른 영화를 보러 온 건지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상영관으로 더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마치 전세라도 낸 양 단둘이서 영화를 봤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그때그때 감상을 나누면서.
오랜만에 본 영화는 꽤 재미있었다. 장윤성의 책 취향은 따분할 만큼 고상한 편이어서 선택을 맡겨 놓고도 내심 걱정했는데 영화를 고르는 안목만큼은 다행히 대중적인 모양이었다.
“근데 그 박사는 안 죽었을 것 같지 않아? 죽는 장면이 안 나온 게 수상한데.”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도 나는 바쁘게 영화 속 악당의 생사를 떠들어 댔다.
“그러게.”
마침 신호에 걸려 차를 세운 녀석이 짧게 대답하더니 다시 입을 다문 채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내내 나만 혼자 떠들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가 별로였나? 아니면 운전하는데 내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 댔을까.
“방해돼?”
슬며시 눈치를 보는 소리에 장윤성이 웃었다.
“아니, 그렇게 신나게 말하는 거 처음 봐서. 괜찮아, 계속 얘기해.”
“신난 게 아니라, 영화 본 거 진짜 오랜만이라….”
신났다는 말이 괜히 머쓱해서 변명하듯 말하다 보니 역시 신난 게 맞는 것 같긴 했다.
“얼마나 오랜만인데?”
그렇게 물어도 금방 떠오르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게 언제였더라. 엄마가 아는 사람에게 공짜 티켓을 받았다고 해서 모처럼 건우와 셋이 갔던 게 그나마 최근이었을 것이다. 최근이라고는 해도….
“작년 여름?”
“…누구랑?”
영화를 보고 빙수를 먹었던 걸 겨우 기억해 내 대답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떠보듯 물음이 이어졌다.
“엄마랑 동생.”
확실히 들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가족이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엄마와 동생이라고 말해 줄 생각이 든 걸 보면.
기대 없이 물었던 말인지 장윤성은 내심 놀란 얼굴을 했다.
“야, 신호.”
그러는 사이 어느새 신호가 바뀌어 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장윤성도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럼 그사이엔 왜 안 갔어? 싫어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한마디쯤 순순히 대답해 줬다고 이때다 싶었는지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다시 질문을 해 왔다. 여기까진 대답해 줘도 될 것 같았지만 정작 답할 말이 없었다.
왜 안 갔을까. 여유가 없다곤 해도 몇 시간 짬을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영화표 한두 장쯤 못 살 것도 없었는데.
“그냥 좀, 여유가 없어서.”
하지만 결국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시간이 남으면 잠을 자는 게 차라리 이로웠고, 돈을 써야 할 곳은 얼마든지 많았으니까.
“여기 오기 전엔 뭐 했는데? 학생? 아니면 다른 일?”
“뭐 했을 것 같은데?”
얼마 전에 서혜진이 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이번엔 장윤성이 하고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하고 지낸 것도 아니고 그냥 말해 줄까 하다가, 이렇게 한걸음씩 물러서다 보면 정작 지켜야 할 선을 놓칠 것만 같았다. 대답하지 않을 생각으로 답을 미루자 장윤성은 금방 내 속셈을 눈치챘다. 그는 이 정도도 괜찮다는 듯이 너그럽게 대꾸했다.
“그래, 뭘 했든 다음 편도 같이 보러 가자.”
“다음 편?”
“네 말대로 그 박사가 아직 안 죽었나 봐.”
속편이 예정된 영화였던 모양이었다. 악당은 왜 안 죽어서 장윤성이 그런 부질없는 말을 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듣는 내 기분만 심란하게.
나는 아무래도 악당의 최후를 확인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장윤성은 누구와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될까.
괜히 쓰라린 상상을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와서 영화를 한 편 봤을 뿐인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석양의 붉은빛이 절정에 달했을 쯤 우리는 바닷가 근처, 휑한 곳에 덩그러니 선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외진 곳에 있다곤 해도 규모가 꽤 컸는데 아직 저녁을 먹기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지 손님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나마 직원이 돌아다니는 1층을 지나 아예 인기척도 없는 2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전면 창으로 낮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미 해가 진 터라 그저 시커먼 허공에 드문드문 불빛이 보일 뿐이었다.
“뭐 먹을래?”
장윤성은 직원이 건넨 메뉴판을 내게 넘겨 주며 내게 물었다. 낯선 메뉴판을 몇 번이나 정독한 뒤 파스타를 하나 골랐더니 장윤성은 이것저것 길게도 주문을 했다.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사라지는 걸 보면서 나는 다시 가게 안을 살폈다.
“오늘따라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네. 여기 혹시 맛없는 거 아니야?”
“아닐걸.”
장윤성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왜 웃어? 그럼 뭐 네가 전세라도 냈….”
농담으로 한 말인데 뱉다 보니 뭔가 그럴싸했다.
“아, 잠깐, 정말?”
장윤성은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어… 설마 영화관도?”
아무리 평일 낮이라고 해도 영화를 단둘이 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맛있다는 식당에 단둘이 있을 확률은? 한번쯤 우연히 겪을 수도 있을 일이지만 장윤성의 표정이 계획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원래 돈 많은 놈들은 영화관도 전세 내고 식당도 전세 내는 건가.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그냥 둘만 있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내가 어떤 눈으로 봤는데?”
“풍작이 이름 지어 줄 때 같은 눈.”
정곡을 찔린 나는 얌전히 시선을 돌렸다. 장윤성은 내가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는 듯 말을 돌렸다.
“모자, 안 불편해?”
“어? 어, 벗을 거야.”
안 그래도 음식이 나오면 벗으려고 했던 참이었다. 밖에 나오는 건 즐겁지만 종일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나마 장윤성이 레스토랑을 전부 빌린 덕에 직원 외에 보는 눈이 더 늘어날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우리뿐이라 그런지, 많은 메뉴를 주문했는데도 음식은 금방 나왔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장윤성은 부지런히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사이 만만하게 보이는 샐러드의 풀떼기를 씹고 있었더니 장윤성이 한입 크기로 잘린 고기를 내밀었다.
“먹어 봐, 어떤지.”
“음….”
구운 고기는 무조건 맛있다고 믿는 편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덜 익은 고기와 아직 서먹하다는 점이었다. 분홍색 단면을 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는데 생각과 달리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게 티가 났던지 장윤성은 흡족한 얼굴을 했다.
음식을 많이 시킨 덕에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긴 식사가 끝나고 장윤성이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직원들의 시선을 피해 먼저 밖에 나와 서있었다. 주변이 허허벌판인 줄 알았더니 저 멀리, 백사장으로 쭉 이어져 있는 곳에 불빛이 여럿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상점가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 걸을까?”
계산을 마치고 나온 장윤성도 궁금했던지 그쪽을 보며 물었다.
“그래. 저기까지 갔다 와 보자.”
우리는 길가를 따라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이정표 삼아 걸음을 옮겼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보이지는 않아도 물이 밀려오는 소리만은 무척 생생하게 들리는 길이었다. 목적지까지는 생각보다 멀었지만 우리는 시장 같은 구경거리가 있길 기대하며 걸었다. 찬바람이 오래 스친 볼과 손끝이 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리는 먼 곳에서 봤던 불빛과 마주할 수 있었다.
“뭐 하는 데지?”
우리가 기대했던 멋진 구경거리는 없었다. 그저 밤에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밝혀 둔 빛만이 번쩍거릴 뿐이었다.
작업장, 혹은 공장, 그런 곳인 듯했다. 짐을 실은 지게차가 입구를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어 오래 기웃거릴 곳도 못 됐다.
우리는 허탈하게 웃고는 결국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기대감에 차서 올 때와 달리 돌아가는 길은 그저 춥기만 한 것 같았다. 차가워진 손끝을 후후 불었더니 장윤성이 내 손을 쥐었다.
“추위 많이 타나 봐. 손 따듯한 애인 필요하지 않아?”
떨쳐 내기엔 온기가 간절해서 그냥 두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수작질을 걸어 왔다.
“손만 따듯하면 뭐 해? 나 지금 볼도 시리고 코도 시리고 발도 시리고….”
네가 한지영을 좋아하면 뭐 해. 장윤성이 내가 연기하는 한지영과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 하나엔 한 백 개쯤 안 될 이유가 붙을 텐데.
내가 투덜거리듯 한 말에 장윤성은 뚜벅뚜벅 옮기던 걸음을 멈췄다. 내가 따라서 걸음을 멈추고 마주 서자 장윤성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닿아 있는 손가락보다 더 따듯한 눈빛이 또 내 얼굴을 데우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이 미국 가자.”
미국? 뜬금없는 소리에 내가 미간을 좁혔더니 장윤성이 얼른 핑계 한마디를 덧붙였다.
“손이든 발이든, 어디든, 조금도 춥지 않게 해 줄게.”
저를 따라오면 뭐든 다 해결할 자신이 있다는 듯이.
순간 아주 조금은 그러고 싶었다. 정말 장윤성에게 맡기면 손발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추위 따위는 다 물리쳐 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예고도 없이 사라지는 감정을 믿고 모든 걸 내던질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나는 결국 따듯한 손을 떨쳐 냈다. 태연하게, 조금도 아쉽지 않은 양 웃으면서.
“내가 미국을 어떻게 가냐? 영어도 못하는데. 여기서 해야 할 일도 있고….”
다시 찬 공기가 손끝을 휘감았다. 나는 장윤성이 괜히 내가 해야 할 일을 물을까 봐 얼른 덧붙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추운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추워야….”
추워야…. 추우면 뭐가 좋더라.
내가 뿌리친 손은 덩그마니 허공을 쥐고 있었다. 나는 빈손에 시선을 얹으면서 말을 이었다.
“…너를 그리워할 수 있잖아.”
추위를 많이 타서 다행이라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추울 때만큼은 이 온기를 마음껏 그리워해도 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핑계가 없어도 장윤성은 시시때때로 떠올라 내 삶을 더 버겁게 할 것 같았다. 화창한 날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마른 바람이 볼을 스치는 날에도.
내 말이 퍽 잔인한 방식의 거절이었다는 건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였다. 그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탓에 시선은 여전히 그의 손 위에 머물러 있었다. 너무 아픈 표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 때였다.
얼핏 그의 웃음을 확인했을 쯤, 장윤성이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신기하게도 나보다 훨씬 얇게 입은 남자의 품이 너무나 따듯했다.
“그럼 난 매일매일 더 추워지길 빌어야지.”
귓가에서 들리는 말에 심술을 부리는 건가 싶었다. 나 때문에 제 기분이 상했으니 나도 실컷 괴로워해 보라는 건 줄 알았다.
“네가 그리움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다시 몸을 떼고 얼굴을 마주하자 그런 의심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장윤성은 거절당한 사람답지 않게 웃고 있었다. 못 견딜 만큼 혹독한 추위가 닥치면 결국 내가 저를 찾아갈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많은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괜히 기대하지 마. 아니, 그래도 혹시 시간이 많이 지나면…. 아니야, 내가 남잔 걸 알면 어차피 다 없었던 일이 될 텐데, 뭐.
차마 소리 내어 할 수 없는 말을 꾸역꾸역 삼키려는데 그런 나를 멀거니 보고 있던 장윤성이 입술을 맞대 왔다. 밀어낼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온기에 홀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목을 바짝 끌어안고 차마 삼키지 못했던 말을 맞닿은 혀로 전했다. 가시처럼 목에 박혀 있던 말마저 장윤성이 모두 삼켰는지 키스를 마쳤을 땐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있잖아… 나랑 친구하는 건 별로야?”
다시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못내 미련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단순히 친구라면 살면서 몇 번쯤 장윤성을 만나는 것도, 내가 남자인 것도 별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장윤성은 무척이나 못마땅하다는 듯이 짧게 헛웃음을 뱉었다.
“한지영 씨, 방금 우리가 뭐 했는지 잊었나 봐? 친구가 되는 게 무슨 의민 줄 알기나 해?”
그것도 모를까 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지. 적어도 영영 모른 척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하지만 장윤성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그는 터벅터벅 느리게 걸음을 옮기면서 불만스럽게 말을 이었다.
“네가 다른 놈을 좋아한다고 해도 가만히 응원이나 해야 하는 게 친구야.”
장윤성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내가 그 정도로 마음이 넓진 않거든.”
그러면서 그는 맞잡은 내 손을 엄지로 만지작거렸다. 마침 약혼반지를 낀 손이었다. 내가 반지를 잘 끼고 있는 걸 손끝으로 확인하더니 결국 표정을 조금 푸는 것 같았다.
“손에서 빼지 마. 나한테 돌아올 때까지.”
내가 진짜 한지영이었으면 모를까, 이하경이 끼기엔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가격도, 생김새도, 그 의미도.
“야, 이런 게 손에 있으면 나는 어떻게 연애를 하냐?”
과한 욕심이라고 내가 장난스럽게 따지자 장윤성도 능청스럽게 놀라는 척을 했다.
“연애를 하려고 했어? 나 말고 다른 놈이랑?”
“너는 기다린다며. 그사이에 좀 할 수도 있지.”
뻐기듯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연애를 해 본 적도, 할 주제도 못 되면서.
“연애를 안 할 거면 모를까, 할 거면 나랑 해야지. 나 미국에 있다고 다른 놈 만나기만 해.”
“만나면 어쩔 건데? 때릴 거야, 어쩔 거야.”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깐죽거리듯 덧붙였더니 앞만 보고 걷던 녀석이 피식 웃었다.
“궁금해도 해 보지 마. 너한테는 계속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정말 나쁜 짓을 하긴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뭐… 그러지 뭐.”
나는 장윤성을 흘끔 보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못 할 일 같았다. 어차피 장윤성이 아닌 다른 ‘놈’을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순순히 구는 게 수상했던지 장윤성이 삐딱한 시선으로 날 훑더니 영 의심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놈 아니라고 내가 봐줄 거란 생각은 말고.”
“…어?”
내가 놀라 되묻자 장윤성이 오히려 제가 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설마 진짜 그쪽이야?”
“아, 아니. 아니야, 절대.”
내가 열심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자 장윤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누가 봐도 과할 정도의 부정이었는데 쉽게 수긍하는 게 더 불길했다. 말하는 걸 보면 남자인 걸 들킨 것 같진 않은데 설마 정말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인 줄로 아는 걸까.
뭐지, 뭘 어떻게 떠봐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장윤성은 내가 추워 보였는지 옷깃을 여며 주고 있었다.
“예쁘게 입었네. 데이트 한다고 신경 썼나 봐.”
“뭐래. 이거 네 옷이거든?”
남의 간은 콩알만 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당사자는 별생각 없었던 양 벌써 다른 화제로 넘어가 있었다. 그게 얄미워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는데도 장윤성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근데 또 그렇게 웃는 게 그저 보고만 있고 싶을 만큼 예뻐서, 나는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장윤성의 얼굴을 봤다.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심장에 닿을 때까지 한참이나 그렇게 서 있다가 결국 저녁을 먹었던 레스토랑의 불빛마저 꺼지고 나서야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바다가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다음엔 낮에 오자.”
혹시 바다가 보일까 싶어서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중얼거린 소리에 장윤성이 그렇게 대답을 했다.
“다음?”
“뭐, 내일이라도.”
흔쾌히 말하는 장윤성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애초에 모래사장에서도 보이지 않던 바다가 이런다고 보일 리 없었지만.
“내일은 좀 그래. 맨날 우리 둘이서만 놀러 다니면 할아버지 섭섭해하실걸?”
“우리 회장님 손자며느리 하난 잘 고르셨다니까. 그럼 네 마음 내킬 때 또 오자.”
“그래.”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희미한 빛에 언뜻언뜻 비치는 물의 표면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다음이란 말보다는 차라리 선명한 것 같아서.
***
영화를 보러 다녀오고 며칠 뒤, 장 회장이 다시 입원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진 탓인지, 아니면 그저 시간이 그렇게 흐른 탓인지 장 회장은 점차 쇠약해져 갔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가긴 했지만 나는 그가 이번에도 다른 때처럼 별장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장윤성과 함께 병실을 지킬 수 있을 때는.
막연하게라도 죽음을 생각한 건 결국 나만 혼자 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였다. 장 회장이 별장에 있을 땐 얼굴도 비추질 않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병문안을 하겠답시고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장명수를 아버지나 속이는 불효자라고 욕했지만 차라리 그는 나은 축이었다. 장 회장에게 그렇게 많은 자식과 친척이 있는 줄은 몰랐다. 병실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지자 장명수는 나를 숨기기 위해 별장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해가 뜬 시간에는 홀로 별장을 지키다가 아주아주 깊은 밤이 되고 나서야 잠깐 병원에 들러 장 회장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마간은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눌 수 있었는데 곧 의식 없는 얼굴만 보고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장윤성과 장 회장이 없는 별장은 금세 온기를 잃었다. 비서와 기사를 비롯해 별장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 장 회장과 장명수의 수발을 들러 나가 있는 터라 별장엔 말 그대로 나 혼자뿐이었다. 이따금 장윤성이 돌아올 때 빼고는.
지친 기색으로 돌아온 장윤성은 그저 나를 끌어안고 있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곤 했다. 위로를 구하듯이 기대 오는 몸을, 입술을 거절할 수가 없어 마냥 받아 주다가 주체하지 못하고 옷 속으로 들어오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밀쳐 내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리고 첫눈이 내리고 얼마 되지 않은 날, 장명수에게 전화가 왔다.
-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수고했다.
장명수가 착잡한 목소리로 떠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장 회장이 며칠이나 의식을 찾지 못했고, 밤낮없이 찾아오는 손님 덕에 새벽에도 병원에 갈 수 없게 된 지 꽤 된 날이었다. 드디어 내가 바랐던 날이 왔는데 굵은 눈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장 회장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장명수는 거절했다. 어차피 의식이 없어 듣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챙길 건 별로 없었다. 내가 원래 쓰던 낡은 핸드폰, 장윤성에게 받은 반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짐은 장명수의 비서진이 처분해 줄 예정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낡은 핸드폰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내가 가져갈 게 이것뿐이던가 하고 곱씹는 동안 풍작이가 발치를 맴돌았다.
“너는 못 데려가.”
부쩍 말귀가 트인 풍작이는 ‘못 데려간다’는 말도 알아들었다. ‘멍!’ 하고 항의하듯 짖기에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달래듯 녀석을 끌어안았다.
“우리 집은 이 방보다 좁거든.”
이런 말까진 못 알아들었는지 풍작이는 가만히 품에 안겨 있었다. 꼬리만 탁탁거리면서.
“…그래도 내가 산책 열심히 시켜 주면, 너 같이 갈래?”
아마도 ‘갈래?’라는 소리만 알아들었을 녀석이 품에서 빠져나와 신난 듯 꼬리를 흔들며 멍멍 하고 짖었다.
“너 후회해도 소용없어.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그렇게 말해도 노란 털 짐승은 여전히 신나 보였다. 장명수는 적당한 때에 차를 보내겠다고만 말했다. 적당한 때가 당장인지, 내일인지, 아니면 며칠 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이곳에서 지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 확실했다.
이곳을 떠나는 건 어차피 예정되었던 일이라 조금만 더 있게 해 달라고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왕에 떠난다면 장 회장의 배웅을 받으며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별장에서의 밤을 유난히 추운 2층 방에서 보내고 싶진 않았다. 1층에 있는 거실이며 손님방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장윤성의 방 앞에 섰다. 그냥 그 방이 가장 따듯할 것 같았다.
주인의 동의도 없이 들어간 침대는 포근하고 익숙한 향기가 났다. 정말 여기서 자도 될까? 불이라도 꺼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슬며시 잠에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볼에 닿는 냉기에 눈을 떴다. 장윤성이 침대 옆에 주저앉아 내 볼을 매만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장윤성은 급히 뛰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약간의 숨을 몰아쉬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어…?”
겨우 긴장이 풀린 듯 장윤성은 침대에 머리를 대고 공허한 웃음소리를 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나 햇살 같았던 남자가 추위를 이기지 못한 것처럼 온몸에 냉기를 묻히고 돌아왔다.
“너 지금 온 거야? 잠깐만, 내가 뭐 따듯한 거라도 가져올게.”
내가 얼른 침대 밖으로 나와 부엌으로 향하려 하자 장윤성이 주저앉은 채로 손목을 붙들었다.
“그냥 있어.”
일어설 기운도 없는 주제에.
“금방 올게.”
장윤성이 병원에서 식사를 잘 못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찬장을 뒤져 컵에 코코아 가루를 잔뜩 넣고 마시멜로도 일부러 듬뿍 넣었다. 그런데도 왜 컵보다 눈물샘이 먼저 넘칠 것 같은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장윤성이 내게 타 줄 때는 달콤하기만 했는데 내가 만든 코코아에서는 씁쓸한 향기만 났다.
넘실거리는 컵을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장윤성은 내가 누워 있던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냉기가 묻어 있는 코트조차 벗지 않고. 나는 기껏 타 온 코코아를 책상에 내려놓고 아직까지 호들갑을 떨고 있는 풍작이를 내보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자고 있는 장윤성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왜 보기만 해? 섭섭하게.’
생각보다 내가 동정심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안쓰러운 얼굴을 보니 뭐라도 다 해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술을 댔다가, 행여 깰까 봐 금방 뗐다. 다행히 깬 것 같진 않아서 이번엔 조금 더 길게 그러고 있었더니 맞닿은 입술이 조금씩 열렸다. 그래도 입술을 떼진 않았다.
입술이 맞닿고 이따금 떨어지는 소리조차 애처로웠다. 달래듯 혀를 얽고 입술로 위로를 건넸다. 그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등 쪽으로 차가운 손이 들어왔다. 위로가 된다면야 이깟 몸쯤은 얼마든지 던져 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윤성이 나를 원하는 것도 긴 머리 가발을 쓰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을 때뿐이었다.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면 위로는커녕 아마 상실감만 더하고 말 것이다.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장윤성의 가슴팍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맨살을 지분거리던 손이 포기한 듯 옷 속에서 빠져나갔다. 그는 여전히 누운 채로 입을 열었다.
“벌써 갔을까 봐 걱정했어. 아버지가 통화하시는 거 들었거든.”
내가 병원을 아예 못 간 뒤로는 장윤성도 별장에 자주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먹고 자는 시간마저 아까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장 회장의 얼굴만 보고 있었던 주제에 내가 가는 게 뭐라고 이 새벽에 여기까지 왔는지.
“한지영.”
메마른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면 한지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 장윤성의 목소리는 항상 그런 편이었다. 오히려 가짜 씨, 너라고 부를 때 차라리 다정할 정도로.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날 한지영이라고 부른 장윤성은 쓰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까지 널 그렇게 불러야 돼?”
장윤성의 손이 내 손등을 덮었다가 천천히 소매 속으로 들어왔다. 아직 온기가 돌아오지 않은 손끝이 맨살을 지분댔다. 배운 적 없어도 날 빤히 보는 눈빛이, 내 팔을 만지는 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당장 밀어내지 않으면 더 이상 거절할 타이밍이 오지 않을 거란 것도. 크게 한 번 숨을 쉬고 나는 잡힌 손을 빼냈다. 장윤성은 예상했던 듯 덤덤하게 내 팔을 놔주었지만 실망한 눈빛까지 숨기진 못했다.
“이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였는데도 장윤성은 분명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기대감에 찬 눈빛이 내 얼굴을 향했다.
겨우 두 글자를 뱉었을 뿐인데 벌써 후회가 밀려왔다. 두려움으로 입술이 덜덜 떨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윤성은 참을성 있게 내가 마저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쭈뼛쭈뼛 옷자락을 쥐었다.
“이름… 보다 먼저 네게 해야 할 말이 있어.”
아직 별장을 떠나지 않았을 뿐이지 장명수가 내건 조건은 다 지킨 거나 다름없었다. 장명수의 말대로라면 이젠 내가 남자인 걸 들켜도 장 회장은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눈을 감을 터였다. 장윤성이 어떻게 나오든 장명수가 약속한 사례는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두려운 걸까. 사실 많은 것이 두려웠다. 장윤성이 실망할 것도, 화를 낼 것도…. 그렇게 퍼붓던 애정을 거둬 갈 것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완벽한 끝이 기대됐다. 끝내 밝히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면 미련이란 놈이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옷자락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손 위에 장윤성이 제 손을 얹었다.
“괜찮아. 말해.”
장윤성은 어떤 말이라도 받아들일 것처럼 다정하게 말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려웠다. 나는 포기가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내가 진실을 털어놓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사실은… 나….”
마른침을 삼키고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지이이잉, 하고 어디선가 핸드폰이 울렸다. 내가 몸을 대고 있는 그의 코트 주머니 속이었다.
“전화….”
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이 울리고 있는 곳을 내려다보자 장윤성이 미간을 좁혔다.
“신경 쓰지 마.”
“급한 일이면 어떡해.”
장윤성은 내 말을 마저 듣고 싶은 눈치였지만 핸드폰이 웅웅대는데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것도 이상했다. 영 못마땅한 표정이라 결국 내가 그의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형’이라고 한 글자가 떠있었다.
“너희 형인가 봐.”
내가 핸드폰을 내밀자 장윤성은 마지못해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았다.
“왜.”
장윤성이 성의 없이 목소리를 내기가 무섭게 핸드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무슨 말인지까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급한 일이 맞긴 했던 듯 장윤성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알았어, 지금 갈게. 지금 바로….”
장윤성은 뭐라고 덧붙이려다가 그 시간마저 아까운 듯 얼른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통화가 끝났는지 휴대폰을 다시 코트 주머니에 넣는 걸 보면서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장윤성은 그제야 나를 그대로 두고 갈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의식을 찾으셨대. 그런데….”
의식을 찾았다면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장윤성의 얼굴은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마지막일 것 같다고 하네.”
그래서 얼른 가 봐야 한다는 말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나… 나도 가면 안 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다급히 매달렸다. 말을 뱉고 보니 장명수가 싫어할 거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하다못해 멀리서라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마주한 남자처럼 손이 따듯했던 노인을.
장윤성은 제가 걸쳤던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 주고 손을 잡았다.
“왜 안 돼. 당연히 가야지.”
밖에 나와 보니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지 눈인지 비인지 모를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던 장윤성은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었다. 병원에 가려면 산을 넘어야 했다. 평소 다니던 길과 반대쪽이었다. 밤인데다 이곳은 빛이 드물었고 날씨도 좋지 않아 장윤성은 생각보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사이 장 회장이 다시 정신을 잃을까 봐 나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옷자락을 꽉 쥐었다.
장윤성도 신경이 온통 그쪽에 쏠린 것처럼 우리가 나누던 대화도 새까맣게 잊은 양 입을 꾹 다문 채 도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장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건넬 말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실은 별장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나는 내가 한 거짓말에 대해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용서를 빌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놔야 할까. 당신이 그렇게나 아껴 주었던 나는 한지영이 아니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게 더 낫다고 결론 낸 적은 없었다. 내가 고른 말은 항상 고마움과 애정만을 전하는 몇 마디뿐이었다.
나는 다시 운전하는 장윤성을 봤다. 사실은 그에게도 역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정은 언젠간 희미해질 테지만 배신감은 깊은 흉터를 남길 것 같았기에.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가 일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귀를 찢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곧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진눈깨비가 펄펄 날리는 밤이었다.
***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낯선 곳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병원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지. 온몸에 멍이라도 든 것처럼 작은 움직임에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수반됐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쉽지 않아 겨우 눈만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을 쯤, 가까이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알아. 그래도 불쌍한 걸 어떡해? 애가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누워 있는데.”
여자는 불만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누구더라. 바로 기억나진 않았지만 분명 낯익은 목소리였다. 통화 상대가 뭐라고 또 맘에 들지 않는 소리를 했는지 여자는 후, 하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또각또각, 약간 짜증이 섞인 구두 소리도 들렸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장윤성의 형수, 이은조.
“아버님도 그래. 수습한다고 정신없으신 건 알겠는데, 그래도 애 가족한테 연락은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윤성이만 가족 있어?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내가 언제 윤성이 남의 동생처럼 대한 적 있냐고.”
우리 집에 연락하는 문제로 장현성과 통화중인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고 내가 누워 있는 침대 근처까지 왔는지 통화 상대가 성난 음색을 내는 것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은조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장현성의 말을 잘랐다.
“아, 그러셔? 그럼 난 남이라서 장 씨네 사정은 모르겠고, 아무래도 얘네 집에 연락해야겠으니까 그렇게 알아.”
발치를 서성이던 이은조는 어느새 내 머리맡까지 와 의미 없이 링거를 보고 있었다.
“…마세요.”
엄마랑 건우가 놀랄 게 싫어서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말을 하려 했는데 바싹 마른 목에서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듯 이은조는 여전히 장현성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손끝을 꿈지럭대다 겨우 팔을 들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손은 금세 툭 떨어졌지만 이은조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았다. 겨우 힘을 쥐어짜 만든 기척에 이은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내려다봤다.
“그거야 비서실에… 어머, 얘, 정신이 좀 드니?”
“…연… 락 하지 말….”
여전히 귀에 핸드폰을 댄 채, 느리게 흘러나오는 내 말을 듣던 이은조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내 말뜻까지 제대로 듣지는 않았는지 연락을 하겠다 말겠다 대답도 없이 서둘러 간호사를 불러왔다. 곧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몰려왔고, 그들은 내가 정신을 차린 게 맞는지 여러 번 시험했다. 그들의 물음에 어영부영 반응을 하다 보니 말라 버린 목소리도, 삐거덕거리던 몸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진눈깨비가 날리던 밤, 커브길에서 미끄러지던 맞은편 차가 전복되면서 큰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머리에 약간의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일단 의식을 되찾았으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친절한 설명이었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날 밤, 내 의식이 없었던 사이에 일어난 일뿐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듣는 게 두려워 묻기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겨우 꺼낸 말에 이은조는 나를 토닥이듯 말했다.
“그날 돌아가셨어. 그나마 너희 사고 소식을 듣기 전에 눈 감으신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장례도 이미 끝나서 오늘 아침 발인까지 마치고 온 참이라고 했다. 그렇게 사그라드는 모습을 지켜봐 놓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 회장이 이제는 없는 사람이라는 게.
눈가가 뜨거워진다 싶더니 여지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벌써 여러 번의 죽음을 겪었건만 이 끔찍한 기분은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윤… 장윤성은…요?”
사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말이었지만 차마 두려워서 먼저 하지 못했다. 이은조와 장현성의 통화에서, 어쩐지 장윤성에게 나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장윤성 이야기를 꺼내자, 방금까지 의연하게 장 회장의 마지막 이야기를 해 주던 이은조는 아랫입술을 조금 떨었다.
“아직.”
그녀는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물고 말을 이었다.
“아직 의식이 없어.”
“언제쯤, 깨어… 날… 수 있대요?”
의사가 그런 걸 장담할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물었다. 깨어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은조는 손수건을 꺼내 내 얼굴에 댔다. 몇 번 볼을 문지르고 난 작은 천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네가 가서 윤성이 좀 깨워 봐. 그러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지금… 지금, 가 볼래요.”
이은조는 막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없는 나보다는 훨씬 이성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녀의 말대로 하면 당장이라도 장윤성을 깨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장윤성을 깨우러 가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그렇게 침대를 벗어나 땅을 디뎠으나 다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바람에 팔에 꽂은 바늘이 아무렇게나 뽑혀 날아든 아픔이 소름끼치게 생생했다. 그제야 새삼스레 내가 깨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윤성은 아직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의식에 있을 거라는 것도. 반대편에 앉아 있던 이은조는 놀란 듯 달려와 나를 일으켰다.
“진정해, 윤성이 여기 없어.”
내가 입원한 곳은 사고가 난 곳에서 멀지 않은 병원이었다. 장윤성은 서울에 있는 태원병원에 있다고 했다. 장윤성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당장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쓸 처지도 못 돼서 결국 나는 순순히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장윤성을 깨워 보라고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는지, 이은조는 혼자 서울로 돌아가 다시 오지 않았다. 내가 깨어난 걸 확인했으니 됐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가까운 길이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애초에 나와 어떤 의리를 지킬 사이도 아니었는데 깨어나기 전까지 종종 들러 준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다.
며칠이나 혼자 그곳에 있다가 겨우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막상 퇴원하려고 보니 옷도 신발도 없었다. 병실 여기저기를 들쑤셔서 나온 내 소지품이라고는 얼룩덜룩 혈흔이 남은 반지뿐이었다. 장윤성은 300원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비싼 물건일 게 틀림없어서 막 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손에 끼운 채 옷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장현성이었다.
인사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닌 건 서로 빤히 알았기에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현성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가져온 커다란 쇼핑백을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내가 입을 옷인 것 같았다. 그리고는 품 안쪽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내가 선뜻 받아들지 못하고 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자 장현성은 봉투마저 침대 위에 던졌다.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데요.”
봉투를 주워드는 대신 그렇게 말하자 장현성은 삐딱한 턱짓으로 봉투를 가리켰다.
“다시는 윤성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 조건이야. 생각 같아선 그냥 쫓아내고 싶었지만.”
평소에도 까칠한 성격이긴 했지만, 지금은 적대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장윤성이 내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알아챈 것처럼.
내가 제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걸 알았는지 장윤성은 가족 앞에서만큼은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었다. 당연하게 쌓아 주던 파인애플 탑도 그의 가족이 있을 땐 구경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눈빛이며 다정한 손길까지 감출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장윤성에게 그만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남의 일에 흥미가 많아 보이던 이은조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이은조가 그런 걸 굳이 가족들에게 말할 것 같지도 않았다.
“무슨….”
한참을 굳어 있다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분명 장명수에게 수고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그냥 쫓아내려 하는지, 그리고 왜 돈을 받는 조건에 장윤성이 언급되는 건지. 장현성은 내 낯짝의 두께를 가늠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경찰이 그러던데.”
경찰?
“운전자가 조수석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핸들을 꺾었다고.”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이 있었다. 아닌 척 진심 섞인 말을 할 때 내 목소리의 떨림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이 나를 감싸고 말았던 장윤성의 애정처럼.
“덕분에 지금 너는 여기 서 있고, 누구는 사경을 헤매는 중이거든. 회장님께 적당히 재롱이나 떨라고 보내 놨더니, 쓸데없이.”
장현성은 제 동생이 여장한 사내놈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입에 담는 것조차 싫었던지 쯧, 하고 혀를 차는 걸로 말을 넘겼다.
“회장님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갖고 꺼져. 윤성이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그마저도 없을 테니까.”
“…멀리서라도 좋아요, 한 번만 보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애초에 나만 이곳에 두고 간 것도 장윤성에게서 떨어뜨려 놓기 위함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갈 때 가더라도 인사 한마디 없이 가긴 싫었다. 잠든 얼굴 한번 보여 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거면서, 장현성은 한층 더 싸늘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선택해.”
“선택이요?”
장현성이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이 눈짓으로 봉투를 가리켰다.
“받고 다신 나타나지 말든가. 돈도, 네 어머니 치료도 전부 포기하고 네 마음대로 하든가.”
장윤성의 곁에서 살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장윤성과 뭘 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얼굴 한번만 보고 가겠다는데 그는 내 모든 걸 걸라고 말했다.
거봐, 이 빌어먹을 세상이 이래. 네 얼굴 한번 보는 것조차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그다음은, 그 다음의 다음은 대체 뭘 더 걸어야 널 붙잡고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장현성의 얼굴을 빤히 보며 침대 위에 놓인 봉투를 주워 들었다. 망설임 없는 동작으로 보였길 바랐다. 나중에라도 장윤성이 깨어나면, 장현성은 괘씸해서라도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전할 테니까.
장윤성은 아마 그제야 깨달을 것이다. 저와 내가 이렇게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는 걸. 내가 사는 세상은 목숨을 건 사랑보다 이깟 종이 몇 장이 더 무거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