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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드디어 언성을 높였다.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숟가락을 뺏어 밥을 펐다.
“뭐 하는 짓거리긴요. 할아버지 밥 수발들어드리는 짓거리죠. 자, 화내지 말고 얼른 드세요.”
벌어진 입에 밥숟가락을 밀어 넣고, 시금치나물을 집어 연이어 입에 넣어줬다.
“그리고 아까 보니까 계속 고기만 드시던데, 나이 먹으면 고기를 소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진대요. 채소 드세요. 시금치가 간이 삼삼하니 좋더라고요. 짜게 먹는 것도 건강에 안 좋은 거 아시죠?”
쨍하게 얼어붙은 식탁의 분위기는 도통 누그러들 줄을 몰랐다. 수저를 든 상태로 굳어서 식사를 이어나가지도 못하고 멈춰있는 가족들이 서로 눈치를 보느라 눈동자만 바쁘게 굴려댔다.
“입 다물지 못해?”
“네, 얼른 입에 든 거 꼭꼭 씹어 삼키세요. 우리 할아버지 아직 소리칠 힘도 남아있고, 정정하시네. 젓가락질 못 하셔서 나는 금방 쓰러지실 줄 알았는데, 앞으로도 한 삼 년은 너끈히 사시겠어요.”
“이런 호로 새끼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입에 든 밥알이 허공으로 마구 튀었다. 아니, 이렇게 힘이 남아돌면서 왜 젓가락질은 못 해. 젓가락질은 배우질 못하고 자랐나.
“아줌마, 손수건 좀 주세요. 할아버지가 원래 이렇게 흘리면서 드셨어요? 병원장 자식 둬봤자 소용이 없어, 소용이. 할아버지 검사부터 받아보셔야 할 텐데.”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나는 보란 듯이 소매로 할아버지의 입가를 문질러 닦아주었다. 그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할아버지가 눈을 부라렸다.
“다 드셨어요? 다른 반찬 뭐 드릴까요? 할아버지 뭐 좋아하세요? 아니다, 채소 드셔야지.”
“꺼져. 내 눈앞에서 사라져. 이 호랑말코 같은 놈을 당장 내쫓지 못해?”
“어휴, 목청도 좋으시고 힘도 좋으시네. 고집 피우지 마시고 얼른 식사하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할아버지 밥 수발들어드릴게요. 간병인 없어서 할아버지가 밥 숟가락질만 하신다는 소문날까 봐 겁난다. 아,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제가 의자도 하나 사 올게요. 더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음, 아예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를까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졸도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뒈지는 게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한 노인네였지만, 나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뭐 하고 있냐, 당장 이놈 끌어내지 못하고.”
“우리 할아버지 집에서 사극 많이 보시나 보다. 여봐라! 당장 이놈을 하옥시켜라! 저 좀 비슷했어요?”
할아버지보다 더 크게 목청껏 소리를 높여 언젠가 본 사극의 한 장면을 흉내 내자, 얼빠진 얼굴로 있던 형수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픽 웃음을 흘렸다.
이보세요, 지금 댁이 웃을 타이밍이 아니에요.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할아버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를 노려보더니 있는 힘껏 내 뺨을 내리쳤다. 철썩, 하고 무슨 박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 알파는 늙어도 힘이 약해지지 않나 보다.
눈앞에 별이 반짝이고 시야가 순간 하얘졌다. 발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서 점멸하는 시야를 정상으로 돌리고자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와, ……우리 할아버지 힘이 장사시네. 삼 년 취소해야겠다. 앞으로 오 년은 더 사시겠는데요.”
웃으며 말을 하자 반대쪽 뺨에 다시 손이 날아왔다. 그것을 맞고서도 나는 오기로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코피가 터졌는지 툭, 하고 식탁 위에 붉은 물이 떨어졌다. 식사 자리의 분위기가 아까보다 더 싸늘해졌다.
“할아버지. 이렇게 흥분하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괜히 노인네들이 화장실 갔다가 뒤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니까요. 얼른 앉아서 마저 식사하세요. 자, 얼른요.”
할아버지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한 숟가락 펐다. 코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숟가락 위 하얀 밥에 떨어졌다. 붉은 물이 스민 밥을 할아버지의 앞에 보란 듯이 내밀었다.
어디 내팽개쳐봐. 숟가락은 다시 달라고 하면 되고, 밥도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할아버지는 꾹 입을 다물고 내가 내민 밥숟가락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와 할아버지의 대립을 주시하고 있는 가족들은 왜인지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숨소리까지 죽인 상태였다.
웬만하면 알파 아버지가 내게 한 소리를 하거나 할아버지를 말렸을 텐데, 그 역시도 지금 상황이 당혹스러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보였다.
“됐다. 밥이 넘어가질 않겠구나. 식사는 이쯤 하자.”
할아버지는 앞으로 내민 숟가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감정의 변화가 빠른 양반이네. 계속 꽥꽥 소리를 질러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양반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러니 오메가 아버지를 이제껏 종 부리듯 해왔겠지.
식당을 나가버리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형과 형수는 나를 한 차례 쳐다보더니 할아버지를 뒤따라 나갔고, 작은형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입 모양으로 내게 욕설을 지껄이고 나가버렸다. 자리에 앉아있던 알파 아버지가 일어나며 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께 버릇없이 구는구나.”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하실 거면 집에 가서 하세요. 여기서 아버지 꾸중 한마디로 끝낼 만큼 간단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길어져도 상관없다 하시면, 저도 괜찮고요.”
내 대꾸에 아버지는 못마땅한 신음을 흘리며 등을 돌렸다. 남은 것은 오메가 아버지뿐이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저 코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의 앞에는 한술도 뜨지 못한 밥과 국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그 모습에 왠지 마음이 슬퍼졌다.
몸만 차수경이지 영혼은 민재희인데, 이 사람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완벽한 타인인데. 그런데도 이 사람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 어떤 감정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더욱 슬퍼졌다.
“이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말렴. 그저 조용히 있다 가도록 해라.”
“아직 남은 게 더 있어요?”
“차를 마실 시간이란다. 네 할아버지는 그 시간에 족욕도 같이 하시지. ……코피는 막는 게 좋겠구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서지 말라며, 마치 놀라지 말라는 것처럼 벌어질 일을 예고까지 해주신다. 그럼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조용히 식당을 나가는 오메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이경진에게 연락했다.
―도련님?
식사를 하겠다고 들어가놓고 전화를 걸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나는 작게 웃으며 이 기사님, 하고 이경진을 불렀다.
“이 기사님 혹시 식사 중이에요? 나 진짜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급하게 필요한 게 있어서 그래요. 정말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으니 말씀하십시오.
이경진은 의욕적이었고, 나는 미안한 목소리로 필요한 것을 작게 불러주었다.
―네?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 이경진이 놀라 물었다.
―정말 그걸 가져다 달라고요? 지금요?
“네. 급해요. 오래 걸리지 않겠죠?”
―뭐 어디서든 파니까 구할 수야 있지만, 정말 지금 필요한 게 맞습니까?
그럼 내가 뭐, 댁을 엿 먹이려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다 달라고 할까. 나는 강하게 네! 하고 답했고, 이경진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금방 사 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코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코를 막았다.
식당에 남아있는 사람은 고용인뿐이었다. 그녀는 식탁에 놓인 빈 그릇을 주섬주섬 정리하여 식당과 이어진 주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여사님.”
“……네?”
이게 또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를 지껄이려고 그러나. 겁먹은 눈에 여자의 생각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아까 죄송했어요.”
“아, 네에.”
“제가 했던 말 다 억지였다는 거 말씀드리려고요. 마음 상하셨죠? 아까는…… 상황이 조금 그랬잖아요? 사실 반찬도 다 맛있었어요. 분위기만 좋았으면 반찬 싸달라고 했을 텐데. 다 먹지도 못하고 아깝게 남겨버렸네요. 솜씨가 좋으셔서 오늘이 아니었으면 할아버지도 식사 잘하셨을 테고, 그렇죠?”
코피를 줄줄 흘리며 웃는 내 얼굴이 호러 영화와 비슷해 보이겠지만 나는 꿋꿋이 웃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여자는 깨끗한 휴지를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이사장님 성격은 여전히 불같으세요. 그러니까…… 부모님 말씀처럼 조용히 있다 가세요. 사고당하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기억 안 날 테지만, 쭉 그래왔던 일이에요. 괜히 나서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지금처럼 손찌검이라도 당하면 득 될 것 하나 없어요.”
여자는 오히려 안절부절못하고 나를 타일렀다. 꽤 오랫동안 여기서 일을 해왔나 보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오늘 같은 일을 봐왔고.
“쭉 그래왔던 일이라고 그게 옳은 일은 아니잖아요. 계속 참기만 하면 그게 결국엔 정당화되어버려요. 차라리 기억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네요.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지켜보고 있었을 테니까. ……조금 있다가 제 수행원이 올 거예요. 제가 부탁한 걸 가지고 오는 거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저는…… 그 사람 올 때까지 여기 좀 앉아있어야겠어요.”
거실로 나가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휴지를 돌돌 말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코를 틀어막았다. 금방 부어오른 콧대는 휴지를 밀어 넣는 것으로도 통증이 느껴졌다.
늙은이가 아직도 그렇게 힘이 좋아서 몇십 년은 더 살 것 같아 두려워졌다. 이 꼴을 평생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