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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바이스-46화 (46/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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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자는 시간에 부쩍 작은놈이 술 마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오늘도 늦은 시간에 들어와 몰래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을 올랐는데, 계단 반대쪽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불을 켜놓고 잠들었나 싶어 작은놈의 공간으로 향하자, 작은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양주를 병째 마시고 있는 작은놈이 보였다.

“도둑고양이같이 잘도 몰래 다니네.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야.”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작은놈이 이죽거렸다. 전기세 낼 돈이 없는 집도 아니고, 그냥 신경 끄고 가서 잠이나 잘걸.

몰래 한숨을 삼키는데 작은놈이 손을 흔들어 나를 불렀다. 저놈하고 가까이 있어봤자 좋을 일이 없음을 알기에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가 작은놈과 가장 먼 소파에 앉았다.

“오늘도 뒹굴고 온 모양이지?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

이건 밤꽃 냄새의 연장인 성희롱인가. 개새끼가 저는 좆질 한번 안 해본 것처럼 지적을 한다. 누가 보면 자식새끼 관리하는 부모인 줄 알았다.

“대체 어떤 놈을 만나기에 그런 냄새가 나는 거지? 너 무슨 약점이라도 잡혀서 끌려 다니냐?”

“아니거든요.”

“자발적으로 붙어먹는 거라면, 진짜 취향이 이상한 거네. 네가 미친 짓을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작은놈이 낄낄거리며 컵에 양주를 따라 내 앞으로 밀었다. 마셔, 하는 명령조의 말에 나는 말없이 컵만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진짜 나한테 이상한 냄새가 나나? 알파나 오메가는 떡 치면 특유의 냄새라도 풍기는 건가. 매번 지적받는 것으로 보아 작은놈의 코가 이상하거나, 아니면 진짜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인데. 이건 나중에 권이강에게 물어봐야겠다.

“며칠 전에…… 아버지가 화내시며 하신 말 들었어요. 목소리가 워낙 크게 울려서.”

“네가 상관할 일 아니다. 좆같은 새끼가, 주제 파악이나 해.”

흘리듯 말을 꺼냈는데 작은놈이 예상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미간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시선에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며 치미는 웃음을 감추었다.

“네, 저는 주제 파악 잘하고 있죠. 이 집안이나 병원하고는 아예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 넌 얌전히 있다가 아버지가 재산 조금 떼어주면 그거 받고 조용히 떨어져 나가면 되는 거야. 괜히 욕심부리며 침 흘리지 말고. 네 아비처럼 말이야.”

“제 아버지가 무슨 욕심이 있으시겠어요. 집에서 병원장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관 운영도 하시는데요. 본인 재산도 어느 정도 있으실걸요.”

“웃기지 마. 네 아비가 우리 아버지한테 무슨 작업을 치고 있는지 뻔한데, 그걸 모른 척하시겠다? 아무 욕심도 없었으면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납죽 엎드릴 이유도 없지. 너희 부자의 그 시커먼 속은 알고 있다고.”

얘는 열등감과 피해 의식으로 마음에 의심 암귀가 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오메가 아버지와 나까지도 경계하며 왈왈거리지.

“내 아버지가 왜 미술관을 아직까지 놓지 않고 계시겠어요. 집에서 놀고먹으면 편한데 왜 굳이 피곤하게 나가서 일을 하고 계시겠냐고요. 저한테 떨어질 걸 기대 안 하니까 그거라도 물려주시려고 그러시는 거겠죠.”

사실 오메가 아버지가 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지는 개뿔 모르지만 일단 지껄여보았다. 그렇다고 작은놈이 오메가 아버지를 찾아가 이유를 확인하지는 않을 테니까 상관없었다.

“그리고 제가 병원에 욕심냈다면 왜 미대에 갔겠어요? 의대에 갔겠지. 그러니까 형은 애먼 사람 의심하지 말고 좀 릴렉스 하세요. ……형이 신경 쓸 사람은 저나 제 아버지가 아니라 따로 있잖아요?”

네가 총력으로 덤벼야 할 사람은 큰놈이라고. 언저리에 있는 오메가 아버지나 내가 아니라. 한눈팔지 말고 한 놈한테 집중해서 짖어야지.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다니면 그건 그냥 헛짓거리일 뿐이야.

내 말에 갈증이 나는 것처럼 작은놈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니 왠지 즐거워져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씨발 새끼, 이 독한 걸 물처럼 처마시고 있네. 또라이는 내가 아니라 저 새끼였다.

뱉을 뻔한 액체를 가까스로 삼키고, 목구멍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불을 토해내기 전에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뭐, 어차피 큰형은 신경도 안 쓰고 있을 테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병원장이 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걸요.”

“닥쳐!”

“다 같이 식사할 때 한번 봐요. 큰형이 나를 보는 시선과 작은형을 보는 시선이 다른지. 큰형한테는 나나 작은형이나 똑같이 벌레만도 못한…….”

“닥치라고!”

마시고 있던 술병을 내 쪽으로 던지며 작은놈이 소리를 질렀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흥분해. 흥분해서 더 개같이 굴어봐. 어차피 속이 썩어나는 건 너일 테니까.

“이러는 것도 작은형에게는 도움 안 되는 거 알죠? 이럴수록 큰형과 비교만 당하잖아요. 나는 이 집 재산이나 병원에 미련 없지만, ……형도 그래요? 전혀 미련이 없어요? 큰형이 다 가져도 괜찮겠어요?”

아니, 사실 이 집안 재산에는 좀 미련이 있다. 병원이야 엿 바꿔 먹을 수도 없는 거니 관심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해맑게 웃었다.

“기회를 노리세요.”

색색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작은놈을 보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큰형은 방심하고 있으니까. 작은형을 라이벌은커녕 걸림돌로도 생각 안 하고 있을 거예요. 한 번의 기회를 노려서 잡으세요.”

그 기회를 뱀 같은 큰놈이 줄지 모르겠지만.

과연 기회가 생길지, 생긴 기회를 작은놈이 잡을 수 있을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 정말 기회일지는 몰라도…… 작은놈이 큰놈과 개싸움을 벌여준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모름지기 개싸움만큼 구경하기 좋은 것도 없고, 나한테만 피해가 없다면 개 같은 두 형제가 싸우는 것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차수경, 그렇지?

너도 널 무시했던 놈들이 개처럼 치고받고 싸우는 걸 하늘에서 즐겁게 내려다볼 거잖아.

∞ ∞ ∞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가 빈번한 일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내 퇴원에 맞춰 모이는 성의가 있을 리 없으니 처음 다 같이 모여 식사했던 자리도 아마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이었을 거다.

“와, 오늘은 우리 셋이에요? 우리 성실한 큰형만 퇴근해서 바로 집에 오고, 나머지는 다들 늦으시는 모양이네요.”

“먹을 거면 조용히 하고 앉아라.”

넓은 테이블에 큰형과 형수, 그리고 내가 어색하게 자리를 채웠다. 내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새침하게 숟가락을 뜨는 형수를 보았다가 형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저번에 그 모임은 회원제예요? 어릴 때부터 모였다고 들었는데, 명단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해진 건가?”

“처음에는 친목이었지만, 중간에 어중이떠중이들이 섞이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회원제로 바꾸었지.”

“그런데 왜 형수님이랑 작은형은 안 가요?”

나는 모른 척 밥을 떠 입에 넣으며 물었다. 큰형의 얼굴이 조금 불편해지고, 형수가 대신 변명하듯 말했다.

“결혼한 오메가가 너무 바깥 외출을 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보는 시선도 안 좋고요.”

“왜요? 오메가는 사람 아닌가? 결혼한 알파는 괜찮고, 결혼한 오메가는 나다니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어요?”

“못 배운 오메가들이 그렇게 다니다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죠. 아버님이 미술관 일을 하시며 바깥에 오래 나가 계시니 도련님이 그걸 봐와서 못 느끼시겠지만, 보통 바깥일 하는 오메가는 좋지 않게 본답니다.”

아하, 이렇게 돌려 까시겠다.

오메가가 나가서 일하는 걸 대체 왜 안 좋게 보는지, 대화를 하면서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안 좋게 본다는 거고, 나가서 일하는 오메가는 못 배운 사람이라는 거다. 저 근거 없는 확신을 내가 무슨 말로 반박해야 할지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구나. 나 거기서 오메가 봤었는데. 그 여자는 결혼 안 한 오메가였나 봐요. 왜 그 사람 있잖아요. 내가 좀 늦게 갔는데 형님이랑 같이 룸 같은 곳에서 나오던 여자분이요.”

형수의 표정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큰형은 입을 꾹 다물고 밥을 먹었지만, 젓가락질이 약간 빨라진 것도 같았다.

“근데 그건 모임이잖아요. 바깥일 하는 거랑 다른데, 오메가는 모임에도 못 나가요?”

“못 나가는 게 아니라 웬만하면 알아서 피하는 거예요. 그런 모임에 따라나서는 오메가 치고 품행이 방정하다는 소리 듣는 오메가를 못 봤어요.”

대꾸하는 형수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지만, 나는 대답해줘서 고맙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은형은요?”

“그 자리는 아무나 가는 자리가 아니에요. 도련님이 동행했던 것도 이이가 크게 신경 썼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큰형도 가는 자리잖아요. 작은형이나 큰형이나 똑같지 않아요?”

눈치껏 나는 집어넣지 않았다. 여기의 포인트는 작은형이었으니까. 내 말에 형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코웃음을 쳤다.

“동후 도련님과 이이를 비교할 수 없죠. 이이는 큰일을 할 사람인데.”

큰일은 무슨. 기껏해야 병원이나 물려받겠지. 한국에 병원이 몇 개인데, 그깟 병원 하나 물려받는다고 큰일이 어쩌고. 우습지도 않다.

“딱히 엄선한 자리는 아닌 것 같던데. 아무나 모이는 것 같던데요? 큰형은 그냥 의사잖아요. 호산 병원에 널리고 널린 게 의사인데, 작은형도 의사고. 큰형이 막 학계를 대표하는 의사인데 혹시 내가 모르는 거예요? 거기 오는 사람들 큰형이 인사시켜줬는데,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인지 자기 직업도 안 말하더라고요. 누구 아들, 누구 딸, 누구 자식, 누구 손자. 다들 백수인가.”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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