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바이스-82화 (8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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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놈은 도착하기 직전까지 운전하는 최재경에게 화를 내고 윽박을 지르고 재촉했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저러면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도착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내려서 뛰어가는 차동후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람 망가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구나. 가만히 둬도 망가질 저놈을 내 손으로 끝내야 할까, 그게 과연 의미 있을까. 조금 고민이 되었다.

“도련님.”

“약 빨러 온 거 아니야. 작은형 걱정되어서 따라온 거예요. 들어가 봐야겠어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건물로 들어서자 브로커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러대는 작은놈이 보였다.

“개자식아, 네까짓 게 날 엿 먹여? 어? 씨발, 죽여줘? 죽여줄까?”

“도련님이 애가 타셨나 보네.”

체격만 놓고 보아도 작은놈에게 월등히 앞서지만, 그놈의 고객이 뭐라고 브로커는 작은놈에게 멱살을 잡히고서도 웃고만 있었다.

“내가 사정은 잘 설명했던 것 같은데.”

“사정? 씨발, 네가 날 엿 먹이려고 둘러댔는지 알 게 뭐야.”

“그래서 나한테 뭐 좋을 게 있다고. 자, 좋은 거 가지고 왔으니까 진정하고 앉아봅시다. 응?”

자연스럽게 작은놈의 손을 떼어낸 브로커가 소파에 앉으며 품으로 손을 넣자, 마치 훈련된 개처럼 작은형이 그의 맞은편에 앉아 갈구하는 눈빛으로 품 안에 들어간 손을 바라보았다.

“말했다시피, 중국 쪽에서 문제가 좀 있었어요. 내가 안 팔고 싶어서 안 판 게 아니라니까. 나야 우리 고객님이 많이 팔아주면 좋지. 근데 물건이 없는 걸 어떻게 해? 이게 뭐 예수님 빵 바구니도 아니고, 없는 주머니에서 털어낼 수가 없잖아.”

“그만 종알거리고 빨리.”

“그래서 이번에 다른 곳으로 거래를 텄어요. 저번 것보다 질 좋은 놈이니까 효과는 빵빵할 거야.”

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와 주사기 세 개를 꺼낸 브로커가 그것을 테이블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작은놈이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손에 쥐었다.

“이게 뭐야? 너 또 장난질을…….”

“어허. 우리 고객님 성격도 급하지. 물건 바뀌었으니 테스트는 해보셔야 할 것 아닌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 그때 장사 시작하는 거지. 단골이시니까 내가 샘플도 드리는 겁니다. 아무한테나 이런 서비스 안 나가.”

브로커는 옆에 놓아두었던 작은 나무 상자를 들어 테이블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놈이 쥐고 있는 것과 같은 약병 열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사. 산다고.”

“역시 우리 고객님 화끈하셔.”

눈앞에서 벌어지는 촌극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조용하다 싶더니 다른 일행은 없는 모양이다. 그때 저 약을 한 건 작은놈뿐이었지. 애가 다는 것도 작은놈뿐인가. 그래서 연락을 받자마자 쪼르르 달려왔나.

“앞으로 약만 조달하고 주사기는 안 나갑니다. 댁이 병원 하신다며? 빈 주사기 많을 테니 상관은 없으실 테고. 아, 순도가 높아졌으니 저번처럼 주사기 하나 다 쓰면 곤란합니다. 주사기 왜 세 개 준 건지 알겠죠? 세 번에 나눠서 해요. 괜히 골로 가지 말고.”

브로커의 경고에도 작은놈은 욕심껏 상자까지 들고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구멍을 파고드는 쥐새끼처럼 보였다.

“우리 오메가 도련님은 구면이신가?”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고객님들은 아직 넉넉하신 모양이지. 우리 오메가 도련님도 좋은 거 드릴까? 이번 기회에 좋은 관계를 맺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다가오는 브로커를 피해 슬쩍 뒤로 물러났다.

“저 꼴을 보고? 사양할래.”

작은놈이 들어가 문을 닫은 방을 턱짓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브로커는 아쉽다는 양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사람 안 끌고 왔나 봐? 저번에 무더기로 끌고 와서 사람 장사까지 하더니.”

“저거 하면 옆에 누가 있어도 눈에 안 들어와. 좆을 빨아줘도 흥미 없을걸. 완전 뿅 간다니까.”

뭐가 웃긴지 허리까지 굽혀 낄낄 웃던 브로커가 나를 위아래로 느리게 훑어보았다. 먹이를 앞에 둔 짐승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상상하든 현실로 옮길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널 위해서 하는 충고야.”

어릴 적부터 몸에 새겨진 위험한 자들에 대한 공포인지, 아니면 오메가로서 강한 알파를 마주하고 느끼는 압박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몸뚱이를 억누르는 위압감을 떨쳐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가장하여 말했다.

“이야, 우리 오메가 도련님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참 만만치 않아.”

“볼일 끝났으면 가지? 사람 불편하게 하지 말고.”

“나도 여기까지 힘들게 운전해 왔는데, 좀 쉬었다 갑시다. 있는 집 도련님들은 하나같이 참 매정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등을 기대는 브로커를 노려보다 빈방을 찾아 들어갔다.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지, 저번에 엉망으로 더럽혔던 건물은 깨끗했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끌고 들어와 난잡하게 놀았을 이 방도 마치 호텔 방처럼 말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무슨 짓을 벌였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깨끗한 침대 위에 주저앉아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지금이 좋은 기회이긴 했다. 작은놈의 일행도 없었고, 운전기사는 밖을 지키고 있었다. 함께 있는 놈이라고는 브로커뿐이지만, 저놈도 어느 정도 있다가 자리를 뜰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남는 것은 작은놈과 나뿐이다.

약에 취해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겠지. 목을 졸라 죽이거나 칼로 배를 찔러도, 어쩌면 죽는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죽어버릴지 모른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어째서 죽였는지, 왜 내 부모를 차로 치고 방치했는지,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지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무슨 이유로 죽어야 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심정을 그 새끼도 느껴보기를 원했다. 저렇게 황홀경에 취해 있을 때 편하게 죽음으로 인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오히려 축복일 테니까.

약이 깨기를 기다리자. 뭐로든 묶어놓고 놈을 내려다보며 지금 네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자. 변명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으니 입도 막아버려야지.

목을 졸라 죽일까. 아니, 그건 너무 단순해. 칼이 좋겠다. 피를 보는 것은 꺼림칙하나 그만큼의 고통을 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죽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찌를 거다. 사지가 찢겨나가는 고통을 저도 느껴봐야지. 놈이 피 흘리는 모습을 지켜봐줄 거다. 고통에 우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약을 한 것처럼 고양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단순한 충동으로 따라온 것인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머릿속으로 차동후의 마지막을 그려보았다.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으로 더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지. 풍부하지 못한 상상력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원망스러웠다.

∞ ∞ ∞

“도련님. ……도련님!”

누군가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낯선 침대에 쪼그려 누워있었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련님. 정신 차려보십시오.”

“……최 기사님?”

“정신 드십니까.”

최재경이 왜 여기에 있지.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문지르며 생각하다, 작은놈을 따라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잠깐 졸았어요. 약 한 거 아니에요.”

“다행입니다. 도련님, 지금 가셔야겠습니다.”

“……네?”

자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가만히 고민하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다 잠들었는지를 깨달았다.

멍청한 새끼. 그거 조금 생각하고 있었다고 잠이 들다니, 미친 거 아니야? 요즘 들어 몸이 조금 피곤하고 잠이 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까지 잠을 잘 수 있는 내 무딘 신경에 욕이 나왔다.

“왜 갑자기……. 아버지가 찾으세요? 작은형 불려 가는 거예요?”

작은놈을 죽이기는커녕, 같이 돌아가 혼이 나게 생겼다. 씨발, 씨발.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는데 최재경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둘째 도련님께…… 일이 조금 생겼습니다. 지금 병원장님께, 아니, 배 실장님에게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도련님은 일단 여길 뜨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최재경의 어두운 표정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예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자꾸만 떠올라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일이요? 무슨 일인데요? 날 왜 보내려는 거예요? ……작은형 어디 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려는 내 팔목을 최재경이 붙잡았다.

“도련님!”

“놔. ……놓으라고.”

최재경의 손을 뿌리치고, 작은놈이 들어갔던 방으로 향했다. 거실은 고요했고, 브로커는 일찌감치 돌아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살짝 열린 방문을 밀어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을 올려다보는 상태로 입을 벌리고 있는 작은놈의 모습이 보였다.

잠이라도 들었나 싶어 가까이 다가갔는데, 드러난 가슴이 평온했다. 너무나도 평온해서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놈의 얼굴을 보았다. 코밑에 손도 대보고, 가슴 위에 손을 올려 움직임도 느껴보았다.

누워있는 차동후의 몸에서는 그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기계처럼 고개를 돌려 방문 근처에 서 있는 최재경을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협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린 약병과 주사기를 보았다.

“병신같이…….”

세 번에 나눠서 하라고 했잖아.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씨발. 병신 같은 새끼가.

텅 빈 약병 안에는 미처 빨아들이지 못한 액체가 조금 고여 있을 뿐이었다.

“……죽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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