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바이스-117화 (11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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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꼈나. 집안에 우환이 들었어. 한 달 사이에 둘이나 죽어 나가다니, 남은 알파도 없는데 곤란하게 되었지. 안 좋은 일이 연달아 터진다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안타깝다며 내뱉는 말 속에 정작 걱정이나 위로는 들어있지 않았다. 흥미로 똘똘 뭉친 시선을 받아내며 큰형의 영정으로 눈을 돌렸다.

의외로 작은놈이 죽었을 때보다 마음이 평온했다. 딱히 드는 잡생각도 없었다.

그때는 죽여야 할 놈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심경이 복잡했는데, 역시나 미련이나 후회 때문이었나 보다.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승화된 기분이었다.

조금은 멍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한을 풀었다고 해야 할까, 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시끄럽네요.”

“원래 말이 많은 사람들이지 않니.”

눈을 내리깔며 오메가 아버지가 조용히 속삭였다.

“할아버지는 언제 오신대요. 내일 오시려나.”

“출발하셨다고 조금 전에 연락 왔으니, 곧 도착하시겠구나.”

“장손이라고 신경 쓰나 보네요.”

작은놈 죽었을 때는 둘째 날 저녁에나 느릿느릿 얼굴을 비치더니, 큰놈이 죽으니까 첫째 날에 온단다. 어쩌면 작은놈이 하도 망나니였어서 미련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누구요?”

“……사위 후보.”

“단일 후보인데, 그냥 예비 사위라고 하시죠.”

“네 아버지 고집부터 먼저 꺾어야 하지 않겠니.”

그게 고집으로 꺾일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게다가 아버지만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할아버지가 더 문제다. 그걸 오메가 아버지는 모르니 그냥 고집이라 말하는 거겠지만.

“제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 시끄러워질 수도 있으니 잘했다.”

그것보단 혹시라도 할아버지와 마주칠 일이 생길까 봐 오지 말라고 했다. 왕래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권이강의 얼굴을 알고 있다면 없던 경계심도 생길 테니까. 조만간 VIP실에 숨겨두었다는 권이강 어머니도 만나러 가야 하는데, 괜히 가드를 높일 필요는 없다.

근데 얼굴도 모르는 우리 고모님은 왜 병원에 있는 거지. 어디가 아프기라도 하나. 너무 멀쩡하게 건강하면 그것도 나름 기분이 안 좋겠지만, 그래도 죽을병은 아니었음 좋겠다.

아무리 할아버지가 억지로 떼어놨다고 해도, 자식 보내고 멀쩡히 잘 지내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별개로 어딘가 아프다면 권이강이 속상할 수도 있으니 그것도 싫다.

복잡해지는 심경에 손으로 머리를 헤집자, 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아 아래로 끌어 내렸다.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에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히 하니 그제야 닿아있던 시선이 떨어졌다.

“오늘도 집에 들어가세요?”

“글쎄, 모르겠구나. 네 아버지가 별말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여기 있을 것 같은데.”

“작은형 장례식 때는 첫날 집에 가셨잖아요. 장자 차별 쩌네.”

“가족실이 있으니 거기서 자든 해야겠지.”

둘째 놈 장례식 때도 가족실은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침실도 있었고. 아니, 애초에 같은 장례식장이잖아.

“전 좀 있다가 갈래요. 자고 내일 낮에 다시 올게요.”

“둘째 장례식 때는 삼 일 내내 있더니, 왜.”

“그때는 아무도 자리를 안 지켰잖아요. 오늘은 남을 사람 많으니까 제가 쉬죠, 뭐.”

작은놈 장례식 때야 미련 때문에 장례식이라도 끝까지 지켜봐야겠다는 오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오기조차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이 왜 해탈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더 이상 원이 없다.

“이사장님 오셨구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고, 반면에 할아버지가 지나는 근처는 고요했다. 길을 뚫고 들어오는 할아버지는 뭔가를 참는 것처럼 턱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마저도 작은놈의 장례식 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빈소로 들어온 할아버지가 영정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할아버지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죽은 건 큰놈인데, 마치 가족들이 죄를 지은 것처럼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알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불렀다.

“못난 놈.”

“죄송합니다.”

자식을 잘못 키우긴 했지. 애초에 죄를 지은 큰형의 잘못이고, 그런 큰형을 죽인 나도 잘못이지만. 사실 이 집안에서 잘못 없는 사람이 있긴 할까 싶었다.

고개를 돌려 형수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오메가 아버지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못마땅함이 드러나는 시선에 빤히 눈을 맞추자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 잘못 들이면 이래서 안 되는 거다.”

불똥이 오메가 아버지에게로 튀었다. 내가 죽이지만 않았으면 진짜 억울할 뻔했다. 내가 죽인 것과 별개로 억울하기도 했다.

“한마디 할까요.”

“가만히 있으렴.”

지금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다며 오메가 아버지가 내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난장판 만들지 말라는 만류에 가만히 숨을 죽였지만, 사실 난장판을 만든다고 해도 나는 별 상관이 없었다.

보는 눈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면 그냥 죽는 게 낫지. 어차피 나는 내놓은 자식이고, 저기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들과는 얽힐 일도 없고 얻어먹을 것도 없다. 나한테 도움 되는 사람들도 아닌데 이미지 관리할 필요가 있나.

“허튼 소문 돌지 않게 신경 쓰고.”

“죄지은 게 얼마나 많으면, 사람 죽었는데 소문부터 신경 쓸까.”

툭 나온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아서 들릴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들으라고 한 소리이기도 했다.

“뭐라고 했냐.”

성큼 다가온 할아버지가 내 앞에 서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못 들으셨어요? 죄지은 게 얼마나 많으면 소문부터 신경…….”

짝, 하는 파열음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아버지가 허둥거리며 시선을 막았지만, 이미 조문객들이 할아버지와 내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본 뒤였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강해졌다.

“허튼 소문이 하나 더 돌겠네요. 할아버지가 나 안 좋아하는 거 다들 알고 있으니 새삼스러운 소문은 아닌가.”

“네 부자를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집에 액운이 껴도 단단히 꼈구나.”

“그러게요. 이런 집구석인 줄 알았으면 나도 사양했을 텐데. 배 속에 있어서 거부권이 없었네요.”

맞은 뺨을 손으로 문지르며 비식거리자 할아버지가 재차 손을 올렸다. 그 손을 다급히 붙잡으며 아버지가 고개를 내저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버지.”

“그래요. 할아버지가 무서워하는 소문 돌겠어요.”

“차수경. 오늘만이라도 조용히 있거라. 아무리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녀석이라고 해도 때와 장소는 가려야지!”

말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내뱉고, 주먹질은 때와 장소를 안 가리나. 자기 핏줄이라고 막 손 올리고 그래도 되는 거야?

뺨을 감싼 손바닥으로 열기가 느껴졌다. 빨개지거나 부어오르거나, 어떻게든 맞은 표가 날 텐데. 권이강이 그걸 모르고 넘어갈 리가 없다.

“가끔 궁금해요. 오메가 때리는 알파가 더 개새끼가 될지, 아니면 알파 노인네 때리는 오메가가 더 개새끼가 될지.”

“……뭐?”

“할아버지는 좋겠어요. 막 때려놓고 가정교육이라고 퉁 치면 되니까. 나는 때려봤자 할아버지 때리는 후레자식 소리나 들을 텐데.”

후레자식이 뭐야. 별의별 욕은 다 들어먹겠지. 노인 공경 모르는 놈부터 시작해서 짐승만도 못한 놈, 자기 핏줄 때리는 놈, 힘없는 노인네 패는 놈. 힘이 없긴 뭐가 없어. 이 노인네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은데.

그런데도 모르는 사람들은 별별 것을 다 가져다 욕할 거다. 나이 어린 게 죄도 아니고, 이 노인네 손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래저래 억울하다.

“이 새끼 말하는 본새 좀 봐라. 이래서 제대로 된 사람을 들여야 한다고…….”

“제대로 된 사람 들여서 태어난 자식들이 하나같이 개새끼였는데요. 그것보단 잘 컸고만. 근본 있는 핏줄, 제대로 들인 며느리한테서 태어난 할아버지 손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여기서 말해봐요?”

“수경이 너!”

알파 아버지가 급하게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았다. 코까지 덮을 정도로 큰 손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이 새끼 이거 가둬둬. 여기서 이상한 소리 지껄이게 두지 말고, 당장 어디 끌어다 놔!”

몸을 비틀어 버둥거리다 발로 아버지의 발등을 짓이기듯 밟았다. 힘 좋은 알파라고 해도 몸이 강철로 된 것은 아니라서, 아버지가 한쪽 발로 껑충거리며 나를 놓아주었다.

“가라고 안 해도 갑니다. 붙잡아도 가요. 근데, 다음부터 또 손 올리면 그땐 저도 맞고만 있지 않을 거거든요? 진짜 더러운 소문 나기 싫으면 할아버지 그 나쁜 손버릇 좀 고치세요.”

“뭐, 이놈아?”

“어디 한번 개싸움 벌여보자고요. 난 노인 공격하고 핏줄도 때리는 희대의 개새끼가 되는 거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싫어하는 집안 먹칠 좀 당하시고. 다음에 또 때리면 저 진짜 연장 듭니다.”

시원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억울하지만 알파와 오메가의 힘 차이는 내가 억울하다고 해서 공평해질 문제가 아니니까. 그러니 그냥 주먹 한 대씩 맞교환은 내가 손해고, 그럴 일이 생기면 연장부터 집어 들 거다.

주변에 있는 거 집어 들고 때린다고 설마 맞아 죽지는 않을 거고, 말 그대로 개싸움을 벌여보자는 거지.

“얌전히, 착하게 구세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이게 무슨 난동인지 몰라.”

할아버지의 넥타이를 잡아 콱 올려주고 씨익 웃었다. 차마 큰형의 빈소에서 국화꽃을 집어 던지거나 향로를 발로 차버릴 수는 없는지 할아버지가 부들부들 떨었다.

하는 짓이 꽤 양아치라니까. 때리고 발로 차고 부수고. 남들이 이 노인네의 본성을 모르는 게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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