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 이면 (5/19)

2차 던전을 클리어한 소식이 하루 종일 뉴스에 나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고대 7대 불가사의 던전, 이른바 7대 레이드를 지켜보았고 코드는 그 첫 공개 진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S급 던전을 4시간 만에 클리어한 기적적인 경우였다.

해당 방송의 시청률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은 순삭간에 몇천만 뷰를 넘겼다. HN 길드는 축제 분위기였으며 부길드장 사윤강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특수 정예 팀 코드를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2차 던전 클리어의 주역은 단연 정이선이었다.

코드 소속 헌터들도 훌륭하게 던전을 공략했지만 이번 레이드에서 새롭게 나타난 복구사에게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많은 사람이 그가 해낸 복구에 경악했으며, 그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HN 길드로 인터뷰 문의가 끝없이 쇄도했으며 몇몇 용감한 기자들은 코드의 헌터들을 붙잡고 정이선에 대해 묻기도 했다. 물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현재 모든 이들에게서 경외를 이끌어 낸 정이선은, 해당 소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던전을 클리어한 날부터 계속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리 이틀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고열이 들끓었다. 치유 스킬을 받아 잠깐 괜찮아지더라도 순식간에 다시 몸살을 앓았다.

생각보다 히든 능력의 페널티가 강력했다. 몇 번이나 연이어 사용하기도 했고 복구 규모가 커서 더욱 후유증이 심했다. 정이선은 기절하듯 쓰러져 잠만 잤고 그러다 사흘 차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넓은 집에 홀로 있었다. 두어 시간마다 간병인이 침실로 들어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회복 포션을 권하긴 했지만 ‘혼자’ 있다는 감각을 지우진 못했다. 낮에 정신을 차려 반나절이 흐르는 동안 정이선은 멍하게 앉아 있다가, 눕고, 뒤척이기를 반복했다. 새삼스럽게 그가 머무는 공간이 몹시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단순하게 낯설다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외로움, 혹은 상실감이었다.

한 2년 전쯤 그가 처음으로 히든 능력을 사용하고 앓았을 땐 6명의 친구가 호들갑을 떨면서 그를 간호했었다. 그가 몇 시간 동안 복구해 냈던 문화재에 감탄하고,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정이선이 인간문화재라는 소리를 장난스럽게 했었다. 세계 유네스코에서 러브 콜이 쏟아질 거란 말도 나왔었다. 그러다 다른 친구 한 명이 ‘애가 아픈데 조용히 좀 간호하자’며 소리를 지르면 겨우 잠깐 조용해졌다가, 그런데 네가 더 시끄럽다는 소리를 해 대며 웃었다.

당시 정이선은 그들이 너무 시끄러워 죽 숟가락을 던지며 나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숟가락 들 힘이 있는 것 보니 멀쩡하다며 고집스럽게 옆에 있었다. 그건 그들만의 간호였다. 17살 때부터 서로밖에 없었던 친구들이 아픔을 위로하는 방법. 고집스럽게 서로를 혼자 두지 않으려는 서툰 배려.

“…….”

정이선은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가만히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 집은 창문으로 보이는 전경도 좋아서 노을이 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정이선은 그 모습을 볼수록, 하루가 저물어 가는 걸 볼수록 씁쓸해져 몸을 웅크려야만 했다. 분명히 방의 온도는 적절한데도, 심지어 고열 때문에 더운 상태면서도 자꾸만 한기가 들었다.

외로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 익숙한 기분이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외로워서 서러웠으며 그들이 그리워서 슬펐고, 감히 자신이 그들을 그리워한단 점에 끔찍해졌다. 습관처럼 자기혐오가 차올라 그의 목을 짓눌렀다. 그는 반항조차 않고 가만히 혐오감에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그런 정이선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즈음에야 고개를 들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들어온 존재는 침대에 앉아 있는 정이선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나직이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꽤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네요, 이선 씨.”

어느덧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방의 불을 켜며 안으로 들어온 사현의 시선이 잠깐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그릇으로 향했다.

“죽도 거부하고, 상태 회복 포션도 먹지 않고…….”

“…….”

“다른 음식이 먹고 싶은 건가요?”

정이선은 답하지 않았다. 사현은 커다란 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빤히 보았다. 몇 시간 전에 간병인에게서 일어났단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 회복 포션도, 식사도 모두 거부한다며…… 그를 만나고 싶단 말만 반복한단 소식을 들었다.

당시 사현은 3차 던전 회의 건으로 헌터 협회에 있었기 때문에 연락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는단 간병인의 말에 결국 이곳으로 왔다. 사현은 자신을 가만히 보는 정이선의 시선을 똑바로 받았다.

“내가 직접 떠먹여 줘야 먹을 건가요?”

“……언제, 해 주실 건데요?”

조금 엇나간 답이 돌아왔다. 사현의 의아하단 표정에 정이선은 몇 번이고 막히려는 목구멍을 겨우겨우 열어 말했다.

“……제 친구요. 이제 던전 하나 클리어했으니, 계약한 대로 무효화 걸어 주셔야죠.”

“상태 낫고 가도 충분해요.”

“아뇨.”

잔뜩 오른 열 때문에 말하기 힘든 기색이면서도 정이선이 꾸역꾸역 말을 이었다.

“그쪽 무효화가 실제로 친구들한테 효과가 있는지 아직 모르잖아요. 눈으로 봐야겠어요.”

“효과가 없으면 다음 던전에선 빠지기라도 할 기세네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정이선의 황당하단 물음에 사현이 나직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무척 우스운 반응을 봤다는 듯 잠깐 고개를 숙이고 웃었는데, 그에 정이선은 조금 불편해졌다.

“이선 씨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지만…….”

성과급이라고 쳐요. 나지막이 사현이 속삭이듯 덧붙였고 그쯤에야 정이선은 사현이 ‘제안’ 외에도 말했던 강요와 협박을 떠올렸다. 굳어 가는 정이선의 얼굴을 보며 사현이 걱정 말라는 듯, 퍽 흔쾌한 얼굴로 협탁을 톡톡 두드렸다.

“일단 죽부터 먹고 나서, 그리고 포션도 먹은 후에 출발하죠.”

***

열흘 만에 오는 집은 무척 낯설었다.

지난 8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 집을 비운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떠난 수학여행도 겨우 이틀이었고, 성인이 된 후로는 혼신 길드에 붙잡혀 일하느라 여행 같은 걸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7년이나 이 적막한 도시에 살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더는 돌아오지 않는 버려진 도시에서 함께 살았다.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자는 얘기를 습관처럼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떠나지 못했다.

정이선은 이 도시를 홀로 떠났다가 열흘 만에 돌아오는 자신의 상황에 조금 씁쓸해졌다. 겨우 열흘 동안 넓은 집에서 지내다가 돌아온 것뿐인데, 8년을 살았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새 집이 좁고 허름하게 느껴졌다. 이런 위화감을 느끼는 자신이 참 추악하다고 생각했다.

정이선은 집 안으로 들어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정이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기괴한 소리를 내며 집을 방황하고 있었다.

“누구한테 가장 먼저 걸어 줄까요?”

사현의 질문에 정이선은 잠깐 고민하다가 조용히 걸어가 누군가의 팔을 붙잡았다. 서늘한 고목을 만지듯 딱딱한 감각이, 온기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그의 몸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영준이요. 강영준. 며칠 전에 생일이었는데…….”

“죽은 사람은 보통 기일을 챙기지 않나요? 뭐, 지금은 죽은 상태로 보기 어렵긴 하지만 생일을 챙기는 것도 참…… 이선 씨답네요.”

조롱하는 어조가 아닌, 객관적인 사실을 읊는 듯한 담담한 그의 어조에 정이선은 침묵했다. 이젠 사현의 화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참이었다.

곧 사현이 강영준의 가슴팍에 손끝을 가까이 했다. 새까만 연기 같은 기운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휘몰아치듯 강영준의 몸 전체를 감쌌다. 정이선의 눈동자가 그 모든 과정을 눈에 담았다.

지난 1년 동안 시체를 움직이게 하던 복구 능력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허무할 정도로 짧았다.

고작 몇 초 만에 강영준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정이선이 놀라며 옆에 주저앉아 강영준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언제나 흐리멍덩한 눈을 반쯤 내리뜬 채였는데 지금은 눈꺼풀이 닫혀 있었다. 게다가 더는 공허하게 들끓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비척거리며 걸으려 들지도 않았다.

정이선은 코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가슴께를 눌러 보고, 고개를 숙여 귀를 가까이 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행동의 끝에 정이선의 얼굴 위로 슬픔과 닮은 허탈함이 흐릿하게 번졌다. 정말로 그가 죽은 것이다.

“이미 강영준은 사망 처리 된 상태예요. 이제 와서 정상적인 장례 절차를 밟을 수는 없으니 따로 화장터로 옮길 생각인데, 어때요?”

위에서 사현의 질문이 나긋하게 떨어졌다. 무효화로 해결해 낼 것을 당연히 예상했단 듯 여유로운 어조였다. 정이선은 강영준의 몸을, 그러니까…… 1년 만에 드디어 온전하게 죽은 그를 몇 번쯤 고쳐 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금 당장….”

“잠깐만…… 마지막으로 인사하게 해 주세요.”

정이선의 말에 사현은 잠깐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답하지 않고 돌아서 집을 나갔다. 조용히 문이 닫혔지만 멀어지지 않는 발걸음 소리에 그가 문밖에서 서 있단 걸 알아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집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을 어렴풋하게 눈치챈 정이선은 나직이 실소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정이선은 죽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친구 다섯 명을 모두 편히 눈감게 할 때까지 죽으면 안 된다는 단순한 접근을 넘어서…… 그는 스스로를 해할 수 없었다. S급 복구 능력의 조건, ‘동종 생명체에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에도 해당됐다.

S급은 능력이 어마어마한 만큼 능력 조건이 따랐다. 사현의 경우는 그림자 스킬을 사용할 때 손이 어둠과 닿아야 한다는 것이 발동 조건이었고, 그래서 그는 햇빛 아래에서 대부분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그 반면 정이선은 상시 적용되는 조건으로 능력이 발현된 순간부터 동종 생명체를 공격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어 능력 측정을 한 후에야 제약을 깨달은 것은 퍽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정이선의 성격상 동종 생명체, 즉 사람을 해하려 들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실제로 18살에 발현되었다는데 20살에 각성 검사를 받고서야 조건을 알았다.

S급 헌터들 중에는 귀찮은 조건이 달린 이들도 더러 있어 정이선은 자신의 조건이 편하다 여겼다. 다만 친구들만이 그의 능력으로 무생물체인 건물은 복구하는데 생물체인 인간은 해하지 못한다며, ‘이롭고 선하게 살아야 하는 정이선의 숙명’이라 표현하며 웃었다.

정이선이 그 조건의 불편함을 느낀 건 오직 친구들과 베개 싸움을 할 때뿐이었다. 베개로 상대를 치려고 하면 갑자기 허공에 막이 생긴 것처럼 베개가 튕겨 나가면서 주저앉았다. 그 이상한 상황에 정이선은 얼이 빠지고, 친구들은 배를 잡으며 폭소했다. 영상으로 찍어야 한다며 한 번만 더 해 보라고 그를 놀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랬었던 능력 조건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그에게 절망을 안겼다.

수십, 수백, 수천 번을 시도했다. 그날 친구들을 모두 잃은 이후로, 아니, 자신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이후로 스스로가 너무도 끔찍해서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다. 칼로 손목을 베어 보려고 했고, 심장을 찌르려 들기도 했고,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도 했다. 옥상에도 가 보았다.

하지만 그 조건이 번번이 정이선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주 우스운 형태였다. 스스로를 베고 찌르려던 칼이 떨리고, 억지로 하려고 들면 마치 투명한 막에 막히듯 칼이 튕겨 나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떨어지려고 했을 때도 그랬다.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뒤로 떠밀리기까지 했다.

정이선은 그 상황이 같잖고 역겨웠다. 스스로가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능력의 조건 때문이라는 구차한 핑계를 대며 살려는 듯해 지긋지긋했다. 한편으론 친구들은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으면서 자신만 죽음으로 회피하려는 것이 역겹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가 사현의 히든 능력을 듣고서 저열하게도 기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그를 끔찍하게 삶에 묶어 둔 능력의 조건, 번번이 그의 시도를 비웃는 잔인한 제약. 그것은 모두 복구 능력에 따르는 요소였다. 그러니…….

‘…친구들에게 걸어 주기로 한 무효화요. 그 히든 능력, 제가 원할 때 한 번 더 써 주세요. …필요한 곳이 있어서요.’

무효화로 능력이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은 5분. 누군가에게는 짧을 5분이었지만 정이선에게는 간절히 바라 왔던 일을 해낼 수 있는 시간이자 기회였다.

“……미안해, 영준아.”

정이선은 친구의 손 위로 이마를 묻었다. 열로 들끓는 이마에 서늘한 손이 닿으며 기이한 안도감을 주었다. 이제야 눈을 감은 친구를 향한 사과, 죄책감, 그리움. 그리고…… 부러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정이선은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 조용히 읊조렸다.

“다른 애들 다 보내고 나면…….”

따라갈게.

차마 정이선은 마지막 말을 소리 내어 덧붙이지 못했다. 감히 따라가겠다는 자신을 그들이 싫어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죽지 못하는 존재가 된 그들을 몇 번이고 복구시켜 던전을 클리어한 자신이, 끔찍한 방법으로 살아남은 자신이 감히 그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해도 될까. 그들과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그들은 자신을 용서해 줄까…….

답을 알 수 없는 의문 속에서 정이선은 감히 바랐다. 자신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부디 따라만 가게 해 달라고.

그는 친구의 멈춘 심장에 고개를 기대며 희망을 품었다.

절망과 맞닿은, 아주 더러운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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