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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샤워 (6)화 (6/139)

6화

도착한 곳은 곱창집이었다. 특유의 냄새가 가게 곳곳에 배어 있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우연재가 싫어하는 요소란 요소를 모두 갖춘 장소였다.

“우연재 또 깔끔 떠네?”

그런 우연재를 이곳까지 끌고 온 김현승도 대단했다.

“이모, 여기 5인분이요! 맥주도 두 병만 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까지 일사천리였다.

“딱히 깔끔 떤 적 없는데.”

우연재가 그 옆에 앉으며 시치미를 뗐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문서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본 반찬들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들어오자마자 인상 찌푸렸잖아, 너.”

“김현승 착각이겠지.”

“야, 여기 존나 맛있다니까? 문서윤도 좋아해.”

딱히 가리는 게 없는 문서윤은 젓가락을 꺼내 친구들에게 건넸다. 가끔 김현승과 함께 오곤 하던 음식점이었다. 근 2년 만에 방문하는 곱창집은 아직도 장사가 잘되는지 손님들이 북적여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조용한 장소보다는 시끄러운 장소가 낫다 싶어 문서윤은 조금 안심했다. 과민 반응을 한 상황이라 지레 찔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난 문서윤이랑 여기 온 적 없는데.”

“네네, 취향 고상하신 도련님께서 뭘 아시겠어요. 우리 둘이 자주 왔다. 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곱창이 가득 담긴 불판이 나왔다. 김현승이 잽싸게 집게를 집더니 능숙하게 곱창을 구웠다.

“그랬어? 왜 둘이서만 놀아?”

우연재가 물을 마시며 눈을 가느다랗게 접었다. 한쪽 입꼬리만 느릿하게 올라가는 모습에 김현승이 질색했다.

“뭐래. 문서윤 군대 가자마자 얼굴도 안 비친 놈이. 그리고 그렇게 웃지 마라. 요사스러워서 소름 끼치니까. 으, 남자한테 이 단어 말하는 것도 소름 끼침.”

“너네 진짜 오랜만에 만나?”

잔에 맥주를 따르던 문서윤은 희한한 광경을 본 사람처럼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김현승에게 우연재를 못 본 지 오래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해도 내심 한 번쯤은 얼굴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하던 차였다.

“그렇다니까? 만난 김에 근황 보고나 하지? 자, 우연재부터.”

“뭐……. 문서윤 쫓아다니기?”

우연재가 눈꼬리를 접어 샐샐 웃었다. 그를 오랫동안 알아 온 김현승은 친구를 쫓아다닌다는 우연재의 말에도 수상한 눈길을 보내는 대신 쩝, 입맛을 다시며 고개만 몇 번 흔들었다.

“니 새끼가 그렇지 뭐. 문서윤이 네 거지, 아주.”

“응. 문서윤 내 거잖아.”

“문서윤 아빠 나셨어요.”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문서윤의 앞접시에 곱창을 올려 준 사람도 김현승이었다.

“여자 친구는 잘 사귀고 있냐? 이름이 뭐더라……. 김선주. 맞지?”

움찔, 젓가락질을 멈춘 문서윤은 가까스로 다시 손을 움직였다.

“걔 지금 한국에 없어. 다음 주에 오는 것 같던데.”

“그래? 너네도 오래 사귀지 않았냐? 우리 스무 살 때부터 사귀었으니까.”

그때 여자 친구가 지금 여자 친구구나.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문서윤은 자연스럽게 굴기 위해 곱창을 입에 넣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삐걱거릴 게 분명했다. 그나마 오래 씹어도 이상하지 않은 음식이라 다행이었다.

“뭐……. 지금 스물셋이니까.”

“성인 된 게 엊그제 같은데 군대 갔다 오니까 스물셋이네. 야, 그럼 우리 이번에 다 같이 학교 다니는 거네? 나 정문 근처에서 자취할 건데. 너네는?”

“이번에 오피스텔로 옮겼어.”

문서윤도 가 본 적 있는 장소였다. 우연재의 침대에서 눈을 뜨던 순간이 여태 선명했다.

“오, 새로 생긴 거기? 집들이…… 할 리가 없지, 결벽증 우연재가. 문, 너는?”

생각의 흐름이 오피스텔에서 귀걸이로 옮겨 가기 직전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전에 대화 주제가 제게로 흘러들어 와 차라리 다행이었다. 문서윤은 잡념을 떨쳐 내기 위해 애쓰며 대답했다.

“나 기숙사.”

“기숙사?”

되물은 사람은 김현승이 아닌 우연재였다. 자연스레 시선이 그에게로 닿았다. 눈이 마주치자 우연재가 삐딱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짓씹듯 물었다.

“네가 왜 기숙사에서 살아, 서윤아.”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어조가 담뿍 담겨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냉랭한 태도에 문서윤은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였다.

“문이 기숙사에서 살든 말든 네가 뭔 상관.”

김현승이 쌈을 싸며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이어 입 안 가득 쌈을 밀어 넣은 뒤 입을 꾹 다문 채 뭐라 뭐라 웅얼거렸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잔소리 비슷한 말을 내뱉고 있는 듯했다.

옆에 앉은 이가 열띤 잔소리를 퍼붓는데도 우연재는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명백히 답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박에 문서윤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김현승에게 물통을 건넸다. 대답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연재와 눈을 맞추는 게 어려워서였다. 그가 지금처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쳐다볼 때는 더욱 그랬다.

“1학년 때 통학했었으니까 기숙사도 살아 보는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얼굴을 쳐다봐야 할 것 같아, 문서윤은 자글자글 익은 곱창을 앞접시로 가져왔다. 먹기 좋을 정도로 숨이 죽은 채소볶음을 그 위에 얹은 그는 뜨거운 음식을 곧바로 입에 넣었다. 일부러 시간을 끌기 위해 젓가락질을 천천히 했는데도 삐딱한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우연재만 의식하고 있던 탓일까, 뒤늦게야 입 안이 지나치게 뜨겁다는 감각이 찾아왔다. 뱉어 낼 수도 없어 인상을 찌푸리며 물을 마시려는데 컵이 비어 있었다.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던 우연재가 팔을 뻗어 제 컵을 내밀었다. 문서윤은 다급히 그가 건넨 물을 받아 마셨다.

“문서윤 여기 진짜 좋아하나 보네. 뜨거운 거 잘 먹지도 못하면서.”

덴 건 입천장인데 어쩐지 뺨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고작 눈 하나 마주치지 못해 허겁지겁 행동한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건 덤이었다.

“기숙사 존나 싫어하는 것 같다?”

제가 다 뜨겁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김현승이 팔꿈치로 우연재를 건드렸다.

“싫으니까.”

우연재가 즉답했다.

“왜? 야, 솔직히 기숙사만큼 좋은 데도 없거든. 아침저녁 꼬박꼬박 나오지, 시험 기간에는 간식도 챙겨 주지. 자취하면 밥 챙겨 먹는 것도 귀찮다고.”

“남이랑 같이 방 쓰는 거 번거롭잖아.”

“우연재 님. 혹시 이 단어를 아시나요? 공동체 생활이라고.”

“공동체 생활은 무슨.”

김현승의 너스레에 우연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인 젓가락이 입에 대지도 않은 곱창을 꾹 눌렀다.

“욕실 쓰는 것도 불편하고 생활 패턴 안 맞으면 더 불편하고……. 그리고 남이랑 공간 공유하는 거 자체가 찝찝하잖아. 더러운 새끼면 어떡하려고.”

“와, 이 새끼 결벽증 도대체 언제 고쳐짐? 문, 얘 어릴 때부터 이랬다고 했나?”

“우연재 원래 까다롭잖아.”

문서윤은 새삼스러운 걸 묻는다는 듯 대꾸하며 다시 한번 물을 마셨다.

결벽증이라고 칭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연재는 어릴 때부터 타인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오히려 학교에 다니고 나이를 먹으며 유해진 편이었다.

기숙사행을 반대하는 이유를 얼핏 알 것 같기도 했다. 공간을 나눠 쓴다는 개념이 없는 그로서는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 법도 했다.

“그래서. 진짜 기숙사 들어가겠다고?”

대화 주제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대답을 회피할 수는 없어, 문서윤은 괜스레 맥주잔을 쓸어내리며 말을 가다듬었다.

“이미 신청도 끝났고……. 대학 다니면서 기숙사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근데 아쉽네. 문 너도 자취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근데 왜 자취는 안 하냐?”

“교수님 때문에 그래?”

우연재가 정곡을 찔렀다. 열심히 술을 마시던 김현승이 이제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와씨, 우연재 예리하네. 교수님 때문에 자취 못 하겠구나. 야, 너네 아버지도 진짜 대단하시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으시냐.”

“전부터 그러셨으니까……. 너희 둘 다 알잖아. 우리 아버지 성격.”

문서윤은 맥주를 마시며 옅게 웃었다. 소꿉친구인 우연재는 말할 것도 없고, 김현승도 제법 오랜 시간을 알아 온 친구라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집에 있기 불편하니까 그냥 내가 나오려고. 나도 그게 마음 편하고.”

“엥? 왜? 너 무슨 일 있냐?”

문서윤은 그제야 김현승이 아버지의 재혼 소식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너 모르겠네. 아버지 재혼하셨거든.”

묻자마자 맥주를 마시던 김현승이 큭, 소리를 내며 황급히 목울대를 움직였다.

“케, 켁! 콜록, 콜록! 진짜야?”

사레가 어찌나 심하게 걸렸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문서윤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외도 사실이야 저만 알고 있고 재혼 자체는 창피한 일이 아니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다 큰 성인이 집에 있으면 그분도 불편하시잖아. 바쁘셔서 마주치는 시간은 길지 않은데 나도 불편해서 그냥 기숙사 신청했어.”

“어느 기숙산데? 이번에 학교에 기숙사 새로 생기지 않았나? 거기?”

“응. 신축이고 2인실이라서 룸메만 잘 만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재혼 이야기가 나온 직후라 그런지, 김현승이 기숙사의 장점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했다. 우연재는 눈꺼풀만 내리깐 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맥주잔을 가만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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