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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샤워 (55)화 (55/139)

55화

“진짠데. 나 아니면 누가 달래 줘.”

“그러게.”

문서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어느덧 한 달째였다.

손바닥에 가려진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입술 안쪽을 깨물기라도 했는지 입꼬리가 움칠거렸다. 우연재는 시선을 비끼듯 눈동자를 움직였다. 언뜻 부은 듯한 뺨이 눈에 띄었다.

“문서윤.”

절로 낮아진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그는 손을 거두며 재차 뺨을 살폈다.

“맞았어?”

“아…….”

들킬 줄 몰랐다는 듯 미세하게 발개진 뺨이 얕게 찌푸려졌다.

“교수님이 너 때려?”

우연재는 그 피부를 피해 조심스레 뺨을 건드렸다. 급작스레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애를 때린다고. 성인 남자가 고작 열여섯 살짜리를 때린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화가 치밀었다.

“맞을 만해서 맞은 거야.”

당황한 사람처럼 입술을 깨문 문서윤은 자그마한 목소리와 함께 제 뺨을 쥔 손목을 잡아챘다. 우연재는 힘이랄 게 느껴지지 않는 악력을 따라 손을 내렸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피아노 그만두겠다고 해서…….”

“그래서 애 뺨을 때렸다고?”

저도 모르게 경멸스러운 물음이 흘러나왔다. 우연재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별 같잖은 이유로 아들 뺨을 때린 문 교수도, 이유 없는 체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서윤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10년 넘게 쳤는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니까 화나셨겠지. 가뜩이나 엄마 돌아가셔서 신경 예민하신데.”

“피아노 그만둔다고 때릴 게 아니라 애 상태부터 챙기는 게 먼저 같은데.”

역시나, 제 예상대로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우연재는 빈정거림을 숨기지 않았다. 고작 피아노 하나 그만둔다고 애를 때리다니, 자식보다 체면이 중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교수님만 신경 예민해? 따지고 보면 네가 더 그럴 텐데. 부부랑 자식이 같은 것도 아니고……. 교수님은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어도 너는…… 씹, 하나뿐인 엄마 잃은 건데.”

우연재는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비틀리는 입술 사이로 채 짓씹지 못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는 문서윤과 문 교수의 슬픔을 동일한 무게라 여기지 않았다. 핏줄을 잃은 슬픔과 남을 잃은 슬픔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 교수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어도 문서윤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였다.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그러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내리사랑은 존재할지언정 사람 대 사람 간의 사랑은 허상에 불과했다. 연인이 죽어도 다른 연인을 찾을 수 있는 게 사람 대 사람 간의 사랑이었다.

“우리 집 갈래? 내 침대 넓어.”

어쨌거나 문서윤을 손 올리는 아버지와 단둘이 두고 싶지는 않았다. 우연재는 농담을 내뱉듯 가볍게 물었다. 기실 떠보는 행위에 가까웠다.

“또 그 소리.”

문서윤은 단순한 말버릇이라 치부했지만,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은 없었다.

“왜애. 너 들어온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도 환영하실걸.”

“너 사고 칠 때마다 내가 말리니까 그러시는 거겠지.”

“문서윤 순진하네.”

우연재는 비스듬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부모님이 문서윤을 좋아하는 건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문서윤은 말하자면 일종의 상징이었다. 뇌에 결함이 있는 아들이 별다른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자랐다는.

사랑하는 외동아들이 혹시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부부는 자식에게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또래들과 다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아주 어렸을 때 발견한 것도 그러한 관심 덕분이었다.

무슨 일이든 늘 시큰둥하게만 반응하던 아들이 소꿉친구와 있으면 그 나이 대 어린애들처럼 보이니 그 소꿉친구를 좋아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부모만큼 자식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없는 법이다. 그들은 문서윤이 제 아들에게 일종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눈에 띄게 엇나가지 않고, 또래들과 비슷하게 행동할 수 있는 기준. 우연재가 문서윤의 손을 잡고 다니던 여섯 살 때부터 알아챈 사실이었다.

우연재 역시 지금은 그런 부모님의 생각을 꿰고 있었다.

“아무튼 괜찮아. 아버지도 놀라셨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셨어. 아직도 화 덜 풀리신 것 같긴 하지만.”

“자세히 봐.”

우연재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으며 턱을 낚아챘다. 쯧. 저절로 혓소리가 새어 나왔다. 성인 남자가 때렸으니 그 흔적이 남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한 번만 더 손대면 바로 말해.”

“안 그러신다니까.”

조그마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피아노를 그만둔다던 말이 떠올랐다. 우연재는 별것 아닌 일처럼 물었다.

“피아노는. 그만둬?”

“이제 못 칠 것 같아. 피아노가 싫은 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이상해서.”

그만두겠다고. 침대의 부드러운 매트리스는 불규칙적으로 툭, 툭 움직이는 손톱 소리를 잡아내지 못했다.

“그럼 학교는? 내년에 고등학교 가잖아, 우리.”

“예고 안 가고 일반고 가려고. 피아노 그만두는 대신 공부하기로 했어.”

문서윤이 손톱 끝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건반을 누르던 손가락이 톡 튀어나온 거스러미로 향했다. 가만두면 피를 볼 것 같아 우연재는 그 위로 제 손가락을 얽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나만 가는 거지. 너 미국 가잖아.”

“미국?”

우연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아, 하고 말끝을 늘였다. 눈을 접자 그러잖아도 긴 눈꼬리가 한층 길게 그어졌다.

“미국 안 가, 나.”

“뭐? 왜?”

“문서윤이랑 같이 학교 다닐 건데.”

“장난하지 말고.”

우연재는 천연덕스럽게 눈썹을 끌어 올렸다. 삐딱한 표정을 진심으로 해석했는지 문서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언제 안 가기로 했는데?”

“조금 됐어.”

몇 초 전이라는 단어를 조금 됐다는 말로 바꿔치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아노를 그만둔다면 언젠가로 예정된 문서윤의 유학 역시 없던 얘기가 될 것이다. 내년에 미국으로 가는 제 일정을 고려하면 앞으로 근 10년 가까이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다는 의미였다. 군대까지 다녀온다면 문서윤은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긴 시간을 문서윤 홀로 방치할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실 것 같긴 한데.’

몇 대 맞으면 되겠지, 싶었다.

“피아노 아직 있지?”

대화 주제를 돌리지 않으면 미국행 취소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질 것 같았다.

“응. 엄마도 쓰던 거라 안 치울 것 같은데……. 왜?”

“피아노 쳐 줄게.”

여섯 살부터 시작된 버릇은 고쳐질 줄을 몰랐다. 우연재는 그때처럼 손을 내밀었다.

“……너 피아노 못 치잖아.”

“존나 못 치는 거 구경해. 나는 문서윤 웃는 거 구경하게.”

가볍게 웃은 그는 문서윤을 끌고 피아노 방으로 들어섰다.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창가로 다가간 문서윤이 창문을 열자 약한 빗소리가 쏟아졌다.

“비 온다. 날씨 좋은데.”

“여우비네.”

그 뒤로 다가간 우연재는 버릇처럼 몸을 구겨 문서윤의 어깨에 턱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제법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치게?”

시큰둥한 마음으로 피아노 의자에 앉자 창밖을 구경하던 문서윤이 몸을 틀었다.

“뭐 칠 건데?”

“젓가락 행진곡?”

“초등학생이야?”

“아니요. 열여섯 살인데요.”

우연재는 키득거리며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피아노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건반을 누르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었나.

손끝에서 젓가락 행진곡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조리 엉망이었는지 문서윤이 웃는 소리가 엉망진창인 선율에 섞여들었다. 피아노 소리보다 나았다.

“차라리 젓가락 행진곡 쳐.”

“왜, 나 피아노에 소질 있는 것 같은데.”

“진심이야?”

어이없다는 물음에 우연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구잡이로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이리저리 튀어 다니며 넘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확실히, 별 흥미는 들지 않았다.

몇 분간 이어지던 연주 아닌 연주가 천천히 멎어 들었다. 우연재는 무해한 체하는 포식 동물처럼 몸을 잔뜩 숙이며 피아노에 얼굴을 기댔다. 건반이 한 번에 짓눌리며 이상한 소리가 튀어 올랐다. 불편한 자세를 고수하며 약한 체한 보람이 있는지 문서윤이 또다시 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웃네.”

우연재는 눈을 접었다. 가로로 긴 눈매가 예쁘게도 휘어졌다.

“나 웃으라고 친 거야?”

“존나 못 치는 거 구경하라고 했잖아. 나는 문서윤 웃는 거 감상 좀 하게.”

대화 주제를 돌릴 겸, 우울해 보이는 얼굴도 풀어 줄 겸, 별 관심도 없는 짓거리를 했는데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문서윤.”

“왜.”

우연재는 제 본성을 숨기는 법을 잘 알았다.

“피아노 못 쳐도 세상 안 무너져.”

사실 그는 피아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문서윤이 좋아하니 관심을 가지는 척했을 뿐, 음악이 주는 감동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이깟 게 뭐라고 우리 서윤이가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굴지.”

그저 악기일 뿐이었다. 문서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악기. 그리고 제 세상인 것처럼 착각하는 악기.

“그리고 난 피아노 치는 문서윤 좋아하는 거 아닌데. 그냥 문서윤 좋아하는 거지.”

너무 매달려서 간혹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피아노가 문서윤을 독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연재는 문서윤을 뺏기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 나 피아노 싫어했네.

창밖에서는 어느새 비가 그친 듯했다. 순식간에 훤한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직선으로 들어오는 빛에 눈이 부셔 우연재는 눈썹을 찌푸리며 잔뜩 구긴 상체를 일으켰다.

늘 소꿉친구가 앉아 있던 피아노 앞에서 허리를 세우자 빛 바로 아래에 선 피아노 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아슬아슬하게 문서윤의 머리를 타고 넘어오는 중이었다. 문서윤이 선 곳은 그 아래의 그림자였다.

그 광경을 목도한 순간, 우연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문서윤은 더 이상 피아노에 애정을 쏟지 않을 것이다. 하얀빛에서 비켜선 지금처럼.

“그러니까 서윤아…….”

그렇다는 건 이제 문서윤에게 남은 것은 저뿐이라는 의미였다.

피아노마저 사라졌으니.

우연재는 진심으로 웃었다. 눈매가 물크러지며 입술에 열꽃이 올랐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환희였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내가 만들어 주는 울타리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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