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또 하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문제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문서윤은 사람이었다. 성욕이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과 몸을 섞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뒤이어 찾아올 자괴감의 무게를 알면서도 욕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괜찮지 않을까. 우연재에게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잠깐이나마 쥐고 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않나. 곧 놓게 될 텐데.
문서윤은 뺨 안쪽의 여린 살을 짓씹었다. 올바른 정답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혹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우연재가 남기고 간 말은 인간을 유혹하는 뱀의 언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잠깐의 쾌락을 이용해 누군가를 영원한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려는 수작이었다.
“…….”
문득 잔향밖에 남지 않은 향수 냄새가 의식되기 시작했다. 이곳이 우연재의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자각은 그다음이었다.
시계 하나 없는 적막한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문서윤 자신이 내쉬는 숨소리가 전부였다. 문서윤은 그 안에 녹아들듯 조심스레 호흡을 죽였다.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쓸수록 떨어지는 물소리가 고요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또 죽였다. 우연재가 남기고 간 잔향을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서.
하얀 이가 잘근, 여린 피부를 짓씹자 입술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을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어떡할래.”
우연재가 별것 아니라는 양,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해.”
문서윤은 그런 제 소꿉친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평온하고 잔잔한 삶을 살아가는 대신 간교한 유혹에 휩쓸려 스스로를 영원한 고통에 밀어 넣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 역시 욕망 앞에 굴복하고야 마는 인간이었으므로.
문서윤은 삐걱거리듯이 침대에 앉았다. 첫 섹스는 어영부영 시작했다지만, 또다시 몸을 섞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이 상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상대가 사귀지도 않는, 저 혼자 좋아하는 소꿉친구라 그럴 테다.
‘얼굴 보면서 하면 더 민망할 것 같은데.’
지난번에도 얼굴을 마주 보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뒤로 한 번 한 후였고, 그 후에는 정신없이 휩쓸리다 보니 민망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차라리 그때처럼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상태면 또 모를까 지금은 멀쩡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어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저번처럼 뒤로 하는 게 낫겠다. 문서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라섰다. 우연재도 섹스가 나쁘지 않았으니 재차 제안했겠지만, 꾸준히 여자 친구를 사귀어 왔으니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함께였다.
어정쩡하게 올라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은 그는 힐긋 문가를 살폈다. 기세 좋게 하자는 대답을 할 때는 언제고 도망치듯 침실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우연재가 곧 들어올 테니 자세라도 취하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졌다.
“아, 옷…….”
벗어야 하나. 가볍게 걸친 티셔츠 자락을 만지작거린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침실로 들어서는 우연재가 보였다. 문서윤은 습관처럼 입술 안쪽을 깨물며 무릎을 약간 움직였다.
“읏.”
제대로 엎드리려는 찰나 팔이 붙잡히더니 몰아붙이는 힘에 떠밀려 그대로 쓰러졌다.
“엎드리는 버릇까지 들였네.”
또다시 멍청하게 눈을 깜박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재가 침대 위로 올라서자 몸 위로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문서윤은 제 얼굴 옆을 짚은 팔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문서윤.”
“……왜.”
긴장감에 꿀꺽 침을 삼키느라 대답이 조금 늦어졌다.
“뒤치기가 취향이야?”
“뭐라는 거야.”
듣기도 민망한 단어에 저절로 뺨이 달아올랐다. 문서윤은 손등으로 입꼬리를 가리며 눈썹을 찌푸렸다.
“근데 왜 자꾸 엎드려.”
우연재가 느릿하게 허리를 세우며 물었다. 무릎을 쥐는 손길을 따라 다리가 벌어지자 커다란 몸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어쩐지 민망해져 벌어진 다리를 살짝 움직인 순간 발바닥에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굴곡이 느껴지는 걸 보니 로션 같은 화장품 통인 듯했다.
“응?”
짧은 음절이 그리로 향하려는 시선을 앗아 갔다. 문서윤은 우연재가 아무렇지 않게 티셔츠를 벗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가 무엇을 되묻는지 깨달았다. 왜 자꾸 엎드리냐는 물음이었던 것 같다.
“그냥……. 보기 좀 그럴 수도 있잖아.”
“뭐. 네 자지?”
“아, 좀.”
인상을 찌푸리자 우연재가 키득거리더니 턱 끝을 까딱였다.
“만세 해.”
만세? 갑자기? 문서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양팔을 위쪽으로 올렸다. 숫제 만세라기보다는 벌을 받는 사람처럼 팔 모양이 구부정했다. 곧바로 커다란 손이 티셔츠 안쪽을 파고들었다.
“읏.”
깜짝 놀라 팔을 내리기도 전에 우연재가 티셔츠를 걷어 올렸다. 반사적으로 등이 뜬 탓에 얇은 옷은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문서윤은 부드러운 옷감이 목을 빠져나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뒤늦게야 상황이 파악돼 번쩍 눈을 떴을 때는 정전기가 인 것처럼 머리카락이 잔뜩 부슬부슬해진 채였다.
“왜 말도 안 하고…….”
시선을 끌어 올리자 우연재가 허리를 굽혔다. 문서윤은 저도 모르게 그를 피하듯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뜨거운 입술이 뺨에 닿더니 날카로운 이가 피부를 짓씹었다. 몸을 지탱하지 않은 팔이 갑작스레 공기에 노출돼 톡 솟아오른 젖꼭지를 만지작거린 것과 동시였다.
“흐읏.”
손가락이 꼬집듯이 젖꼭지를 건드려 댔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미미한 열기가 퍼져 나가며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낯선 감각에 문서윤은 반사적으로 우연재의 손목을 쥐었다. 그만하라고 밀어내도 밀려날 힘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하으, 흐…….”
아릿한 통증에 섞여 드는 쾌감에 고개가 절로 더 깊숙이 기울어졌다. 뺨을 씹어 놓은 잇새가 턱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번에는 귓불을 깨물었다. 말랑말랑하고 조그마한 살덩어리가 날카로운 이에 스치자 문서윤은 파드득 어깨를 움츠렸다. 나지막하게 웃는 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 마음이 간지러웠다.
“뭐, 뭐……. 흣!”
이어 귓가에 물컹물컹한 살덩어리가 닿더니 뾰족하게 세운 혀가 귓구멍을 파고들듯 미끄러졌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서라도 떼어 내고 싶었지만,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바들바들 떠느라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가 입술이라도 스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아!”
손가락이 빳빳하게 곤두선 젖꼭지를 꼬집자 절로 몸이 들썩거렸다.
“우연재, 흑, 윽, 뭐 하는데……. 읏!”
잇새가 또다시 귓불을 깨물었다. 가슴을 괴롭히던 손은 천천히 물러가나 싶더니 흥분이 오를 대로 오른 유두를 튕기며 장난을 쳐 댔다. 연신 귀를 괴롭히던 입술이 슬쩍 턱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를 깨물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가슴 진짜 잘 느끼네.”
갉작이듯 쇄골에까지 입술을 묻은 우연재가 시선만 끌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덕분에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언제 키득거렸냐는 듯 열기에 젖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예민하게 달아오른 몸이 조금 더 예민하게 물들었다. 벌써부터 사정감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네가, 읏, 자, 꾸, 건드리니까 그렇지.”
“건드리는 대로 느껴?”
“흐으, 아, 앗!”
“다른 새끼가 건드려도, 하, 이렇게 자지러지게?”
뭐에 짜증이 났는지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다소 사나워졌다.
“아으!”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는 게 문제였다. 두꺼운 손가락이 톡 튀어나온 유실을 사정없이 비틀 때마다 통증이 섞인 쾌감에 몸부림을 치게 됐다. 허리가 퍼득거리는 물고기처럼 자꾸만 움찔움찔 튀어 올랐다.
“하으, 아…….”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바르작거렸으나 우연재가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응?”
“아니, 안, 안 느껴…….”
“안 느껴?”
“응, 으응…….”
“응. 그래야지.”
“아, 읏!”
언제 제멋대로 꼬집었냐는 듯 가슴을 만지는 손길이 부드러워졌다. 문서윤은 헐떡이며 제 가슴에 달라붙은 손을 힐금거리다 훔쳐보듯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의도와는 다르게 곧장 우연재와 눈이 마주쳤다. 짜증 따위는 낸 적이 없다는 듯이 샐샐 눈웃음을 친 그가 슬쩍 몸을 뒤로 물렸다. 끝났나 싶어 안심한 순간 불과 몇 분 전까지 귀를 쑤셔 대던 혀가 잡히지 않은 쪽 젖꼭지를 노골적으로 핥았다.
“하, 하지, 아!”
보란 듯이 튀어나온 선홍색 살덩어리가 그보다 살짝 옅은 색소의 콩알만 한 살덩어리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아릿한 통증이 동반된 쾌락이 아니라 축축하고 뜨거운 점막에 휩싸여 온몸이 늘어지는 듯한 쾌락이 찾아왔다. 완전히 가슴에 입술을 밀착시킨 우연재가 쪽쪽 소리를 내며 제 타액에 젖은 젖꼭지를 빨아들였다.
“하으, 으, 흣…….”
문서윤은 반사적으로 팔을 내려 우연재의 어깨를 쥐었다. 성기를 자극당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느끼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스쳤다. 몇 시간을 해 대긴 했어도 섹스는 지난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과할 정도로 쾌감에 약한 몸이라는 자각이 밀려왔다.
“그만, 해……. 그, 그냥 하자. 응?”
익숙하지 않은 성감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헐떡이며 애원하자 우연재가 천천히 고개를 떼어 냈다. 톡 솟은 젖꼭지 위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가슴을 쥔 손이 물러나나 싶더니 거침없이 바지 안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