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아, 맞다. 나 금요일에 알바 끝나고 회식 있어.”
“회식?”
“응.”
“누구랑.”
“사장님이랑 주아.”
여태 검지를 쥐고 있던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움직여 상처 위를 건드렸다.
“다른 알바생들은.”
“사장님 알바 타임마다 회식 따로 하셔. 얼굴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어색해서 밥 잘 못 먹는다고.”
“늦게 들어올 거야?”
“회식하는 날은 카페 일찍 마감하니까……. 저녁만 먹고 들어올 것 같은데. 사장님 술 안 드시거든. 알바생들 붙잡고 자기 얘기 하시는 분도 아니고.”
문서윤은 웬일로 궁금한 게 많네, 생각하면서도 꼬박꼬박 대답했다. 회식이라고 해 봤자 밥만 먹고 헤어지는 정도라 집에 돌아오면 평소 마감 시간과 얼추 비슷할 터였다.
“뭐 먹는데.”
“장어.”
“장어?”
그에게도 의외의 메뉴였는지 우연재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내 뺨에 장난기가 매달리더니 입꼬리가 비스듬히 당겨졌다.
“장어 먹고 뭐 하려고?”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장어가 남자들에게 좋다는 속설이 떠올랐다. 문서윤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하긴 뭘 해. 주아가 먹고 싶다고 한 거야.”
“아무튼……. 알았어.”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던 손이 그제야 천천히 물러갔다.
“빨리 들어와.”
떨어져 나가던 손톱이 상처가 난 선 위를 스쳤다.
“나 쓸쓸하게 두지 말고.”
* * *
“그럼 주아만 데리고 들어갈게. 월요일에 봐. 물론 나는 매장에 없겠지만.”
“오빠 월요일에 봐요!”
“네. 들어가세요. 주아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문서윤은 인사를 건넸다. 마침 사장인 이현수가 송주아와 같은 방향에서 사는 터라 그녀가 송주아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는 두 사람이 올라탄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핸드폰을 향해 시선을 떨어트렸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연재였다.
그대로 받으려는 순간 앞쪽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익숙한 차 한 대가 식당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문서윤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레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자 시원한 에어컨 공기가 피부 위로 스며들었다.
“회식이라더니 진짜 일찍 끝나네.”
우연재가 차를 출발시키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술 안 마신다니까. 그나저나 시간 딱 맞췄네?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원래 본가 가서 저녁 먹고 나오면 이 시간대니까.”
우연재가 본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오는 길이라 동선이 맞아떨어졌다.
“집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저번에 이모 말씀 들어 보니까 너 평소에는 본가 잘 안 들른다며.”
제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뭣하지만, 우연재 역시 주말마다 꼬박꼬박 본가에 들르는 편은 아닌 듯했다. 이모 말씀도 그렇고, 방학 후에도 가는 꼴을 본 적이 없으니 틀린 짐작은 아닐 테다.
“찬거리 가져올 겸, 겸사겸사.”
문서윤은 무심결에 뒷좌석을 살폈다. 종이 가방이 잔뜩 놓여 있었다. 뒤늦게야 어떠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까 나 여태 밥까지 얻어먹고 있었네. 아저씨 번거로우셨겠다. 일 두 배로 하셔야 하잖아.”
사람이 왜 이렇게 염치가 없지? 지금껏 의식하지 못한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연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문서윤 또 선 긋네?”
“선은 무슨 선이야.”
“너랑 나 같이 사는 거 빤히 아시는데 찬거리 좀 더 받아 왔다고 네가 그런 소리 했다는 거 아시면 아저씨 서운해하실 것 같은데.”
그런가. 문서윤은 가물가물해진 얼굴을 떠올렸다. 우연재의 집에 오랫동안 들락거린 만큼 오랫동안 봐 온 분이셨다. 뒤늦게야 이것저것 따지면 섭섭해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네. 아저씨한테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몸만 들어오라는 말에 간신히 관리비를 내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식비 얘기까지 꺼내면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게 뻔해 문서윤은 대화 주제를 돌리길 택했다.
“저녁은 뭐 먹었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편안한 일상이었다.
* * *
“문서윤.”
익숙한 목소리가 이름을 불렀다. 설핏 잠에서 깨어나는 감각과 함께 문서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다시 속눈썹을 늘어뜨렸다. 곧 침대가 살짝 꺼지는 듯한 기척이 느껴지더니 차가운 손이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요즘 통 못 일어나네.”
이마를 건드리던 손이 아래로 내려와 약하게 뺨을 눌렀다. 시원한 감각이 스며들자 문서윤은 반사적으로 커다란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굴 줄 알았다는 듯 서늘한 체온은 멈칫하는 대신 거침없이 뺨을 쥐었다.
“서윤아.”
“어어…….”
문서윤은 가까스로 목소리를 울렸다. 손의 주인이 우연재라는 사실은 그가 건드린 순간부터 눈치챈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움찔거리거나 화들짝 놀라 떨어지려 했을 텐데, 밤에 잠을 못 자서인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처졌다.
“일어나. 아침 먹게.”
“……먹기 귀찮아.”
저도 모르게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말투가 튀어 나갔다.
말을 덧붙일 기력도 없어 문서윤은 간신히 눈꺼풀만 끌어 올렸다. 계속 이쪽에 눈길을 두고 있었는지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뺨을 쥐고 있던 엄지가 입꼬리 근처를 꾹 누르더니 붉은 선을 따라 미끄러졌다.
뺨과 달리 혈색이 도는 살덩어리가 그 움직임을 따라 뭉그러지며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직접 먹여 줘?”
손가락이 입술 안쪽의 축축한 점막을 스치고 나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문서윤은 간신히 우연재의 손목을 낚아챘다.
“알았어. 먹을게.”
장난이었는지 손은 힘을 실어 밀어내기도 전에 천천히 물러났다.
“지금 일어나.”
“응…….”
먼저 침대에서 내려선 우연재가 팔꿈치 안쪽을 잡아채자 문서윤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벌써 에어컨을 틀었는지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어떻게 걷는지도 모른 채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향하자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문서윤은 그제야 약간 정신을 차렸다.
“웬 죽?”
“아저씨한테 해 달라고 부탁드렸어. 요즘 잘 못 먹길래.”
어제 본가에서 가져온 게 이거였구나. 멍하니 서 있는데 팔을 놓은 우연재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허리를 매만졌다. 아침인 데다 무기력함 때문에 몸에 힘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파드득 튀어 올랐을 만큼 거침없는 접촉이었다.
“살도 빠졌고.”
“이맘때 그러는 거 알잖아.”
열여섯 살부터 시작된 증상을 소꿉친구인 우연재가 모를 리 없었다. 문서윤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하며 자리에 앉았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우연재가 대놓고 인상을 구겼다.
“군대에서는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네…….”
“그땐 군 생활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지. 훈련받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 밤에는 눕자마자 기절하고.”
미지근한 물부터 천천히 삼킨 그는 죽을 한 숟가락 뜨며 대꾸했다.
문서윤은 계절성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올 즈음에 앓곤 하는 증상이라 엄밀히 말하면 계절성은 아닐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름을 탄다고 여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8월 중순이었으니, 한창 더운 시기였다.
“제대하고 나서는.”
우연재가 죽을 먹으며 물었다. 문서윤은 멍한 머리로 쟤 죽 싫어하지 않았나, 하는 싱거운 생각만 했다. 식성이 까다로운 만큼 싫어하는 식감의 음식도 제법 많았다.
대답할 정신이 든 건 우연재가 답을 종용하듯 눈썹을 끌어 올렸을 때였다.
“작년에도 지금이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1년 전이라 기억 잘 안 나.”
매년 겪곤 하던 일이라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답하자 우연재가 끌어 올린 눈썹을 그대로 찌푸렸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너무 생각 없이 말했나 싶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게 됐다.
하지만 정말 특별할 것 없었다. 지금처럼 입맛이 뚝 떨어지며 살이 빠지는 정도였다. 무거운 무기력증이 온몸을 덮쳐 왔으나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덕에 오히려 괜찮았던 것 같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대에 몸을 움직이면 잡념이 떨어져 나가며 쓸데없는 생각을 할 틈을 없애 주었다.
“제대하고 바로 아르바이트 구했으니까……. 일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은데. 나 진짜 괜찮아.”
“올해는 식사 제대로 챙겨.”
절로 시선이 죽을 향해 내리깔렸다. 확실히, 우연재가 억지로 일으키지 않았다면 먹지 않았을 아침밥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본가였다면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대충 먹었을 테다.
“그래서 지금 먹고 있잖아. 아저씨한테 챙겨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맛있다고.”
이맘때 컨디션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대화 주제를 돌렸으나 우연재는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름 우울증이 더 위험해.”
“……너 있어서 괜찮아.”
문서윤은 잠깐 머뭇거리다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의 우울증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도 우연재였다. 며칠간 저를 집요하게 관찰하던 시선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를 막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던 시기라 곤란했던 기억도 함께였다.
우연재가 그의 어머니에게 이상을 알리지 않았다면 문서윤은 아직도 이맘때쯤 닥치곤 하는 미묘한 우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있어서 괜찮아?”
우연재가 턱을 괸 자세로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오늘 나눈 대화 중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찌푸려진 미간이 서서히 펴지며 눈매가 해사한 눈웃음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