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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샤워 (105)화 (105/139)

105화

도착 예상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전화를 건 듯했다.

“…….”

전화는 긴 망설임을 이기지 못하고 뚝 끊겼다. 받지 않았으니 곧장 저를 찾으러 나올 게 분명했다.

문서윤은 물을 잠그고는 손을 닦았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굴어야만 했다.

간신히 숨을 고른 뒤 핸드폰을 챙겨 뒤를 돌았을 때였다. 막 화장실로 들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전화 안 받던데.”

얼굴을 쳐다보던 눈동자가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미끄러졌다.

“받으려고 했는데 끊겼어. 나 찾으려고 나왔어?”

달달 떨릴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달리 다행히 목소리는 평온하게 흘러나왔다. 그동안 마음을 감추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늦길래 혹시나 하고.”

“손 씻고 가려고 했어. 먼저 마시고 있지.”

“김현승 이미 마시고 있는데.”

느릿하게 입술을 끌어 올린 우연재가 무언가를 가늠하듯 꼼꼼하게 얼굴을 훑어 내렸다. 문서윤은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하며 우연재 옆으로 다가갔다.

“가자. 현승이 기다리고 있겠다.”

“울었어?”

“……안 울었어.”

곧게 뻗은 눈썹이 찌푸려지며 미간이 슬며시 구겨졌다. 문서윤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꺼림칙한 게 있을 때 짓곤 하는 표정이라 더 되물을 줄 알았더니 우연재는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알았어, 그럼.”

대답은 조금 뒤에야 흘러나왔다.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뻔했으나 문서윤 역시 모르는 척, 걸음을 옮겼다.

우연재를 잘 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괴로웠다.

무슨 정신으로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문서윤은 술에 취한 채로 거실 창을 때리는 빗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대리를 부를 때까지만 해도 한두 방울 떨어지는 정도였던 비는 지금은 하늘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퍼붓듯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도수 높은 와인에 푹 절여진 데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릿속이 몽롱한 와중에 빗소리까지 더해지자 정신이 뭉개지는 기분이었다.

우연재가 씻는 소리는 비가 내리는 소리에 묻혀 귓가에 닿지 못했다.

“…….”

김현승 덕분에 술자리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나 동창들의 근황, 취직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화두에 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고가의 와인과 아무도 없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여느 대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술자리였다.

끝끝내 피아노에 대한 고민은 꺼내지 못했다. 티끌만 한 증거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맞은편에 앉은 우연재를 끊임없이 힐긋거리느라 그럴 만한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제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자 모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이렇게 웃어서 티가 났을까, 아니면 이런 말을 해서 티가 났나, 끊임없이 몰아치는 검열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날을 세워 관찰했는데도 우연재는 평소와 똑같았다. 적당한 때에 농담을 던지고, 김현승의 말을 받아치고, 때로는 빈정거리고 또 때로는 약한 척을 하는 모습이 평소의 우연재 그대로였다.

그러나 문서윤은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은 순간을 착각이라 여길 만큼 제 소꿉친구를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명료한 과시였다.

“…….”

술기운이 오르는지 머리가 엉망으로 휘저어지며 취기가 올랐다. 점차 또렷해지는 빗소리와 달리 감정은 여러 색채가 뒤섞여 흐물거리기만 했다.

“거기 앉아서 뭐 해.”

문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다 씻었는지 소파 앞으로 다가온 우연재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뺨을 쥐어 얼굴을 살폈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자.”

어머니의 기일이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라고 술 먹인 거니까.”

문서윤은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말없이 올려다보는 시선이 의아했는지 우연재가 고개를 기울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같이 자 줘?”

가끔 저를 놀릴 때 내뱉곤 하던 농담이었다. 아무런 성적 의도가 내포되지 않은, 한 침대에서 자겠느냐는 친절한 물음이었다.

“……응.”

문서윤은 가까스로 한 음절을 내뱉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던지 우연재가 고개를 바로 하며 재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기다란 눈매 속에 갇힌 새까만 동공이 하얀 조명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연재야.”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는 뺨이 찌푸려졌다.

“섹스하자.”

이 정도는 슬픔에 취한 취기라 둘러댈 수 있었다.

“나 좀…….”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안아 줘.”

“아, 읏! 흐읏, 흐……. 너무, 깊…….”

문서윤은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우연재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러잖아도 간신히 벌어진 구멍이 아래에서 위로 들어차는 성기에 꾸역꾸역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하아, 안아 달라며?”

목을 감싼 팔에 힘을 싣자 몸이 한결 가깝게 맞붙었다. 생소한 자세라 절로 숨이 헐떡여지며 반사적으로 아래를 조여 물었다.

“누워서 할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연재가 허리를 치댔다. 엉덩이가 탄탄한 허벅지 근육에 문질러지며 한계까지 늘어난 구멍이 흉포한 성기를 삼켰다.

“흐으읏, 아…….”

“안아 달라고, 보채서, 읏, 안아 줬더니…….”

정상위로 시작한 섹스였다.

문서윤은 무언가를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안아 달라는 듯 팔을 뻗어 보챘고, 우연재는 순순히 품을 내주었다. 안아 달라 청한 이가 거세게 치받는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등을 끌어안은 팔을 자꾸만 떨어트린 게 문제였을 뿐이다.

평소와 다른 태도를 어머니의 기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우연재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곧바로 허리를 받쳐 몸을 끌어당겼다. 그의 허벅지에 올라탄 자세로 섹스를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좀, 흐윽, 천천, 히, 아!”

앉은 체위라 삽입이 깊어졌다. 그러잖아도 커다란 살덩어리가 배 안을 쑤셔 대는 통에 속이 더부룩한데, 이러다 좆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낯선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생각이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알았어. 하, 천천히.”

우연재가 달래듯 뒤통수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더니 부드럽게 머리를 헤집었다. 엉덩이 아래로 내려온 손가락은 찢어지지 않았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구멍 주변을 매만졌다. 얇은 피부에 손가락이 닿자 오싹 소름이 돋으며 절로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잖아도 간신히 벌어진 내벽이 꼬물꼬물 움직이며 저를 들쑤시고 있는 좆을 꽈악 집어삼켰다.

“아으, 흐…….”

“하아, 서윤아.”

문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벽이 꿈틀거리는 건지, 안에 틀어박힌 좆이 꿈틀거리는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꽉 다물린 안쪽이 우연재의 좆 위로 불거진 핏줄 모양을 따라 그대로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해, 달라면서.”

“흐으읏, 으응……. 아앗, 아! 아아! 아!”

느려지는 듯하던 허리 짓이 점차 빨라졌다.

“이렇게 조르면, 후으, 어떡하라고.”

머리를 감싼 손이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문서윤은 가까스로 팔에 힘을 실어 우연재를 끌어안듯이 몸을 더 바투 붙였다. 지독하게 애무당해 부어오른 젖꼭지가 볼품없는 저와 달리 탄탄한 가슴 근육에 뭉개지며 쾌감이 위아래로 들끓었다.

“아흑! 아!”

들썩거리는 움직임을 따라 머리를 받친 손바닥이 간혹 목덜미를 스칠 때마다 오싹한 성감이 일었다. 문서윤은 우연재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연신 흔들렸다. 신음과 함께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뚝뚝 떨어졌다.

“아흐으, 으읏, 으…….”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듯 턱선을 타고 내려와 뺨을 쥐었다. 고개가 그 손길의 의도를 따라 옆으로 돌아가자 순식간에 시선이 뒤엉켰다. 문서윤은 반쯤 초점이 나간 눈으로 우연재를 응시하며 저도 모르게 배를 더듬었다. 말랑말랑한 피부가 아닌, 툭 튀어나온 무언가가 느껴졌다. 뱃가죽 아래에 있는데도 딱딱한 감각이 여실히 느껴졌다.

나약한 압박을 느꼈는지 우연재가 사납게 웃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좋아서 이러는 건지, 하, 힘들어서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연재야아, 하앗, 으, 튀어나왔…….”

“응. 튀어나왔네.”

아래를 확인한 우연재가 웃는 소리를 내며 눈을 맞춰 왔다.

“버티기 힘들면.”

이내 손가락이 힘없이 벌어진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 입을 조금 더 벌리게 만들었다.

“하아, 어깨라도 깨물어.”

문서윤은 줄에 매달린 목각 인형처럼 우연재의 손길을 따라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숨을 헐떡이느라 약간 벌어진 정도가 전부였던 입술은, 지금은 입을 다무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처럼 완전히 벌어져 신음만 내뱉었다.

“흐으, 읏, 아…….”

사납게 주어지는 폭력적인 쾌감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쓸 때였다. 얼굴에서 떨어져 나간 손이 엉덩이를 받쳤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하얀 살이 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강한 악력이었다.

“흐윽, 왜애…….”

문서윤이 영문을 몰라 바르작거리는 사이 핏줄이 불거진 손은 제가 떠받치고 있는 몸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아, 이거, 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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