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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샤워 (112)화 (112/139)

112화

이맘때에는 신경이 미미하게 곤두서고는 했다.

우연재는 문서윤이 남긴 음식량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많이 먹은 편이라 나쁘지 않았다.

여름을 맞은 문서윤이 티 나지 않게 늘어질수록 우연재는 오히려 날카로워졌다. 여태 문서윤이 돌발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별다른 사고가 없다 해서 마냥 안심할 정도로 우연재는 허술한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문서윤을 관찰하고는 했다. 허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작년이랑 재작년에는 괜찮게 지나갔다고…….’

처음으로 떨어져서 맞이한 여름이라 내내 초조했던 것 같다.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던 건 몸이 힘들면 곧바로 지쳐 잠드는 문서윤의 버릇을 알고 있는 데다 아버지가 군대 내부에 둔 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확실히 3년 전보다는 올해가 괜찮아 보이긴 했다.

“이렇게 지나가면 다행이긴 한데.”

문서윤을 제 오피스텔로 끌어들인 건 그의 계절성 우울증도 한몫했다. 수면 시간까지 조절할 수는 없어도 잘 먹이며 이번 여름을 보낼 생각이었다.

우연재는 재차 날짜를 확인했다. 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평소의 컨디션을 되찾고는 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별문제 없을 것이다. 별일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괜찮겠지.’

그 별일을 제어하기 위해 문서윤을 옆에 두고 있으니 괜찮아야만 했다.

* * *

우연재는 차를 몰았다. 조수석에는 하얀색과 분홍색이 섞인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본가에서 무슨 일 있었던 것 같은데…….”

운전 도중에도 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렸다. 운 게 분명한데도 별일 아니었다며 대답을 회피하던 목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오늘은 문서윤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아무리 제가 새벽 일찍 출발했다 해도 오피스텔을 나서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정신적으로 지쳐 잠으로 도피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예민한 시기라 더 캐묻는 대신 그냥 넘어갔으나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였다.

우연재는 핸들을 두드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 테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조수석에 둔 꽃을 챙긴 뒤 차에서 내려섰다. 검은색 슈트 아래로 검은색 구두가 땅을 밟았다. 장례식장도 아니고 수목장림을 방문하기에는 지나치게 예의를 차린 복장이었으나, 이곳을 방문할 때는 최대한 격식을 지키는 편이었다.

상복을 입은 채 소리도 없이 울던 어린아이가 아직도 눈에 밟혀 그런 모양이었다.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긴 그는 커다란 나무 근처에서 멈춰 섰다. 고인의 뜻을 따라 숲에 안치했다고 들었다. 지극히도 그분다웠다.

“저 왔어요.”

우연재는 살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나무 아래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잘게 불어오는 바람이 보드랍게 생긴 꽃잎을 흔들었다.

여름은 여름인지 이른 아침에도 햇빛이 제법 쨍쨍했다. 그러나 무더운 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다소 축축한 걸 보니 저녁 무렵에는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우연재는 가만히 서서 나무 기둥을 응시했다.

가끔은 그런 상념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문서윤의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는 저를 향한 문서윤의 애정이 결핍에서 나왔음을 잘 알았다. 어머니를 잃지 않았다면 결핍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또 계속해서 피아노를 쳤을 테니 지금쯤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

우연재는 느릿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푸릇푸릇한 잔디 위에 놓인 꽃다발은 멀리서도 눈에 띌 것 같았다.

문득 꽃집에서 나눈 가벼운 대화가 귓가를 스쳤다.

‘선물할 꽃 찾으신다고요?’

‘네.’

‘이건 어떠세요? 리시안셔스인데 예뻐서 인기가 많아요.’

다른 꽃들과 달리 부들거리는 느낌이 문서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예쁘네요. 그걸로 할게요.’

‘잘 선택하셨어요. 꽃말 뜻도 좋거든요.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뜻이에요.’

변치 않는 사랑. 우연재는 별 의미 없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런 게 있기는 한가.

싱거운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서윤이 언제부터 저를 좋아했는지 궁금해졌다. 감정을 캐물을 생각이 없으니 영원히 듣지 못하는 답이 되겠지만.

물끄러미 꽃다발을 내려다보던 그는 말을 걸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매년 찾는 장소였지만, 나무에 대고 말을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꽃 좋아하셔서 가져왔는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왕이면 저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 오래 가길 바랐다.

“제가 이모 몫까지 서윤이 케어할 테니까…….”

그는 언제까지고 문서윤을 제 울타리에 둘 생각이었다. 그러니 강제하는 것보단 문서윤이 스스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쪽이 나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매몰되어서든, 아니면 제게 익숙해져서든.

“서윤이가 계속 저한테만 마음 두게 해 주세요.”

갑자기 제게 질려 도망가려 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저한테서 도망칠 생각 못 하게.”

원하는 건 그뿐이었다.

씻고 나오자 거실 소파에 멀거니 앉아 있는 문서윤이 보였다. 일찍 재우려고 와인까지 먹였건만 별 효과가 없는 듯했다.

“거기 앉아서 뭐 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문서윤이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이었다.

어딘가 넋이 나간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우연재는 슬쩍 눈썹을 찌푸리며 하얀 뺨을 쥐었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자. 그러라고 술 먹인 거니까.”

문서윤은 대답이 없었다.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을 보내올 뿐이었다.

빨리 재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우연재는 고개를 기울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같이 자 줘?”

가끔 문서윤을 놀리기 위해 내뱉던 농담이었다.

“……응.”

평소처럼 질색하며 제 침실로 도망가리란 예상과 달리 문서윤이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우연재는 가늘게 눈을 접었다. 빗소리가 신경을 거슬러 우울한 낯의 소꿉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연재야.”

차분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기어코 뺨이 찌푸려졌다.

“섹스하자.”

우연재는 설핏 인상을 찌푸렸다.

“나 좀…….”

문서윤은 금방이라도 익사할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안아 줘.”

“문서윤.”

“흐읏, 아아…….”

우연재는 성가시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기며 제 아래에 깔린 이를 불렀다. 문서윤은 대답 대신 허리를 감싼 다리에 힘을 싣기만 했다.

바르작거리는 정도라 고작 그 정도 힘에 몸이 쏠릴 리는 없었으나 다리를 움직여서인지 좆을 압박하는 힘이 강해졌다. 성기를 간신히 문 내벽이 움찔움찔 튀어 오르며 살덩어리를 쥐어짜듯 꾸물거렸다.

“읏.”

우연재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잖아도 간신히 삽입한 상황이라 쾌감보다는 고통이 우위를 점한 상태였다. 문서윤 역시 고통스럽기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텐데, 오늘따라 자꾸만 졸라 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우연, 재, 흣…….”

“응, 왜.”

우연재는 천천히 몸을 물렸다. 콘돔을 씌운 성기가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가 짓치는 허리 짓에 순식간에 형체를 감췄다.

“아!”

“후으, 씹…….”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게 만드는 편이 나을 듯했다. 섹스 후에는 쥐 죽은 듯 잠들곤 했으니 이쪽이 재우는 데도 수월할 테다. 우연재는 몸을 지탱한 팔에 힘을 실으며 재차 허리를 움직였다.

철썩이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엉덩이를 빠져나온 검붉은 좆이 또다시 비좁은 구멍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소리가 강해질수록 몸을 지탱한 팔은 물론 손등 위로도 핏줄이 불거졌다.

“아아, 아흣! 흐으, 읏, 으응…….”

문서윤이 자꾸 조르는 탓에 구멍을 흐물흐물할 정도로 풀지 못한 게 문제였다. 좁디좁은 곳에 커다랗고 딱딱한 살덩어리를 억지로 욱여넣으려니 무리가 가는 것도 당연했다. 우연재는 제가 힘든 만큼 문서윤 역시 만만찮게 힘든 상태라는 걸 눈치챘다.

“빨리, 느끼게, 해 줄 테니까…….”

“흐읏, 읏.”

“아파도 조금만 참아.”

“아흐, 으, 아!”

퍽, 퍽! 살과 살이 부딪치는 마찰음이 빗소리를 가렸다. 두어 번 더 허리 짓을 반복하자 문서윤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우연재는 본능적으로 제 성기가 도톰하게 부어오른 내벽을 직격으로 찔렀음을 눈치챘다. 그는 곧장 허리를 물렸다 거세게 처박았다.

퍼억!

“아아! 아, 하으으…….”

갑작스레 밀려온 쾌락이 견디기 어려웠는지 문서윤이 힘줄이 곤두선 손목에 제 손을 걸었다.

“하아…….”

우연재는 허리 짓을 멈추지 않으며 문서윤의 표정을 샅샅이 훑어 내렸다. 간헐적으로 눈을 깜박일 때마다 젖은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눈꼬리에서 눈물을 쏟아 냈다. 단순히 섹스로 인한 생리적인 눈물은 아닐 터였다.

‘차라리 이렇게 해소하는 게 낫긴 한데.’

자해보다는 섹스가 나았다. 상대가 다른 새끼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지금 문서윤과 몸을 섞고 있는 사람은 우연재 저 자신이었다. 제가 문서윤을 다치게 할 리는 없으니 고통밖에 주지 않는 자해보다는 섹스로 인한 쾌락이 훨씬 나을 테다.

몸을 섞는 행위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머릿속을 텅 비워 낼 것이다. 그러니 쾌락에 잠식된 문서윤이 실컷 울다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박아 줄 생각이었다.

“연재, 야아, 하으, 읏, 으……. 안아, 흑, 줘.”

문서윤이 서툴게 팔을 뻗었다. 껴안고 싶은지 가는 팔이 연신 등으로 올라오는데도 치받는 움직임에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졌다.

“하, 씨발.”

우연재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그대로 문서윤의 허리에 팔을 끼워 넣어 그를 일으켰다.

“아아!”

허벅지 위로 앉힌 자세에 자연스레 삽입이 깊어지며 신음이 한층 거세졌다.

“후으…….”

우연재는 호흡을 고르면서도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저뿐이라는 듯 붙어 오는 체온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다. 하얀 어깨에 코를 박은 그는 짙어진 살냄새를 들이마시며 연신 허리를 치댔다.

“아흣, 읏, 흐으.”

시선을 내리깔자 제 움직임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몸이 보였다. 견디기 힘든지 고개가 자꾸 뒤로 넘어가려 했다. 우연재는 허리를 껴안은 팔을 움직여 문서윤의 뒷머리를 받쳤다. 그 뜻을 눈치챘는지 문서윤이 치대듯이 어깨에 이마를 기대 왔다.

“흐윽, 읏, 아아…….”

목을 칭칭 감싸는 양팔에 몸과 몸이 완전히 맞붙었다.

“하아…….”

제게 매달리는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이 자세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우연재는 느릿하게 허리를 돌렸다.

어쨌거나, 푹 재울 생각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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