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 상담사 이야기-60화 (60/96)

EP. 60

"지현아, 사랑해.."

유진이가 내 바로 아래에 누워서, 날 향해 손을 뻗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행복함과 고양감을 고스란히 담아 나에게 내비치고, 나는 두 눈을 바라보며 열심히 허리를 흔든다.

날 옭아매는 듯한 그녀의 질에서 힘겹게 빼내고는 다시 박아넣는 피스톤질, 꽤나 오랜 시간동안 계속되는 이 섹스에 조금씩 지치기 시작한다. 아무리 중간중간 쉬면서 한다고는 해도 체력과 정력에는 한계가 있다.

“유진..아, 나도 사랑하긴 하는데.. 조금만 더 쉬자, 응?”

“왜? 방금 쉬었잖아.”

“이게 네 생각처럼 계속 되는게 아니라니까..”

“으응.. 하긴, 이제 잘 시간이긴 하지.”

“그래. 그니까, 이번에 가면..!”

다시 힘을 주어서 그녀에게 찔러넣는다.

“끝인 거야..!”

“그..래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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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일.

우편함에서 리스테린을 하나 더 발견한다.

이번에도 적혀있는 문구는 다르지 않다.

미안해, 사랑해.

그래..

포스트잇을 떼어내고는 주머니 안에 구겨넣는다. 학교 근처에서 찢은 후에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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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아.. 헤헤..”

지민이와 같이 먹는 학식.

주변에 우리의 얼굴을 아는 이들이 있을까봐 걱정되지만, 지민이는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계속해서 자신의 음식을 내게 덜어준다.

“확실히 교직원 식당이 더 맛있다니까요? 아빠는 왜 나가서 먹지? 아무튼 이거, 먹을만 하네요! 먹어봐요~”

“응, 고마워.”

지민이에게 살며시 웃어보이고는 그녀가 얹어놓은 돼지고기와 내가 시킨 카레를 위 안에 구겨넣는다. 눈치를 보며 수업을 들을 때의 스트레스를 식욕의 해소로 풀고자 한다.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넘기며 날 조여오는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을 속으로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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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선생님, 안녕하세요오..”

수정 씨가 들어온다.

“세상에, 수정 씨! 무슨 일인가요? 예쁘게 꾸미고 오셨네요?”

“예.. 예뻐..요? 헤헤..”

서툰 빗질의 흔적이 보이는 살짝 엉킨 머리와, 꽤나 수수하고 올드한 느낌의 니트 가디건..이겠지만 가디건이 미처 품지 못해 부각되는 그녀의 가슴, 그 아래로 이어지는 앳된 느낌을 주는 애매한 길이의 치마..

그리고, 굽히고 다니던 어깨가 오늘은 꽤나 펴져 있다.

그녀가 상당히 노력했음을 알고 있다.

“서.. 선생님이, 자신감.. 가지라고 하셔서.. 오.. 옷부터..”

“잘 어울리세요. 정말요. 아주 용기를 내셨네요. 잘 하셨어요!”

수정 씨가 배시시 웃으며, 주머니가 사라져서 오갈 데 없는 그녀의 손들로 부자연스럽게 자신의 옷을 매만진다.

“저.. 혹시..”

그녀의 손이 더 빠르게 움직이다가, 순간 멈춘다.

“오.. 오늘은, 밖에서.. 하면 안 될까요..?”

그녀가 정말 많은 용기를 낸다.

..원장님이 알면 분명 난리를 피울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럴까요? 그런 식의 상담도 괜찮겠네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코트를 챙긴다.

꽤나 빠른 진전에 안심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정신을 바짝 차리며 그녀를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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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선생님은, 정말로, 대단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건가요?”

“호..혹시, 기분 나쁘시면..”

“아뇨 아뇨, 저에 대한 수정 씨의 의견을 듣는 것도 아주 중요하니까요.”

그녀와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씩 저물며 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태양이 인간의 공간에도 자신의 빛을 나누어준다.

“저.. 저, 선생님은 착하시고, 또.. 귀.. 귀여운 애기 같으.. 아니, 그러니까, 그런데도 너무 머.. 멋지시고..”

“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데요?”

그녀에게 미소와 함께 대답해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다. 나와 그녀,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아주 성급하고 빠른 것임은 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타이밍에 고백을 한다라.. 만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 상담이라는 틀 내에서의 대화만을 나눈 남녀가..

내게는 너무나도 좋은 시나리오이지만, 또 잠시 쓸데없는 이성과 도덕이 그녀의 인생과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준 남자가 나이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이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일까?

그녀의 오갈 데 없는 마음이 내 얄팍한 호의와 친절에 매달리려한다. 그것을 인간의 마음을 이용한다고 말하고, 사이비나 다단계의 주된 영업 방식이다. 그리고, 내 외모가 그녀의 취향에 잘 맞아떨어지는지 영업 효과가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해야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녀가 말을 꺼내길 기다린다.

“서.. 선생님은..”

“네.”

“혹시.. 여.. 여자친구..가..”

그녀가 용기를 낸다.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아하하, 있죠.”

수정 씨의 얼굴에 좌절과 당황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다물어지지 않는 그녀의 입과, 굳어버린 그녀의 몸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에..아..."

그녀의 입에서 간신히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그렇죠, 선생ㄴ.. 선생님은, 이렇게 멋..지신데.."

자신이 바랬던 기적이 좌절됐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실망감과, 그것을 감추지 못하고 솔직하게 내뱉는 떨리는 음성.

내 앞에서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한다. 자신의 고백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아니, 그것이 나에 대한 호감이 담긴 질문이 아니었던 것처럼 수정 씨가 말을 이어나간다.

"아.. 아무튼, 선생님은 정..말.... 멋지고.. 멋..지고.."

그녀가 받은 충격이 제대로 문장을 만들어 상대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멋..ㅈ..."

말을 그만두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녀가 느끼고 있을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작업을 시작한다.

"수정 씨, 혹시.. 저를 좋아하시나요?"

"ㄴ...ㄴ..네??"

수정 씨가 급하게 고개를 든다. 감추려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솔직한 그녀의 리액션에 능청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아.. 혹시나 해서요. 내담자 분들 중에서는 상담사에 대한 감정이 조금 과해져서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수정 씨가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시길래.."

"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녀가 손을 급하게 저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지금껏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상담 관계까지도 깨어질까 봐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녀의 격한 몸놀림을 따라 흔들리는 커다란 가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쏠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수세에 몰린 그녀를 조금씩 몰아붙인다.

"하하, 그렇죠? 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혹시나 해서요."

"네..네에.... 당연..하죠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간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전하려 했을 터인데, 그것이 입구에서부터 막혀버렸으니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수정 씨의 손을 잡는다.

수정 씨가 내 손이 닿자 움찔거리며 화들짝 놀란 채로 나를 쳐다본다. 그녀의 짙은 다크서클과, 그 위에서 일렁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수정 씨, 혹시.. 속마음을 감추고 있나요?"

"아.. 아니에..요.. 정말로.."

수정 씨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사이사이에 울음이 섞여들어가기 시작한다.

"괜찮아요. 사람이 갖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수정 씨가 저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일부일 뿐이에요."

수정 씨가 어쩔 줄을 모르겠는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내 시선을 피한다.

내가 지닌 모든 친절함과 배려심을 담아 그녀의 눈을 조용히 바라본다.

불안한 듯이 갈 곳을 찾던 눈동자가 계속해서 흔들리다가 서서히 내 눈에 초점을 맞춘다.

"저..저는.."

"괜찮아요. 저는 수정 씨가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래요. 전혀 부끄러운게 아니에요."

"저는.. 선, 선생님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정 씨의 눈이 다시 흔들리며 조금씩 눈물을 머금기 시작한다.

"그.. 그랬는..데에..."

그녀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고, 고여있는 그녀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조금 훑어낸다. 내 손의 감촉에 그녀가 잠시 움찔하면서도, 내 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네, 그랬군요.."

"근, 근데.. 선생님이, 여자친구도 있고.."

"네, 그렇죠."

"그러면.. 저는.."

수정 씨의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꽤나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아낸다.

"괜찮아요. 수정 씨..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알겠죠?"

그녀를 보듬어준다. 나의 손에 그녀가 기대어 온다.

"저.. 저는, 어차피.. 선생님이랑은... 안 어울리니까.."

그래, 그 말을 하겠지.

"수정 씨,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수정 씨는 아름답고 예쁜 사람이에요. 자신을 가져요. 알겠죠?"

"그.. 그래도.."

양심을 집어넣어. 신경쓰지 마..

수정 씨에게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가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수정 씨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서, 선생님.."

그녀의 눈물이 멎는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그녀의 머리가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내일 상담 시간에는 같이 잘까요? 저희 둘 만의 비밀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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