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 상담사 이야기-73화 (73/96)

EP. 73

끼익-

문이 서서히 열린다.

마지막 힘을 담아서 엉금엉금 기어서는 방 밖으로 나가서는 소리를 지른다.

"...벽 뒤에, 칼 들고 있어..!!"

수정 씨가 나를 째려본다.

순간 열리던 문이 잠시 멈추고, 정적이 흐른다.

콰앙!

내 경고를 들었음에도 문 뒤의 인물이 강행돌파를 시도한다.

강한 충격에 문이 활짝 열리고, 가죽 재킷을 입은 채 바이크 헬멧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뛰쳐들어온다.

허나 그것을 저지하는 수정 씨가 몸으로 들이받아 벽으로 밀치고는, 자신의 칼날을 상대의 옆구리에 아주 깊숙하게 쑤셔넣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그런 수정 씨의 손을... 그녀가 있는 힘껏 붙잡아 칼을 막는다.

재킷 위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가슴과, 딱 달라붙는 바지가 내비치는 하체의 곡선이 그녀가 여자임을 보여준다.

유진이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한 이의 몸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칼이 둘의 중간에서 바들바들 떨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둘의 손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헬멧을 뒤집어쓴 이가 자상을 입었음에도 힘으로 수정 씨를 앞서기 시작한다.

그녀의 몸에서 칼이 빠져나온다.

당황한 기색을 솔직하게 내비치며 자신이 쥐고 있는 칼을 다시 찔러넣으려 하지만, 그런 수정 씨의 움직임을 상대의 손도 따라가서는 제지한다.

칼의 주도권을 두고 두 인물이 필사적으로 힘겨루기를 한다.

"이, 이이...! 이 개새끼...!"

칼을 꼭 쥔 상태로 수정 씨가 상대를 발로 차기 시작한다.

허나 무엇보다도 칼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집중하는 여인은 광기에 가득 찬 수정 씨의 발길질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칼에 집중한다.

덕분에 목표한 대로 칼을 쥔 손을 막는 데에 성공하고, 칼이 수정 씨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헬멧을 쓴 여인이 떨어진 칼을 발로 튕겨내 멀찍이 밀어내 버린다.

그 뒤로는 난타전이 이어진다.

헬멧을 쓴 이는 상대의 얼굴을 있는 힘껏 때려대고,

수정 씨는 상대가 칼을 맞은 곳을 있는 힘껏 때려댄다.

처음에는 수정 씨가 밀리는 듯했지만, 한번 살을 파고든 칼의 상처는 인간의 힘과 피를 생각보다도 많이 쏟아내기 마련이기에, 점차 수정 씨의 주먹질이 거세진다.

때리고, 맞고, 발로 차고..

꽁꽁 묶인 채로 그들의 싸움을 쳐다본다.

부디 저 헬멧을 쓴 이가 날 구원해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자신이 점점 밀리는 것을 눈치챈 헬멧의 여인이 난투전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선다.

수정 씨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그녀를 따라가려 하지만, 헬멧의 여인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헬멧과 어깨로 있는 힘껏 수정 씨의 배를 들이받으며 함께 고꾸라진다.

몸의 충돌과 땅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충격에 둘 다 잠시 몸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먼저 일어나는 것은 헬멧의 여인이었고, 그 단단한 오토바이 헬멧에 부딪힌 수정 씨는 자신의 배를 쥐어잡으며 고통을 신음하고 있다.

헬멧의 여인이 엉금엉금 기어서는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수정 씨의 등 뒤를 붙잡은 후에, 팔을 목에 감아 조르기 시작한다.

"에헤엑!! 크에겍..."

목이 조여지자 수정 씨의 몸이 발악을 하기 시작한다.

발이 이리저리 난동을 피우는데, 그 발이 마룻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내는 기분나쁜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손은 무언가를 급히 찾는 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기에 팔꿈치와 무릎으로 움직이며 칼 쪽으로 기어간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지지만, 필사적으로 기어간다.

그렇게 칼에 다가가, 입으로 물고는 수정 씨에게서 천천히 멀어진다.

"으게게겍..."

수정 씨의 다리가 점차 힘을 잃고, 이윽고 얌전해진다.

헬멧의 여인이 기절한 듯이 보이는 수정 씨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내 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그녀를 마주한다.

헬멧 안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그녀가 쪼그려 앉으며 내가 물고 있는 칼을 쥐어들고는 내 손목과 발목을 묶고 있는 테이프를 잘라낸다.

"...누나?"

대답을 대신해 헉헉대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내 팔을 구속한 테이프가 끊어진다.

팔이 다시 자유를 얻는다.

이번에는 그녀가 발목의 테이프를 붙잡고 칼질을 시작한다.

"누나야..? 응?"

탁!

테이프가 풀린다.

그녀가 내 어깨 아래로 팔을 들이밀고는 서둘러 부축한다.

더 이상 그녀에게 묻지 않고, 그녀의 도움을 받는다.

"아..흐윽!"

다리가 주저앉는다.

그녀가 내 다리를 살펴본다.

"..이제 못 걸어."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내 다리와 몸을 받친 채로 나를 힘겹게 들어올린다.

지치고 다친 그녀의 몸으로 나를 끌어안은 채, 그렇게 걸음을 옮긴다.

"고.. 고마워..."

아무 말도 없이, 그녀는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집의 현관문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당한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눈물과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애써 참으며 내 팔을 이용해 그녀에게 매달린다.

빗소리가 들린다.

봄을 적시는 암울하고도 칙칙한 새벽의 비가 세상을 조용하게 메운다.

"..니 여자친구한테, 오라고 했어..."

누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경찰은 못 불렀어. 미안해. 나 잡혀가."

그 지친 목소리에 기어코 눈물이 터진다.

"됐어.. 고마워..."

비가 굵게 뭉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빌라의 입구에서, 누나가 멈춰선다.

"비 맞으면, 감기 걸리니까.."

그렇게 서있는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팔이 무리를 하고 있는지 덜덜 떨려오지만, 나를 내려놓지는 않는다.

"..사귀고 있을 때 그랬어야지..."

"미안해."

"흐아아아아악!"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잔뜩 흥분한 채로 내뱉는 기합같은 소리와, 뛰는 듯한 발걸음 소리,

그것을 눈치채고 누나와 함께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우리의 바로 뒤에 피가 잔뜩 묻은 칼을 쥔 채로 달려드는 수정 씨가 너무 가깝게 도착해있었다.

누나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위험할 것 같았는지, 자신의 등으로 그저 그 칼을 받아들였다.

세 사람이 동시에 앞으로 쓰러진다.

비가 적당히 쌓여서는 찰박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셋이 함께 나뒹굴며 고통을 호소한다.

"끄...으윽.."

누나의 가슴팍에서 떨어진 몸이 제발 이런 끔찍한 고통을 그만 느끼게 해달라고 울부짖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 누나 쪽으로 향한다.

허나, 나보다도 수정 씨가 몸을 먼저 일으키고는, 이미 누나의 등에 박혀있는 칼을 빼낸다.

"이... 이 개 같은 새끼가, 어디서? 응? 어디서!?"

누나가 고통에 신음하며 힘겹게 몸을 뒤집는다.

수정 씨가 누나의 헬멧을 벗기고, 멱살을 끌어잡아 올리고는 울분을 토해낸다.

"이 씨바알!! 좆같은 새끼들아!!!"

마지막으로, 정말 이게 마지막이라며 마음을 다잡고는, 몸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을 참으며 수정 씨를 향해 기어간다.

"어!? 넌 뭔데? 응? 니들이 뭔데, 어!! 전부 죽여버릴 거야. 이 개같은...!"

수정 씨의 손이 다시 한번 강하게 칼을 쥔다.

칼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곧 내려찍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수정 씨에게 달려들어 칼을 붙잡는다.

누나는 아주 깊숙하게 찔린 상처를 부여잡은 채로 신음하고, 나와 수정 씨는 칼을 꼭 쥔 채로 축축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허나, 잠시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곧 그녀가 나를 제압하고, 내 목을 조른다.

"선.. 선생님은, 왜 저 년 편을 들어요? 응? 이제 내 남편이잖아! 어!? 씨이발!!!!"

차가운 비, 수정 씨의 원망이 담긴 뜨거운 눈물..

그것들이 내 얼굴을 적신다.

주변 집들에서 불이 하나둘씩 켜진다.

이 새벽 시간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과격한 소리에 사람들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불을 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익숙한 차 소리가 들린다.

"저 년 죽인 다음에, 다시 교육할게요! 네!?"

수정 씨가 있는 힘껏 목을 조른다.

그녀의 손가락이 목 안으로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내 목을 조인다.

그리고, 결국 수정 씨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기어코 자신의 칼을 쥔 채로, 누나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다.

정말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도 곧 죽지 않을까?

이런 고통과, 이런 비극을 겪는데, 분명 곧 죽을 것이다.

차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제 그 차의 불빛이 내 등 뒤에서 느껴진다.

수정 씨는 누나의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자신의 칼을 누나의 몸에 비집어 넣는다.

넣고, 빼고, 넣고, 빼고...

필사적으로 그 칼을 막아보려는 듯이 손을 올리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 듯이 수정 씨가 계속해서 찔러댄다.

그렇게 찔리는 와중에도 누나는 자신의 아랫배를 오른팔로 감싼 채, 몸을 웅크린다.

그러다가, 수정 씨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쏠린다.

그녀가 내 뒤에 멈춰 선 차를 쳐다본다.

칼부림이 멈춘다.

찰박거리며 내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수정 씨가 내 쪽을 쳐다본다.

얼굴로 구슬프게 내리꽂히던 빗줄기가 멈춘다.

대신, 검은 천이 내 하늘을 가린다.

"...미안해, 너무 늦었지? 이제 괜찮아. 다 끝내고 왔어.."

유진이가 울먹거리며 나를 끌어안는다.

그 상태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아가씨, 제ㄱ.."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마."

유진이가 차갑게 식은 얼굴로 수홍 씨의 말을 가로막는다.

"자.. 잠깐!"

수정 씨가 칼도 내팽개치고는 우리 쪽으로 기어 온다.

"너, 너...."

내 스마트폰에서 확인한 여인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진이가 자신을 부르는 수정 씨를 쳐다본다.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수정 씨를 내려다 본다.

혐오와, 역겨움과, 증오와, 경멸과, 원망...

그리고, 다시 눈을 돌려 피를 쏟으며 널브러져 있는 누나를 흘끔 쳐다본다.

"곧 죽겠네."

"내려놔..! 서, 선생님은 내 거야. 이 쓰레기 같은...!"

내 옷을 붙잡으며 매달리는 수정 씨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유진이가 내 다리를 놓친다.

다리가 바닥에 닿자 힘없이 땅바닥으로 주저앉게 되고, 그렇게 흘러내린 내 몸을 붙잡은 채로 수정 씨가 울부짖는다.

"이 개같은 년아..!! 역겨운 년! 어!?"

퍼억,

유진이의 주먹이 수정 씨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