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공을 피하는 시한부의 삶이란-2화 (2/112)

#2

띠띠띠띠.

밖에서 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얼굴에 맴돌던 졸음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주언은 재빨리 현관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돌아오면 표정 관리를 못 할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어서 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으니까.

“아직 안 잤어?”

명훤은 주언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는 듯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언을 바라보았다. 명훤의 얼굴에 옅은 피로감이 감돌았다.

현관이 꽉 차 보일 정도로 거대한 키, 둔해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근육이 보기 좋은 몸을 힘껏 껴안았다. 명훤이 익숙하게 주언의 허리를 껴안았다. 작은 편이 아닌데도 안기면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게 됐다.

“응. 기다렸어.”

“오늘 일이 많아서.”

명훤은 주언을 가볍게 안아 든 채로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명훤에게서 태양 같은 냄새가 났다. 능력을 쓰며 화약이 터졌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묻어나는 것뿐인데 주언은 명훤의 냄새가 태양 같다고 느껴졌다. 주언은 명훤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몇 지구까지 갔다 왔어?”

“5지구.”

5지구는 할렘가였다. 근래 들어 흉흉한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기관장님은 널 그렇게 아끼면서 너만 보내? 거기에 S급 에스퍼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내가 가야지.”

“가이드도 없이 가면 어떡해.”

“약 있으니까 괜찮아.”

“다른 팀원들은?”

“급박하게 간 거라 지우 씨 데리고 갔어.”

혼자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 주언이 멈칫한 것을 눈치챈 명훤이 뒷말을 덧붙였다.

“정찰만 하러 간 거야.”

명훤은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주언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너….”

주언이 입술을 달싹였다. 요즘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것도 아니면… 왜 전이랑 달라?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나온 건 실없는 말뿐이었다.

“지우 씨 가이딩 잘하지….”

명훤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욕실로 향했다. 아무리 S급이 괴물 같다고 해도 피로가 안 쌓이는 건 아니니까.

주언은 그런 명훤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밥은 먹었어?”

“어. 먹고 왔어.”

“…….”

명훤이 뒤늦게 몸을 돌려 답 없는 주언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같이 먹을까 해서 기다렸거든.”

명훤은 새삼스레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다.

“그냥 먹지 그랬어.”

명훤이 곤란한 얼굴로 주언을 바라보았다. 감동이 아니라 부담처럼 보였다. 주언은 멋쩍게 웃었다.

“중간에 뭐 먹어서 배 안 고프기도 해서.”

“그래?”

주언의 시선이 명훤의 빈틈 하나 없을 것 같은 등 근육에 닿았다.

“내일 먹게 정리해둬야겠다.”

쾅.

문이 닫혔다. 주언은 잠시 문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런다고 명훤이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오지도 않을 텐데.

“후우.”

새벽안개 같은 한숨을 뱉어냈다.

주언은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물줄기 소리를 등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

1지구 중심에 있는 기관은 아침에 유독 분주했다. 명훤은 잠시 들를 데가 있다고 해서 중간에 헤어지고, 주언 혼자 공격 1팀 사무실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언은 옆 책상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며 자연스럽게 앉았다.

“아참. 주언 씨 어제 없었죠?”

“네. 정기 검진 때문에요.”

“그럼 그 소식 못 들었겠구나?”

“지금 내부 소란스러운 거랑 관련 있는 일이에요?”

주언의 물음에 윤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눈을 반짝거리며 1초라도 빨리 말하고 싶어 안달 난 걸 보아하니, 큰일이 있던 모양이었다.

‘어제 명훤이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번에 L 기업 알죠?”

“네. 알죠.”

L 기업은 기관을 후원하고 있는 대기업 중 한 곳이었다. 숙소에 있는 모든 전자제품도 L 기업에서 나왔을 정도이니, 기관과 L 기업이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 집안에서 S급 가이드가 나왔대요.”

“네?”

주언이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공식적으로 한국에는 S급 가이드가 세 명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은 미국으로 국적을 바꿨고, 다른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해 은퇴에 가까워진 나이였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사기업을 운영했다.

기관에 소속된 S급 가이드는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가이드 한 명뿐이었다.

“그럼….”

“내일부터 공격 1팀으로 출근한다던데요?”

서윤진은 들떠 보였다. 희소식이었다. S급 에스퍼에게 가이드는 꼭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1팀에 A급 가이드밖에 없어서 S급 에스퍼들이 제 실력을 못 낸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꾸준히 거론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희소식은 자신과 관련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묘한 불안감이 스쳤다. S급 에스퍼에게 가장 먼저 정보가 전달되었을 테니까. 그럼 분명 명훤은 알았을 텐데 왜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그럼 팀을 새로 꾸리게 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주언의 어두워진 표정을 읽지 못한 윤진이, 곧 한국이 뒤집힐만한 소식을 먼저 안다니 너무 신기하다며 웃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명훤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시선이 일제히 명훤에게로 옮겨졌다.

기관은 각인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여명훤과 자신은 내내 함께했으며, 숙소도 함께 쓰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매칭되었을 뿐 서로 각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에 불안감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희 내일부터 새로 팀 짜게 되나요?”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명훤에게 물었다. 귓가에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공격 1팀은 최정예 에스퍼와 가이드로만 이루어진 팀이었다. 효율을 따지는 게 최우선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명훤이 주언 쪽을 흘끗 보고는 작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쿵.

심장이 배 아래까지 떨어지는 느낌에 주언은 두 손을 주먹 쥐었다.

**

새로운 팀원이 한 명이라고 해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팀을 아예 새로 구성해야 했다. 공격 1팀은 A와 B팀으로 나뉘며, A팀이 가장 최정예 팀이다. A팀에는 두 명의 가이드가 있다. 두 사람 다 최전선에 서는 것이 아닌, 한 명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킵 해두는 역할이었다.

원래 가이드 역할은 주언이 맡았고, 얼마 전 주언 없이 명훤이 출동했을 때 같이 갔던 이지우가 킵 역할로 A팀에 있었다.

불려온 팀원 몇몇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앞에 서 있던 강노훈이 책상 위에 두 팔을 얹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극비 사항이라 팀 브리핑도 새 팀원 합류 전날에 하게 됐지만, 이미 정해진 사항이야.”

“팀장님. 내일 말씀해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내일 스케줄이 생겨서.”

“내일 또 나가나 보네요.”

팀원들의 대답에 강노훈이 안심했다는 듯,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넘겼다. 공격 1팀이라고 적혀 있는 페이지에 익숙한 얼굴들이 떴다.

“크게 변동은 없을 거야. 다만 주언 씨는 2팀으로 따로 빼는 거로 하자. 그리고 주언 씨가 2팀에 가서 전력 보강됐으니까 공격 2팀 내부에서도 팀이 분할될 텐데, 거기서 주력 팀으로 갈 수 있도록 힘 써볼게.”

“…네?”

그래서 밀려나더라도 1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강노훈 팀장의 말에 주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지우 씨는 2팀 에스퍼들이랑 잘 안 맞아서 그래. 주언 씨를 2팀으로 합류시키는 게 효율도 더 좋고. 괜찮지?”

“…….”

이미 정해진 사항이라고 앞서 말했다.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도 겨우 명훤의 가이딩을 할 뿐, 다른 에스퍼와 가이딩은 합이 잘 맞지 않아 어려웠다.

“당장은 아니고, 인수인계도 해줘야 해. 한 달 정도. 아무래도 신입이 경력이 오래되지 않아서 말이야.”

“아.”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한 번도 두 사람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적 없었다. 주언이 고개를 돌려 명훤의 안색을 살폈다.

자신과 다르게 평온한 얼굴이다. 강노훈은 그런 주언에게 확인 사살을 하듯 말했다.

“명훤 씨랑은 이미 끝난 이야기야. 주언 씨한테 늦게 말해서 미안해.”

“…네.”

그제야 명훤이 자신을 호출하지 않고 이지우의 가이딩을 받은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은 더 이상 1팀에 있지 않을 테니까.

“팀에 사적인 감정 끌어들일 생각 없습니다.”

다행히 목소리가 떨려 나오지 않았다. 주언의 대답에 노훈이 주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과할 정도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주언 씨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좋아. 그럼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팀장이 다른 변동 사항에 대해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앞쪽에 앉아 있는 명훤을 흘끗거렸다. 분명 제 시선이 느껴질 텐데도 명훤은 단 한 번도 주언 쪽을 보지 않았다. 사적인 감정 끌어들일 생각 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의 이야기고, 감정적으로는 전혀 납득가지 않았다.

처음 우리가 같은 부서에 소속된 걸 알게 된 날이 떠올랐다.

‘같이 일까지 하게 되니까 신기하다.’

‘네가 나 질려 하면 어떡하지?’

명훤은 커다란 팔로 허리를 휘감고, 주언의 어깨 위에 고개를 파묻었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해.’

그럴 리 없는데 새삼스레 걱정하던 명훤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자신보다 키가 20cm나 더 큰 명훤이 귀여워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해서.

‘대답 제대로 해줘.’

‘그럴 리 없잖아.’

그럴 리 없다고 말하며 있는 힘껏 등을 껴안았다. 매 순간이 기적 같아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행복에 절여지는 기분.

“자. 그럼 다들 각자 제자리로 돌아갑시다. 세세한 변동 사항은 따로 개별 메일로 보내둘 테니까, 확인해.”

“네.”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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