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형. 그럼 우리 앞으로 같이 다니겠네요.”
문 앞에 있는 명훤의 뒷모습과 그 뒤를 뒤쫓는 지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지우가 흘끗 뒤를 보곤 문을 닫았다.
그 순간이었다.
“…허억.”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에 닿자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주언 씨?”
아직 나가지 않고 있던 강노훈이 의아하다는 듯 다가왔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당장에라도 기절하고 싶었다.
‘아마 전부터 느끼셨을 테지만, 앞으로는 일상생활이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의사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쓰러질 수도 있다고 했었나. 몸의 고통이 너무 커서, 의사가 했던 말이 흐릿했다.
“괜찮아?”
“…네.”
여기에서 토악질을 하거나 쓰러질 수 없었다. 방금 나간 팀원들에게도 들킬 것이 뻔했으니까.
“안색이 안 좋은데?”
“조금 피곤해서요. 저도 일어나 볼게요.”
주언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자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넘어지기 전 책상 위에 손을 얹어 겨우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덜컹, 하는 소리와 정적이 찾아들었다.
“안 괜찮은 거 같은데? 병원 가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정말 괜찮아요.”
벌컥.
문이 거칠게 열리고 주언이 서둘러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와중에 들켜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다리에 힘을 준 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을 나온 뒤부터는 흐물거리는 다리로 복도를 최대한 빨리 걸어 나갔다.
“욱.”
목 끝에서 왈칵 비릿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걸음을 급히 멈추고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곧 빠르게 걸음을 옮겨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칸막이 끝쪽에 들어가 문을 잠근 후에 손을 떼자 검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우욱.”
아침으로 먹었던 걸 그대로 토해냈다. 온몸에 오한이 났다. 약을 받아 왔는데 이런 식으로 아플 줄은 몰랐기에 가방 안에 뒀다.
‘앞으로 주머니에 챙겨 다녀야겠네.’
주언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몸이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점심시간 반납하고 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그 생각과 동시에 명훤을 생각했다. 명훤은 자신과 다른 팀이 되는 것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까는 서운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다행이었다.
“…다행인 일이야….”
1팀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병 때문에 떠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밀려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병 때문에 후임을 알아봐야 했는데, 그 기회가 빨리 온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에 등을 기대자, 냉기가 느껴지며 땀이 서서히 식어갔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더 늘어나겠지. 남몰래 아파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명훤과 거리를 두고.
말을 해야 하는 건 알지만, 될 수 있으면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동정심으로 명훤을 붙잡아두고 싶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오늘 일부터 하자.”
인수인계가 끝나기 전까지는 붙어 있을 테니 그때까지는 들키지 말아야겠다. 힘들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화장실을 나서서 걸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주언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명훤아.”
“여긴 왜 왔어?”
주언은 명훤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화장실에 오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 건 아니잖아.”
“바로 앞에 화장실 놔두고… 너 설마 울었어?”
“…아니.”
괜히 들켰을까 싶어 시선을 피하자, 명훤이 주언의 턱을 붙잡았다.
“눈 빨개.”
“…속이 안 좋아서.”
눈이 조금 빨갛긴 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도 안 날 정도로 미세했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 앞에서 누군가와 마주칠 거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명훤을 보자 난감했다. 주언이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덤덤하게 변명하자 명훤이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탁.
주언은 괜히 들키기 싫어 명훤의 손을 뿌리쳤다. 힘없이 내려간 손을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보던 명훤이 물었다.
“할 말 없어?”
“나 기다리고 있던 건 너인데, 네가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기밀이라서 말 못했어.”
“알아.”
“그래서?”
“일이 뭐 그렇지.”
“질문할 거 있으면 여기서 물어보고 끝내자.”
귀찮은 기색이 얼핏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자신이 나중에 서운하다고 할까 봐 미리 선수 치려고 하는 것이 뻔했다. 전이라면 물어볼 게 참 많았을 거 같은데, 지금은 아무것도 물을 게 없었다. 시기가 일렀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나 왜 따라왔어?”
주언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만, 명훤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고, 명훤의 세계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는 걸 명훤의 목소리로 확인받고 싶었다.
명훤은 그런 질문을 한 주언을 응시했다. 질문을 연달아 내뱉는 게 버릇이던 주언답지 않은 짧은 질문이었다. 미묘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 명훤은 주언의 얼굴을 새삼스레 다시 살폈다. 아까 붉다고 생각했던 눈가는 어느덧 괜찮아져 있었다.
귀찮은 걸 물어봐서 대답하느라 진이 빠질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편했다.
“팀장님이 가보라고 해서.”
“…그래?”
주언은 명훤의 대답에 희미하게 웃었다. 왜 저렇게 웃는 거지? 주언도 어쩌면 이 변치 않는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시기인지도 몰랐다. 이참에 시간을 조금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언아.”
“…나 오전 업무 하나도 안 해서 늦었다.”
하지만 주언은 명훤이 하려는 말을 눈치챘는지, 걸음을 재촉하며 명훤과 대화하는 걸 피했다. 어차피 지금도 거리를 두고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
명훤은 넓은 보폭으로 걸으며, 평소보다 걸음이 느린 주언을 먼저 스치고 지나갔다.
**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주언은 새로 들어오는 S급 가이드가 어딘가 모난 사람이길 바랐다.
“반갑습니다. 이호윤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바라던 것과 다르게 남자는 서글서글한 태도로 공격 1팀 팀원들에게 인사했다. 다른 일반 신입 사원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인사였지만 재벌인데 겸손하기까지 하냐며 팀원들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얼굴도 필요 이상으로 호감형이라, 갑질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윤진도 금세 이호윤과 웃으며 대화했다.
“진짜 잘 들어온 것 같아.”
일하던 윤진이 은근한 목소리로 주언을 불렀다.
“그래요?”
“응. 얼굴도 잘생겨, 성격도 좋아, 뭐 능력은 S급이니까 합만 잘 맞추면 되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 그렇지?”
“…그러네요.”
주언이 반 박자 뒤늦게 대답하자 윤진이 아차 싶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아참. 내 눈치 좀 봐. 주언 씨 미안.”
“에이. 저 그렇게까지 속 안 좁은데?”
주언이 웃어넘기자 윤진도 같이 웃어넘겼다. 윤진이 곧 비품실에 가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얼마나 공격 1팀에 위화감 없이 섞였는지, 점심시간이 됐을 때는 이호윤이 주언을 부르러 왔을 정도였다.
“선배님은 같이 점심 식사 안 하세요?”
“네. 먼저 드세요.”
지금 여기서 어색하게 구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팀원들이 이호윤을 보낸 이유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자리를 밀어내서 기분이 언짢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 끝나고 곧바로 회의 있다고 하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이 아니지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아직 자신에게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꼭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사다드릴까요?”
“아뇨.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냥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그가 자신 대신 명훤의 가이드가 되어 기분이 나쁜 것일 수도 있다.
휙.
주언이 티 날 정도로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인지 자신을 바라보는 이호윤의 시선이 불편했다. 사람을 대하는 게 아주 능숙하지만, 그 능숙함이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언은 묘하게 그 부분이 신경에 거슬렸다.
**
경기도 양평 외곽 쪽에 A급 던전이 발생했다. 던전 난이도는 높지만 인구가 많지 않은 구역이라 공략을 우선적으로 두지 않을 줄 알았다. 특히 신입이 들어와 인수인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략할 던전 난이도는 C급에서부터 B급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도록 계획해놨다.
아무리 등급이 높다고 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죽을 수 있는 곳이 던전이니까. 시간이 아깝지만 합을 맞춰서 새로운 팀과 화합을 맞춰나가는 것이 옳았다.
“갑자기 A급 투입이라뇨?”
“반정부 게릴라가 던전을 노린다는 소식이 있어.”
“…AGT요?”
“그래.”
강노훈의 긍정에 팀 분위기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AGT.
Anti Government Terrorist.
반정부 테러리스트.
생성된 던전은 국가의 재산으로, 국가에서 지정된 자가 아니면 출입을 금한다. 던전의 위험성을 사전 차단함으로써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다.
능력자를 관리하는 정부 기관에서 매년 에스퍼와 가이드를 배출해내며, 시민들을 보호하고 던전의 위험성을 부담하는 역할로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정부에서 구축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일부에서 던전과 던전 자원을 정부가 독점함으로써, 사회 지배 계층의 권력을 견고히 한다며 이 법을 반대하는 단체가 있었다.
그중 AGT는 과격파에 속하는 집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