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에스퍼와 가이드 중 실력자는 대부분 AGT에 소속되어 있었다. 차츰 세력을 키우던 AGT는 어느덧 정부에서 예의주시할 정도로 큰 세력이 되었다.
“이번에 호윤 씨도 함께 참관하도록 해. 지우 씨도 같이 가고.”
“네.”
“던전 안이라 AGT와 마주친다고 해도 목숨이 위협받지는 않을 거야.”
어째서냐는 질문이 나오기 전 강노훈이 자연스럽게 뒷말을 이었다.
“걔네를 믿는 게 아니고, 던전 내부 마력이 불안정하다고 보고받았거든. 걔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테고. 섣불리 광범위 공격하면 무너져 내릴 거야. 그러니까 우리 쪽도 조심해야 해.”
강노훈의 설명에 납득했는지 더 이상 관련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수거 팀은요?”
“이번에는 같이 가. 자원 수거 팀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야.”
보통 던전을 클리어하고, 던전을 닫지 않은 채 나온다. 최대한 많은 자원을 빼내 와야 하기 때문에 수거 팀은 며칠에 걸쳐 던전에 있는 자원을 수거한다.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공격 팀이 철수한 후, 몇 명의 에스퍼만을 대동한 채 수거 팀이 나선다.
“목표 시간은요?”
“목표는 내일 정오까지 던전 클리어,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 지시에 따라 수거 팀이 뒤따라 들어오고, 오후 7시 전까지 자원 수거.”
불안정하지만 일단 수거는 해야겠다는 정부의 굳은 의지가 돋보였다.
그 안에 있는 몬스터와 자원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혹시라도 AGT가 자원을 빼앗기 전에, 그 전에 작업하고 빨리 철수하라는 의미다.
“던전 밖에도 인력을 보충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은 급한 일정이라 공격 1팀이 스케줄을 조정했지만, 다른 곳은 무리야.”
“그럼.”
“그래서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가는 거야. 빨리 치고 나가는 거. 이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야.”
강노훈의 단호한 말에 주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찰에 대비하는 것보다, 먼저 선수 치는 게 낫다.
“맨날 인원 부족하대. 인원 더 보충하면 안 돼요?”
이지우가 힘들다며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그렇게 쉽게 보충할 수 있는 인력이면 연봉 그렇게 못 받지.”
“…치.”
“그럼 두 시간 후에 출발하도록 한다. 다들 준비 똑바로 해.”
“네!”
다들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A급 던전. 공격 1팀이라 위험한 던전에 가장 많이 투입되어 경험이 많지만, 만반의 준비를 한들 A급 이상 던전에선 항상 예상외의 상황이 일어나곤 했다.
주언은 제자리로 돌아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가방 안을 뒤적였다. 가방 안에 굴러다니는 약통을 손에 쥐었다. 어제 느꼈던 끔찍했던 고통 탓에 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여기서 통증이 시작되면, 그리고 그때 AGT와 마주친다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주칠 확률이 적다고 했다. 그러니까 괜찮을 것이다. 주언은 침착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선배님. 저는 뭘 챙기면 될까요?”
“아.”
언제 와 있었는지 이호윤이 살가운 얼굴로 주언의 옆에 서 있었다. 흘끗 시간을 보니 메일 보낼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비품실에 가려던 주언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일단 일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보내드릴게요. 비품실에서 챙겨야 하는 것들도요. 어차피 거기서는 말로 해야 하니까, 지금은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호윤을 어떻게 생각하든 인수인계는 확실히 할 생각이었다. 나중에 묻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질 정도로, 꼼꼼하고 세세하게.
얼마 뒤에는 모르는 건 스스로 해결해야 할 테니까.
**
탕-!
명훤의 총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던전 안에 있던 몬스터를 꿰뚫었다. 바깥도 가을의 끝자락이라 추워지긴 했지만, 던전 안은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추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새어 나왔다.
흰색 털로 뒤덮인 원숭이같이 생긴 몬스터가 붉은 눈을 희번덕 뜨며 팀원들을 위협했다.
쉬이익!
쉬이익!
“미친 원숭이 새끼들이 자꾸 나와!”
“엄청 넓고 춥네.”
지우가 질색하건 말건, 자신의 양팔을 껴안은 윤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탕-!
“후우….”
명훤이 총을 쏠 때마다 몬스터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명훤의 성질은 뜨거운 것에 가까웠다. 이 던전과는 상성이 반대다. 몬스터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게 장점이나,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큰 것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기 전, 빠르게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여명훤은 단순히 능력의 파괴력뿐만이 아니라 능력을 이용하는 응용력, 전투 센스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던전 안이 넓어서 A급으로 책정된 거 같은데?”
“생각보다 힘든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윤진과 노훈이 각자 능력을 한계치까지 썼을 때, 주언이 나섰다. 나중에 가이딩을 하는 것보다, 지금 다시 초기화시키는 게 낫다.
“쿨럭.”
두 사람의 가이딩을 끝냈을 때쯤, 기침이 나고 식은땀이 났다.
“주언 씨 괜찮아?”
“네. 괜찮아요.”
요즘 들어 가이딩이 조금 힘겨워졌다고 느끼긴 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된 주언이 쓰게 웃으며, 명훤에게 가려던 차였다.
“명훤이는….”
“나는 아직 괜찮은데.”
“제가 할게요.”
호윤이 재빨리 나섰다.
“응?”
“저도 제 몫은 해야죠. 어차피 앞으로 제가 할 텐데 빨리해 보는 게 낫기도 하고요.”
이호윤이 성큼성큼 명훤에게로 다가갔다. 명훤은 살짝 주언을 보았지만, 그게 다였다. 명훤이 수긍하듯 이호윤을 바라보며 눈을 살짝 감았다.
가끔 이지우가 명훤의 가이딩을 해줬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주언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한 번도 직접적으로 타인이 명훤을 가이딩 해주는 것을 본 적 없다는 뜻이다.
호윤의 기다란 손가락이 명훤의 등을 휘어 감았다. 가이딩은 가이드의 성격에 따라 형식이 제각각이다. 상대와의 상성이나 관계도 중요해서 가이딩 방식이 상대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가이딩 방식이 특이하군.”
명훤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열기에 휩싸였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
이호윤은 이렇게 피부를 맞닿게 하는 게, 그만의 방법일 것이다.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기분이 하강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보다도 빠르게 명훤을 진정시키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되는 일이겠지.’
주언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을 때였다.
콰앙!
이미 지나온 길에서 공기를 뒤흔드는 파공음이 울렸다. 생각보다 AGT는 미친놈들이었다는 걸 간과했다.
“피해!”
강노훈의 명령에 팀원 모두가 지형을 이용해 꺾인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벅찼지만 헐떡일 생각조차 못 하고 숨을 죽였다.
콰앙!
이번에는 폭발음이 한층 더 크게 울렸다. 폭발한 바위 조각이 주언의 발밑까지 굴러들어왔다.
파지직.
주언은 제 신발 앞까지 온 조각을 살폈다. 돌에서 전류가 느껴졌다.
‘전기?’
던전 안 전체를 울릴 정도의 거대한 폭발음이 만약 무기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에스퍼의 능력이라면 적어도 A급이다. 주언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기 능력을 쓴 에스퍼가 스케줄 조정 오류로 기관에서 자신들과 동시에 던전에 투입된 다른 팀이길 바랐지만, 기관에 전기를 다루는 능력을 가진 에스퍼는 서윤진 외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저벅저벅.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대화 소리가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갔나? 그러게 좀 빨리 걷자고 했잖아요.”
“개 빠르네 새끼들. 속도 높여.”
그렇다면 답은 하나, ‘AGT’가 온 것이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 일찍 왔지만, 결국은 안에서 마주쳐버렸다.
들어오는 방식도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강노훈의 지시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부상자가 생겼을지도 몰랐다.
광범위 공격을 하면 불안정한 던전이 요동칠 것이므로 공격을 조절할 거라는 예측 보고는 틀렸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부의 주요 인력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내놓을 놈들이었다.
주언은 등에 닿은 벽의 냉기를 느끼며 조급해지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강노훈이 손을 들어 올렸다. 신호를 알아챈 명원과 서윤진이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주언은 거칠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명훤이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리 강하다 한들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경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저벅저벅.
“어?”
“왜 그래요?”
멈칫.
“야. 뭔가 이상한데?”
걸어오던 사람 중 한 명이 걸음을 멈추고 의아함을 표출함과 동시에, 강노훈이 손짓으로 돌격을 지시했다.
던전 안에서 공격 주도권을 잃으면 안 된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선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콰콰콰쾅!
가장 선두에 있는 건 공격력이 가장 강한 명훤이었다. 명훤은 총을 쏘는 대신 손을 뻗어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상대를 정확히 노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무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그 뒤로 상대방이 반격할 수 없도록, 강노훈과 서윤진이 뒤이어 공격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