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공을 피하는 시한부의 삶이란-10화 (10/112)

#10

“윤진 씨 한 시 방향. 명훤이 네 시 방향으로.”

“네.”

명훤과 윤진은 강노훈이 지시한 방향으로 공격을 쏟아부었다. 강노훈은 자연 계열 능력자로 바람이 주된 무기였다. 공격에도 효과적이지만, 노훈은 공격보다 방어에 더 중점을 두었다.

쿠쿠쿠쿵.

콰앙!

전기 계열의 강력한 힘을 쓰지만 위력은 약한 윤진이 지쳤는지 숨을 헐떡였다. 한동안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났다.

나무와 돌 파편이 풍압에 휩쓸려 역류했다. 그 덕분에 공격의 여파가 공격 1팀에게 전혀 닿지 않았지만, 몬스터 살이 타는 냄새를 다 막는 것까지는 불가능했다.

“주언 씨!”

일반인 대부분은 인간의 외양에 가까울수록 몬스터의 지능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인간의 외형에 가까울수록 지능이 높은 몬스터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짐승이나 곤충을 닮은 몬스터 중에서도 지능이 뛰어난 몬스터들이 있었다.

몬스터 리자드도 지능이 높은 몬스터 중 하나였다.

지리를 이용하거나, 무리의 특성 혹은 인원수를 이용해 순식간에 먹잇감을 포위해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리자드는 그중 후자였다. 초반에 힘을 더 쓰더라도, 포위되기 전에 공격하는 게 파훼 방법이었다.

손끝에 전류가 흘렀다. 명훤의 페이스에 맞추기 위해 초반부터 무리한 모양이었다. 주언은 윤진의 손을 잡았다. 과열됐던 윤진의 호흡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사이 명훤이 나머지 몬스터들을 다 처리했는지 곧 폭발하는 소리가 멈췄다.

“호윤 씨. 지금….”

주언은 가장 먼저 명훤의 상태를 살폈다. 평소보다 능력이 빨리 폭주하는 것 같았다. 방대한 능력이 누적되어 가이딩을 받지 못했을 때 능력에 과부하가 걸린다. 컨디션에 따라 능력이 누적되는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질 수도 있지만 평소보다 가이딩을 필요로 하는 시간 주기가 짧았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가.’

하지만 그에게 가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네.”

주언의 말을 중간에 끊은 이호윤이 곧장 명훤에게 다가갔다. 이호윤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다.

“주언 씨는 체력 관리 너무 안 하신 거 아니에요?”

“아까 급하게 나가느라 체하셔서 그렇다잖아요.”

윤진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주언의 편을 들어주었으나, 이호윤은 말을 멈추고 싶지 않은지 툴툴거리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도요. 그런 기색이 있었으면 미리 말씀해 주시지. 방금도 틈 조금 보여서 기습당한 거 아니에요?”

이호윤의 손이 명훤의 헐떡이는 목에 닿았다. 핏줄이 불거졌던 목이 이호윤의 살이 닿는 부분부터 서서히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이호윤이 느른한 손길로 명훤의 목을 쓸었다. 명훤은 길들여진 짐승처럼 순순히 이호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공격할 때 던전 보스도 있었어. 결과적으로는 시간 단축해서 끝났으면 된 거지.”

강노훈이 쾌활하게 말했으나 주언은 동조할 수 없었다.

“…어….”

주언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주언의 경직된 태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뜨겁던 열기가 가시고 차갑고 축축한, 던전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자신이 아픈 걸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이기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울 만했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눈가가 뜨거웠다. 주언은 같이 나란히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다시 숙였다. 신발 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컨디션 관리 못 해서 미안해요.”

명훤의 턱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그 순간을 포착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언 씨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윤진이 아직 신입 사원이라 눈치를 장착 못 한 거 같다며 주언을 위로해주었다. 주언은 그런 윤진의 노력에 부응하려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제가 실수한 거 맞는데요. 뭐.”

무력감 때문인지, 발작을 일으킬 뻔했던 것 때문인지 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반차라도 쓸까 고민하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내 사무실에서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아무 때나 와도 돼. 기다리고 있을게.

**

쏴아아.

물을 틀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화장실 욕실 전등 아래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찬물로 연거푸 세수를 한 탓에 얼굴이 한층 더 파리해 보였다. 체력이 서서히 떨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아….”

짙은 한숨이 나왔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이 팀을 위험에 처하게 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알 거라고 믿었는데. 그건 자신의 오만이었다.

천천히 완만하게 떨어지는 게 아닌, 마치 절벽처럼 체력이 깎여 나갔다. 세면대를 짚은 손이 흔들렸다. 어깨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약 전처럼 AGT라도 마주쳤다면.’

아찔한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우주언. 너 뭐 해.”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 뭐가 묻어서.”

문 쪽에 어깨를 기대고 있는 명훤이 주언을 응시하고 있었다.

“퇴근한 거 아니었어?”

“잠깐 윤재가 보자고 했거든.”

“아아.”

거울을 보고 있는 걸 납득했는지 명훤은 뒤이어 말을 덧붙이는 대신 가까이 다가왔다. 한 발자국 가까워질 때마다 두 사람의 간격이 좁아졌다. 명훤이 손을 뻗어 주언의 뺨을 매만졌다.

“입술이 파래.”

“…여기 직장이야.”

“뭐 묻었는지만 봐주는 거야.”

변명이긴 했지만, 만약 묻어서 지우고 있었다면 거울을 통해 다 지워진 걸 확인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명훤도 모르지 않을 텐데 주언의 뺨에 닿은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의 온기가 주언의 뺨을 데웠다. 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요즘 명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가도, 지금은 전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요즘 너 이상해.”

명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말에 놀라 주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낯설게 느끼고 있는 건, 명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주언이 발끈해서 명훤의 중얼거림에 반박하려고 했으나 명훤이 조금 더 빨랐다. 뒷말은 소리가 되기도 전 명훤에게 삼켜졌다.

그가 단단한 팔로 주언의 허리를 휘감고 품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리고, 서로의 호흡이 교차했다.

명훤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에 얼굴이 따뜻해졌다고 느꼈는데 아니었다. 마치 불덩어리 같은 뜨거운 혀가 주언의 입술을 가르고 침범했다.

“흐으….”

익숙하지만 여전히 자극적인 그의 입맞춤에 순간 상황을 잊고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츱.

그의 손이 익숙하게 지분거리듯 척추를 더듬었다. 자신보다 자신의 몸을 더 잘 아는 명훤의 손은 빠르게 주언의 몸을 함락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혀를 받아들이느라 벌려진 입 사이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쾌감에 몸이 떨려 발가락 끝을 오므리고 그의 단단한 팔을 힘주어 붙잡았다.

츠읏, 츳.

명훤의 혀가 주언의 입천장을 쓸고, 고른 치아를 훑었다. 서로의 타액이 한데 질척하게 섞여들었다. 온몸의 감각이 그에게로 향했다. 몸에 힘이 풀려 몸을 휘청이자 명훤이 허리를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몸이 한 치의 빈틈없이 맞닿았다.

흠칫.

“…잠… 잠깐만.”

바깥 복도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서둘러 명훤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억지로 할 생각은 없었는지 명훤이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흘끗 뒤를 살피는 걸 보면 자신보다 기감이 좋은 명훤은 인기척이 난 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아….”

주언은 숨을 몰아쉬며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거칠게 훑었다. 명훤의 행동이 혼란스러웠다. 예전처럼 그냥 받아줬지만, 받아줬으면 안 됐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했다. 주언이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의 입맞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했던 입맞춤이었으니, 지금의 입맞춤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에 나눈 키스처럼 큰 의미 없었을 수도 있었다.

“가이딩 필요한 거면….”

주언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손등에 닿는 입술이 뜨거웠다. 명훤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야.”

“…….”

“그런 거.”

“그럼….”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왜 요즘 차가웠던 건지? 그럴 수는 없었다. 사실 그랬다고 그러면? 더 비참해질 수는 없었다. 주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명훤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그런 주언을 내려다보았다. 짙은 입맞춤에 뺨이 발그레해지자 주언의 안색은 한결 나아 보였다.

명훤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명훤이 팔에 걸치고 있던 짙은 네이비 색의 머플러를 빼내어 주언의 목에 둘렀을 뿐.

“오늘부터 저녁에 춥대.”

명훤은 능력 때문인지 추위를 잘 타지 않았다. 주언이 목에 둘린 머플러를 매만졌다. 일부러 가져온 걸까. 부드러운 감촉이 목 뒤를 간질였다.

“…너는 지금 퇴근해?”

“아니.”

“어디 가는데?”

“…알 거 없어. 간다.”

명훤의 안색이 묘하게 굳어져 더 물어볼 수 없었다. 그는 곧 볼일이 끝났다는 듯 주언을 등지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어디에 있었어요?”

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말 좀 하고 가요. 찾았는데.”

애교 섞인 목소리가 익숙했다. 주언은 짧은 사이에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호윤.

주언은 발에 못이 박힌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이호윤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화장실 안에 한참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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