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공을 피하는 시한부의 삶이란-13화 (13/112)

#13

“안 돼.”

병동 복도 쪽으로 가자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만 보일 뿐, 들어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언만이 유일하게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었다.

“폭발이 일어났어!”

“비켜요!”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야.”

사람들은 각자 경악에 찬 얼굴로 도망치기 바빴다. 주언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급하게 나가는 사람들이 주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폭발이라니.’

갑자기 왜?

작은 병원이라고 해도, 늘 만실이라 사람의 수는 적지 않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폭발을 일으킨 건지 전혀 짐작 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단순한 테러인가? 왜 하필, 오늘, 이곳에.

주언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아는 얼굴이 있길 간절히 바랐다.

“아주머니!”

주언이 다급하게 붙잡자, 상대가 뒤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주언의 손에 힘이 풀리기가 무섭게 상대는 힘 빠진 주언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뭐예요. 이거 놔요!”

“죄송합니다.”

병원복을 입어 체구가 비슷한 사람을 볼 때마다 붙잡았지만 은선이 아니었다.

“신고했으니까 우선 대피하세요!”

빠져나오던 사람 중 한 명이 안에 들어가려던 주언을 붙잡았다. 각 층에 있는 경비원이었다. 주언이 잘됐다는 듯 경비원의 팔을 붙잡았다.

“안에 아직 못 빠져나온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네?”

같이 나가려던 경비원이 난감한 기색으로 출입구 쪽을 흘끗거렸다.

“302호에… 김은선 환자가 아직 안 나온 것 같아요.”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다 확인했어요. 일단 내려가세요.”

“그럼 잠깐만 제가 확인해볼게요.”

주언이 경비원을 지나쳐 가려 했으나, 경비원이 주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마 밖으로 먼저 나갔을 겁니다.”

신고를 받고 구조대가 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계단을 타고 내려온 연기가 1층 복도까지 순식간에 차올랐다. 매캐한 연기에 시야가 흐려졌다. 코가 맵고, 눈이 따가웠다.

“나갔는데 없으면요?”

주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 나왔다.

“일단 대피하셔야 돼요.”

모르고 지나쳤으면 모를까, 위로 올라가는 걸 발견한 이상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경비원이 단호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주언의 어깨에 올려진 경비원의 손에 무게가 실렸다.

“죄송해요.”

“엇!”

주언이 경비원의 손목을 손등으로 매섭게 쳐냈다. 그러곤 무작정 위로 뛰어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콰아앙-!

잠시 멈췄던 폭발이 다시 한번 터졌다. 주언이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으나 풍압을 막아내는 건 무리였다. 폭발의 풍압에 몸이 날아간 주언이 벽에 부딪혔다.

거대한 폭발음이 귀를 찢어발기듯 울렸다.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에 주언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으….”

공기 중에 섞인 건물 잔해에 피부가 긁혔다. 다행히 생채기만 있을 뿐, 건물 잔해에 깔리지 않았다. 주언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침을 뱉자 입에 잔해 조각과 피가 섞여 나왔다.

공기가 조금 잠잠해졌을 때 주언은 앞으로 무작정 나아갔다. 하지만 계단 앞에 선 주언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힌 계단을 바라보았다. 폭발의 여파로 계단도 부서지고, 그 옆에 기둥 안에 있던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자신이 떠나니, 다른 가족은 남겨둬야 한다. 보지 않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저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셔츠로 얼굴을 닦자 검은 재와 먼지가 묻어 나왔다. 계단만 보고 달려가느라 경비원이 머리에 파편을 맞았는지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모습이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제발….”

밖에 있기를.

주언이 계단을 몇 번 다시 보다가 결국 등을 돌렸다.

“괜찮으세요?”

“으으….”

미약한 신음을 흘린 걸 보니 아직 의식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다.

“정신 차리세요. 밖으로 데려다드릴게요.”

주언은 서둘러 경비원의 팔을 붙잡아, 자신의 어깨에 두르게 한 뒤 그를 부축해 밖으로 향했다.

**

“제2 지구,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XX리에 위치한 청산병원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요. 갑작스러운 폭발 사고에 AGT가 연관됐다는 의심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2지구에서 AGT가 활개 치는 것이라면 정부 기관은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고….”

띡.

주언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껐다. 각종 자극적인 기사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병원 5층 끝에서 시작된 폭발로, 5층에 있던 환자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피해가 작다고 해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주언이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새겨질 정도로 주먹 쥐었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말 AGT일까.’

아직 증거를 찾지 못해 폭발을 일으킨 범인을 잡는 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모든 미디어가 AGT를 기다렸다는 듯 비난하고 있지만, 제2 지구의 작은 병원에 테러를 가할 이유가 없다.

테러 집단이긴 하지만 AGT는 민간인 상대로 테러를 자행한 적은 없으며, 그들에게는 나름의 신념이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주언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너무 오래 무릎 꿇고 있어 다리가 저렸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사진이 없어 단체 사진에서 자른 탓에, 은선의 사진은 흐릿해 보였다. 주언은 은선의 사진을 마주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특수능력기관 공격 1팀 맞죠?’

‘네, 맞는데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신 게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거참.’

참고인 조사 때문에 사고 직후 불려가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폭발하는 걸 바보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연봉도 많이 받는 곳 아닌가.’

‘…….’

‘참고할 만한 특이 사항 같은 건 없었습니까?’

‘그때 리셉션에 있었고….’

‘아, 비상계단에서 통화 중이었다고 하셨죠.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경찰들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으나 주언은 굴하지 않고 경찰이 묻는 말에만 답했다. 에스퍼의 능력은 보여줄 수 있는 것이지만, 가이드의 능력은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경찰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티를 냈다.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는 건 처음이 아니었기에 무시했다. 경찰이 아니더라도 신경 쓸 일이 태산이었다. 명훤에게는 연락을 했지만 출장이 제법 길어지는지 연락이 닿지 않아 장례식 이틀째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합동 장례식을 치러주겠다는 정부 측 제안이 있었지만, 주언은 거절했다. 장례식을 따로 치러주는 것만으로 속죄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는 길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주언은 흐려지는 눈을 비비며 텅 빈 빈소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자리를 지켰다.

강노훈에게도 명훤의 이야기와 자세한 사정을 배제한 채 간략하게 설명했다. 명훤이라는 연결 고리를 빼고 설명해서 강노훈은 주언이 무언가 숨기는 걸 알아차렸을 테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주언이 당일에 휴가를 신청한 것을 승인해줬다. 그 덕분에 계속 빈소를 지킬 수 있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이틀 동안 빈소를 지켰다고 얼굴이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예전에는 S급 던전에서 며칠씩 굴러도 괜찮았었는데….’

희미하게 동이 틀 때였다.

저벅저벅.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졸고 있던 주언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입구에 명훤이 보였다. 얼마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명훤 쪽을 흘끗거렸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 살짝 흐트러진 옷, 붉어진 눈가, 평소 때의 피곤한 모습과 다름없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그의 모습이 한없이 처연해 보였다.

“내가 남겨둔 문자 봤어?”

“확인하자마자 왔어.”

주언이 명훤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난 탓에 다리가 저릿했다.

“앗.”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으나, 빠르게 앞으로 다가온 명훤이 주언을 받쳐 안았다.

“조심해.”

“응. 미안.”

순식간에 가까워진 두 사람이 서로를 오롯이 바라보았다.

“너 여기서 혼자 얼마나 앉아 있었어?”

“…연락했을 때부터.”

연락을 마지막으로 한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왜 네가 여기를 계속 지켜, 쉬어.”

“아냐. 괜찮아.”

“…후.”

명훤의 한숨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미안.”

“네가 왜 사과를 해.”

“그래도 내가 그때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해서.”

명훤을 보니 감정이 복받쳐왔다. 혼자 있는 내내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메말라 버석거리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폭발이 너무 근접한 곳에서 터져서 시체를 발견할 수 없었대. 내가 거기에 있었는데, 구하려고 했는데 못 구했어. 이 소식까지 말해야 되는데, 목구멍이 뜨거운 응어리에 가로막혀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얘기했으면 잘 풀렸을지도 몰랐을 거라는, 이제는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이 주언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명훤이 주언을 제 품 안으로 살짝 더 끌어당겼다.

“내가 엮이지 말랬지.”

“마지막으로 보러 갔었어.”

“나한테 말하고 갔어야지.”

품에 안겨 있어 그가 어떤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언은 명훤의 등에 매달리듯 껴안았다. 시야 안에 그가 입은 흰 셔츠만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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