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명훤이는요?”
-명훤 씨는 백화점에 먼저 갔는데. 가이드 없이 혼자 갔어. 지원 요청했는데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래서.
“혼자 갔다고요? 저 지금 D 백화점 근처예요. 제가 갈게요.”
-괜찮겠어? 지원은 40분 뒤에야 도착한다고 해서. 개새끼들.
“네. 괜찮아요. 가서 합류하고 연락드릴게요.”
주언은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섰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어 신발 먼저 구겨 신고, 입고 왔던 코트를 걸쳤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 간거야….”
순간 머릿속에 집 앞까지 찾아왔던 기자의 얼굴이 스쳤다.
‘특정할 수는 없지만 AGT가 복수를 하려고 곧 모 백화점을 점거한다는….’
기자가 신뢰의 증표로 말해줬던 정보. 그 정보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안 돼….”
주언이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AGT의 표적은 늘 기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의 희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주언이 도착했을 때는 백화점 한쪽이 날아가 있었다. 주변에 구급차가 쉴 새 없이 사이렌을 울리며 사라졌다, 다시 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울음소리, 고함 소리가 한데 섞여 마치 지옥도의 한 장면 같았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주언은 인파를 헤치고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도시 한복판 백화점 점거에 제대로 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폭발의 여파로 날려진 건물 잔해에 피해를 입은 사람도 몇 명 보였다. 큰 잔해 아래에 사람이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아악! 저기 밑에 사람이 깔려 있어요!”
“벽 밑에 깔려 있어요. 아무나 빨리 도와주세요.”
입원 병동을 무력하게 봤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다르게 사람들은 서로 돕고 있었다. 곧 파편이 들리고 그 아래 다리가 짓눌렸던 사람을 구출해내는 모습을 보았다.
도망치는 와중에 자신을 막아섰던 경비원. 도망치지 않고 날아온 건물 잔해에 피해 입은 사람을 자진해서 구하는 사람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병원 폭발 사고는 휘말린 것이고, 지금은 자신이 직접 폭풍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완전히 달랐다.
주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주언은 건물을 살펴보다 가장 인원이 적게 배치된 쪽으로 다가갔다. 다시는 그런 탈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백화점 안에서 바깥을 볼 때 이쪽이 가장 눈에 덜 띄는 쪽이다.
“안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앞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던 경찰이 주언을 막아섰다. 이곳이 제일 만만해 보인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았는지 몇 번 이쪽을 통해 건물 안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했던 듯했다.
“기관에서 지원 요청 나왔습니다.”
“신분증 좀 확인하겠습니다.”
혼자 온 게 미심쩍은지 주언을 위아래로 훑던 경찰은 주언이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신분증을 확인한 후에 주언을 들여보내 주었다.
주언이 안에 들어가기 전 경찰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혹시 기관에서는 추가 지원을….”
혼선이 생겨 이쪽까지 추가 지원 요청에 대한 정보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듯했다.
“지원 요청은 했고 곧 올 텐데 시간이 조금 걸려서요.”
경찰은 기관에서 보낸 인원이 고작 두 명밖에 안 될까 봐 많이 불안했었는지 주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지 폭발 소리와 총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건물 잔해를 밟고 안에 들어가자 내부는 환기가 되지 않아, 폭발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 먼지가 자욱했다.
바로 앞에 있는 계단은 반쯤 날아가 저쪽으로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주언은 심호흡하며 기둥 뒤에 숨어 D 백화점이 어땠는지 머릿속으로 되짚어 보았다.
비상계단은 너무 뻔한 루트라 AGT가 그냥 뒀을 리는 없고, 계단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에스컬레이터.’
주언은 건물 양 끝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떠올리곤, 그대로 걸음을 재촉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스퍼 없이 가이드가 혼자 이동할 때 속도보다 안전을 최우선한다. 주언은 건물 잔해에 몸을 숨기며 조금씩 이동했다.
1층에는 다행히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2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X발. 대장은 왜 그 새끼한테 그렇게 집착해?”
“몰라. 대장도 제정신은 아니잖아.”
“하긴.”
갑자기 들린 대화 소리에 주언은 움직이려던 걸음을 멈추고 기둥 뒤에 숨었다. 지금 이곳에서 태연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AGT 소속밖에 없었다.
‘그 새끼가 누구지?’
주언을 발견하기 전에 숨은 덕분에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기둥을 스쳐 지나갔다.
“이런 무모한 계획을 갑자기 세우고 실행하는 대장도 제정신 아니지만, 따르는 우리도 제정신 아니야.”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이 낄낄거리며 지나쳐 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또 다른 목소리가 개입했다.
“야.”
“예?”
낄낄 웃던 두 사람이 바짝 긴장하는 게 주언에게까지 느껴졌다. 새로 나타난 사람은 싸늘한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핀잔을 주었다.
“누가 엿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실실 처 웃고 다닐 거면 정찰을 왜 하냐.”
“예?”
“너네 눈은 장식이지?”
움찔. 주언의 몸이 떨렸다. 근처에 분명 두 사람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AGT 내에서 제법 높은 인물인가, 추측할 뿐이었다.
벌써 들킨 건가. 아니, 아직 몰랐다. 곧장 공격을 퍼붓지 않는 걸 보면 허세일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 명훤이도 못 찾았는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무기가 될만한 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손에 땀이 짙게 배어 나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주언은 심장을 부여잡고 인기척을 더 죽이기 위해 숨을 죽였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만히 당하느니 조금이라도 반항을 해야 하나 싶어 두 손을 주먹 쥐었을 때였다. 뒤에서 뻗어져 나온 팔이 주언의 입을 막고, 순식간에 잔해 사이에 있는 틈에 주언의 몸을 밀어 넣었다.
“으읍!”
“쉿.”
“읍?”
뜨거운 몸이 주언을 휘감았다. 두 눈을 크게 뜬 주언이 발버둥 치려 했으나, 곧 마주친 시선에 몸에 힘을 풀었다.
명훤이었다.
‘상태가 안 좋은데.’
능력을 많이 써서 과열됐는지 명훤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이마는 싸우다가 찢어졌는지 제법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언은 손가락으로 소매를 붙잡고 명훤의 이마에 대었다. 소매가 순식간에 피에 젖었다.
“분명 여기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쪽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는지 혀를 차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까이서 들렸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대장님.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이만 철수하시는 편이.”
“부대장님은 반대하셔서 안 오셨잖습니까.”
정찰대 두 명이 뻣뻣한 목소리로 철수를 제안했다. AGT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 일이었다는 걸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대장?’
AGT를 이끄는 리더가 누군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사람 다루는 게 노련한 40대 전후의 사람이라는 짐작만 있었다. 하지만 대장이라고 불린 인물의 목소리는 예상과 전혀 달리 앳되어 보였다.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텐데.”
“예?”
“굳지 않은 피가 떨어져 있잖아.”
“그러고 보니….”
“피가 너무 흩뿌려져 있어서 어디로 갔는지는 파악이 안 되지만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헉. 그러고 보니 피가…!”
온 신경을 바깥에 두느라 뒤늦게 눈치챘다. 목 언저리에 닿는 명훤의 숨이 지나치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흘끗 뒤를 보니 명훤이 얼굴을 구긴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람들은 한곳에 모아뒀습니다. 대장님 그런데 괜찮으십니까?”
“원래 크면서 형제랑 싸우는 법이잖아.”
“그렇게까지… 싸우…겠죠.”
정찰원이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가까이에 있는데 평소 하듯이 가이딩을 하면 들킬 것이 분명했다. 주언은 명훤의 손을 붙잡았다.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치며 주언을 위협하듯 몰려왔다.
다행히 찾지 못했는지 주변이 조용해졌다. 주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명훤의 손을 세게 잡았다. 명훤의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아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억제제도 같이 챙겨올 걸 그랬다.
‘그러고 보니까 지하 연구실에서 나올 때도 막무가내로 나왔는데.’
보안 때문에 혼자 나갈 수가 없어 다른 연구원이 나갈 때 억지로 같이 나왔다.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일단 여기서 안전히 나가는 게 우선이다.
명훤이 주언의 몸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신체를 많이 접촉하면 접촉할수록 가이딩의 효과는 더 높아진다. 체액이 섞이면 효과는 배가 된다. 지금 안는 것보다 더한 행위는 할 수 없으니까 안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심장이 주체하지 못하고 뛰었다. 주언의 품이 따뜻하다고 느꼈을 때였다.
“명훤아.”
목소리가 귀 언저리에 들렸다. 다정하게 불리는 이름이 이렇게까지 소름 끼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명훤이 재빠르게 행동했다. 주언의 등을 껴안은 명훤은 그대로 총을 뒤에 있는 사람에게 조준했다.
쿠쿠쿠쿵.
공격 범위는 작았지만 파괴력 때문인지 건물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읏.”
명훤의 가슴팍에 안겼던 주언이 서둘러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AGT의 리더를 해치운 건가 싶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고, 공격은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