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안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일행입니다. 잠깐 조사차 나왔어요.”
경찰이 만류하려 했으나 뒤에서 노훈이 신분증을 보여줬다. 경찰은 병원복을 입은 명훤을 의심스럽게 봤으나 더 이상 안에 들어가는 걸 만류하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무너져 내려 몇 층인지 의미가 없는 자리에 섰다. AGT가 떠나는 것까지 확인하고 긴장이 풀려 정신을 놓았으면 안 됐는데.
분노를 참는 명훤의 턱이 도드라졌다. 웃기지 마. 안 죽었어. 내 눈앞에 멀쩡히 살아 있었는데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자신이 이 두 손으로 분명 지켰다. 혹시 몰랐다. 잔해 밑에 자리가 있어서 그래서 기적적으로 살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능력을 쓰면 빠르겠지만 혹시라도 밑에 주언이가 살아있어서 다칠까 봐 명훤은 손으로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유리 조각과 시멘트 조각들이 섞여 있어 손으로 바닥을 손으로 파낼 때마다 손에 생채기가 났으나 명훤은 개의치 않았다.
“명훤 씨. 그만해요.”
한동안 갑작스러운 명훤의 행동을 지켜보던 윤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밑에 공간이 있어서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명훤 씨.”
“시체도 발견 안 됐다면서. 그런데 왜 벌써 포기해요.”
무의미한 행동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명훤의 눈이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번들거렸다.
“안 죽었어요.”
“명훤 씨. 우리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누가 죽어.”
죽었을 리 없다. 나를 두고 네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겠어.
“어떻게 그렇게 죽어요.”
“명훤 씨.”
“말이 안 되잖아.”
쾅. 명훤이 바닥을 내리쳤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난 나를 약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싫어.’
자신을 약하게 하는 게 싫다고 말했던 때가 떠올랐다. 역설적인 말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사랑하게 돼서 자신이 약해진 것뿐이었으니까. 약해진 건 오롯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말걸.
그냥 주언을 너무 사랑한다고 느낄 때마다 나약해지는 자신이 너무 싫었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뿐이다.
명훤이 주언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그 자리에서 무릎 꿇었다.
더 단단해지면 그때 말하고 싶었다. 그마저도 여한올 때문에 엉망이 되어 실토하기로 약속해 버렸다.
“안 죽었어요. 우주언.”
명훤이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미쳐버린 걸지도 몰랐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지만, 주언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스스로의 의지로 주언의 죽음을 인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돌아오면… 그때… 그때 다시 얘기해줘. 명훤아.’
정신이 완전히 나락으로 가라앉기 전 주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잠깐 어디로 떠난 게 분명했다. 명훤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점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명훤 씨. 그러면 주언이가 더 힘들어할 거예요.”
윤진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명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빨리 주언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집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가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화를 낼 것이다. 그럼 명훤은 주언을 껴안고 그가 받아줄 때까지 빌어야지.
어쩌면 용서해줄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지도 몰랐다.
“여명훤 씨!”
강노훈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명훤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평소라면 꿈쩍도 하지 않았을 몸이 크게 휘청였다.
“뭡니까.”
주언에게 가봐야 하는데 주변이 왜 이렇게 방해하는지 모르겠다.
명훤의 싸늘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노훈은 손을 놓지 않았다.
“제발 치료 좀 받고 가요.”
고통스러운 윤진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발밑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발이 보였다. 그제야 명훤은 스스로가 신발조차 신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명훤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선망의 시선을 받았던 명훤에게 낯선 종류의 시선이었다.
“명훤 씨. 나랑 한동안 같이 다니자. 많이 좁겠지만 나랑 한동안 같이 지내자….”
강노훈이 동행해주겠다고 했지만 명훤은 극구 거절했다.
“주언이가 있는데 제가 왜요.”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에 그 누구도 들일 수 없었다.
“명훤 씨. 휴가 내가 승인 안 해 줄 거니까 내일 회사에 와. 좀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응?”
주언만 있으면 모든 건 일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강노훈이 이렇게 당부하듯 말할 필요 없을 텐데.
“…알겠습니다.”
명훤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자신에게 지시하는 노훈을 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명훤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믿음이 있었다. 돌아가면 주언이 있을 거라고. 돌아가면 자신이 조금 다쳤다는 거에 안절부절못하며 화낼 것이라고. 그럴 거라고 믿었다.
‘S급을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명훤은 그러면 주언을 있는 힘껏 껴안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해 줄 생각이었다.
**
현관문을 열었을 때, 삭막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언의 개인 물건이 빠져있어 집 안이 휑해 보였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뇌가 필사적으로 주언이 집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냈다.
“아직도 화나 있구나.”
그러고 보니 아직 해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친구 집에 있는 건가. 아직도 말하지 않아서, 쓰러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설명을 못 했다. 그래서 단단히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곧 다 괜찮아질 것이다. 주언은 성실한 성격이니까 내일 기관에 출근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일 기관에 가서 설명을 하면 된다.
“내일은 꼭 설명해야겠어.”
주언이 죽었다는 악의를 가진 소문을 퍼뜨린 사람도 찾아내야겠다. 주언이가 알지 못하도록,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현실이 찾아들 것 같은 불온한 예감에 명훤은 끊임없이 주언을 생각했다.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명훤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숨이 막혔다. 고요 속에 코를 박고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주언에게 모든 걸 설명하면. 그러면 내일은 모든 것이 원래대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득해지는 지독한 감각은 다 허상일 뿐이다. 명훤이 손이 희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손바닥 안에 손톱자국이 짙게 새겨졌다.
이상하게 밤이 길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온몸이 납에 짓눌린 것처럼 무겁다.
“후우….”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서서히 침몰해 간다. 명훤은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이상한 감정들이 수용성이길 바라며 오랫동안 샤워기를 틀고 물을 맞았다.
“주언아.”
부를 때마다 이름이 혀가 아릴 정도로 달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끝 맛이 썼다.
명훤은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채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동이 트는 걸 바라보았다. 주언이 평소 눕는 자리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차가운 침대 시트가 손에 감겨왔다.
분명 동이 트는 게 보이는데 세상이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었다. 하늘은 밝은데 마음은 여전히 너무 어두워서 도저히 아침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명훤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돌아올 때 짐을 혼자 들고 오려면 힘들 테니까 자신이 도와줘야겠다 싶었다.
“가지고 와야 되겠네.”
항상 꼼꼼한 듯 보이지만 가끔 덜렁이는 주언의 모습을 떠올리곤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곧 강윤재를 떠올리곤 표정을 굳혔다.
‘강윤재.’
주언의 옆에서 친구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어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 명훤은 강윤재가 싫었다.
**
똑똑.
명훤은 공격 1팀 사무실이 아닌, 연구소 쪽으로 향했다.
똑똑.
몇 번이나 노크한 후에야 사무실 문이 열렸다. 명훤이 기억하던 얼굴보다 훨씬 수척해진 얼굴에 잠깐 멈칫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다크서클이 눈 밑에 짙게 자리 잡고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다. 강윤재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어 명훤을 확인하곤 노골적으로 인상을 굳혔다.
“왜.”
“주언이 짐 가져가려고.”
명훤의 태연한 어조에 윤재가 멈칫했다.
“짐 나한테 맡긴 건데, 네가 왜 가져가. 괜찮아.”
“주언이 집이 있는데 집에 둬야지.”
“뭐?”
“주언이가 돌아오면 불편할 거 아니야.”
문을 닫으려던 윤재는 명훤의 말에 그대로 다시 문을 활짝 열었다. 윤재가 가늠하듯 명훤을 바라보았다. 심하게 싸웠다고 들어서 이렇게 견제하는 걸까.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주언이가 뭐라고 그래? 우리 헤어졌다고?”
“…….”
“우리 근데 화해했거든.”
“…….”
윤재는 대화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순간 주언이 말해버린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명훤의 시선에 초점이 없었다. 명훤답지 않게 말을 길고 장황하게 하고 있었다.
“내가 주언이 화 풀 때까지 빌 거야. 주언이는 착하니까 용서해 줄 거고. 그러니까 주언이 곧 집에 돌아올 거야.”
“여명훤.”
“왜.”
윤재는 주언이 없어져도 명훤은 잘 견딜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훈련을 받을 때부터 윤재가 아는 명훤은 항상 단단한 모습이었으니까.
“주언이 이제 없어.”
“…개소리.”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두 사람 헤어졌다는 얘기 들었던 거고. 네가 화해했다고 해도 난 들은 거 없어. 그러니까 짐은 내가 맡아.”
“화해했다고 했지.”
강윤재가 싸늘하게 명훤을 쳐냈다. 명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윤재는 명훤이 주언과 화해했다는 말만큼은 진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들은 거 없어.”